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 시리즈 ⑫ 페라리] ‘가장 빠르고 비싼 차’ 기록경신 또 경신
▲2014년 제네바 모토쇼에 선보인 ‘페라리 캘리포니아 T’. 사진 = 페라리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세계적인 명품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Ferrari)는 1947년 F1의 전설 엔초 페라리에 의해 탄생했다. 엔초 페라리는 1947년 5월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페라리의 이름을 단 첫 차 ‘페라리 125 스포트’를 내놓고 바로 2주 후 로마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고성능 스포츠카의 시작이었다. 불과 4년 후인 1951년 페라리는 당대 최고이자 그가 원래 몸담고 있던 알파로메오 레이싱 팀을 꺾고 왕좌에 등극했다. 이후 페라리는 지금까지 F1을 비롯한 전 세계 서킷과 로드 레이스에서 5000회 이상 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50년 F1 월드 챔피언십 창설 후 현재까지 단 한 시즌도 빠지지 않고 F1에 참가한 팀은 페라리가 유일하다. 이렇듯 수많은 레이스를 통해 얻어진 뛰어난 기술과 최고의 차를 만들어내겠다는 집념이 현재의 페라리를 만들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페라리 숭배자를 양산해내는 바탕에는 탁월한 기술력과 함께 페라리의 아름다운 디자인이 있다. 1952년 엔초 페라리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디자인 기업으로 평가받는 피닌파리나(Pininfarina)와 협업해 스포츠카를 예술품이자 명품 브랜드로 진화시켰다.
① 이탈리안 레드의 “따라올테면 와봐”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뛰어난 주행 성능은 물론, 아름답고 감각적인 디자인의 희소성까지 더해져 ‘꿈의 자동차’로 불리는 모델이 바로 페라리 250 GTO다. 이 모델은 창업자 페라리가 만든 슈퍼카 계보의 시작을 알리는 첫 모델이기도 하다.
페라리 250 GTO는 1962년 1월 처음 공개됐다. 이후 3년 동안 GT(Grand Touring) 레이스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며 명성을 날렸다. 모델명의 ‘250’은 실린더의 배기량을 말한다. 당시 페라리는 12기통 엔진을 사용해 총 배기량 3000cc급이었다.
GTO는 이탈리아어 ‘Gran Turismo’와 적합하다는 뜻의 ‘Omologato’ 약자다. 장거리를 고속 주행하는 고성능 차를 말한다. GT 레이스 출전이 가능한 모델이란 의미도 있다.
현재는 엔진이 뒷좌석 쪽에 위치하는 미드십 엔진(midship engine)이 대세지만, 이 모델은 전통적인 프론트 엔진이다. 그래서 경주뿐 아니라 도로 주행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페라리 250 GTO는, 1961년 생산된 ‘250 GT SWB’의 차제와 1958년 르망 24시 경주에서 우승한 ‘250 테스타로사’의 엔진을 결합해 개발됐다고 알려졌지만, 제작 과정의 세부는 철저히 비밀이다. 재규어 E-타입의 경쟁 모델로 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1967년형 페라리 330 GTS. 사진 = 페라리
1961년 생산된 재규어 E-타입은 낮은 차체에 부드러운 공기역학적 스타일을 보이면서도 세단의 안락함까지 갖춰 좋은 평가를 받았다. 265마력 3.8ℓ 직렬 6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최고속도 240㎞/h를 기록해 당시 가장 빠른 자동차로 기록됐다.
이에 페라리는 엔지니어 마우로 포르기에리(Mauro Forghieri)와 피닌파리나, 또 다른 디자인 업체 스카글리에티(Scaglietti)와 함께 250 GTO 개발에 참여했다. 차체를 만드는 장인 기업으로 이름을 떨쳤던 스카글리에티가 전반적인 차제 디자인을 맡았고, 일부 개발 모델은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하고 스카글리에티가 제작을 담당했다.
