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발칸 반도] 착한 아르메니아 끝으로 “굿바이 발칸”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6일차 (예레반 일원 및 코르 비랍 왕복)
대중교통 불편한 예레반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관광 인프라가 부족한 예레반에서 도시 외곽의 이곳저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투어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목적지에 따라 반나절, 당일, 혹은 여러 날 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가르니 신전(Garni Temple)과 게그하르드(Geghard) 수도원을 탐방하려고 예약해 둔 패키지에 합류한다. 사막에 가까운 황량한 들판을 아래로 보며 버스는 산길을 오르내린다. 저 멀리 아라랏산(Mt. Ararat)의 눈 덮인 봉우리가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시야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심산유곡의 수도원
AD 1세기에 지어진 그리스-로마 양식의 가르니 신전은 아르메니아 고대 건축물의 상징 같은 존재다. 삼면이 접근 불허인 절벽 위에 세워진 신전을 세운 사람은 재위 중 기독교를 공인한 트리닷(Tridate) 3세로, 훗날 그는 신전을 폐하고 여름궁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가르니 신전에서 차량으로 9km 정도 이동하니 11세기에 건축한 게그하르드 수도원이 나온다.
▲가르니 신전에서 차량으로 9km 정도 가면 게그하르드 수도원이 나온다. 11세기에 건축됐다. 사진= 김현주
바위산을 깎거나 파고 들어가서 만든 수도원이 깊은 골짜기에 그윽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심산유곡에 자리 잡은 고찰을 떠올리게 한다. 가이드는 소리가 공명하지 않고 천장으로 흡수되는 수도원 내부 교회 돔의 절묘한 구조를 자랑하기 위해 아르메니아 가곡 몇 소절을 직접 시송(始頌)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수도원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마침 식사 중이던 현지인들이 나를 붙잡아 세우고 함께 먹고 가라고 강권한다. 보드카까지 곁들여 염치없이 실컷 얻어먹었다. 풍부한 것은 없지만 손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아르메니아에서는 가는 곳마다 사진을 함께 찍자고 달려드는 현지인들이 무척 많다. 이와 같은 현지인들의 호기심과 환대 속에 여행자의 기억은 온통 유쾌한 순간들로 채워진다.
▲아르메니아 시내로 돌아와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 남서쪽 45km, 터키 국경 코르비랍으로 향했다. 삼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 김현주
아라랏산, 아르메니아인의 영산
시내로 돌아와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 남서쪽 45km, 터키 국경 코르비랍(Khor Virap)으로 향한다. 다행히 동승자 한 팀을 만나 택시 요금을 분담할 수 있었다. 코르비랍 소재 성 그레고리 수도원(St. Gregory Monastery)은 성 그레고리가 트리닷 3세 왕에게 13년 동안 감금 당했던 곳이다. 훗날 기독교 공인 후 그레고리는 왕의 교사가 됐고, 오랜 세월을 두고 수도원은 수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간 성지가 됐다.
▲AD 1세기에 지어진 그리스로마 양식의 가르니 신전은 아르메니아 고대 건축물의 상징 같은 존재다. 사진 = 김현주
수도원 바깥으로는 푸른 초원과 포도밭이 펼쳐지며 아르메니아 전원의 목가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멀리 아라랏 평원 너머 터키 땅에 해발 5137m의 아라랏산이 우뚝 솟아 있지만 아깝게도 오늘은 구름에 갇혀 봉우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비록 터키 땅에 속해 있지만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영산(靈山)이다.
비감한 국경선
수도원 바깥 멀지 않은 곳으로 아르메니아-터키 사이의 철조망 국경선이 지난다. 인적 하나 없는 국경은 적막하고 긴장감마저 도니 우리나라 DMZ에 버금가는 비감함이 느껴진다. 아르메니아와 터키 두 나라의 오랜 불편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국경이다. 수도원에서는 마침 결혼식이 열리고 있어 아르메니아식 혼례 절차를 즐겁게 관람했다. 신랑-신부의 들러리로 나선 선남선녀들이 입은 화려한 원색 의상은 훌륭한 눈요기였다.
