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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일차 (쿠알라룸푸르 → 캄보디아 프놈펜 → 시엠립)
새벽 공항 풍경
무거운 눈을 달래며 새벽 5시에 호텔을 나온다. 동남아 여행의 허브 쿠알라룸푸르 저가 항공 터미널에서 오전 7시 5분 출발하는 프놈펜(Phnom Penh)행 에어아시아 항공기에 오른다. 공항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중국, 싱가포르, 동남아 각 지역, 태국 각 지역,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 및 인도 각 지역으로 하루 종일 비행기가 드나드는 공항 터미널은 가히 인종 전시장이다.
세 강이 합류하는 프놈펜
항공기는 1시간 40분 걸려 프놈펜 상공에 도달한다. 톤레사프(Tonle Sap), 메콩(Mekong), 바삭(Bassac) 세 강이 합류하면서 인구 223만 명의 도시를 포근히 감싼다. 공항은 작지만 깨끗하고 효율적이다. 여권 사진 1매와 미화 20달러를 제출하니 즉시 도착 비자가 나온다. 가난한 나라는 도착 비자뿐 아니라 공항 이용료, 국제선 출국세 등 방문자에게서 걷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걷으니 적지 않은 수입일 것이다. 그렇게 걷힌 돈이 제대로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공항 건물 안내 문구는 크메르어, 영어, 불어, 중국어로 병기됐다.
북위 11.5도에 위치한 프놈펜은 1960년 이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진주’ 혹은 ‘동양의 파리’라고 불렸던 곳이다. 삼륜차 뚝뚝(Tuk Tuk)을 타고 시내에 있는 장거리 버스 터미널로 먼저 향한다. 프놈펜에는 여러 개의 장거리 버스 터미널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여간 불편하지 않다. 한 곳에 표가 없으면 여기 저기 다른 곳을 계속 다니며 표를 구해야 한다. 다행히 나는 첫 번째 들른 터미널에서 오늘 오후 2시 45분 출발하는 시엠립행 버스표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매표 사무실에 가방을 맡긴 후 시내 투어에 나선다.
▲한껏 멋을 내 지은 왓 프놈 사원. 프놈펜이라는 도시 이름은 왓 프놈 사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김현주
킬링 필드와 학살 박물관
가장 먼저 투올슬렝(Tuol Sleng) 학살 박물관을 찾아갔다. 소담한 프랑스식 주택들이 늘어선 시내 한 복판에서 가증스런 반인륜 범죄가 자행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1975년 정권을 장악한 크메르 루즈 폴포트 정권이 학교 건물이었던 곳을 개조해 정치범 수감과 고문을 위해 사용한 감옥이다.
크메르 루즈 집권 4년 동안 1만 4000명 이상의 크메르인들이 이곳에 수감됐고, 심문과 고문 이후 프놈펜 남서쪽 15km 지점에 있는 킬링 필드에 끌려가 처형, 집단 매장됐다. 이곳 수감자 1만 4000명 중에서 생존자는 8명에 불과했으니 얼마나 잔혹했는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박물관에는 수용자들이 수감됐던 방,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잔혹한 강제 노동 현장 사진과 기록들, 다양한 고문 기구와 방법, 속박 기구와 생존자 증언록 등이 전시돼 있다. 한켠에는 킬링 필드 집단 매장지의 시신 발굴 현장 사진이 있고, 또 한켠에는 수백 개의 유골을 쌓아 놓았다. 투신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조밀하게 철조망으로 막아 놓은 ‘B 감옥동(棟)’은 원래 교실이었던 방을 수십 개의 독실 감방으로 나눠 놓은 모습 그대로 남겨 놓았다.
▲왕궁 옆에 자리 잡은 국립박물관. 자태부터 아름답다. 캄보디아 양식으로 지어진 박물관엔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의 캄보디아 역사와 예술, 유물이 전시됐다. 사진 = 김현주
고문 도구 전시실은 돈을 가장 적게 들여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전시해 놓은 듯하다. 학교 운동장 내 철봉은, 알몸을 밧줄로 묶고 거꾸로 매달아 고문하다가 정신을 잃으면 더러운 물이 담긴 물통에 넣어 깨어나게 하기를 반복하는 고문 도구로 쓰였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크메르 루즈 정권이 달아난 직후에 발견된 마지막 희생자 14인의 무덤이 있다. 시신이 너무나 참혹하게 훼손돼 신원 파악도 못했다고 하니 정신이 멍해진다.