포르기에리와 스카글리에티는 풍동 및 트랙 테스트 등 세심한 노력 끝에 GTO의 차체 디자인을 완성했다. 지금과 같은 250 GTO의 개성 탄생이었다. 외관 디자인은 후륜구동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디자인으로, 차량 앞쪽이 길고 트렁크가 짧았다.
얇고 작아진 전면 그릴 양쪽으로 네모난 헤드램프가 페라리 GTO만의 특징을 잘 드러냈다. GTO 모델 중에는 엔진 후드 앞쪽에 3개의 공기 흡입구를 가진 것도 있는데, 냉각 효율을 높일 때는 흡입구를 열고 공기 저항을 줄이고 싶을 때는 흡입구를 닫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한정 생산에 희소성 높여
페라리를 말하며 레이스 성적을 빼놓을 순 없다. 250 GTO에 앞서 1961년 르망 24시에 첫 선을 보인 250 GT SWB는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고, 이후 애스턴 마틴과 재규어, 포르쉐를 나란히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250 GTO도 출시 첫 해부터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 3년간 레이스 대회들을 휩쓸다시피 했다. 특히 당시 시속 254㎞를 찍으며 “직선 구간에서는 따라올 차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뷔 첫 해인 1962년 세브링 12시 내구 레이스의 준우승을 시작으로 인터유로파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1963~64년 투르 드 프랑스 우승, 1962~64년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3년간 GT 클래스 부문 우승, 1962~63년 르망 24시에서 GT 부문 우승 등의 성적을 거뒀다.
페라리 GTO 라인업의 최초 모델이었던 250 GTO는 당시 1만 8000달러를 호가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엔초 페라리가 직접 고객을 선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페라리는 250 GTO를 총 39대만 생산해 희소성을 높였다.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Fiorano). 사진 = 위키미디어
2004년 자동차 전문지 ‘스포츠카 인터내셔널’은 250 GTO를 “1960년대 최고의 스포츠카 중 하나”로 선정했고, ‘모터트렌드’도 “역대 최고의 페라리”로 인정했다. 국내에서는 특히 톰 크루즈가 주연한 ‘바닐라 스카이’ 등 영화를 통해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페라리 GTO 모델은 1984년 두 번째 모델을 선보였다. 308 GTB 모델을 바탕으로 만든 288 GTO다. 이 모델은 일반 도로 위를 달릴 수 있는 양산차 중 최초로 시속 300㎞의 벽을 돌파했다. 역시 여러 매체가 80년대 최고의 스포츠카로 꼽았다.
2010년 베이징 모토쇼에서 선보인 599 GTO는 페라리의 세 번째 GTO 모델로, ‘26년 만의 부활’로 화제가 됐다. 모델명처럼 599대만 한정 생산됐고, 베이징 공개 전 예약 판매로만 전량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 시장 겨냥한 컨버터블 인기
스포츠카 브랜드로서 페라리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모델이 250 GTO라면, ‘250 GT 캘리포니아 스파이더(California Spyder)’는 페라리의 가장 아름다운 차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모델 역시 250 GTO처럼 피닌파리나와 스카글리에티의 합작품으로, 두 업체에서 디자인과 제작을 맡으면서 출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이 250 GT 캘리포니아 스파이더는 페라리가 미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오픈카다. 이 차와 함께 출시된 ‘250 GT 베를리네타(Berlinetta)’도 오픈카였을 만큼 1950년대 말 미국에서 컨버터블 차량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 모델의 차체 디자인은 페라리와 동반자적 관계를 맺어온 피닌파리나가, 실제 제작은 스카글리에티가 책임졌다. 주로 철제로 제작되다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250 GT 캘리포니아 스파이더는 크게 두 가지 라인업으로 제작됐다. 1958~60년 사이에 제작된 LWB 시리즈와 이후 등장한 SWB 시리즈다. SWB는 차체와 기계적 세부사항을 약간 변경해 실제로는 1963년에 완성됐다.
