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시리즈 ㉔ 아트컴퍼니 길] “배부른 예술? 협동조합 하면 됩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인형의 별’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 아트컴퍼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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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화려한 무대와 스포트라이트, 관중의 갈채 속에 멋진 인생의 주인공일 것 같은 공연 배우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을 고달프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공연이 끝나면 다른 공연으로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사실상 실업자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티켓 판매액 기준으로 공연 시장은 지난 10년간 200%가 훌쩍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그렇다고 대부분 공연 관계자의 소득이 10년간 평균적으로 두 배 가까이 상승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 대부분이 그렇듯, 공연계에도 대형 기획이 진입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란 양극화가 진행되는 양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배우 등 대부분 공연예술 관계자들은 불안정한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공연예술 창작자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문화예술협동조합 아트컴퍼니 길은 그래서 ‘배부른 예술’을 지향한다.
아트컴퍼니 길은 2015년 1월 7일 창립총회를 거쳐 1월 26일 협동조합으로 탄생했다.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은 것이다. 아트컴퍼니 길의 연경진 대표는 “예술가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마음 편하게 예술을 할 수 있게 해보자며 문화예술협동조합을 시작했다. 협동조합에 익숙한 사람은 없지만, 체계를 갖춰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계속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아트컴퍼니 길의 연경진 대표(가운데)와 조합원들. 사진 = 아트컴퍼니 길
아트컴퍼니 길은 예술가들의 경제적 윤택함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면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
연 대표는 “아트컴퍼니 길은 크게 두 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세웠다. 하나는 공연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부합하는 공연 기획 및 제작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 기획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사업으로 극단 시작했지만 한계. 서울시 협동조합 지원제 도움으로 활로”
공연 사업은 정기적으로 양질의 공연 콘텐츠를 제작해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아트컴퍼니 길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정기 공연을 한다. 올 상반기 공연은 지난 4월 8~25일 홍대 앞 CY씨어터에서 열렸다. 공연작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는 ‘인형의 별’이었다. 연 대표가 작품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연극과 타악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2014년 김천국제가족연극제 작품상 동상과 남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문화 기획 사업은 공연 콘텐츠를 활용해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아트컴퍼니 길은 공공기관 및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쉽게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 6월에는 서울문화재단이 지원하는 ‘2015년 복작복작 예술로 골목길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됐다. 그래서 지난 8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월 2회씩 지역 공터에서 주민 대상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문래동의 한 카페에서 ‘낭독과 연극 사이’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 아트컴퍼니 길
연 대표는 “안톤 체홉의 ‘청혼’을 공연 중이다. 좀 더 친숙하게 주민들이 연극과 만날 수 있도록 낭독과 연극이 결합된 ‘연극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한다. 관객과의 대화도 함께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협동조합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지역 사회를 위한 문화 기획 사업을 진행했지만, 이런 활동에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연 대표는 “예전에 개인 사업자 형태로 극단을 운영했을 때와 달리 공연 콘텐츠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지역의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화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다. 지역 사회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꾸준히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트컴퍼니 길이 탄생하기까지 7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의 길을 걸은 연 대표는 많은 극단들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공연을 하면서 배우들의 경제적 문제를 책임지지 못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2008년 ‘길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의 극단을 직접 만들었다. 아트컴퍼니 길의 전신인 셈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길 엔터테인먼트는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공연 집단으로 활발히 활동했다”고 연 대표는 말했다.
뮤지컬 ‘기억상실증’, 타악 퍼포먼스 ‘천상의 울림’, 어른을 위한 동화 ‘인형의 별’ 등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극단을 계속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이 부쳤다.
한국의 현실에서 티켓 판매 수입만으로 공연 단체를 운영하기 힘들었다. 공연 하나를 무대에 올리려면 인건비 외에도 대관료, 무대 및 소품 제작비 등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 기본 경비를 충당하고도 수익을 올리려면 장기공연을 해야 하는데, 그런 가능성은 드물었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 참가해 타악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 아트컴퍼니 길
2013년 즈음에는 결국 연 대표 혼자만 극단에 남았다. 연 대표도 그만 둘 마음을 먹었다. 식지 않던 열정도 현실의 차가움 앞에서는 지속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일했던 후배들 덕분이었다. 후배들이 “함께 할 테니까 뭐라도 해보자”고 나선 것을 연 대표는 고마워했다.
