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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리노베이션 ④ 이음빌딩] 30년 전 연남동을 현재와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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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6호 김금영 기자⁄ 2016.01.21 09:02:02

▲연남동 이음빌딩 리모델링 공사 후 모습. 기존 건물의 빨간 벽돌을 살리고, 맨 위에 새로운 철제 공간을 올렸다. 사진 = +202 이정수 포토그래퍼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연남동 골목길은 요즘 드릴 소리와 먼지로 가득하다. 개발의 눈길을 받지 못했던 이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이 주목 받으면서 최근 새 건물 또는 리노베이션 건물(낡은 집을 새 집으로 변경하는 작업)이 많이 들어서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유난히 옛날스러워 보이는 한 건물이 있었다. 1층엔 슈퍼와 미용실이 있고, 굉장히 오래 된 낡은 벽돌로 겨우 버티고 서 있는 듯한 건물이었다. 늘어가는 주름살처럼 나이 들어가는 건물.

안쓰러운 모습이었지만 연남동 골목길의 역사를 지켜봐온 터줏대감 아우라도 있었다. 그런데 2015년 하반기 어느 날부터 이 건물에도 먼지가 나기 시작됐다. “이 건물도 가는구나” 하는 시원섭섭함이 있었다.

다른 리노베이션 건물과는 달리 4개월 정도의 공사 과정이 눈길을 끌었다. 통상 다른 리노베이션은 건물의 외관을 모조리 뜯어고치지만 이 건물은 공사 내내 1~3층의 낡은 벽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철재 옥상방 같은 구조물이 덧붙여지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빨간 벽돌은 걷어내어지지 않은 채 그 위에 페인트칠로 젊은 느낌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물 맨 위에 빌딩이름이 내걸렸다. ‘이음’이라는 간판이었다.
건물엔 공사 뒤 큰 변화가 있었다.

▲이음빌딩 3층은 아트 마켓 공간이다. 글 쓰고, 그림 그리고, 가죽 공예를 하는 다양한 아티스트의 공유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전엔 출입구를 찾기도 힘들지만 지금은 크게 만든 출입구 문 쪽에 극단이 입주해 있음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하 1층엔 극단 ‘엄청난 녀석들’의 공연장(경암소극장)도 있다. 그리고 1층엔 오래된 동네 구멍가게 대신 편의점이 들어섰고, 2층엔 미용실이 자리 잡았다. 이 역시 전보다 달라지긴 했지만 과거와 완전히 절연한 형태가 아니고, 과거와의 인연을 붙들고 가는 ‘이음’ 형태였다.

3층엔 바깥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이게 큰 창을 달아, 사람들이 안에서 오가는 모습이 밖에서 보이기도 한다. 뭘 하는 공간인지를 행인이 알 수는 없지만, 건물에 크게 내걸린 ‘아티스트 모집’ 현수막이 공간에 대한 짐작을 하게끔 한다.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남동에서 건물 작업을 하는 윤여진 마스아키디자인 대표는 이 건물에 대해 “리모델링 과정을 보면서 재미있는 형태가 될 거라 예상했어요. 다만, 요즘 리모델링은 아주 혁신적이지 않으면 비슷한 형태가 되기 쉽기에 건물만의 특성과 차별화된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건물에 아티스트 모집 공고가 나붙는 걸 보고, 저런 형태로 운영되면 건물의 매력을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①] 이음빌딩 신대식 건축주
“연남 골목에 문화산실 만든다”

이음빌딩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건축주 신대식 씨를 건물 3층에서 만났다. 궁금했던 3층은 확 트인 공간이었다. 넓은 공간에 탁자 몇 개와 책장이 있었다. 안을 깨끗하게 페인트칠하기보다는, 기존 벽돌과 천장을 뜯어낸 흔적을 그대로 살려 따뜻함과 거친 감성이 공존했다. 이 건물에 관심을 보인 건 기자뿐이 아닌 듯, 건축주를 기자보다 먼저 찾아온 사람이 있었고, 인터뷰 도중에도 동화 작가 지망생이 3층 문을 두드렸다.

