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진국 여우별컴퍼니 대표]“여우별처럼 창작극 사랑 빛낼 것”
▲정진국 여우별컴퍼니 대표가 대학로의 여우별씨어터 입구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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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여우별. 순우리말로서 궂은 날에도 밝게 빛을 내는 별을 일컫는다. 2014년 정진국 대표는 이런 여우별처럼 거친 풍파 속에서도 불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담아 공연 제작사 이름을 ‘여우별컴퍼니’로 정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제작사 대표로서 많은 과정을 거쳐온 그는 “항상 웃을 수만은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지만, 빛나는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가을엔터테인먼트의 소속 배우 겸 연출로 활동했던 그는 창작극에 대한 애정으로 독립해 2014년 여우별컴퍼니를 차리고, 대학로에서 극장 여우별씨어터를 운영 중이다. 현재 여우별컴퍼니의 대표 공연인 창작극 ‘애정빙자사기극’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정 대표의 실제 연애 경험이 녹아들어간 ‘애정빙자사기극’은 2012년 초연됐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승배’와 ‘아름’, 그리고 그들의 전 연인인 ‘여진’과 ‘태양’ 커플이 서로 얽히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처음엔 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고픈 처절한 심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 시작되는 달달한 사랑에 녹아들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관객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창작 공연에 투자의 손길이 잘 이어지지 않아 공연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고, 직접 이 공연을 살려보겠다는 의지로 공연 제작사를 차려 현재까지 왔다. 동료 배우이자, ‘애정빙자사기극’ 시즌2 때 예술 감독으로 참여한 홍연우 이사가 파트너로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이 심폐소생술을 구사하듯 살려낸 ‘애정빙자사기극’은 올해도 관객을 찾는다. 대학로 소리아트홀 2관에서 10월 25일까지 공연되고 있다.
▲여우별컴퍼니의 대표작인 ‘애정빙자사기극’은 2012년 초연 뒤 현재 대학로 소리아트홀 2관에서 공연 중이다. 실연의 상처에 아파하는 두 커플이 새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사진 = 여우별컴퍼니
“‘애정빙자사기극’은 많은 애정이 가는 동시에 저를 아프게도 한 작품이에요. 특히 올해는 메르스 사태로 지방 공연이 취소되는 등 어려움이 있었죠. 이 작품에 대한 믿음 없이는 이렇게까지 끌어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분명 잘 키우면 관객에게 사랑 받는 공연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었죠. ‘거봐, 그 작품은 안 된다니까’ 하는 인식이 남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단순 재연이 아니라, 내년엔 내용과 제목 등을 보완해 발전된 모습을 선보이려 해요. 스토리 작가와 현재 각색을 함께 하고 있고요. 제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있어 관객에게 공연 이름 공모전을 진행해볼까도 생각 중이에요.”
어느 정도 관객에게 인지도가 쌓이고, 입소문을 타면 변화보다는 형태를 유지하는 게 안정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정 대표는 정체되기보다 또 다른 발전을 위한 시도를 강행할 생각이다. 단지 ‘애정빙자사기극’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대학로 대표 연극으로 꼽히는 ‘그 남자 그 여자’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애정빙자사기극’부터 ‘그 남자 그여자’까지 실제 경험 듬뿍…
내년엔 시대에 맞춰 새 변화 줄 생각
올해 8주년을 맞은 ‘그 남자 그 여자’는 로맨틱 코미디 연극의 시초로 불린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30대 사내 커플과 20대 청춘 커플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첫 떨림부터 달달한 데이트, 그리고 사소한 오해로 갈등을 겪는 모습까지, 사랑할 때 누구나 겪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대학로 대표 연극으로 꼽히는 ‘그 남자 그 여자’의 한 장면. 라디오 드라마가 원작으로, 20대 풋풋한 청춘 커플과 30대 사내 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재 대학로 소리아트홀 1관에서 공연 중이다. 사진 = 여우별컴퍼니
MBC FM 라디오 ‘이소라의 음악도시’에 방영된 사랑 이야기를 수록한 책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얻어, 정 대표가 대학교 워크숍 때 시범 형태로 선보인 뒤, 가을엔터테인먼트에 정식 작품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2007년 초연돼 꾸준히 무대에 올랐고, 정 대표는 이 극의 출연 배우이자 연출로 참여했다. 올해는 작품의 판권 일부를 여우별컴퍼니로 가져와 대학로 소리아트홀 1관에서 오픈런으로 개막했다. 내년엔 판권을 100% 가져와 본격적 변화를 줄 생각이라고.
