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라이프 ㉒ 한류 주역 박창식 의원]“휴전선 ‘역사파크’로 통일 앞당기자”
드라마 제작자 출신으로 ‘웅성웅성 한반도 한류’ 주창
(CNB저널 = 최서윤 기자) ‘여명의 눈동자(1991년)’, ‘모래시계(1995년)’, ‘풀하우스(2004년)’, ‘태왕사신기(2007년)’ ‘이산(2007년)’, ‘추적자(2012년)’.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드라마 제목들이다. 드라마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내고 1980년대 어두운 시대를 재조명 했으며 한류(韓流)를 이끈 인사가 있다.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이다.
지난 2012년 국회에 입성한 박 의원은 드라마 제작자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국회에서 문화를 이용한 경제 활성화와 문화인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또 단순한 한류의 부흥을 넘어서 한반도 한류로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내세웠다. 이런 박 의원과 CNB저널과 인터뷰는 8월5일 구리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얼굴 아는 사람 없어 처음엔 난감…문화융성이 웅성웅성 해야”
박창식 의원이 만든 드라마 중엔 이른바 ‘국민 드라마’가 많다. 유명 연기자들과 연예계 관계자들이 그와 친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제작자다 보니 얼굴이 알려진 편은 아니었다. 박 의원이 국회에 들어왔을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국회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최고위원을 뽑을 때였어요. 한 달 동안 지방을 다녔죠. 1박2일 동안 쓴 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휴게소 같은 데서 쓴 소리를 많이 듣는 사람에게 상품을 주곤 했죠. 그런데 한 중진 의원이 저한테 편한 말투로 볼펜을 갖다 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를 기획사 직원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정치부 기자들도 저를 몰랐고요. 그러다가 전주에서 회식을 했어요. 회식 자리에서 제 소개를 했죠. 다들 깜짝 놀라면서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한 기자는 부인이 작가라면서 인사를 하기도 했죠. 3월에 중동 4개국(카타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UAE)을 갔을 때도 제가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막상 절 찍어주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국회의원들은 서로 사진 찍히려고 하는데 저는 제가 찍었죠. 대통령이 계신 데서 제가 현장 프로듀서였어요(웃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일(현지시각) 중동 4개국 순방국 중 첫 번째 방문국인 쿠웨이트에서 ‘알-가님’ 국회의장을 접견했다. 오른쪽 네 번째가 박창식 의원. 사진제공 = 의원실
얼굴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유명 제작자라 목에 힘이 들어가 있을 법도 하다. 의외였다. 그는 장난기 어린 표정과 열정적인 말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국정 2기를 시작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 및 한류수출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은 문화 융성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국회 들어와서 저의 책무가 큽니다. 문화 융성이 웅성웅성 하도록 문화 영토를 넓혀야죠. 문화가 기본이고, 문화가 답이잖아요. 한류로 시작해서 한류로 끝나고. 사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사람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반도에 지하자원 같은 것은 우리보다 북한에 더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개발하기가 어렵죠. 여러 악조건들을 극복하려면 문화영토를 확장해야 합니다. 땅을 빼앗자는 것이 아닙니다. 해외 관광객들을 유치하자는 거지요.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떠나는 사람에게도 잘해줘서 그들이 다시 찾도록 해야 합니다. 나라마다 특색에 맞춘 먹을거리(먹거리)를 많이 만들고, 공통분모를 찾아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류 문화 중에서도 엑소(EXO) 등의 K-Pop(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를 공유해서 서로 자원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90년대 시작된 ‘한류’하면 통상 드라마와 음악을 떠올린다. 드라마의 경우 성장이 주춤세를 보이고 있다. 요즘엔 예능 프로그램이 뜨고 있다. 박 의원은 이 같은 상황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민관이 힘을 합쳐 제2의 도약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해외영상물 촬영유치와 영상관광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박창식 의원(왼쪽). 사진제공 = 의원실
“2005년을 정점으로 고성장을 하던 방송 한류의 기세가 꺾이고 있어요. 거의 포화 상태죠. 이젠 드라마뿐 아니라 오락,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포맷 및 리메이크도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고 있죠.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민관이 힘을 합쳐 제2의 도약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한류의 위기는 중국의 성장세와 관계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한국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는 7억 7000만 달러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 390%나 늘었죠.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 산업 환경은 규제 일변도입니다. 우리 산업계는 글로벌 경쟁력을 미처 갖추기도 전입니다. 밀려오는 중국 거대 자본의 공략에 우리의 방송사, 영화, 출연배우나 프리랜서들은 설자리를 잃어가는 겁니다. 점차 중국으로 몰려가는 거죠. 자칫 우리 한류(韓流)가 중국의 한류(漢流)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중국의 드라마를 수입해서 봐야 하는 역전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문화 규제 철폐해야… 표준근로계약서 실질적 도입 필요”
박창식 의원은 문화 관련 규제를 철폐하고 개혁해야 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문화융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 또 다시 식을지 모르는 한류다. 다시 불을 지피려면 정부는 물론 기업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가 민관 한류 기획단을 강조하는 이유다.
