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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발칸 반도] ‘백인 원산지’의 멋진 사람과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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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5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5.30 09:34:11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8일차 (스코페 → 이스탄불 환승 → 트빌리시, 조지아)

여행 후반부의 시작

오늘은 마케도니아를 떠나 이스탄불을 거쳐 코카서스 조지아로 이동하는 날이다. 여행의 후반부는 어떤 낯선 모습들이 나의 호기심을 채워 줄지 궁금하다. 오후 4시 35분에 항공기가 출발하므로 느지막이 잠에서 깬다. 충분한 휴식으로 컨디션도 좋다. 공항버스가 있어서 택시비를 절약하는 행운도 누린다. 새로 지은 공항에서는 오늘 오후 독일 여러 도시들, 베오그라드, 슬로베니아, 터키 등지로 항공기들이 떠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서유럽 각 지역, 특히 독일로 이민 간 마케도니아인이 많아 특히 독일 노선이 많다고 한다.

스코페를 이륙한 항공기는 1시간 30분 걸려 터키 이스탄불 사비하(Sabiha, SAW) 공항에 도착했다. 보통 이스탄불 국제공항 하면 아타투르크(Ataturk, IST) 공항을 떠올리지만 페가수스 저가항공의 허브 공항인 사비하 공항도 무척 분주하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멀리는 런던,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가까이는 터키 각 지역과 발칸, 중동을 연결하는 노선이 성업 중이다.

공항에서 여러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린 끝에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Tbilisi)행 페가수스(Pegasus) 항공기에 오른다. 항공기는 만석이다. 2시간 15분 비행 끝에 현지 시각 오전 3시에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코카서스(Caucasus, 러시아어로는 카프카즈, Kafkaz) 땅에 발을 디디니 작은 감격이 인다. 

끊임없는 영토 분쟁의 현장

코카서스 지방은 가장 높은 엘부르즈 산(5642m)을 중심으로 남북 코카서스로 나눠지는데 나는 남코카서스 땅 조지아에 온 것이다. 과거 비잔틴제국, 오토만제국, 러시아가 차례로 거쳐 간 이 지역은 1990년 구소련의 해체 이후 여러 민족들이 자치권을 주장하며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독립을 요구하며 압하지아(Abkhazia)가 조지아를 상대로 벌인 압하지아 전쟁(1992~1993)을 비롯해 체첸이 러시아를 상대로 벌인 체첸 전쟁(1994~1996, 1999~2009), 조지아가 러시아를 상대로 일으켰다가 패하는 바람에 영토의 17%를 잃은 남오세티아 전쟁(2008) 등 세계에서 가장 정정이 불안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트빌리시 리버티 스퀘어. 높은 곳에 설치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조지아 개관

남한의 74% 정도의 면적을 가진 조지아(인구 500만, 1인당 국민소득 약 4000달러)는 고대에는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었다. 현대에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유럽, 중동의 교차로라는 막중한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다. 그런 만큼 피침이 많았으나 굳건히 독립을 유지해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졌다. AD 337년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며 유럽이 가는 방향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하기도 했다.

동로마제국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지킨 조지아는 11~12세기 다비트(David) 4세와 타마르(Tamar) 여왕 통치 시절 전성기를 이루다가 16세기 내우외환으로 국력이 약화된 틈에 동쪽 영토 일부는 페르시아제국, 서쪽 영토 일부는 오토만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801년에는 러시아제국의 통치에 들어갔다가 1918년 러시아혁명을 틈타서 잠시 독립했지만, 1921년 러시아 적군(Red Army)에 다시 복속돼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됐다가 1991년 소련 해체에 따라 독립을 얻었다.

산악국가 조지아에는 해발 5000m가 넘는 산이 즐비해 북쪽 러시아 국경에는 대카프카즈(Greater Caucasus), 남쪽에는 소카프카즈(Lesser Caucasus) 산맥이 달린다. 조지아는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가지는데 조지아어는 인도유럽어족이나 셈어족, 혹은 투르크어족이 아닌 독자적인 고유 고립 언어로, 인구의 71%가 사용한다. 