“저는 6년 전부터 이 작품 연출을 맡아왔습니다. 정말 꾸준히 사랑을 받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사랑을 받느라 작품에 변화를 주지 않았던 거예요. 정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작품이 오른 지 벌써 8년이 지났기 때문에 요즘엔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거나, 달라진 정서가 분명 있거든요. 한 예로 극 속에 32살이 굉장한 노처녀로 나오는데, 요즘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관객이 더 극에 공감하도록 보완할 계획이에요.”
이처럼 작품의 성격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남자 그 여자’ 또한 ‘애정빙자사기극’처럼 정 대표의 에피소드가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이 작품의 원작이 된 책을 선물로 줬는데 바로 그게 이별 선물이었다. 책 표지에 장문의 편지가 있었다. “이 책 좀 보고 공부하라”는 말이 특히 충격이었다고. 정 대표는 “당시 펑펑 울면서 책을 읽었는데, 여러 사랑 이야기 중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거기서 공연의 첫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홍연우 이사가 그때 그 여자친구가 아니었으면 ‘그 남자 그 여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며 웃었다.
그런데 ‘그 남자 그 여자’와 ‘애정빙자사기극’ 모두 여우별컴퍼니가 운영하는 여우별씨어터가 아닌 다른 극장에서 열린다. 그러면 그 동안 여우별씨어터는 비어 있는 것일까? 여기는 연극을 선보이기 위한 또 다른 무대로 활용 중이다. 현재는 극단 낭만유랑단의 연극 ‘뼈의 노래’가 공연 중이다. 2011년 초연된 이 공연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 치유를 주고받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현대인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은 취지를 이해한 정 대표가 여우별씨어터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도왔다. 201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관료 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대학로에 위치한 여우별씨어터. 꾸준히 창작극을 올리자는 취지 아래 여우별컴퍼니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사진 = 여우별컴퍼니
“대학로에 상업적인 공연이 난무하는 분위기에서 좋은 연극을 선보일 무대를 여우별컴퍼니가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관료 지원 사업에 지원했고, 그 결과 ‘우수 연극 단체 대관료 지원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뼈의 노래’ 이후에 ‘여성 연출가전’ 등 공연 4개를 선보이기로 예정돼 있어요. 앞으로 여우별씨어터가 연극인에게 좋은 공연을 올릴 기회를 제공하고, 창작 공연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소로 발돋움하길 기대하고 있어요.”
창작극 선보일 공간으로 여우별씨어터 꾸려
신작 ‘시간을 파는 상점’도 선보일 계획
서울 뿐 아니라 대구에서도 창작극을 선보일 공간을 준비 중이다. ‘애정빙자사기극’ 공연을 올린 대구 브로드웨이아트홀과 올 12월까지 인수 계약을 했는데, 내년에 정식으로 여우별컴퍼니에 인수할 고민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바쁜 일들이 많다. 올 6월엔 외교부가 주최한 2015 쿠바문화예술축제를 대행 기획해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진행했다. 그리고 현재 대구에서 공연계 입문을 꿈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느라 일주일에 2~3일은 대구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정 대표는 “문화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다. 또한 내 재능을 팔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여러 시도로 쌓인 노하우는 창작극을 만드는 데 쓰인다.
항상 신작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정 대표는 올 11월 ‘시간을 파는 상점’ 연극을 올릴 계획이다.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청소년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아래 시작됐다. 학생들이 공연을 본 뒤 대학로에서 또 공연을 보고 싶게끔 하자는 것. 이 학생들이 자라 창작극에 애정을 갖는 관람객층으로 성장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엔 단지 창작자들의 애정과 노력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꼭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뮤지컬보다 연극 쪽이 특히 투자를 받기 힘들어요. 아주 많아야 1억이고, 보통 3000만~5000만 원 수준이죠. 아예 투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많고요. 기업들이 문화 예술을 적극 지원하는 메세나 활동이 절실합니다. 정부 또한 창작극 지원에 더 힘을 쏟아줘야 하고요. 그런 지원은 창작자들이 더 다양하고 좋은 공연을 풍성하게 선보일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관객들의 애정 또한 필요하고요.”
정 대표는 “9회말 투아웃 같은 힘든 상황이 매년 계속된다. 하지만 내가 오래 버텨야 공연계의 후배들에게 기회도 줄 수 있고, 앞으로 더 좋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계속 이 길을 걷고 싶다”며 “외국의 유명 라이선스 작품, 인기 있는 스타 출연 공연도 좋지만 그보다는 색다르고 새로운 창작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포부가 여우별처럼 반짝반짝 빛을 밝히길 기대해본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