17일차 (예레반 일원)
에치미아진 탐방
호텔 조식 후 예레반 위성도시 에치미아진(Echimiadzin)으로 향한다. 칼리킬(Kalikil) 버스 터미널에서 떠난 마슈르트카는 20여 분 걸려 에치미아진 도심 광장에 닿는다. 아르메니아-터키 국경에서 불과 10km 떨어진 곳이어서 아라랏산이 가까이 보이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구름에 가려 있다.
▲아르메니아의 척박한 산야가 눈에 들어온다. 사막에 가까운 황량한 들판도 여행 도중 마주했다. 사진 = 김현주
르메니아 정교의 중심인 에치미아진 성당은 301년 성 그레고리가 건축한 이래 개보수를 거듭해 왔고 마침 오늘도 보수 공사 중이어서 온전한 겉모습을 볼 수 없다. 넓은 에치미아진 교회 콤플렉스 안에는 성당 말고도 게보르킨 신학교(Gevorkin Seminary)의 웅장한 건축물과 함께 2001년 이곳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기념비, 그리고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희생을 딛고 지킨 소중한 땅
날이 무척 덥다. 어제에 이어 연일 섭씨 40도를 웃도는 날씨지만 습도는 낮아서 견딜 만하다. 이처럼 뜨겁고 황량한 반사막이 아르메니아인의 삶의 터전이다. 작은 땅이나마 독립 영토로 가지게 돼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권을 지키려고 투쟁한 아르메니아의 역사를 보면서 크든 작든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려야만 하는 이유를 헤아리고도 남는다.
▲성 그레고리 수도원은 트리닷 3세 왕에 의해 성 그레고리가 13년 동안 감금됐던 곳이다. 훗날 기독교 공인 후 그레고리는 왕의 교사가 됐다. 사진 = 김현주
착한 물가
조지아도 그랬고 아르메니아도 그렇듯 코카서스 여행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낯선 언어와 문자, 독자적인 화폐 단위, 외부 세계로부터의 접근성, 열악한 관광 인프라 등이 단점이라면 따뜻한 사람들, 외래 방문객에 대한 개방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렴한 물가는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아르메니아의 경우, 시내버스 요금은 1회 승차에 한화 환산 250원, 맥주를 곁들인 식사 한 끼에 1인당 2500드람(한화 6300원) 정도다.
이처럼 물가가 착한 데는 아직은 외래 방문객이 적어서 현지인들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점도 한 몫 할 것이다. 어제는 코르비랍까지 왕복 90km 정도의 거리를 택시로 1만 3000드람(한화 3만 3000원)에 다녀올 정도였으니 몇 가지 단점만 견디면 코카서스 여행은 즐거워야 할 많은 이유가 있다.
애통한 학살 박물관
에치미아진에서 돌아오는 길에 택시 방향을 돌려 예레반 시내 서쪽 외곽 언덕 종합경기장(Sports Complex) 부근에 있는 학살박물관(Genocide Museum)을 찾는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추념비와 함께 지금은 터키 땅이 된 서부 아르메니아(Western Armenia)의 도시와 마을 이름, 그리고 그곳에서 사라져간 아르메니아인의 숫자를 기록한 추모판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렇게 사라진 도시 중에는 인구 몇 만 명이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사라진 곳도 있어 할 말을 잊는다.
애석하게도 지하에 있는 박물관은 보수 공사 중이어서 밖에서만 분위기를 맛본다. 갈대밭에 바람이 스치고 스피커에서는 쉬지 않고 애절한 가락이 흘러나오니, 100년 전에 일어난 슬픈 역사의 장면들이 그려진다. 2001년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기념식수를 비롯해 해외 동포들이 고향 잃은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 봉헌한 기념관 시설과 나무들이 뜨거운 태양을 맞고 서 있다.
거칠고 메마른 땅이지만 우아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성장한 예레반은 언덕 아래로 흐르는 강을 따라 보석처럼 빛난다. 남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땅이지만 아르메니아인에게는 희생과 헌신으로 지켜온 소중한 터전이다. 역사책에서나 보았던, 이야기책에서나 나옴직한 도시의 중심 언덕에서 멀리 또 가까이를 조망하는 감회가 크다.