LWB 시리즈는 페라리의 ‘TdF(투르 드 프랑스) 베를리네타’와 같은 2600㎜ 휠베이스 섀시로 제작됐다.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스티어링 등도 TdF 베를리네타와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제작됐다. 1959년 말과 1960년 초에 생산된 이 시리즈의 마지막 차량들에는 4개의 바퀴에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됐는데, 이전에 생산된 차량들엔 드럼 브레이크가 사용됐다.
SWB 시리즈의 차체는 외향적으로는 LWB의 차체와 유사했다. 차이라면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 LWB보다 200㎜가 짧은 2400㎜ 길이의 휠베이스 섀시를 사용했다. 휠베이스가 짧아지면서 차고 또한 30㎜ 낮아졌다.
이 두 라인업은 미국 경주대회에서 두각을 보였다. 특히 미국의 유명 드라이버 밥 그로스맨(Bob Grossman)이 이 모델로 1959년과 60년 미국에서 열린 전국 레이싱에서 수차례 좋은 성적을 거둬 유명세를 탔다.
250 GT 캘리포니아 스파이더는 이후 진화를 거듭해 최근엔 ‘페라리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페라리 역사상 최초의 프론트 V8 엔진이 장착됐다. V8 엔진(4300㏄)은 460마력의 힘을 뽑아내며 정지 상태에서 약 3.9초 만에 100㎞/h를 돌파한다.
페라리 캘리포니아는 특히 페라리 전통과는 사뭇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하드톱 컨버터블이란 점 외에 2인승 뒷좌석이 추가됐다. 반면 섀시와 바디는 다른 페라리 모델과 동일한 알루미늄 구성이다.
“금 저리 가”라는 250 GTO 경매값
페라리 250 GTO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아름다운 외형에 한정된 수량으로 자동차 수집가들의 꿈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2008년 영국의 한 수집가는 경매로 나온 250 GTO(1963년 모델)를 1570만 파운드(당시 환율 기준으로 300억 원 이상)에 사들여 당시 세계 자동차 경매가 최고가를 갱신했다. 또 2011년 초에는 한 조각가가 실제 250 GTO의 1/8 크기로 24k 순금을 입혀 제작(무게 100㎏)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페라리 250 GTO 베를리네타(Berlinetta)’. 사진 = 위키미디어
2014년 8월 미국 본햄스(Bonhams) 경매에서는 페라리 250 GTO 모델이 무려 3811만 5000달러(약 387억 8000만 원)에 낙찰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모델은 바로 1962~63년형 페라리 250 GTO 베를리네타다. 베를리네타(Berlinetta)는 2인승 스포츠 쿠페를 뜻한다. 250 GTO 동일 모델 중 19번째로, 1962년 9월 11일 출고 모델로 알려졌다.
이 낙찰가는 당시까지만 해도 경매회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자동차 가격 중 가장 비싼 것이었다. 이 가격이면 2014년형 페라리 458 모델(약 4억 3000만 원)을 90대쯤 살 수 있다. 페라리 250 GTO의 공차 중량은 880㎏으로,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싼 셈이다.
하지만, 이내 경매가는 또 다시 경신됐다. 주인공 역시 페라리 250 GTO로, 5200만 달러(한화 556억 원)에 판매됐다. 구체적인 거래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의 한 자동차 수집가가 자기 소유의 페라리 250 GTO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페라리 모델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며 1964년까지 총 39대만 생산된 페라리 250 GTO의 독보적인 인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② 4명 타고 트렁크 넓은 스포츠카?
페라리는 페라리 왕국을 건설한 엔초(Enzo Ferrari)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창업자 이름을 딴 모델 ‘엔초 페라리’를 제작했다. 슈퍼카이면서 도로용 GT 자동차인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 창립 60주년 기념 모델로 나왔다. 40주년의 F40나 50주년의 F50처럼 ‘F60’으로 불리기도 한다.
엔초 페라리는 특히 F40의 명성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성능과 디자인 모두에서 페라리의 상징이 됐다. 최고의 슈퍼카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 갑부와 영화배우들의 애마로도 유명하다.
