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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맞는 집 ③ 크래프트 하우스] 신도시 탈출해 '3대 서울집' 지으니 새삶이 반짝

직접 집 지은 경험을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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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3호 안창현⁄ 2016.05.13 14:21:14

▲바람에 흩날릴 수 있도록 천을 바느질해 벽처럼 꾸민 ‘남산 몽블랑 하우스’의 옥상. (사진=리더스북)


(CNB저널=안창현 기자) 주거비가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고 아이 낳는 연령은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그만큼 집 문제는 우리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서울 지역 전셋값은 연일 고공행진 중이고, 그마저도 물량이 없어 난리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빠져나간 인구는 40만 명을 육박한다. 감당하기 힘든 주거비가 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재밌는 책 한 권이 출판됐다. 제목은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신도시 용인의 40평 다세대주택에 살다가 서울 후암동에 18평 협소주택을 직접 지은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남들은 ‘탈서울’하는데, 이 부부는 오히려 경기도에서 서울로 옮기면서 자신의 집을 직접 짓는 모험을 감행했다. 물론 부지를 찾고 실제로 집을 완공하기까지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했다. “집을 짓는 과정이 꼭 인생의 희로애락 같았다”고 부부는 돌아봤다. 그 우여곡절을 소개한다.

서울 후암동 자투리땅에
18평 ‘삶을 담은 집’ 만들다

집 짓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자기 집에서 산다고 마냥 편하지만도 않다. 편한 걸로만 따지면 관리비 내고 아파트 사는 게 최고일지 모른다. 서울 후암동에 ‘남산 몽블랑 하우스’라는 18평 작은 집을 직접 지은 건축주 부부는 '왜 힘들게 집을 지었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자존적으로 살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원래 두 부부는 실내건축 디자이너인 아내 권희라 씨가 디자인한 경기도 용인의 40평 다가구주택에서 신혼을 보냈다. 하지만 신도시 생활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서울 출퇴근 시간은 길었고, 동네에서도 자동차 없이는 이동이 힘들었다. 가끔 아이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하려면 신호등 때문에 몇 번이나 멈춰서야 했다. 자동차의 쾌적한 통행을 위해 만들어진 육교와 지하도가 자동차에 편리한 만큼 보행자에겐 불편하기 마련이었다.

▲서울 후암동에 18평 보금자리를 마련한 김종대, 권희라 부부. (사진=안창현 기자)


영화 프로듀서인 남편 김종대 씨는 “신도시는 보통 보행로도 넓고 깔끔하지만, 실제로 걷기에는 불편하다. 도시가 보행자가 아닌 자동차를 위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백화점까지 걸어가려면 여러 차례 도로를 가로질러 육교를 넘고 지하도를 지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회상했다.

산책을 좋아하는 부부에겐 고역이었다. 어린 딸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할 때면, 보도 중간에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를 피하느라 유모차를 들었다 놨다 해야 했다. 보행자보다 차가 존중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라의 이상한 풍경이었다. 또 집 주변 상가에선 최신 유행에 따라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6개월마다 바뀌어 개업했다. 부부는 “단골 식당 하나 만들지 못하는 동네에 도저히 정이 붙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신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이 때문이었다. 획일적이고 답답한 환경에서 학원 순례를 시키거나 내 아이와 옆집 아이를 비교하며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맘껏 뛰어놀 수 있고 정서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많은 추억이 있는 유년시절을 남겨주고 싶지만, 신도시와 아파트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획일적인 공간에 아이를 밀어넣기 싫었고, 층간 소음 이슈도 한몫했다. 아파트에 살게 되면 따라오는 밑도 끝도 없는 교육 열풍 속에서 다른 집 아이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어떤 집을 원할까?”

두 부부는 바둑판처럼 재단돼 다량으로 공급된 신도시 주택에서 벗어나, 가족의 삶과 취향을 담고, 아이가 유년시절을 정서적 체험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유였다.

▲권희라 씨가 직접 그린 집의 디자인 콘셉트. (사진=리더스북)

물론 집을 짓고 싶다고 누구나 뚝딱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내 권 씨가 실내건축 디자이너라는 점이 실제 집 짓기 과정에서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인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이들 부부는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부모님이 근처에 사셨다. 또 당시에는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 공간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을 짓는다면 부모님과 우리 집, 사무실 이렇게 세 공간에 들어가는 기존 경비를 합치는 셈이어서 집을 짓더라도 경제적으로 전혀 밑지는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의 아버지나 어머니들은 자기 집을 지으신 경험이 많았다. 예전에는 그런 경험들이 세대를 거쳐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험이 단절됐다. 자기가 자기 집을 짓는 경험을 하기 힘들어졌다”며 “그런 점에서 생활에 필요한 가구나 그릇을 제작하는 공예처럼 자기 집을 짓는 걸 ‘크래프트 하우스(craft house)’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신도시를 벗어나 살 동네를 물색하던 부부는 서울 후암동의 30평짜리 자투리땅을 우여곡절 끝에 계약한 뒤 ‘살고 싶은 집’의 초안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부부는 많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집이란 대체 뭘까? 우리는 어떤 집을 원할까? 어떻게 사는 게 우리에게 맞을까? 이렇게 집에 대해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해봤다.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됐다.”

