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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이인미 옛건물 사진전 “세월이 다진 공간 잊히지 않게”

자인제노 갤러리에서 '선회'전 6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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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6호 김연수⁄ 2016.06.03 18:59:48

▲이인미, ‘부석사’. 디지털 프린트, 35 X 42cm(1/10 ed). 2016.


화이트 큐브로도 불리는 미술 전시장은 갖가지 소음과 색상이 가득 채운 거리를 벗어나 느닷없이 펼쳐지는 하얀 풍경에 위압감을 느끼지만 않는다면, 도시 안에서 위안과 휴식을 취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 조그마한 흑백사진이 전시되고 있다면 한 숨 돌리며 더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종로구 창성동의 갤러리 자인제노는 건축 사진을 찍는 작가 이인미의 사진전 ‘선회(譱回)’를 열고 있다. 땡볕을 헤치고 들어간 갤러리엔 고만고만한 흑백 사진들이 나란히 단정하게도 걸려 있었다. 요즘엔 화려한 색감의 그림도 많고, 화이트 큐브 갤러리라도 눈이 현란해지는 설치작업들이 많아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쭉 빨려 들어가듯 액자 하나하나를 마주보며 프레임 안의 풍경에 몰입하게 된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작가가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각지를 돌며 한국 전통 건축물을 찍은 사진들이다. 건축을 전공한 이인미는 건축 잡지 ‘공간’에서 1세대 건축 사진가 특집 기획을 할 당시 그들 중 한 명인 정정웅 작가의 어시스트를 한 것이 계기가 돼 사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후 6년간 부산의 건축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한 뒤 작가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 건축이 주를 이루는 도시 풍경을 통해 삶의 터전이 지닌 생명력을 포착해 왔던 그에게, 전통 건축만을 대상으로 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한예종 총장인 김봉렬이 전통건축에 대해 잡지 글을 기고하던 데 약 3년간 함께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0년간 모아온 전통 건축 사진 30점이다.


작가는 “도시의 건축은 항상 변화를 거듭하기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겹쳐지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 매력이고 재미다. 반면 전통 건축은 내가 과거로 돌아간 상태에서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모호한 시간성이 느껴지는 것에 매력이 있다”고 전한다.


▲이인미, ‘죽서루’. 디지털 프린트, 43 X 60cm(1/10 ed). 2016.


풍경 속에 스며 있는 전통 건축


이인미의 사진작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빛이 만들어낸 대비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주제와 부수적인 것의 분리를 명확히 하고 싶은 개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분명 건축 사진임에도 원근이 뚜렷이 느껴지는 풍경화의 느낌을 동시에 지닌 것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 듯하다.


더불어 프레임 안에서 원근법이 강조돼 만들어지는 공간감은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가 보는 세상에 조금 더 편안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는 이런 자기 작업의 특징을 “레이어(겹)이 많은 것을 선호한다”고 표현한다. 작품 중에서도 부석사의 무량수전에 서서 바라본 안양루 풍경은 그의 선호를 잘 보여준다. 부석사 자체가 레이어가 많게 건축되기도 했다고.


▲이인미, ‘상주향교’. 디지털 프린트, 43 X 60cm(1/10 ed). 2016.


현대 건축 기술은 전통 건축의 여유로움 담아내기 힘들어


속초의 죽서루를 담은 작품 역시 그녀가 아낀다. 자연석 위에 서 있는 누각 죽서루는 건축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누각의 조형미가 자연석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일품이다. 사진에 담긴 죽서루는 건축의 세밀한 구조보다 그것의 실루엣이 돌의 강조된 질감과 함께 어우러진다. 이 밖에도 그 안에 들어서면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은 강릉의 연금정과 상주향교의 모습은 우리 전통 건축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과 한가함을 느끼게해준다.


작가는 “허술한 듯 보이지만 허술하지 않고 여유와 유머를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 전통 건축의 특징”이라며, “예전 숭례문 화재가 났을 당시, ‘돌기둥 위에 나무를 얹어(박지 않고) 만들었다’는 전통 건축 방식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부정형 돌의 상태 그대로 이용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대단했다”라고 전한다. 또한, “이제 그런 기술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현대 건축기술로 복원됐다 하더라도 어색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인미는 부산의 도시 풍경이 변화하는 모습을 찍으며, 사람들이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다투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단다. 옛날 것을 지켜야 할 의무와 개발의 필요성 사이에서 적절한 합의가 물론 필요하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는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그냥 두면 잊히고 없어질 것들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이 건축과 도시 사진을 찍는 사람의 역할인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전시는 14일까지.  


▲이인미, ‘미륵사지’. 디지털 프린트, 25 X 25cm(1/10 ed). 2016.


▲이인미 작가.(사진=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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