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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리노베이션 ① 연남동 ‘어쩌다가게’]“어쩌다 만난 우리 따로 또 함께 가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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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4호 김금영 기자⁄ 2015.08.20 08:55:45

▲1층의 마당은 입주민의 공유 공간이자 ‘어쩌다가게’ 방문객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곳이다. 사진 = 조재용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빈땅에 작은 건물을 짓기만 하면 되던 시대가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모두 부셔져 평평한 땅만 남은 한국의 1950~70년대였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들어선 작은 집들을, 한국인들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부수고 대형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 그 아파트를 또 부수고 다시 짓는 시대가 1980년 이후 최근까지 이어졌지만, 그런 ‘대규모 부수고 다시 짓기’는 이제 힘들어졌다.

현 시대를 유현준 홍익대 건축과 교수는 ‘팰림세스트(palimpsest) 시대’라고 이름붙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양피지에 글씨를 쓰고 지우고 또 쓰는 바람에 글자가 겹쳐진 상태를 일컫는 팰림세스트라는 단어처럼, 이제 한국의 건축도 ‘덧지어’ 쓰는 시대가 왔다는 소리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도 저서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공간서가 발간)에서 “기존 건축물의 활용이 점차 중요해진다. 재생은 새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것보다 더욱 풍부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재생 작업이란 이용 방식이 달라져 이를 수용하기 위함”이라고 짚었다.

▲‘어쩌다가게’ 1층의 카페. 영업시간 이후엔 입주민이 자유롭게 공유하는 장소가 된다. 사진 = 조재용

한국 건축의 이런 추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뜨거운 동네’가 있으니 바로 서울 연남동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20세기 분위기가 남아 있는 별난 동네”였던 연남동에선 요즘 골목마다 단독주택을 카페-상점으로 개조(리노베이션)하는 공사가 줄을 잇고 있다.

연세대 앞에서도, 홍익대 앞에서도 어중간하게 떨어져 있어 대규모 개발의 눈길을 받지 못했던 연남동 골목길은, 바로 ‘버려졌기 때문에’ 리노베이션의 핫 플레이스가 됐으니, 변방이 중심이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을 완전히 바꾼 건물들이 짠~ 하고 개봉되는 연남동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핫한 개조 건물’들을 건축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소개하는 시리즈를 CNB저널은 이번 호부터 시작한다.

서울 마포구의 연남동은 중국인 화교들이 많이 사는, ‘서울의 차이나 타운’이다. 이국적 특색이 녹아 들어간 오랜 전통의 화교 음식점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 중국인-대만인 주인의 새 식당들도 속속 오픈하고 있다.

▲‘어쩌다가게’의 내부 모습. 기존 건물의 빨간 벽돌을 살리고, 새 공간을 증축해 색다른 디자인을 창조했다. 사진 = 조재용

연남동의 최고 특징이라면 옛 골목이 그냥 남아 있다는 것. ‘골목 속의 시장’인 동진시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개발시대의 안목으로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좁은 골목의 연남동에는 요즘 기존 건물에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을 입혀 카페, 레스토랑, 공방 등을 뚝딱 만들어내는 작업이 하나의 작은 산업을 이루고 있다.

2014년 4월 문을 연 연남동 ‘어쩌다가게’는 팰림세스트 방식을 전면적으로 채택했다. 단독 주택이던 건물이 가게로 탈바꿈하면서 재생 과정을 거쳤다. 멀리서 보면 빨간 벽돌을 쌓아 만든 굴뚝이 먼저 눈에 띈다. 세월의 흐름을 머금은 이 굴뚝은 기존 건물에 있던 요소지만 지금 어쩌다가게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굴뚝을 둘러싼 건물의 전면에 큰 유리창이 새롭게 설치되고, 흰 벽으로 새 공간을 증축했다. 획기적인 변화보다 약간의 보수와 증축으로 기존 건물에 21세기적 기능을 덧붙인 어쩌다가게는 연남동의 리노베이션 주택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다.