▲이음빌딩의 신대식 건축주. 문화예술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이음빌딩을 연남동 문화의 산실로 키우고 싶어 한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궁금했던 3층은 아트 마켓 공간이다. 글 쓰고, 그림 그리거나 가죽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가 공간을 공유하는 형태다. 여러 아티스트가 공유하기에 임대료 부담도 줄어든다. 이음빌딩에서 일어난 일을 신 건축주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건물은 제가 어릴 때부터 자라온, 제 인생을 함께 해온 공간이에요.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사글세부터 시작해 평생 어렵게 모아 마련한 우리 가족의 공간이었죠. 거의 30년 된 건물이에요. 그전엔 봉재공장이었다 하더군요. 옛날에 주변 집들이 다 단층일 때 이 건물만 3층이라 눈에 띄었어요.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자식들이 다 분가하면서, 두 노부부가 쓰기엔 형태가 적합하지 않았고 평수도 컸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외부적인 여러 상황도 있어서 건물을 리모델링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전부터 계획은 있었지만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리 온 거죠.”

처음부터 신축이 아니라 리노베이션을 생각했다. 그냥 건물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추억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쉽게 없앨 수 없는 존재였다. 신 씨는 “10년이 됐든, 30년이 됐든 이 건물을 보수하면서 지키고픈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유학 시절의 경험도 영향을 줬다. 유럽은 옛 향취를 오래 보존하며 함부로 허물지 않는다. 그는 “해외 연출가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보이는 아파트를 보면서 ‘저 안은 어떻게 생겼냐, 다 똑같아 보인다’고 하더라”며 “내가 건물을 보수하게 되면 옛 모습을 보존하며 재미있는 형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현실적으로는 비용 부담도 있었다. 신축보다는 리노베이션이 저렴하다. 그러나 막상 어느 건축 사무소에 의뢰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극단 ‘엄청난 녀석들’의 공연이 펼쳐지는 지하 1층 극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은 전체적으로 시멘트의 거친 질감을 살렸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연남동 주변 리노베이션 건물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중 동진시장의 끝자락에 위치한 ‘고야(GOYA)’ 바를 발견했다. 건축, 인테리어, 리모델링 등을 설계 및 시공하는 프로젝토가 작업한 건물로, 주택을 리모델링했다. 신 씨는 “출입구부터 옛날 문짝을 그대로 살린 감성이 마음에 들었다. 건물 안 화장실 또한 세월을 짐작하게끔 기존 형태를 살렸더라. 내가 원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프로젝토의 한범주 소장과 인연이 닿았다”고 말했다.

공사 과정에서 한 소장과 의견 교환을 많이 했다. 건축주가 요구한 건 ‘건물이 지닌 기존의 감성의 보존’이었다. 그 결과 옛 벽돌을 살리면서도 메탈을 사용해 신구(新舊)가 조화를 이룬 형태가 나왔다. 공사 과정에서 발견한 것도 있었다. 3층 지붕을 뜯어내자 나무로 된 간판이 나왔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옛날 이 건물에 지붕을 올릴 때 상량식(집을 지을 때 지붕틀을 꾸민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으로 천장 안에 넣어둔 추억의 물건이었다. 신 씨는 “한 소장이 이 간판을 잘 보이는 데 남기길 권하더라. 나 또한 마음이 같아 3층에 일단 꺼내뒀다”고 말했다.

지하 1층의 극단 사용 공간도 보수를 했고, 1~2층은 임대 공간, 3층은 아트 마켓 공간으로 꾸렸다. 건물 외관에 페인트칠을 강하게 한 건 건축주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주택이던 건물은 근린생활 시설로 탈바꿈했다.

▲이음빌딩 2층의 미용실 시공 및 인테리어를 프로젝토가 진행했다. 통기타와 옛 향취가 느껴지는 작은 수납함, 문 등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건축주 신 씨가 한 소장에게 강조한 바가 또 있었다. “연남동 콘텐츠에 맞는, 상업적이기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재미있는 건물이 됐으면” 한다는 주문이었다. 1~2층은 생계를 위해 임대를 줬지만, 실상 이음빌딩의 진정한 의미는 지하 1층과 3층에 있다는 게 신 씨의 말이다. 이음빌딩에 신 씨는 건물주로서뿐 아니라 극단 ‘엄청난 녀석들’의 대표로서 발을 들인다.

“건물이 지닌 기존의 감성 보존해달라”
“스토리 있는 재미있는 건물이길” 주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하며 7년간 유학 했어요. 그리고 2012년 7월부터 건물 지하에서 경암소극장을 운영했죠. 배우들을 가르치고, 배우들이 공연도 하는 스튜디오예요. 공사를 시작할 때 객석에서 좀 더 편하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고 했어요. 프로젝토와 일을 할 때 이런 점이 좋았어요. 외관뿐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에 강점이 있죠. 2층 미용실도 프로젝토가 맡았는데, 현대적이고 비싼 자재가 아닌, 빈티지 소품 등을 활용해 편하고 세련된 느낌을 살렸어요. 1층 편의점 옆엔 꽃집이 들어올 예정인데, 그곳 인테리어도 프로젝토가 맡았죠. 신뢰가 가요. 지하 1층은 아직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았는데, 프로젝토의 의견도 구하려 해요.”