개인 사업자 형태의 극단 운영에서 실패를 맛본 그는, 참여자 모두가 책임과 역할을 함께 나눠 맡는 협동종합 형태가 문화예술 분야에 적합하다고 봤다. 그래서 2014년 7월부터 연 대표와 4명이 모여 협동조합 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처음 해야 했던 일은 ‘협동조합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관련 법률과 설립 서류 등을 찾아 매주 학습을 했다. 협동조합 토크 콘서트, 세무회계 교육 등 외부 교육도 닥치는 대로 찾아 다녔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힘만으로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연 대표는 “협동조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부터 확신이 없었고, 세부 유형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가 특히 어려웠다. 막막하기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 서울시 협동조합 상담지원센터의 ‘예비 협동조합 밀착지원 등록제’ 공고가 나왔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고픈 예비 단체들을 대상으로 상담지원센터가 전담 코치를 배정해 도와주는 제도였다.
전담 코치는 1대 1로 조합원들을 만나 설립 과정을 정리해고 필요한 자원을 연계해주는 등 설립의 모든 과정을 관리해줬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제출했고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연 대표는 “공연 예술가들이 협동조합을 만든 선례가 없어 막막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천국제가족연극제에서 작품상 동상과 남자 우수연기자상을 수상했다. 사진 = 아트컴퍼니 길
지원센터 전담 코치의 도움으로 협동조합 설립을 착실히 준비했다. “예상보다 시간은 더 걸렸지만 오히려 협동조합을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조합원들 모두에게 좋은 훈련이 됐다”고 했다.
“개성 강한 공연예술인에 책임-권한 나눠갖는 협동조합 잘맞아”
그는 “협동조합은 참여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운영하는 형태라서,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조직 형태 같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 아트컴퍼니 길은 올해 1월 7일 창립총회를 갖고, 26일 동작구청으로부터 신고확인증을 받아 협동조합으로 출범했다.
요즘 대학로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은 ‘로맨틱 코미디’다. 관객의 흥미를 쉽게 끌 수 있고, 그래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트컴퍼니 길은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공연을 주요 사업으로 하되 이를 응용한 부수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 대표는 “배우도 다각적인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했다. 기업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나 문화예술 체험 교육 같은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트컴퍼니 길이 추진하는 많은 사업 중 하나는 카페 같은 생활공간에서 공연을 통해 지역 문화 사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극장을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공연 예술의 특성상 보통 사람들은 공연 예술에서 소외되기 쉽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가는 공연을 아트컴퍼니 길은 이미 여러 차례 성황리에 진행했다.
연 대표는 “우리 연습실이 동작구 노량진에 있다. 어느 순간 우리가 매일 오가는 노량진이라는 동네나 동작구가 문화적으로 굉장히 소외된 지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작구에는 취업 준비생, 대학생, 젊은 직장인들이 많지만 이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나 문화 콘텐츠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2015년 협동조합 네트워크 파티는 아트컴퍼니 길이 행사 준비와 진행을 맡았다. 사진 = 아트컴퍼니 길
마침 아트컴퍼니 길과 함께 활동하던 배우나 작가 중에 지역 사회와의 연계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다. 공연뿐 아니라 예술 교육 또는 지역의 예술인들을 끌어들여 협업하는 방향으로 추진해보자는 방향이 잡혔다.
“우리 동네에 공연예술이 없잖아?”
아트컴퍼니 길은 지난 4월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 대방동’에 입주했다. 컨테이너를 연결해 만든 이 공간은 문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런지 길 조합원들은 지역 사회를 위한 문화기획 아이디어들을 잇달아 내놓고 실현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연 대표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과, 이를 실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간단한 건 없다. 하지만 일단 비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절실한 설립 목적과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구성원, 비전을 가진 조직이 있으면 실행 방법이 조금씩 찾아질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아트컴퍼니 길의 비전은 ‘공연을 통해 향기 나는 세상을 꿈꾼다’는 슬로건에 담겨 있다. 연 대표는 “공연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인 사람은 세상의 작은 부분부터 바꾸어 나간다. 세상의 가치관이 혼돈되고, 옳음과 그름의 경계선이 모호해져만 가는 것 같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웃과의 소통이 단절되지 않는 세상을 우리는 꿈꾼다. 이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쉬지 않고 사회와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