크메르 루즈의 광기
크메르 루즈는 ‘붉은 크메르’라는 뜻의 캄보디아 급진 무장 좌익 단체였다. 1967년 결성돼 농촌부터 세력을 확장하다가 친미 우익 론 놀(Lon Nol) 정권을 뒤엎고 1975년 캄보디아를 장악했다. 크메르 루즈 폴포트 정권은 처음엔 론 놀 정부의 부정부패와 오랜 내전에 지친 국민에게 해방자로 환영받았으나, 곧 캄보디아를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 된다.
캄보디아를 평등한 자급자족 농업 국가로 만들고 싶었던 크메르 루즈는 프놈펜을 비롯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농촌으로 이주시키고 강제 노동에 동원함으로써 도시를 황폐화시켰다. 프놈펜도 시엠립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지식인, 행정 관리, 교사, 문인, 예술가, 승려 등을 닥치는 대로 살상했다. 안경 쓴 사람, 손이 고운 사람,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처형 대상이었다. 당시 고운 손을 가진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부터 손을 자르고 상처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700만 명이었던 캄보디아 인구 중에서 크메르 루즈 정권 4년 동안 100만 명 이상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내 최후의 14인 무덤. 시신이 참혹하게 훼손돼 신원 파악도 못했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폴포트, 키우 삼판 등 크메르 루즈 정권의 수뇌부는 사실 프랑스 파리에 유학해 공산주의 사상을 배운 지식인이었으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식인을 골라서 처형한 것이다. 크메르 루즈는 1979년 베트남군에 의해서 프놈펜에서 축출되지만 1990년대 후반에 가서야 완전히 소탕돼 내전이 끝난다. 그러는 사이 캄보디아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구 1400만 명, 1인당 소득 미화 700달러)로 전락해 버렸다. 박물관을 나오니 걸인과 불구자들이 물건을 팔러 다가온다.
왕궁의 화려한 스카이라인
투올슬렝 박물관을 나와 뚝뚝을 타고 왕궁으로 향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프놈펜 필수 방문지 중 하나라는 왕궁은 11시에 오전 관람이 끝나고 오후 2시 30분까지 휴관이다. 시엠립행 오후 2시 45분 버스표를 구입해 놓은 터라 왕궁 내부 관람을 포기한다. 대신 멀리서 왕궁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캄보디아 전통 양식에 프랑스 건축 기술을 보태 지은 왕궁은 다행히 캄보디아의 수많은 전화(戰禍)를 피해 온전히 남아 있다.
왕궁 옆에는 국립박물관이 있다. 캄보디아 양식으로 지어진 박물관엔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캄보디아의 역사와 예술, 유물이 전시됐다. 박물관 수준은 국력에 비례한다는 그동안의 경험의 법칙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국립 박물관은 수준이 높다. 지금은 초라하지만 한때 인도차이나 전역을 통치했던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느끼게 한다.
▲프놈펜 필수 방문지 중 하나인 왕궁의 전경. 화려한 스카이라인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드디어 메콩강
여기서 한두 블록 동쪽은 메콩강 시소와스 부두(Sisowath Quay)다. 드디어 메콩강을 만났다. 중국 청해성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운남성을 거쳐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을 이루고, 라오스 중앙부를 적신 뒤, 캄보디아 내륙과 프놈펜을 지나 베트남 호치민 남쪽 메콩 델타에서 남중국해로 흘러 들어가기까지 4350km를 흐르는 총 길이 기준 세계 12위 국제 하천이다. 남중국해에서 운남성까지 항행 가능한 메콩강은 그래서 중국에게 특히 중요하다.
강을 따라 약 5km에 걸쳐 펼쳐진 강변 산책로는 수많은 카페와 식당, 넓은 공원으로 이어진다. ‘동양의 파리’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다. 강 복판 섬에는 거대한 리조트 건물을 짓느라 타워 크레인이 분주히 움직인다. 메콩강에 눈독을 들이는 중국이 투자한 프로젝트다.