▲페라리 6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선보인 페라리 F60. 사진 = 위키미디어
1898년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모데나에서 태어난 엔초는 10살 때 처음으로 자동차 레이스를 구경한 후 매력에 흠뻑 빠졌다. 13살 때 공업도시 토리노에서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하며 자동차 기술을 습득했다.
1919년 레이스 대회에 출전하며 카레이서 인생에 첫 발을 내딛은 엔초는 1924년 ‘코파 아체르보(Coppa Acerbo)’에 출전해 전통의 라이벌인 독일 벤츠 SSK를 제압하며 최고 레이서 반열에 올랐다.
1920년대 레이싱카를 주로 제작한 알파로메오(Alfa Romeo)의 레이서로 활동하던 엔초는 1929년 자신이 직접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라는 팀을 만들었다. 엔초가 이끌던 페라리는 F40 모델을 내놓은 후 그가 사망하던 1988년까지 전 세계 자동차 레이스에서 5000회 이상 우승을 차지하고 20여 개의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다.
창립 60주년 기념해 총 400대 제작
엔초 페라리는 V12 6.0ℓ DOHC 엔진으로 최고 출력 651마력에 최대토크 67㎏·m을 낸다. F1에서 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기술 기반의 모델답게 강력 성능을 자랑하며 출시 때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페라리의 4륜구동 모델 FF(Ferrari Four). 사진 = 위키미디어
2002년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된 엔초 페라리는 당초 349대 한정 제작 예정이었다. 하지만 양산되기 전에 다 팔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고, 이후 50대 추가 제작에 이어 2005년 1월 1대를 추가해 최종 제작대수를 400대로 맞췄다. 마지막 한 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헌납됐는데, 2004년 쓰나미 피해자를 위한 경매에서 95만 유로에 낙찰됐다.
이 모델 디자인 역시 페라리의 동반자이자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인 업체 피닌파리나의 수석 디자이너 켄 오쿠야마(Ken Okuyam)가 총괄했다. 페라리 전통의 원뿔 형태로 낮게 제작된 차체 정면은 입을 크게 벌린 흡입구가 양쪽에 자리했다.
역삼각형의 웅장한 후드는 날렵하고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페라리에서는 유일하게 ‘걸 윙 도어(gull wing door, 갈매기 날개처럼 위로 접어 올리며 열리는 문)’ 방식을 채택했고, 차내 시트는 페라리 전통의 붉은색으로 꾸몄다.
페라리 최초의 4륜구동 FF
FF는 페라리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모델로, 페라리 최초의 4륜구동 차다. FF는 ‘페라리 포(Ferrari Four)’의 약자다. 4인승이면서 4륜구동이란 의미다. GT 스포츠카 콘셉트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엔초 페라리 모델은 페라리에서 유일하게 ‘걸 윙 도어’ 방식을 채택했다. 사진 = 위키미디어
스포츠카 DNA와 실용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된 FF는 피닌파리나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페라리 최초의 4륜구동 시스템인 4RM 시스템은 차량의 자세 제어 장치와 통합돼 어떤 도로 조건에서도 4개의 바퀴 모두에 최적의 구동력을 배분하고 성능과 안전을 보장하도록 설계됐다.
▲페라리 40주년 기념 모델 F40. 사진 = 페라리
FF는 4륜구동 차량으로는 이례적으로 차량 전후 47:53의 완벽한 무게 배분을 유지했다. 기존 4륜구동 시스템에 비해 약 50% 가량 무게를 감소시킨 4RM 시스템을 통해 더욱 스포티한 주행을 실현했다.
FF에 장착된 12기통 6262cc 직분사 엔진은 8000rpm에서 660마력의 최고 출력을 발휘한다.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와 함께 최고 속도 335㎞/h,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h 도달까지 걸리는 시간)은 3.7초다.
성능뿐 아니라 다양한 활용도를 자랑해, 성인 4명이 승차 가능하고, 450리터 용량의 트렁크는 뒷좌석을 접으면 300리터가 추가된다. FF는 기존 페라리의 특징인 주행 성능과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실용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페라리 형태로 주목 받고 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