9일차 (트빌리시 → 바투미 왕복)

다시 흑해를 만나다

오늘 바투미(Batumi)에 다녀오려면 시내 중앙역에 나가야 하는데 아직 첫 버스가 오려면 멀었다. 아침 7시 버스 첫 차 시간까지 카페에서 여러 시간을 보낸 후 역으로 향한다. 아침 8시 45분에 출발한 바투미행 열차는 메마른 초원을 달리니 여기가 곧 그 옛날 중요한 동서교역로 중 하나였던 ‘초원의 길’(Steppe Roads)이 아닐까 싶다. 

조지아에는 교회가 유독 많아 웬만한 산언덕에는 거의 예외 없이 교회가 있다고 보면 된다. 이슬람보다 기독교를 선택한 나라답다. 열차가 5시간을 달리니 바다가 나타난다. 흑해다. 몇 해 전 흑해 서안(西岸)의 항구도시 루마니아 콘스탄차를 방문한 이후 이번에는 흑해 동안의 항구도시 바투미를 방문하니 감격스럽다.

인구 18만의 바투미는 흑해 동안의 중요한 항구다. 카스피해 서안 아제르바이잔 바쿠 유전에서 이곳까지 원유와 가스 파이프라인이 연결돼 유럽으로 송출되는 에너지 보급 거점이기도 하다. 그리스 식민지에서 시작해 로마 영토를 거쳐, 잠시 아랍의 통치하에 놓이기도 했지만 역사를 통해 줄곧 조지아의 영토였던 바투미는 18세기 이후 오토만의 지배, 19세기 들어서는 러시아제국의 질서에 편입된다. 구소련 해체 후 혼란 속에서 인근 압하지아(Abkhazia)처럼 조지아로부터 벗어나 독립할 수도 있었으나 조지아의 영토로 남아 흑해 젖줄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해가 질 무렵 조지아 트빌리시 풍경이 아름답다. 사진 = 김현주

▲바투미에 소재한 조지아 헌법재판소 건물. 예사롭지 않은 외형이다. 사진 = 김현주

바투미의 테마 건축물들

열차 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하는데 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카스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원유와 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고 곳곳에 저유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얼핏 느껴지는 혼란스러움은 삶의 생동감이 넘치는 항구도시의 모습에 한층 어울린다.

바투미는 또한 랜드마크 대형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국립극장이 있는 극장광장(Theater Square)을 중심으로 래디슨 블루(Radisson Blu) 호텔과 캠핀스키 호텔 등은 제각기 개성 있는 테마를 연출하며 도시의 상징 건축물이 됐다. 알파벳 타워의 기하학적 조형미가 오묘하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인 등대를 테마로 삼은 쉐라톤 호텔이 멀리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바투미의 생동감 넘치는 항구. 멀리 우크라이나 오데사로 페리가 오가고, 러시아 소치까지는 쾌속선이 다닌다. 인구 18만의 바투미는 흑해 동안의 중요한 항구다. 사진 = 김현주

생동감 넘치는 항구도시

도시의 다양성, 다문화성은 항구 부근과 올드타운에서 절정을 이룬다. 멀리 우크라이나 오데사(Odessa)로 페리가 오가고 러시아 소치까지는 하이드로포일 쾌속선이 다닌다. 피아짜(Piazza) 주변은 다양한 건축 양식의 종합백화점이고, 올드타운에는 정교회와 모스크와 가톨릭 성당이 좁은 구역 안에 공존한다. 골목 안에는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이 이웃이 돼 어울려 산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저마다 원색으로 예쁘게 치장해 얼굴을 내미니 자칫 우중충할 뻔했던 원유 반출 항구도시가 화려한 색감을 낳는다.

해변공원을 향해 걷는다. 주말 오후를 즐기는 시민들의 표정이 밝다. 유달리 피부가 흰 조지아 여성들의 몸매가 해변을 환하게 만든다. 열차 역으로 돌아와 인근 해변으로 나간다. 자갈이 곱게 깔린 해변에서 흑해 바닷물에 발을 적시는 나만의 세리모니를 거행하며 바투미를 떠나는 아쉬움을 달랜다. 마침 가는 비가 내려 여행자의 감성을 촉촉이 적신다.

10일차 (트빌리시 일원)

왜 힘든 여행을 계속하는가?