프놈펜의 명과 암
훈센 총리의 리더십 아래 두 자리 경제 성장을 기록하며 옛 모습을 찾아가는 프놈펜은 곳곳에서 건축 붐이다. 부동산 가격도 아주 많이 올라 시내 중심부 땅값은 세계 여느 대도시 못지않게 비싸다고 한다. 거리에는 최고급 외제 승용차들이 자주 눈에 띄지만 참혹한 가난 속에 쓰레기장을 전전하며 사는 사람들 또한 많을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각하다. 화려한 거리 바로 뒷골목에는 곳곳에 깊게 패인 웅덩이와 그 속에 고인 흙탕물, 아무렇게나 방치된 폐건축 자재, 흩어져 굴러다니는 쓰레기, 걸인과 불구자 등 어두운 모습이 드러난다.
캄보디아-베트남 관계
왕궁 부근에서 걷기 시작해 베트남 우호 기념비를 지난다. 크메르 양식의 기념비는 여태까지 세계 각 지역에서 본 전형적인 기념 조형물 양식을 뒤엎는 독특한 모습이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어왔다. 또한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큰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베트남은 1979년 크메르 루즈로부터 캄보디아를 해방시킨 세력이기도 하니 베트남 우호 기념비를 바라보는 느낌이 남다르다.
▲프놈펜의 지리적 중심엔 독립기념탑이 세워졌다. 프랑스 보호령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해 1960년 건축됐다. 사진 = 김현주
동양의 파리 프놈펜
내친 김에 독립기념탑까지 걷는다. 이곳은 프놈펜의 지리적 중심이기도 하다. 프랑스 보호령으로부터 독립한(1865~1953) 것을 기념해 1960년 건축한 독립기념탑 또한 크메르 불교 사원을 본 딴 모습이 특이하다. 드넓은 블러바드(boulevard, 대로)와 곳곳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공원은 한 나라의 수도로 손색이 없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어디쯤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전의 아픔을 딛고 이만큼 이뤄 놓은 캄보디아인에 경의를 표한다. 독립기념탑 앞 광장 부근에는 북한대사관이 있다. 외곽 경비를 맡은 캄보디아 경찰 말고는 쥐죽은 듯 조용하다.
프놈펜은 뚝뚝 말고도 오토바이 택시가 아무데나 있어서 이동이 편리하다. 바로 그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왓 프놈(Wat Phnom) 사원까지 갔다가 중앙시장에서 시내 투어를 끝낸다. 프놈펜이라는 도시 이름은 바로 왓 프놈 사원에서 유래됐다. 한껏 멋을 내 지은 건물 내부에 자리 잡은 옥내 시장인 중앙시장은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그 옆 신세계 백화점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메콩강변의 모습. 메콩강은 4350km를 흐르는 총 길이 기준 세계 12위 국제 하천이다. 강을 따라 수많은 카페와 식당, 공원이 있다. 사진 = 김현주
시엠립 가는 길
버스 터미널로 이동해 시엠립행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한국에서 학교 버스로 사용했던 중고 차량이다. 버스 안팎에 한글이 남아 있다. 프놈펜에서 시엠립까지 314km, 6번 국도는 포장은 돼 있으나 노면 사정이 불량하고 자전거, 오토바이 등 저속 차량이 많아 버스가 좀처럼 속력을 내지 못한다. 때로는 톤레삽 호수를 왼쪽으로 바라보며 버스는 메콩강 곡창에 자리 잡은 농촌 마을들을 수없이 지나며 북행한다.
농촌 저녁 풍경이 여유롭다. 소 먹이러 나가는 아이들, 학교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아이들, 일 끝내고 무리지어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들, 불쑥 튀어 나오는 바람에 운전기사를 진땀나게 하는 소…. 이런 것들이 캄보디아의 농촌 풍경이다. 버스는 기사가 두 명이다. 얼마 동안 가더니 메인 운전기사가 보조 기사에게 핸들을 맡긴다. 실무 경력을 쌓게 하려는 배려다. 보조 기사는 진지한 얼굴로 버스를 운전한다. 버스는 프놈펜 출발 7시간 지난 밤 10시 시엠립에 도착했다.
호텔은 아주 훌륭하고 매우 저렴하다(미화 20달러). 호텔 직원, 뚝뚝 기사 등 모두 친절하다. 게다가 시엠립에서 관광 관련 종사자라면 누구든 몇 마디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불편이 없다. 캄보디아에서 관광 산업이 창출하는 매출은 총 GDP 대비 17.5%, 관광 산업 분야 종사자 비율 14%다. 글로벌 관광은 국가 간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으니 캄보디아는 관광객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