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최서윤 기자) 한결.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을 보면 떠오르는 단어다. 홍 의원은 언론인이었을 때도, 정치인인 지금도 항상 똑같다. 뭐든 열정적이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그래서 그를 보면 ‘한결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이른바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다. 폴리널리스트,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의 합성어다. 언론인으로서의 위상을 이용해 정·관계에 진입 또는 진입하려는 사람을 뜻한다.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인 ‘폴리페서(polifessor)’와 같은 맥락이다. 둘 다 자신의 명망을 이용한 정계 진출이라는 점에서 부정적 의미가 크다.
하지만 홍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기존 선입견을 깨겠다는 것이 그가 지난해 폴리널리스트 관련 책을 낸 이유다.
홍 의원은 열정 넘치던 기자에서 뉴스 앵커로 변신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최근 영남일보가 여론조사 기관인 폴스미스와 공동으로 대구 달서갑 지지율 조사를 한 결과, 새누리당 출마 예상자 중 34.9%를 얻은 홍 의원이 1위를 차지했다(조사 일시: 10월 14∼17일 / 조사 방법: 전화여론조사 / 표본수 및 표본오차: 1천명, 95% ±3.1%포인트, 응답률 4.32%).
▲2011년 SBS 뉴스를 진행하던 당시의 홍지만 앵커(사진 왼쪽)와 이혜승 아나운서. 사진제공 = 의원실
늘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8대 총선 낙선. 한 번 실패 후 얻은 19대 국회의원 자리는 그에게 많은 깨달음을 줬다. 매사에 감사한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편안하게 대하는 모습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었다. 그는 폴리널리스트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을 씻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썼다. 홍지만 의원은 19일 CNB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책을 낸 계기에 대해 “평소 많은 언론인들이 정계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 바꾸려면 기자출신 정치인 더 많아야”
“지금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국회의원이 돼야 합니다. 국회와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많은 언론인 출신들이 정계에 진출해 모두 혁혁한 공을 세웠지요.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분들도 많고요. 당장 생각나는 이름만 대보라고 해도 이만섭·김윤환·서청원·홍사덕·박성범·정동영·맹형규·류근찬·박병석·이낙연 선배 등등 많습니다. 국회의원 중에는 법조인 출신이 많지요. 학자, 공무원, 의사 등 전문직 출신도 있고요. 모든 분들이 장점이 있습니다. 이 분들을 지켜보면서 많이 배웠지요. 감히 얘기하자면 이 분들이 가진 장점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전천후 스트라이커는 바로 기자 출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분들을 다 취재하고 감시하고 견제하는 게 바로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홍 의원은 책에 자신의 기자 시절, 뉴스 앵커 시절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는 1993년 SBS에 입사했다.
“사츠마와리(경찰을 뜻하는 ‘사츠’와 ‘돌다’ 의미의 ‘마와리’가 합쳐진 언론계 은어.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하는 사건 취재를 뜻함)만 10년을 했어요. 1996년 동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는 현장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갔지요. 무장공비의 총에 맞아 숨진 고 이병희 중사와 저의 거리가 400미터도 채 되지 않았어요.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때도 가장 먼저 현지에 달려갔고요. 돌이켜보면 깨끗한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기사에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 했지요. 버린 영수증이라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졌고요. 화재 현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물처럼 마셨어요. 참담한 범죄 현장도 코를 막고 내 집처럼 드나들었지요.”
평소 홍 의원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이날도 “너저부리하니~, 미즈그리하게~, 하라캤으면” 등 사투리 섞인 특유의 유머와 호탕한 웃음을 보였다. 의아했다. 저렇게 사투리를 쓰는데 어떻게 앵커를 했을까?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남자 주인공 모델이 홍 의원이라는 사실도 새삼 놀라웠다.
▲1996년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교전 최접근 지역에서 보도 중인 당시 홍지만 기자. 사진제공 = 의원실
“2002년 1월, 미근동 경찰청에서 밤을 샐 때였어요. 아침으로 국밥을 먹고 기자실 소파에 몸을 맡기고 있었지요. 데스크 차장이 전화를 걸어 ‘네가 앵커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윤세영 SBS 회장님이 그간 제가 취재하고 방송한 뉴스들을 유심히 봤던 모양이에요. 그때부터 7년 동안 앵커를 했지요. 사투리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8시 뉴스 첫 소식입니다.’ 이렇게 긴장 속에 뉴스를 끝내고 나면 미뤄 놨던 사투리를 쓰는 거죠. 저한테 사투리로 뉴스 하라고 했으면 정말 원고가 필요 없었지요(웃음). 2002년 월드컵 때 긴박한 속보 전쟁을 치르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두 번이나 잘못 읽었던 적도 있었고.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계속 진행하게 되더라고요. 아침 뉴스를 진행할 땐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준비했지요. 5년 가까이 하면서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어요. 눈병이 나서 한 쪽 눈을 심하게 찡그리며 진행한 기억도 납니다. 새벽 5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 47분까지 12시간 47분이라는 뉴스 진행 기록을 세운 적도 있지요.”
홍 의원은 기자 시절 정치부는 하지 않았다. 정계 입문 기회는 뜻밖에 찾아 왔다. 잘 나갔던 앵커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에 후회는 없었을까?
“국회에 들어오기 전까지 정치를 꿈꾸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정치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선택한 만큼 앵커를 그만둔 데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를 해 보니까 저하고 약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듭니다. 여야가 너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싸우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계속 이렇게 싸우면서 정치 생활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권력 파워의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고, 국민을 위한 정치와 거리가 있는 부분에 대한 실망감이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앵커를 그만두고 곧바로 국회의원이 됐으면 두 직업을 비교했을 겁니다. 하지만 낙선 후 4년이라는 공백은 두 직업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재도전해 성공했으니 두 직업은 비교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는 일 자체가 워낙 다르니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것인가 고민하면서 제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기자는 좋고, 국회의원은 나쁘다 이런 것이 아니라 현재 위치에서 어떤 것이 최선인지 연구한 것이지요.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쁘고 이런 이분법 논리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장점은 배우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게 정치 아닙니까?”