▲넓은 에치미아진 교회 콤플렉스. 성당 말고도 게보르킨 신학교의 웅장한 건축물도 자리한다. 사진 = 김현주
냉혹한 역사 속에서 믿을 것은 우리뿐
토요일 밤 9시, 밤더위를 피해 나온 남녀노소로 오페라 앞 광장은 붐빈다. 유독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때 묻지 않은 사람들, 아직 가난하지만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사는 지구촌 이웃들을 만났다. 역사의 질곡에서,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오로지 믿을 것은 자신들뿐이라는 엄중한 진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부디 이 나라가 힘을 키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열풍이 반사막의 도시를 훑고 지나가니 먼지 안개가 뿌옇게 인다. 이번 여행은 결과적으로 유럽의 변방 소국 탐방이 됐다. 발칸과 코카서스 탐방 17일의 쉽지 않았던 여정이 무사히 끝났음을 아르메니아 포도주로 자축한다. 달콤하고 새콤한 것이 전에 느끼지 못했던 포도주의 새로운 맛이다.
18일차 (아르메니아 예레반 → 모스크바 환승 → 서울)
새벽 산책
새벽에 잠을 깼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렘 때문일까? 아침 식사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캐스케이드(Cascade)에 오른다. 아르메니아-소비에트 60주년 기념비가 서 있는 언덕을 향해 500개가 넘는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따라 많은 조각상들이 저마다 무언가를 상징하며 서 있다. 중간에는 카페시안(Cafesian) 아트갤러리가 있다. 아르메니아 출신 재미 사업가가 개인의 소장품과 사재를 내 설립했다고 한다. 언덕에 올라 도시를 조망한다. 이제 막 잠을 깬 도시가 월요일 아침의 분주함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예레반을 눈에 가득 담는다.
택시를 타고 즈바르놋(Zvarnots) 공항으로 향한다. 유럽 거의 대부분 지역으로 항공기가 출입하지만 그중에서도 러시아 각 지역으로 떠나는 항공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애석하게도 이웃 나라 터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로 가는 항공기는 없다. 아르메니아의 고립된 외교 환경과 멀리 떨어진 러시아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불안정한 국제 관계를 보여주니 안타깝다.
▲2001년 에치미아진 교회 콤플렉스를 찾은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방문 기념비가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할 일 많은 아르메니아
그런 의미에서 아르메니아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겉은 화려하지만 산업기반이 없는 경제는 내실이 없어 보인다. 자원 수출과 해외동포 송금이 주 외화 수입원이 이 나라에는 부패 척결, 인프라 건설, 산업기반 구축 등 할 일이 많다. 1인당 국민소득이 3500달러 수준이니 그렇게도 원하는 EU 가입은 당분간 요원해 보인다. 그래도 거리에는 잘 차려입은 선남선녀들과 멋진 카페들이 넘친다. 끼니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최고급 독일제 승용차들이 거리에 즐비하니 빈부격차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발칸과 코카서스의 소국 기행을 마치며
유럽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온전히 유럽의 일원이 되기에는 아직 모든 것이 요원해 보이는 곳. 이방인에게 언제나 먼저 말붙여 올 정도로 착하고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살지만 척박한 땅이다. 게다가 그 작은 땅덩어리마저 무수히 갈라진 끝에 소국으로 남아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곳이다. 인류사가 얼마나 복잡다단한 것인지, 인간의 증오와 갈등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보고 느꼈다. 아마도 내가 다녀본 곳 중 가장 역사가 복잡한 곳이 발칸과 코카서스 아닐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를 올리는 사이 항공기는 박차고 오른다. 멀리 아라랏산이 희끗희끗 보인다.
19일차 (서울 도착)
대륙 동쪽 끝의 기적
항공기가 카프카즈 산맥을 넘으니 남부 러시아의 대곡창이 펼쳐진다. 예레반에서 3시간 걸려 도착한 모스크바 국제공항은 오늘도 오가는 환승객들로 혼잡하고 서울행 항공기는 또다시 만석이다. 인천공항에 내리니 전혀 다른 세계가 기다린다. 아시아 대륙 동쪽 끝 작은 나라가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서도 5000년 독립과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 나라가 발돋움해 세계의 경제대국이 됐으니 이것이 기적 아니고 무엇이랴. 일상에 돌아오니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반갑게 나의 복귀를 환영해 준다. 평화로운 가운데 안온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이자 모든 인류의 염원임을 새삼 깨닫는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