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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인 - 수국마을]“공간 바꾸니 아이들 자립심이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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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8호 안창현 기자⁄ 2015.09.17 08:49:06

▲수국마을 사랑방 앞 쉼터공간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사진 = 윤준환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부산 서구 암남동에 위치한 수국(樹國)마을. 아이들 한 명 한 명은 자라나는 나무이고, 이런 나무들이 모여 사는 큰 마을이라는 뜻에서 ‘나무 나라’, 즉 수국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아동 양육 시설인데, 흔히 복지시설 하면 떠오르는 낡은 이미지와 수국마을은 많은 점에서 다르다.

수국마을은 기존의 ‘양육’ 개념에서 ‘자립’ 개념으로 공간과 프로그램을 변화시킨 첫 사례로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한국건축가협회상(2014)을 비롯해 부산다운건축상 금상(2014), 사회복지시설평가 우수기관 표창(2013) 등을 수상했고, 최근에는 시카고 아테네움 건축디자인박물관과 유럽 건축예술디자인도시 연구센터가 선정하는 ‘올해의 국제 건축상 2015’에 선정됐다.

▲부산 서구 암남동에 위치한 ‘수국마을’. 사진 = 윤준환

수국마을은 1980년대 지어난 낡은 복도식 아파트 기숙사를 허물고, 단독주택 8개 동이 모인 하나의 마을 공동체로 2013년 재탄생했다. 50년간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해온 마리아수녀회의 시설 중 하나로, 이곳에 모두 100여 명이 살았다. 예전에는 방 하나에 15~20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엄마’ 수녀님과 함께 생활했다.

처음에는 군대 막사 같은 건조한 공간이었다. 이를 청소년들이 생활하기 좀 더 나은 장소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이 프로젝트는 10년 가까이 마리아수녀회에 후견인 역할을 해온 건축가가 공동대표로 있는 건축사사무소 오퍼스(우대성, 조성기, 김형종)가 맡았다.

프로젝트는 단지 수국마을의 건물을 개선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들의 ‘자립’이었다.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이곳을 벗어나 홀로 서야 한다. 이전까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홀로 서는’ 삶을 20살에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수국마을은 마리아수녀회가 50여 년간 운영해온 복지시설이다. 100여 명의 아이들이 생활한다. 사진 = 윤준환

오퍼스 건축은 “단체 생활을 하는 아동 양육 시설에서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가족적인 삶의 행복과 자립 체험을 할 수 있는 집을 고민했다. 양육에서 자립으로 개념을 바꿔야 했다. 아이들이 모든 일을 스스로 하도록 해야 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건물과 생활 방식이 함께 변화해야 했다. 그래서 수국마을은 큰 건물 한 채 대신 일반 가정집처럼 주택 8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로 조성됐다. 각 동에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13~15명이 함께 거주하며 생활했다.

▲8동의 집에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한다. 사진 = 윤준환

이렇게 아이들에게 자율적인 공간이 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통제가 필요하지 않냐”는 우려였다. 하지만 건축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되도록 감시나 통제의 느낌은 피하고 싶었다. 이런 의견 차이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화를 통해 조금씩 좁혀나갔다. 설명회도 열고 모델하우스도 미리 만들어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 수국마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도록 배려했다. 2~3명이 함께 요리하고 일하도록 주방을 꾸미고, 각 건물의 벽면마다 게시판과 칠판 등을 설치했다.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조성하자는 노력이었다.

수국마을에는 각 동마다 이름이 따로 있다. 각 집에는 아이들이 직접 키우는 과일나무 이름을 붙였다. 한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과일들인 사과, 자두, 대추, 모과, 감, 석류, 무화과, 매실 등이다. 이름에 맞춰 각 건물엔 과일의 색과 분위기를 살리는 색이 적용되고, 내부 인테리어도 걸맞게 했다. 아이들이 거주할 건물은 집을 분양받듯이 추첨을 통해 정했다.

▲대추나무집 내부의 주방과 거실. 사진 = 윤준환

수국마을에서 아이들은 모든 일상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동마다 ‘엄마’로 불리는 수녀와 출퇴근하면서 돌봐주는 보육사 선생님이 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다른 아이들과 일상 문제를 해결하면서 생활한다. 월 300만 원 정도의 생활비로 당번을 짜서 장을 보고 가계부를 쓴다. 이렇게 조금씩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중이다.

수국마을의 공간이 변화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스스로’ 하는 방식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생활비를 아껴 주변 독거노인을 돕기까지 한다. 키워지는 ‘양육’ 시설에서, 아이들 스스로가 살아나가는 ‘자립’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왼쪽부터) 우대성, 조성기, 김형종 건축가. 사진 = 오퍼스 건축

건축을 통한 상상력으로 어울림(consonance)을 만들어가자는 건축사사무소 ‘오퍼스(op’us)’는 이름처럼 주어진 프로젝트마다 사람과 장소에 대한 특별한 생각과 마음을 담길 원한다. 1998년 설립 이후 건축가 3명(우대성, 조성기, 김형종)이 ‘지독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파트너십으로 운영하고 있다. 2005년에는 인테리어 회사인 ‘디자인 모노솜(monosome)’을 설립해 건축, 인테리어, 리노베이션 등의 프로젝트를 유기적으로 완성하고 있다.

1999년 ‘천년의 문’ 설계경기에 당선돼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중동교회, 예원교회, 가회동성당 등 종교 시설과 수국마을, 판교주택 시리즈, ID하우스, 청담동 이니그마빌, 삼부르네상스 오피스텔, 천호동 주상복합시설 등 다양한 개성의 복합 주거 시설을 설계하고 있다.

또한 엘로드힐즈, 마리아병원, 배상면주가 느린마을 양조장, 가마 광주요 등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공간 디자인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코오롱 컬쳐 스테이션, 은평의마을, 마리아센터, 새중앙교회 등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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