기자 출신들은 국회의원이 되면 대변인을 맡는 경우가 많다. 홍 의원도 국회 입성 후 원내대변인을 맡았다. 2년 연속 원내부대표도 지냈다. 의정활동 또한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뜻밖에 정계입문…앵커 그만둔 것 후회않아”
“2013년 최경환 원내대표 경선 때 핵심 5인으로 역할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저를 희생하고 도울 기회를 갖게 돼 기분이 좋았지요. 지역예산, 민원, 국가정책 등은 새누리당이 제대로 방향을 잡아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프레임을 야당보다 먼저 만들고, 박근혜 대통령께서 잘 이끌어 가신다고 생각하기에 열심히 한다는 자세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19대 첫해부터 원내부대표를 2년 연속 했습니다. 대선 전에는 국정원 댓글사건과 NLL 문제로 시끄러울 때 국회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한 기억이 납니다. 보수가 나아갈 길과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여야의 이념 대립은 잘못됐다, 민생을 생각하고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지요. 많은 의원님들이 잘했다고 하고 ‘3선 같은 초선 같았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그때 ‘이것이 바로 국민들을 이끌어가는 정치인의 역할이구나. 내가 앞으로 할 일이 굉장히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을 발의해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킨 것도 보람을 느낀 일 중 하나입니다.”
홍 의원은 기자 초년병 시절의 자세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서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던 사회부 기자 시절,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 앵커 시절은 그에게 힘든 나날이었다. 이보다 더 힘든 시기가 정치를 하고 있는 현재다.
▲대구 서남시장 상인들과 함께 한 홍지만 의원(왼쪽 세 번째). 사진제공 = 의원실
“일찍 출근해야 하고 집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직업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정치인 생활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정치인은 제가 주체가 돼 국민들과 지역주민들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필요로 합니다. 정무적인 감각이 뛰어나야 하지요. 앵커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진정한 공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라든지, 제 이미지에도 신경 써야 하고, 지역민들과 밀착해야 합니다. 또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요. 언론도 이제는 제가 취재원이 됐으니 신경 쓰는 부분이 더 많아졌고….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정치인 생활이 제일 힘든 게 사실입니다.”
정치인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언론인들이 정치인으로 진출하기를 원한다. 기자 출신 정치인들은 취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사건을 취재할 때 한 가지만 보지 않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과정과 정황은 물론이고 사건의 배경에 주목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뻔한 원인과 이유가 아닌,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피치 못할 사정이 또 있는지, 가해자로 알려진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건 아닌지 등을 기사 마감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취재해야 하지요.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자는, 정부의 정책이 발표된 것과 달리 부작용은 없는지, 문제를 간과한 부분은 없는지, 예상 효과보다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전문가와 현장 목소리를 직접 취재해 기사를 씁니다. 기자 시절 혹독하고 치밀하게 훈련받은 취재 능력은 정치인이 돼 국민의 어려움을 현장에서 직접 듣고 정책을 입안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기자가 균형 잡힌 팩트 중심의 사고를 지녔다는 것도 강점입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이 있지요. 기자로서의 균형감각, 팩트 중심의 사고와 자존심은 정치인으로서의 진정성과 소신, 원칙과 연결됩니다. 정치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을 미리 섬세하고 혹독하게 잘 훈련받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기자입니다.”
“국민 위해 일할 수 있는 집단이 언론”
홍 의원은 폴리널리스트에 대한 끊이지 않는 비판 속에서도 많은 기자 후배들을 정치 후배로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 정치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이고,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집단이 언론인이라고 생각해서다.
▲10월 19일 CNB와 인터뷰하는 홍지만 의원. 사진 = 왕진오 기자
“언론인들은 공익을 위해 일합니다. 기자는 기사가 공공의 이익에 맞는지를 항상 고민하고, 국민에게 이 정보가 도움이 되는지를 우선 생각합니다. 미담도 공익이고 고발도 공익이지요.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야가 끊임없는 전쟁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입니다. 국민이 더 잘 살고, 덜 고통 받고, 더 편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정치는 존재합니다. 기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를 하기 위한 자질을 키우는 훈련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언론인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대한 언론 내부의 비판은 있습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며 봉사하는 게 언론의 도리이자 숙명인데 다른 목적, 즉 ‘국회의원 하려고 기자 됐나’라는 문제 제기를 받기도 합니다. 따져 보면 이런 목적을 갖고 언론계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치인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에서 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자 임무에 충실할수록, 많은 취재원과 인맥을 제대로 만들고 국민에게 유익한 기사를 많이 쓸수록, 엄청난 정보력을 갖고 기자로서의 실력을 잘 발휘할수록 정치권은 그 기자를 영입하려고 애쓰게 돼 있습니다.”
홍 의원은 ‘화합의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으로 변화와 희망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포부다.
“타협하고 양보하는 합리적인 정치, 화합의 정치, 원칙이 있는 정치를 하려 합니다. 국민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고, 여야가 논쟁하면서 타협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정치를 하는 것이 꿈입니다. 저는 4년간 쉬면서 와룡산을 자주 갔습니다. 그때 만난 주민들이 많이 도와주셨지요. 그 분들을 포함해 언론인이 되려고 준비 중인 많은 언론사 취업준비생들과 현재 정치인을 꿈꾸는 언론인들에게 제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앞으로 계속 국민을 위해 봉사하면서 진정성이 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