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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 나점수] “인간의 허무한 관념체계, 먼지로 사라져도 아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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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1호 김연수⁄ 2016.07.08 19:47:10

▲나점수 개인전 ‘표면의 깊이’ 1층 전시장 모습. 사진=김종영미술관


최근 일어나는 미술계 이슈들에 따라 현대미술에 대한 생각을 새삼스럽게 다시 해보는 요즘이다. 논의가 심화되고 복잡다단해질수록 예술가로서의 본질을 연구하며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림 없이 길을 가는 사람의 작품에 집중하게 된다. 관객이 작품을 바라볼 때, 누군가는 이 작품이 ‘현대미술이다, 아니다’고 정의내리고 싶어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현실의 삶에 지쳐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것 같은 예술가의 삶을 부러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차치하고 단 한 가지의 명백한 사실은 예술가는 부지런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적 행위뿐 아니라 정신의 작용까지 포함한다. 그들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끊임없이 예민하게 열어놓고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자극을 정신과 몸의 움직임으로 소화해 낸다.


▲1층 전시장 모습 일부. 사진=김종영미술관


사소한 자연물에서 찾는 존재의 실체


김종영 미술관의 ‘오늘의 작가’에 선정된 작가 나점수는 마른 지푸라기를 그러모아 놓으며, 죽음과 삶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한 번 그어 닳는 석탄을 보며 아득하게 오래된 시간을 느꼈다. 논리주의자들에게는 ‘과잉 일반화’로 비춰질 이런 정서적 작용들을 말로서 설명한다는 것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로 모순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길가에 구르는 작은 돌멩이와 집안 구석의 먼지 한 톨에도 살아 있는 이 세상의 법칙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이 아닌 작품으로써 그 섬세한 과정의 증거를 보여준다.


김종영미술관의 ‘오늘의 작가’전은 2004년부터 매년 1,2명의 조각가에게 전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40대 이상의 중견 작가들을 대상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선정한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시류에 따르지 않는 독창적이고 확고한 작품 세계가 이 프로그램의 선정기준”이라고 밝혔다.


박 학예사는 “상업주의가 만연한 현 사회에서 작가들이 고유의 작업 세계를 꿋꿋이 지켜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나점수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속도다. 경쟁관계에서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시류에 휩쓸리는 작가들이 많은 반면에, 나 작가는 한국에서 조각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이 느끼는 삶의 속도를 작품을 통해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표면의 깊이’전 3층 전시장 모습. 사진=김종영미술관


‘표면의 깊이’


미술관 신관의 세 개 층에 나뉘어 선보이는 나점수의 작품 30여점은 시각적 결과는 다르지지만, 세상과 자연을 작품에 담아내던 조각가 김종영의 구도적이고 수행적인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2014년부터 올해 2016년 사이 제작 된 작품들은 나무를 중심으로 돌멩이, 흙, 지푸라기, 석탄, 합성수지, 영상, 모터를 사용한 기계 장치까지 다양한 재료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 재료들의 공통점은 가공의 개념이 아닌 물질의 상태 그대로서 제시된다는 것이다.


선보이는 작업들의 형식을 편의 상 나눠보자면, △나무 판재를 여러 겹 겹친 것 같은 형태의 추상 조각 △지푸라기, 흙덩어리, 나무 가루 등 산등성이의 시골마을 길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재료들을 놓거나 쌓은 설치작업 △기계 장치를 이용한 키네틱(움직이는 조각)작업 △자세한 것들이 생략된 커다란 인체 입상 △ 드로잉과 영상작업 등이 있다. 빠른 것은 4개월 오래 걸린 것은 2년 가까이 걸린 모든 작업들은 ‘표면의 깊이’라는 전시 제목을 포함한 하나의 제목으로 소개됐다.