“문화 관련 규제를 철폐하고 개혁할 필요가 있어요. 아직도 우리 영화계, 드라마 촬영 현장에선 불필요한 각종 규제들로 인해 양질의 창작 성과물이 나오기 힘들거든요.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과감하고 혁신적인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필요하고 관행처럼 굳어진 규제를 풀 수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문화융성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글로벌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기술과 다른 나라 자원을 연결시키고 서로 상대 나라에 가서 살면서 영토 확장을 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덴마크, 아프리카에 있는 친구들과 공유해서 회사를 만드는 거죠. 우리 것만 고집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화합해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한류죠.”
그는 국회에 들어와서 문화 관련 법안을 많이 발의했다. 실전에서 느낀 불합리한 것들과 한류 뒤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도 했다. 그 중 하나가 표준근로계약서의 실질적 도입이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나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들은 많다. 그 이면에는 출연료 미지급 등 배우와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모든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해 주목 받은 바 있다.
▲8월 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썸머 K팝 페스티벌’에 참석한 박창식 의원(가운데). 사진제공 = 의원실
“‘명량’을 예로 볼게요. 이 영화는 1800만 명 관객을 동원했어요. 역대 최다 관객과 역대 최고 누적 매출을 기록했죠. 이는 한국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증가했고, 한국 영화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영화 산업의 탄탄한 뒷받침이 되는 방송·영화 스태프들의 처우는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발표한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팀장 급 이하 영화 스태프의 연평균 소득이 916만 원으로 1000만 원도 안 되는 실정입니다. 4대 보험 가입률도 낮죠. 산재보험의 경우 스태프들의 32.6%만 가입된 상황이고, 재해 시 본인이 알아서 해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표준계약서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출연료 미지급 등 방송제작 시스템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사는 정해진 제작비 이외엔 책임을 지려 하지 않죠. 제작사는 초과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스태프와 배우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때문에 실질적인 표준계약서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문화로 통일 접근하고 글로벌 시장 겨냥해야”
박창식 의원은 문화로 남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에 접근하려면 문화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한류’를 만들어서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북한에도 한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며칠 뒤엔 북한에서도 볼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오래 전부를 문화를 갖고 북핵을 녹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왔습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국민들이 서로의 문화를 교감할 수 있는 장을 조성해 소통의 창구를 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휴전선 인근 북한 지역에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복원하려 합니다. 조성한 세트장과 이에 수반되는 부대 편의시설, 쇼핑 공간, 복합 리조트 등을 포함한 대형 테마파크를 건립하고 싶습니다. 필요 인력을 남북한 국민들로 충원해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 중입니다. 북한을 단순한 정치적, 군사적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문화적, 평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반도 한류를 만들어서 이산가족도 만나게 하고요. 북한에서도 ‘명량’과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상호간 문화교류가 잘 이뤄진다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봅니다. 남북한이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아리랑은 심금을 울립니다. 문화로 하나 되고 남북 축구가 하나 되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철조망 이남에서 이북으로 갖고 가는 거죠. 이렇게 되면 ‘문화로 통일을 여는 대통령’도 탄생할 수 있습니다.”
▲2월 6일 일본 삿포로에서는 한일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한일우정한마당’이 열렸다. 오른쪽이 박창식 의원. 사진제공 = 의원실
그가 말하는 정치는 드라마와 같다.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배우와 감독, 작가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제작 과정을 중요시 여긴 것도 같은 이유다. 시청률 높은 드라마 뒤에 감독과 배우들의 갈등이 존재한다면 그 드라마는 100%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제작한 드라마 중 시청률은 ‘모래시계’가 가장 높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은 ‘백야 3.98’입니다. 국내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했죠. 스케일도 컸고 배우들도 많이 나왔어요. 이병헌, 최민수, 이정재, 심은하, 진희경 등이 출연했죠. 우리가 러시아 비행기를 놓고 찍기도 하고. 허가가 안 나서 촬영이 힘든 부분도 있었고요. 추운 나라에서 배우들이 하나같이 열심히 찍었죠. 다들 개런티를 낮춰서 내 일처럼 했어요. 시청률이 높고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요. 그러나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류도, 정치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야가 합의하고,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돼야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청바지를 입고 노래를 부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제가 설득을 했고 모두가 하나 돼서 제작을 한 거죠.”
박 의원은 성공한 PD다. 한류 붐도 일으켰다. 국회에 와서는 자신이 경험했던 불합리를 해결하려 노력도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인 셈이다.
“저도 젊었을 때 고생 많이 했죠. ‘여명의 눈동자’ 찍을 때 해외 촬영 장소 섭외가 다 쉬웠던 건 아니었어요. 걸리면 문제 되는 곳도 있었고. 사실 저는 제가 만든 드라마는 안 봐요. 추억도 있지만 고생한 기억이 나서요(웃음). 밥도 굶고, 촬영하다 집주인과 싸운 적도 있었고 별 일 다 있었죠. 저는 운이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은 다하며 살았어요. 젊은 친구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세상을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이 다가 아니거든요. 외국과 경쟁해야죠. 20년 뒤에는 중국과 국경이 없어질 수도 있어요. 세상을 넓게 보세요.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이렇게 우수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민족이 어디 있나요? 왜 옆집하고 싸웁니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죠. 요즘은 인터넷 시대니까 뭐든지 다 볼 수 있잖아요.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 일도 알 수 있고. 세상을 넓게 보고 기본적인 목표 설정을 잘하면 충분히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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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기자 most_silen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