신 씨는 지하 1층의 공간을 재미있게 꾸릴 궁리를 하고 있다. 바로 ‘액터스 클럽(Actor’s Club)’이다. 흔히 술 한 잔 기울이며 즐기는 콘텐츠는 노래 위주가 많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자유로운 공간을 구상 중이다. 지하 1층 한쪽엔 무대와 객석이 있고, 이어진 다른 공간엔 바를 만드는 중이다. 큰 틀은 프로젝토가 만들었다. 바 공간엔 모니터가 설치돼 배우들의 연기를 바에서도 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2년 전부터 구상한 거예요. 홍대 앞 클럽에서는 재즈 공연이 많고, 대학로엔 소극장 300~400개가 몰려 있죠. 전 연남동의 특성상 희소성 있는 액터스 클럽이 가능하겠다 생각했어요. 평상시엔 배우가 수업을 받고, 공연 연습을 하다가 금-토요일에는 바를 오픈하는 형태로 꾸리는 거죠. 1만 원 정도 입장료를 내고 술과 연기를 모두 즐기는 형태입니다. 7시부터 45분 단위로 공연을 하고 15분 쉬는 구성으로요. 이 공연에 우리 극단 단원뿐 아니라, 돈이 없어 무대 공연을 못 올리는 극단에도 기회를 주고 싶어요. 신청을 받아 1시간 미만으로 클럽 무대에 서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골목문화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음빌딩 출입구엔 큰 문이 새로 세워졌다. 그리고 극단의 존재를 알리는 현수막도 내걸렸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젊은 감각의 리노베이션으로 전국적 화제가 된 연남동의 중심에 자리잡은 이음빌딩을 통해, 연남동을 부동산 투자의 대상이 아닌, 문화의 메카로 재발견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 신 씨의 바람이다. 지하 1층과 3층의 공간은 그래서 마련했다. 3층 아트 마켓 공간엔 경계선이 없다. 그저 넓은 공간이다.

“아티스트들이 함께 상주하며 작업하는 공간입니다. 동진시장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어요. 8~9팀 정도를 들이려고 해요. 현재 30% 정도 모집됐어요. 모집을 진행하면서 작업 공간이 아쉬운 아티스트들이 많다고 느꼈어요. 아트 마켓은 각자의 작업을 마음껏 하면서, 작품을 판매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서로의 작업을 보면서 예술적 영감을 받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죠. 그래서 폐쇄된 형태를 지양하고, 바깥에서 보이도록 큰 창을 달라고 했어요.”

상주 아티스트뿐 아니라 일반인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외부 계단도 만들었다. 신 씨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최대한 많이 모이는 재미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연남동 지역 아티스트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신나게 재능을 펼칠 수 있으면 한다. 거기에 동네 주민들도 함께 어울리고”라고 말했다. 

이음빌딩이라는 이름은 신 씨와 한 소장이 머리를 맞대어 탄생시켰다. 지하 1층 액터스 클럽부터 3층 아트 마켓까지, 이음빌딩의 공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건물을 통해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고, 거기서 수많은 이야기가 탄생하길 바라는 건물이다.


[인터뷰②] 한범주 프로젝토 소장
“작은 건축사무소의 힘 보여주겠다”

한범주 소장을 만난 건 섭외 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길거리를 걸어가던 도중이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이음빌딩을 지켜보다가 공사 현장의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뿔테 안경을 쓴 캐주얼 복장의 그를 건축사무소 소장으로 생각 않고 이것저것 물었는데도 그는 고분고분 설명을 잘해줬다. 그러고 보면 한 소장의 특징이 건물에도 고스란히 묻어 들어갔다. 낡은 건물에 세련되고 젊은 감각을 불어넣어 신구(新舊)의 조화를 이루는 인물이다.

▲한범주 프로젝토 소장. 프로젝토 사무실 내부엔 신구(新舊)의 조화가 살아 있다. 빈티지한 소품을 바탕으로 나무 지붕을 살린 가운데 바닥은 깨끗하게 깔았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후 방문한 프로젝토 사무실 또한 재미있는 형태였다. 화이트 톤의 정갈한 사무실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연남동 단층의 오랜 건물을 리모델링한 형태였다. 안에는 오래된 듯한 소품들이 많았는데, 모두 연남동 지역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빈티지한 감성을 좋아해 데려왔다. 사무실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벽을 일부 뜯어내고, 바닥을 새로 깔았지만, 원래 나무로 만들어진 지붕은 그대로 살려놓았다. 그 과정에서 ‘생고생’을 했지만 한 소장이 고집했다. 자신이 일하는 공간에서도 이렇게 옛것과의 이음을 중요시하는 게 한 소장이다.