부부는 집이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아이가 집 전체를 놀이터 삼아 뛰어놀 수 있는 집, 부모와 아이까지 삼대가 함께 사는 집, 안정적 거주는 물론 부가수입도 얻을 수 있는 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신들의 도심에서 누릴 수 있는 집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공사 현장 1층에 아내 권 씨가 임시 현장 사무소를 만들고 작업 계획에 몰두하던 모습. (사진=리더스북)

▲완공된 남산 몽블랑 하우스의 외관. (사진=리더스북)


내 집 짓기의 희로애락

그렇게 후암동의 30평짜리 땅에 18평 대지를 활용한 ‘남산 몽블랑 하우스’가 지어졌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임대 수익을 얻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현재 1층은 부부의 작업실로 사용된다.

2층은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이 사용한다. 한 건물에 살더라도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층별로 독립적인 현관문을 달았다. 3층에는 부부의 침실과 아이의 다락방을, 4층에는 삼대가 함께 모이는 가족실, 옥상에는 부모님과 아이를 위한 텃밭을 만들었다.

그렇게 가족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담은 집이 완성되는 데 1년 5개월이 걸렸다. 힘들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집 짓는 과정은 더 험난했다. 땅을 파다가 암석대이 나와 공사는 멈춘 일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정도에 불과했다.

가각전제(원활한 교통과 충분한 시야 확보를 위해 도로 교차지점의 모퉁이를 잘라내는 건축법) 규정에 걸려 6개월간 공들여 그린 설계도가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됐다. 누구는 운 좋게 통과되고 누구는 재수 없으면 걸리는 복불복 식의 건축법도 부부를 사사건건 괴롭혔다.

시공사와의 충돌도 피할 수 없었다. 계약 기간은 다 지났지만 집은 완성되지 못한 채 공사가 중지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부부는 그만둘 수 없었다. 부부의 주거비와 사무실 임대비, 부모님의 주거비를 모두 합쳐 뛰어든 공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김 씨는 “집을 지으면서 우리나라 주거 문화나 제도가 아파트 위주로 돼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운이 중요했다. 가령 착한 공무원을 운 좋게 만나면 일이 잘 진행됐고, 착한 부동산을 만나면 원만하게 계약할 수 있다. 그런데 운 나쁘게 그 반대가 되면, 당연히 돼야 할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허허벌판에서 운 하나 믿고 버텨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집을 짓는 과정이 인생의 희로애락 같았다고 말했다. “살고 싶은 집을 짓는다는 마음에 가슴 벅찼고(희),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고 좌절감을 느꼈다(로애). 하지만 집이 완성되고 딸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웃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꼈다(락).”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사무실 공간. (사진=리더스북)

▲집 안의 놀이터에서 아이가 뛰어놀고 있다. (사진=리더스북)


“집이 바뀌니 생활이 바뀌었다”

부부는 아침에 헐레벌떡 일어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자신들도 서둘러 사무실에 출근하는 생활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아침마다 남산을 산책하고, 출퇴근 거리가 불과 몇 걸음밖에 되지 않는 1층 사무실에서 여유 있게 일을 시작하고 끝낸다.

부모님이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오면 옥상 텃밭에서 상추를 따고 고기를 구워 점심을 해결한다. 자동차 기름값이 줄어들고 가계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자동차 쓸 일도 거의 사라졌다. 마트에서 식료품을 대량 구입하기보다 근처 남대문 시장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사다보니 씀씀이도 줄었다. 아파트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집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는 문구가,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헛소리'일 뿐이지만, 이들 부부는 집이 바뀌니 삶이 달라지는 경험을 실제로 했다.

특별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던 것이 아니다. 두 부부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에 일어나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시간에 쫓겨 사는 여느 경기도 부부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살 집에 관심을 갖고, 그 집에서 어떤 삶을 살지 깊이 고민한 끝에 지금과 같은 새 삶을 스스로 개척한 셈이다.

▲볕 좋은 날이면 옥상에 사과를 널어 말리는 삶을 당신은 누리는가? 남산 타워는 이 집의 실외 장식품이기도 하다. (사진=리더스북)


그 개척의 과정이 그들의 책에 고스란히 남았다. 막연히 집짓기를 꿈꾸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두 부부의 이야기는 유용하다. 건물 프로그램 정하기, 디자인 콘셉트 잡기, 외·내장 공사, 부대토목 공사와 준공 검사 등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집짓기 과정을 부부가 실제 경험한 에피소드와 엮어 쉽게 풀었기 때문이다.

남편 김 씨는 “책을 낸 것도 운이 좋아서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록을 남기자는 의도로 메모하고 자료를 모았다. 그 자료들을 딸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엄마, 아빠가 영어 학원에는 보내주지 못해도 너를 위해 이렇게 집을 지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록이 조금씩 모이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출판사의 반응이 좋아 운 좋게 책까지 출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두 부부에게 집을 짓는 과정은 삶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이 비록 녹록치 않았지만 이를 통해 그들은 삶을 바꿨다. 물론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기 집을 짓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자기가 사는 집이 자신이 바라는 삶과 어울리는지 고민해볼 계기를 이 책은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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