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영국]런던에서 만난 남북통일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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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8일차 (파리 → 런던)
런던을 향해
비오는 새벽, 샤를르 드골 공항행 루아지 버스를 타기 위해 오페라 역으로 향한다. 세계 어느 도시나 그렇듯이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서민들이다. 새벽 메트로는 흑인과 북아프리카인으로 가득하다. 오페라 역에서 공항까지 10유로. 드골 공항 초입 광장엔 1990년대 초반 퇴역한 콩코드 여객기가 전시돼 있다. 샤를르 드골 공항은 아프리카로 가는 유럽의 관문이기도 하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지역인 서아프리카와 중부 아프리카 지역으로 떠나는 항공기들이 출발을 기다린다.
복잡한 런던
파리에서 한 시간 남짓 걸려 비행하니 드디어 런던 루튼 공항이다. 시간대가 바뀌어 또다시 한 시간 번다.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 교외 주택가 풍경은 매우 낯익다. 미국 보스턴 도시 외곽 풍경 바로 그것이다. 갈색 벽돌 건물, 빅토리아식 주택…. 그래서 미국 동북부 지역을 뉴잉글랜드(New England)라고 하지 않는가? 좁은 땅에 시설이 빼곡하고 행인들로 붐비는 빅토리아 역 부근은 서울 중심가만큼 번잡하다. 그래도 곳곳에 녹지를 가꿔 놓은 도시 모습은 과거 영국인이 건설한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에서 본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앞 의회 광장은 전 세계 시위대가 단식 시위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텐트도 발견했다. 사진 = 김현주
이민자 도시 런던
런던은 정말 다인종 도시다. 거주자든 여행자든 아시아, 아프리카 등 과거 대영제국 영토 출신이 아주 많다. 인도사람이 본국인 인도 다음으로 많은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브랫포드 무어(Bradford Moor) 초등학교 학생 417명 중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은 불과 4명, 나머지는 우르두어, 펀자브어 등을 모국어로 가졌다고 한다. 심지어 남아프리카 공화국 언어의 하나인 줄루(Zulu)가 모국어인 학생도 있다.
이것이 오늘날 영국 런던의 모습이다. 붐비고 물가 비싸고 각박하지만 그래도 분명 런던은 전 세계로부터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힘이 있는 것이다. 2~3일 정도의 짧은 도시 탐방으로 그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얼굴, 여러 겹의 모습을 가진 복잡하고 깊숙한 도시일 것이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역을 지나면 금방 만나는 버킹엄 궁전 앞에 인파가 몰렸다. 하루 한 번 오전 11시에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사진 = 김현주
움직일 수 없이 좁은 런던 저가 호텔
공항에서 출발한 버스의 종착 지점은 시내 중심 빅토리아 역이다. 같은 이름의 역이 인도 뭄바이에도 있는데 역사 자체는 뭄바이 빅토리아 역이 훨씬 낫다.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영국인 중에는 얼굴이 백지장보다 흰 사람이 많다. 앵글로색슨족의 나라 한복판에 도착한 것이다.
빅토리아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호텔이 있다. 중심적 위치 때문일 수는 있으나 호텔은 시설에 비해 무척 비싸다. 이번 여행 중 묵은 호텔 중 가장 비쌌지만 가장 좁고 불편했다. 샤워 부스가 너무 좁아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고역이다. 그래도 가격은 하룻밤 평균 61파운드(11만원)이다. 이것이 런던이다.
▲친근한 느낌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중세 교회이자 영국 역사의 증인으로, 수많은 왕의 대관식과 왕족의 결혼식 및 장례식이 모두 여기서 열렸다. 사진 = 김현주
호텔에서 잠시 휴식 후 도시 탐험에 나선다. 빅토리아 역을 지나 금방 버킹엄 궁전. 영국 여왕이 있는 곳이다. 근위병 교대식은 하루 한 번 오전 11시에 열리므로 오늘은 볼 수 없다. 버킹엄 궁전 앞 빅토리아 기념비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오늘따라 런던 여름 날씨치고는 해가 많이 나고 덥다.
여기서 느끼는 도시 풍경 또한 낯익어 잠시 생각해 보니 미국 워싱턴 DC를 닮은 것도 같다. 빅토리아 기념관은 여러 방향에 걸친 공원으로 이어지는데 그린파크 쪽 입구는 캐나다 게이트, 세인트제임스 파크 쪽 입구는 아프리카 게이트, 오스트레일리아 게이트로 각각 명명된 것이 흥미롭다. 과거 대영제국 영토들이다.