▲‘어쩌다가게’는 2층 단독주택을 점포로 개조한 곳으로, 총 9개 상점 및 작업실이 입주해 있다. 사진 = 조재용

천의영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어쩌다가게는 연남동 건물의 특징인 ‘최소 인터벤션(intervention, 개입)을 통한 최대 효과’의 실현 공간이다. 즉 건축물 전체를 대대적으로 고치거나 완전 변신시킨 게 아니라 기존 공간의 흔적을 최대한 남기면서도 건물 앞면에 스크린월(벽에 설치한 대형 창)을 디자인하는 등 부분적 변화를 줘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그래서 새로운 느낌을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1, 2층으로 구성된 건물의 방 9개엔 상점과 작업실이 들어갔다. 101호엔 카페테리아 ‘라운지’, 102호엔 기존에 입점해 있던 책방 ‘별책부록’이 나가고 올 7월 ‘월화수 한의원’이 새롭게 들어왔다. 103호엔 가죽 수제화를 파는 ‘아베크’, 104호엔 스탠딩 바 ‘앤젤스 쉐어’가 들어섰고, 케이크 가게 ‘피스피스’가 나간 105호는 올 9월 가방 만드는 브랜드의 새 프로모션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별책부록’의 내부 모습. ‘어쩌다가게’엔 홍대 앞 일대에서 오랜 시간 운영돼 고정 팬을 확보한 소규모 상점들이 입주했다. 사진 = 조재용

계단을 올라가 2층 201호에선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1인 미용실 ‘바이 더 컷’이, 202호에선 수제 초콜릿 공방 ‘비터 스윗 나인’이 고개를 내밀고, 203호의 실크 스크린 공방 ‘에토프’, 마지막으로 204호의 꽃가게 ‘아 스튜디오’가 이어진다. 각양각색의 가게가 모인 멀티숍이라 할 수 있다.

2층 단독 주택의 화려한 변신
연남동 셰어 스토어 ‘어쩌다가
게’

물론, 2014년 4월 오픈한 어쩌다가게가 1년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 동안 연남동의 핫 플레이스로 유명해진 건 단순히 멀티숍이라서가 아니다. 어쩌다가게의 진정한 특징은, 상점 주인이 사용하는 공간을 보면 분명해진다. 최소한의 사적인 공간을 제외하고 거실, 주방 등의 공간을 공유하는 이른바 공동 주거(share house)의 개념을 상점에 개입한, ‘셰어 스토어(share store)’이기 때문이다.

▲서울 연남동의 ‘어쩌다가게’ 전경. 우뚝 솟아 있는 굴뚝이 인상적이다. 사진 = 조재용

각 상점은 독자적 성격을 갖고 운영된다. 그러나 그저 각기 공간을 점유하고 장사만 하는 백화점 또는 멀티숍과 다른 점은, 1층의 라운지 카페와 마당을 보면 된다. 이 공간은 저녁 7시 카페가 문을 닫으면 모든 상점이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비터 스윗 나인에서 만든 초콜릿, 에토프에서 만든 가방 작품이 카페에서 위탁 판매된다. 한 빌딩의 가게들이 일부 공간을 공유할 뿐 아니라, 가게들 사이의 협력 시스템으로 메뉴와 상품도 함께 개발하고 판매하는 방식이다.

가게 임대료도 화제가 됐다. 5년 장기임대여서, 입주자들은 월세 인상 없이 정해진 보증금과 월세로 임대 기간을 보장 받는다. 이와 관련 천의영 교수는 “어쩌다가게는 2층 가정집을 공유 복합 매장으로 개조해, 최소 규모 매장과 최소 임대료를 실현했다”고 평했다. 개인소유보다는 공유, ‘나혼자 잘살자’에서 ‘함께 살면 더 좋잖아’로 바뀌는 시대정신의 실현공간이기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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