“신축도 진행하지만 특히 리모델링에 매력을 느껴요. 헌데, 과정은 훨씬 힘들어요. 견적 내기가 힘들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훨씬 크거든요. 처음엔 뭣도 모르고 그냥 덤벼들었다가 손해도 많이 봤죠. 하지만 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껴요. 빈티지한 감성과 신식이 조화를 이루며 새롭게 만들어내는 매력이 대단하죠.”

프로젝토는 연남동에서 집중적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해 만든 바 ‘고야(GOYA)’부터 주거 공간을 리모델링한 ‘조박 맨션’, 음식점 ‘다이닝 랩’, 지역 작가들이 모이는 ‘쿵푸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지역 작가들이 모이는 ‘쿵푸스’의 내부. 프로젝토가 작업했다. 사진 = +202 이정수 포토그래퍼

“홍대 앞이나 가로수길은 많이 상업화 됐지만, 연남동 골목은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한 매력 있는 공간이에요. 골목 자체가 좁기 때문에 상업화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는데, 이게 오히려 연남동 골목의 특성을 지키는 데 기여한 것 같습니다. 이런 특성상 리모델링이 많이 이뤄지는 추세고요. 신축도 의뢰가 들어오긴 하지만, 이 지역에선 리모델링 문의가 많아요.”

“딱딱한 건축과 부드러운 인테리어의 조화.
건축과 인테리어의 한계 구분짓고 싶지않아”

이음빌딩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을 때 흔쾌히 응했다. 다양한 건축주를 만나게 되는데, 특히 예술에 관심이 많은 건축주가 젊은 아티스트를 위한 공간을 꾸린다는 말에 심하게 끌렸단다. 건축주와의 의견 교류를 중요시해 6개월 정도 말로만 조율을 했다. 리노베이션에서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는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 없이 대화보다 손이 앞선 결과는, 공사 진행 도중 중단된 많은 현장들이 암묵적으로 말해준다.

한 소장은 “말 많은 건축주는 까다로운 게 아니다. 입장을 바꿔놓으면 이해가 된다. 자신의 공간인데, 관심이 많은 게 당연하지 않느냐”며 “오히려 ‘알아서 해달라’며 사라지는 건축주가 더 무섭다. 프로젝토에 전적인 신뢰를 보이기에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건축주와 충분한 의견 교환을 나누길 선호한다”고 말했다. 

대화의 결과 저층부는 기존 질감을 가감 없이 살리고, 위는 철을 사용해 도시적 느낌을 살리는 형태로 큰 틀을 잡았다.

▲프로젝토가 연남동에서 진행한 또 다른 작업 ‘다이닝 랩’.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 각별히 신경썼다. 사진 = +202 이정수 포토그래퍼

이음빌딩과 프로젝토 사무실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건물 외관보다 내부가 더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프로젝토는 인테리어까지 세심하게 다룬다. 이음빌딩의 각 층을 잇는 계단은 시멘트의 거친 질감을 살리는 것과 동시에 따뜻한 색의 조명이 배치돼 분위기가 살아 있다.

특히 이음빌딩 2층의 미용실은 독특한 인테리어로 이미 주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미용실에 들어서면 카운터 쪽에 예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누구나 한두 번쯤 봤을법한, 작은 수납함 등 빈티지 가구가 배치됐다. 이런 소품 하나하나를 프로젝토가 제안했다. 목조 재질의 아기자기한 소품이 거친 시멘트 질감의 벽과 어우러진다. 