영국 역사의 증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제임스 파크를 따라 템스 강 쪽으로 걷는다. 시민들이 공원에서 휴식하는 모습은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같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TV에서 많이 봤던 만큼 친근한 느낌을 먼저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엄한 중세 교회이고 영국 역사의 증인이다. 수많은 왕의 대관식, 왕족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모두 여기서 열렸고, 처칠 등 영국의 왕과 위인들 수천 명이 또한 여기 잠들어 있다. 몇 해 전 윌리엄 왕자의 로얄 웨딩으로 유명세가 더 오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입장하려는 사람이 장사진을 이룬다.
웨스트민스터 앞 의회 광장은 전 세계 시위대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단식 시위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젊은이들도 텐트를 여러 개 이어서 치고 남북통일 염원 농성 중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코너를 도니 미국, 영국, 프랑스의 아프간 참전을 제국주의 침략전쟁이라고 주장하는 남미 시위대도 있다.
▲빅벤은 국회의사당의 상징 부속 건물로, 높이가 97m, 분침의 길이가 4m라고 한다. 시계가 정확한 것으로도 정평이 있다. 사진 = 김현주
국회의사당과 빅벤
국회의사당과 빅벤(Big Ben)은 어울리는 조합이다. 국회의사당은 700년 넘게 그 자리에 있다. 길이가 300m, 1000개 이상의 방을 갖춘 초대형 건물이지만 정교하기 짝이 없다. 의사당 앞마당에는 올리버 크롬웰 동상이 있다. 민주주의 발상지 영국에 왔으니 국회의사당 방청쯤은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여행자의 준비 소홀과 각박한 일정을 스스로 탓한다.
빅벤은 국회의사당의 상징 부속 건물로, 높이가 97m, 분침의 길이가 4m라고 한다. 빅벤 시계는 정확한 것으로도 정평이 있다고 한다. 국회의사당의 조명이 빅벤 위로 쏟아지는 밤에 더 아름답다지만 그것 또한 여행자의 분주한 일정 때문에 포기한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걸어서 템스 강을 건넌다. 1802년 다리의 준공을 기념한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가 다리 중간 동판에 새겨져있다. ‘이 감동적인 풍경을 못 본 채 그냥 지나간다면 정말 멋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다뉴브 강을 벗어난 지 오랜만에 강다운 강을 다시 만났다. 여기가 런던 여행의 절정인 듯하다. 중국 관광객 또한 매우 많다. 과거 일본인의 자리를 중국인이 완전히 차지한 것 같다.
▲대영지국 초전성기에 건설된 타워 브리지는 성 같기도, 탑 같기도 한 모습을 갖고 있다. 다리 중앙이 개폐식으로, 큰 배가 지날 때는 수압을 이용해 1000톤 무게의 다리를 연다. 사진 = 김현주
템스 강 유람선
웨스트민스터 선착장에서 타워 브리지로 가는 유람선을 탄다(편도 10파운드, 왕복 13파운드, 그러나 런던 교통패스 소지 덕분에 30% 할인받아 왕복 9.1파운드). 런던 아이(London Eye)와 카운티홀(County Hall), 수족관 등 장대한 건축물 혹은 시설이 맞은 편 강가에 서 있다. 영화 ‘애수’로 유명한 워털루 브리지 밑으로도 배가 지난다. 타워 브리지에 거의 닿으니 한국전에도 참전했다는 벨파스트 전함이 박물관이 돼 물 위에 떠 있다.
웨스트민스터 선착장에서 반환점 타워 브리지까지는 유람선으로 25분 걸린다. 1894년, 그러니까 대영지국 초전성기에 건설된 타워 브리지는 성 같기도, 탑 같기도 하다. 게다가 다리 중앙이 개폐식으로, 큰 배가 지날 때는 1000톤 무게의 다리가 수압을 이용해 열린다니 영국인의 기계 공학 기술을 엿본다. 증기 기관을 발명해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 아닌가?
▲템스 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런던 아이. 장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건축물은 런던을 상징하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 김현주
타워 브리지 부근 템스 강가에는 런던 타워가 있다. 1000년 세월 동안 런던의 역사를 목격해 온 유명한 성이다. 그냥 멀리 배 위에서 영국과 런던의 또 다른 상징을 만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뱃길을 돌린다.
막강한 영국 지상파 TV
빅토리아 역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빅토리아 거리에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수줍게 서 있다. 빅토리아 역 주변에는 빅토리아 극장과 아폴로 극장 등 뮤지컬 극장이 있다. 호텔방에서 여행기를 정리하는데, 창문 너머 주택가에 집집마다 열병식 하듯이 솟아 오른 TV 안테나가 낯설고도 반갑다. BBC가 주도하는 지상파가 막강하다는 뜻이다.
케이블 TV 보급률이 90%가 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미디어 환경이다. 영국 BBC와 한국 KBS는 모두 공영방송이지만 각기 자기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 다를 수 있는, 즉 다른 모델이어야 한다는 평소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