▲‘표면의 깊이’전 2층 전시장 모습. 사진=김종영미술관


작가의 행위


나점수의 작업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재료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들이다. 균형을 맞춰 쌓거나 겹쳐 기대놓은 나무 판재로 이뤄진 추상 조각들이 전시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어떤 작품은 판재들이 분리돼있는 것이 보이지만, 어떤 작품은 접합 부위가 보이지 않아 통나무에서 얇은 판재가 될 때까지 깎아 들어간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머릿속에 형태를 결정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시작 할 때 ‘홈을 파야겠다’는 지향은 있지만, 정서의 흐름에 따라 형상의 조화를 찾은 결과”라고 전한다. 그가 말하는 정서란 자연으로부터 받은 정서다. 여행을 다니며 자연물을 볼 때 느낀 생각과 감성을 유지하며, 손의 역할을 하는 전기톱을 쉴 새 없이 움직여 그 특정한 정서의 형상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점수는 “조각을 한다는 행위 자체는 인위적일 수 있다. 하지만 감동이 전달되는 잘 부른 노래가 인위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나는 내 작품을 통해 특정한 목적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 정신이 드러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정서는 배열‧설치라는 또 다른 작업 방식을 통해 나타난다. 지푸라기가 된, 작년 겨울을 지낸 죽은 풀들을 핀셋으로 벽에 줄지어 쫓아 놓거나 나무가루들을 사각형의 모양으로 바닥에 곱게 깔아놓기도 한다. 아슬아슬 쌓인 결 따라 쪼개진 나무 조각들 위엔 지푸라기 섞인 흙덩어리가 턱 올라가 있기도 한다.


나점수가 자연에서 느낀 정서는 분명 하나는 아닐 것이다. 자연에서 미술관으로 들여온 그의 선택된 물체들은 한 곳에 모여 일종의 시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의미를 찾지 말고, 자연에 있는 물체들이 옮겨져 온 상태(생긴 그대로의 존재) 그대로 보면 보기가 쉬울 것”이라는 힌트를 던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서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같은 지푸라기라도 보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경험에 달려있다. 다만 상태로 보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의미는 생긴다”며, “이 흙덩어리에서 물이 마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편견 없이 본질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석탄을 종이에 긋는 키네틱 조각 작품. 사진=김종영미술관


“본체는 하나, 삶=성스러운 잉여의 시간”


죽음을 초월한 생명을 꿈꾸며, 시간을 멈춰버린 미이라의 껍데기처럼 꼿꼿이 서있는 거대 입상과, 스쳐 지나가듯 감상한다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며 석탄 조각을 벽과 종이에 그어대는 기계설치가 된 키네틱 작품은 작가가 가진 시간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게 한다.


수직으로 서있는 입상의 자세는 인간이 죽을 때의 자세이기도 하다. 3억 년 전 석탄기에 만들어진 석탄은 한 번 그어질 때마다 3억년이라는 시간의 단층하나가 없어지는 꼴이다. 결국, 눈으로 볼 때 표면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본체와 다르지 않다. 언젠가 하나의 생명이었던 것은 석탄이 돼 이 미술관 안에서 가루와 먼지로 흩어지고, 다시 그런 가루와 먼지들을 그러모아 설치 작업으로 새로운 의미를 얻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작가의 행위는 삶과 죽음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나점수는 “인간의 언어로서 정립한 관념체계가 얼마나 허무하고 부조리한 것인지 알기에, 이 작품들이 먼지처럼 사라진다 해도 하나 서운할 것 없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질문하지 않고,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실체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며, “사유할 수 있는 잉여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고 덧붙인다.


▲나점수 작가. 사진=김종영미술관


‘나점수’


작품이 품고 있는 작가의 깊은 사유는 숨 쉬기도 힘든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도, 어렵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반면 그 모든 것을 떠나 작가가 작업을 어떻게 놀이하듯 즐겼는지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닥의 평을 맞추려 깎아내지 않고 나무 조각을 끼워 넣거나 가능한 접착제를 쓰지 않고 재료끼리의 힘으로 균형을 이루며, 형상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옛날 시골 마을 어귀의 돌탑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다른 사람들이 먼저 쌓아놓은 돌을 떨어뜨리지 않고 조심조심 쌓아놓은 돌탑을 보며, 내가 아닌 다른 것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심한 듯 드러났다고 느꼈던 것 같다. 툭툭 던져 놓은 듯하지만, 살펴보면 자연의 모습을 섬세하게 옮긴 그의 작업과 돌탑이 즉흥적이고 여유로운 태도에서 닮았다고 느껴진다.


여담으로, 작가의 이마에는 커다란 점이 있다. 인터뷰를 하기 전, 작가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확인했을 때, 이마의 점과 딱 맞는 ‘나점수’라는 이름에 속으로 웃음이 터졌지만, 작가를 만난 후, 실례가 될 것 같아 내색 않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의 작업을 보며 떠오른 돌탑 얘기와 관련, 조상들의 즉흥성을 말하며 전해 준 이야기는 작가의 할머니께서 작가가 태어나자마자 이마에 뭐가 묻어있는 것 같아 손가락으로 쓱 문질렀더니 지워지지 않아 점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점수가 됐단다.


어렸을 때, 놀림감이 됐을 법도 한 점에 관련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작가의 여유로운 태도와 작품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위트는 할머니에서 온 것인가 봐’라고 생각했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작품 중 일부분의 이미지. 사진=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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