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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감독의 ‘반복’ 영화, 재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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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9호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 2015.09.24 08:48:10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지난 8월 로카르노(스위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더불어 남우주연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열일곱 번째 장편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칼라, 121분, 제작: 영화제작전원사)는 제법 유명한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 분)와 신참 여화가(김민희 분)의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항상 특정한 장소-공간을 배경으로 그들만의 소탈한 이야기를 전개하듯, 이번에도 수원 화성(華城)과 그 앞동네를 주무대로 영화감독과 여화가를 중심으로 1박 2일 동안의 소탈한 삶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수원의 한 영화관에서는 함 감독의 영화 상영과 관객과 토론회가 있다. 그런데 일정이 잘못 알려져 함 감독은 하루 먼저 내려오게 되고, 남는 시간 동안 수원 화성을 둘러보다가 멋진 복내당(福內堂)에서 외로워 보이는 여화가를 발견하고 접근한다. 차를 마시자고 하면서 영화의 주된 내용으로 들어간다. 

함 감독은 그녀의 작업실도 가보고, 스시집에 가서 술 마시며 흥청거리고, 또 그녀 선배 언니의 카페에 가서 막걸리를 마신다. 이것은 홍상수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한편으로 소박하며 진솔하고, 다른 한편으로 약간 유치한 그저 그런 이야기다 - 가끔씩 우리 자신이기도 한 속물 인간들에게 신랄한 말을 내뱉어 영화 내용의 범속함을 달래주기도 하며. 

▲하루 먼저 수원을 찾은 함춘수 감독(정재영 분)은 신참 여화가(김민희 분)에 접근해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런데, 홍 감독은 이번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후반부를 이등분하여 1-2부 구성을 했다. 시간상으로 거의 1시간씩 나뉘어지고, 동일한 장소에서 유사한 내용이 리플레이되는 방식을 취했는데, 과연 이건 좋은 효과가 있었을까?

홍상수 감독은 9월 17일 자양동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시사회 후 간담회에서 “1-2부는 한 짝을 이루며, 1부가 기본 표석이고, 2부가 변주이다. 주인공(남)의 내레이션이 깔리는 1부가 주관적이고, 내레이션이 없는 2부는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 2부가 1부와 확연하게 달라지는 분기점은 여화가의 작업실에서 감독이 그림 평가를 하는 장면에서부터이다. 1부에서 작업 중인 그림에 대해 함 감독이 격려하는 말을 했던 것에 비해, 2부에서는 “상투적”이라며 비판적인 말을 하자 여화가는 발끈한다. 좋은 분위기에 파도가 일어나며 영화에 긴장도 생긴다. 

▲지난 8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왼쪽)과 김민희 배우.

선배 언니의 민속카페 ‘시인과 농부’에서 감독은 만취 상태에서 누드 퍼포먼스마저 벌인다. 다음 날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잘 마치고 나올 때 바깥에는 눈발이 휘날리고, 여화가는 감독의 영화를 보러 온다. 이런 부분은 1부에는 없는 2부만의 내용이고, 2부는 해괴한 해프닝 후에 산뜻한 결말로 끝난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수상

그렇지만 리플레이가 되는 구성은 문제를 안고 있다. 영화는 본래 시간의 흐름처럼 항상 앞을 향해 전진하는 매체다. 이번 영화는 이를 거역하고, 중간에 동일한 시간-공간을 재구성하여 연기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는데, 관람 과정에서 지루함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전에 독일 영화 ‘롤라 런’(Lola Rennt/Lola Run, 1998, 톰 티크베어 감독)이 보여준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주된 사건은 3회 반복되는데, 어떤 행동에 대한 결정을 달리하는 것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앞으로만 흘러가는 강물 같은 영화의 본질에 부딪쳐보는 시도를 했던 이 영화는 흥미롭게 보이기는 했지만, 갈수록 관람이 지루하게 되는 위험성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것은 홍 감독의 영화 ‘지금 그때’의 2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눈 내리는 거리의 함춘수 감독(정재영 분)과 여화가(김민희 분). 홍상수 감독의 이전 영화와는 달리 두 남녀 주인공은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홍상수 영화에서 과거와 다른 또 한 가지 점은 주연 남녀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의 많은 영화들에서는 남자가 집요하게 따라가고, 끝내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속 배우나 이를 보는 우리도 속물이어서, 우리 모두의 ‘속물근성’을 매번 각인시켜주었던 이전의 홍상수 영화들에 비해, 이번 영화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대체로 쿨한 편이고, 최종적으로 여관에 가지도 않는다.

그래도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작가주의 영화를 하는 홍상수 감독이 뒤늦게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일은 축하할만하다. 홍 감독이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제에 출품했었지만, 상운은 없었다. 로카르노에서 2년 전(2013)에도 ‘우리 선의’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홍 감독은 로카르노와 인연이 깊은 것 같다. 

단, 이번 상의 명칭은 국내 여러 언론매체들이 전하듯이 ‘대상’이 아니라, ‘최우수작품’(the best film)에게 주는 ‘황금표범상’(Pardo d’oro/Golden Leopard)이고, 상금 9만 스위스 프랑을 감독과 제작자가 동등하게 공유한다. 로카르노에는 ‘대상’이란 명칭의 상은 없는데, 이것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http://www.pardolive.ch/pardo/festival-del-film-locarno/home.html 참조)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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