덜컹거리고 흔들리며 시달리기는 했으나 잠을 잘 자고 트빌리시에 돌아오니 아침 7시다. 이틀 밤째 제대로 된 잠자리에 눕지 못하고 있으나 전날 밤 만석 항공기 안에서 쪽잠을 잤던 것에 비하면 지난 밤 열차 침대칸은 특급호텔 같았다. 나에게 스스로 간혹 묻는다. 무엇 때문에 힘든 여행을 계속하느냐는 질문이다. 여정이 여유롭고 비용이 넉넉하다면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낯선 곳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언어, 종교, 생김새,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바투미는 독특한 건축물들이 도시에 다양성과 조형미를 부여한다. 앞에는 래디슨 블루 호텔, 그리고 그 뒤엔 알파벳 타워가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백인종의 원형

백인종(Caucasian, Caucasoid)의 본향이 바로 여기인 듯 조지아인의 용모가 관심을 끈다. 조지아인, 터키인,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지만 그중에서 조지아인은 순혈통 백인이다. 금발과 푸른 눈이 많고 유달리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많고, 체격 또한 월등히 크다. 말끔히 단장하고 나서면 서유럽 어디에 가도 손색없을 용모의 소유자들이다. 인종, 종교, 문화가 복잡하게 섞여온 문명의 교차로에서 조지아인이 백인종 순수 형질을 지켜온 것이 신기할 정도다.

18세기 후반(1785) 독일의 철학자 마이너스(Christoph Meiners)가 인종을 코카소이드(Caucasoid), 몽골로이드(Mongoloid), 니그로이드(Negroid)로 분류하면서 백인종을 지칭하는 단어로 ‘코카서스’를 사용한 이유는 그가 생각한 백인종의 원형이 바로 이 지역 남코카서스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아의 세 아들 중 막내인 야벳이 아라랏(Ararat)산과 코카서스산 사이에 정착해 퍼뜨린 인종이 백인종이라는 성경의 내용도 같은 해석을 낳는다.

▲바투미를 거니는 동안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 내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랜드마크 기능을 건물들이 확실히 한다. 사진 = 김현주

므스케타 탐방

열차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자유광장(Liberty Square)에 내려 가까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현재 두 개의 노선이 운행 중인 트빌리시 지하철은 구소련 시절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우크라이나 키에프에 이어 네 번째로 건설됐다. 트빌리시는 므츠바리(Mtkvari) 강을 끼고 들어선 인구 135만의 도시로 1000년 넘게 조지아의 수도다. 

도시 탐방에 나선다. 오늘은 일단 시외곽 므스케타(Mstketa)에 다녀오기로 한다. 디두베(Didube) 지하철역 앞에서는 조지아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미니버스 혹은 마슈르트카(Marshrutka)가 떠난다. 구소련권에서는 정해진 노선을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중형 버스를 ‘마슈르트카’라고 통칭한다. 약 30분 걸려 도착한 므스케타 시내 중심에 있는 스베티스코벨리(Svetiskhoveli) 교회 및 수도원을 찾는다. 성처럼 쌓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교회는 11세기 초 건립된 것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교회도 교회지만 가까이 또는 멀리 사방을 둘러싼 기암괴석의 산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절묘하다. 소코카서스(Lesser Caucasus) 산맥의 끝자락이 일구어낸 멋진 풍경이다.

▲바투미 시내로 향할 땐 묘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카스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원유-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고 곳곳에 저유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 김현주

강원도 닮은 조지아의 강과 산

도시 외곽 산정에 멋지게 걸린 성십자가교회(Church of Holy Cross), 일명 쯔바리(Tsvari)교회를 찾아 택시에 오른다. 물가가 워낙 저렴한 이곳에서는 택시 요금이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아서 좋다(왕복 15라리: 한화 약 1만원). 6세기에 건축했으니 1500년 된 교회가 산언덕에서 온갖 세월의 풍상을 다 겪었음에도 건재하다. 

산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 풍광 또한 압도적이다. 므쯔바리(Mtkvari) 강이 마을을 감싸고도는 모습이 우리나라 강원도 영월 동강 풍경을 보는 것 같다. 트빌리시 시내로 돌아와 국립박물관에 들른다. 소비에트점령(Soviet Occupation)박물관부터 고고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까지 조금씩 맛보기로 전시하는 종합박물관이다. 연이틀 강행군에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호텔에 들어와 편안한 저녁을 맞이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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