3층은 벽을 뜯어낸 흔적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오래된 빨간 벽돌의 일부분에는 화려한 색이 칠해졌고, 공사 도중 발견한 옛 상량식 간판도 배치해 놓았다. 한 소장은 “건물 외관도 중요하지만, 인테리어가 공간에 맞게 구성돼야 전체적 완성이라 할 수 있다”며 “감성의 보존, 그리고 옛것과 현대적인 것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전체적인 콘셉트로 두고 이음빌딩 내부 인테리어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어요. 과거 지식경제부가 진행한 비즈니스 페어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한 건축사무소에서 10년 동안 일하다가 잠시 저의 방향을 고민하며 쉬던 때였어요. 반복되는 쳇바퀴 생활에 창의적인 생각이 막혀 있었죠. 페어는 기업이 젊은 디자이너에게 과제를 주고, 디자이너가 그 주제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형태였어요. 저는 에어컨의 새로운 디자인을 과제로 받았는데, 나름 결과가 좋아 최종 단계까지 갔어요. 그때 디자인이 참 매력있다고 느꼈어요. 그러면서 건축을 할 때 건물만 멋들어지게 세울 게 아니라 그곳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디자인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거 공간을 프로젝토가 리모델링한 ‘조박 맨션’. 사진 = +202 이정수 포토그래퍼

한 소장은 “건축은 딱딱한 느낌이라면, 인테리어는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공간 패턴도 유행이 있듯, 인테리어도 유행을 따라가는 점이 있는데, 그 사이의 중심을 잘 잡아야 획일적이지 않고 재미있는 공간이 탄생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계속 먹으면 질리듯, 건축과 인테리어 또한 은근한 매력을 살리는 걸 중요시하고, 두 가지 모두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인테리어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못할 것도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배우고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인테리어를 보러 다니고, 이제는 직접 가구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공간에 딱 어울리는 소품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또는 인테리어 업체에 맡겼을 때 생각한 느낌이 100% 구현되기 힘든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이젠 직접 못질, 망치질을 하며 만들어보고 싶다. 아직 부족하지만 열심히 공부 중”이라는 그는 “앞으로 가구를 전공한 친구들도 영입해 함께 일할 생각도 있다. 토목 일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연남동 골목문화 살리려는 성숙한 태도가
건축가-건축주 모두에게 필요

연남동은 이런 그에게 적합한 동네다. 과거 책 디자인과 음악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실을 쓰던 인연도 있어 자신에게도 익숙한 연남동이기도 하다. 1년 정도 작업실을 공유하다가 다 잘 돼서 흩어졌다. 아트 마켓 공간에 대한 영감도 그래서 나왔다. 
한 소장은 자신의 보금자리인 프로젝토를 연남동에 꾸렸다. 50년 묶은 건물의 지붕을 그대로 살리는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힘도 들었지만 나름의 뿌듯함이 없을 수 없다.

“프로젝토를 마련하고 얼마 안 돼 사무실 주변을 기웃거리는 분이 있었어요. 나이가 조금 든 분이었는데, 이전에 이 지역에 살았다더군요. 아들, 딸이 어릴 때 이 골목에서 숨바꼭질을 했었는데 그때의 골목과 집이 남겨져 있어 정말 반갑고 기쁘다고 하대요. 건물은 언젠가는 무너져 없어지지만, 그 이전에는 거기 살던 사람들의 정서와 추억이 담긴, 살아있는 곳입니다. 그걸 소중히 아끼고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소장은 “건축주 입장에서는 건물에 대한 재산권 행사 권리뿐 아니라, 성숙한 입장에서 주변 환경을 살펴보는 배려가 필요하다”며 “모두 부수고 새것만 지을 게 아니라, 기존 것을 살리면서 수익을 올릴 방안을 생각하면 연남동만의 특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로젝토 설립 뒤 벌써 3년이 흘렀다. 건축 분야에서 오래 일했지만, 소장으로서는 새내기다. 그래서 현장에 돌아다니기 바쁘다. 팀원은 대부분 30대 초반의 젊은 인력이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들과 많은 의견 교환을 한다.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그러면서 또한 소장으로서 중심은 잡아야 한다. 유명하지 않은, 젊은 건축가가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모든 것이 거쳐야 할 과도기라는 생각으로 감수 중이다.

“일본에는 소규모 건축사무소가 활성화돼 있죠. 한국은 아직 큰 건축사무소 위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있어요. 하지만 이건 기성세대 이야기고, 앞으론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이 올 거라 예상해요. 소비자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의식도 세련돼지고 있거든요. 벌써 20~30대 젊은 소비자들은 인터넷에서 직접 건축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요목조목 비교한 뒤 의뢰하는 경우도 많아요. 젊은 건축가, 그리고 소규모 사무실도 빛을 발할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그때까지 버티는 거죠. 즐거우니까 버틸 수 있지, 아니면 못할 짓이죠(웃음).”

한 소장은 “과거 건축과 설계를 함께 공부한 친구 10명 중 1명만 아직 버티고 있고, 나머지는 공무원 준비를 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만큼 버티기 힘든 현실이지만, 그래서 더 선례를 남기고 싶다. “누구나 건축을 하면 프로젝토만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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