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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태영 연출] "영화·애니와 또다른 정글북 만나보세요"

PMC네트웍스의 첫 가족 뮤지컬에 참여해 정글을 무대에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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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3-494호 김금영 기자⁄ 2016.07.21 16:21:50

▲뮤지컬 ‘정글북’의 정태영 연출.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디즈니 실사 영화 ‘정글북’이 국내에서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해외에서는 전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 영화 전문 비평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 지수 94%를 유지하며 호평 받았다. 그런데 이 영화관에서 눈길을 끄는 모습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또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영화관을 찾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또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공연장이 있다. 뮤지컬 ‘정글북’ 취재차 유니버설아트센터를 찾았을 때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공연장을 채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와 뮤지컬 모두 특정 연령층이 아닌,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는 특징이 있다. ‘정글북’은 정글에서 자란 인간의 아이 모글리가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으로, 소설과 애니메이션, 영화 버전까지 다양하게 소개됐다.


▲뮤지컬 ‘정글북’은 정글에서 자란 어린이 모글리가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과 애니메이션, 영화 버전까지 다양하게 소개됐다.(사진=PMC네트웍스)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d: 말 없이 꾸미는 무대 콘텐츠) ‘난타’를 전 세계에서 선보이고 있는 프로듀서 송승환이 올해 가족 뮤지컬에 첫 도전을 했다. ‘정글북’의 뮤지컬화에 관심을 둔 건 4년 전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난 동물들을 보며 공연 제작의 영감을 받은 그는 “넌버벌 퍼포먼스인 ‘난타’가 언어의 장벽 없이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연령대와 상관없이 온 가족이 하나가 돼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본격 공연화가 진행되면서 이 이야기를 정태영 연출과 함께 나눴다. 송승환 감독은 “보편적인 방법이 아닌, 창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정태영 연출이 가족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계 명작 발레 ‘백조의 호수’를 테디베어, 백조, 여우, 토끼 등 동물 인형 탈을 쓴 전문 발레 무용수들의 인형 발레극으로 꾸려 선보인 바 있다. 그런데 발레 동작이 위주가 됐던 인형 발레극과 달리, 대사와 노래까지 함께하는 가족 뮤지컬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가족 뮤지컬이라 하면 접근이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어려운 점이 많아요. 아이들 위주의 공연을 꾸리자니 어른들이 지루해할 수 있고,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면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죠. 또 아이들 사이에서도 취향이 갈려요. 초등학생은 유치원생과 취향이 다르고, 초등학생 또한 저학년과 고학년 사이 취향이 다르죠. 국내 어린이 뮤지컬 시장은 주로 미취학 어린이를 주요 타깃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신나게 공연을 보는데, 어른들은 공연장 바깥의 로비에서 하품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해 안타까웠어요. 양쪽이 만족할만한 공연을 만든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느꼈죠. ‘정글북’에서도 이것을 고민했습니다.”


영화·애니메이션과의 차별점은?
어머니 그리고 모글리의 진짜 정체성 나투에 대한 이야기


▲‘정글북’의 영화(위)와 애니메이션 버전. 영화는 CG로 탄생한 생생한 동물들의 모습이, 애니메이션은 귀여운 노래와 동물 이미지가 특징이다.(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일단 소재 측면에서는 어른과 아이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킬 조건이 있었다. ‘정글북’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뮤지컬처럼 구성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접하기 적합하게 꾸려진 노래와 스토리 라인이 특징이다. ‘겨울왕국’ 열풍 때도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 관객도 극장을 채웠다. 디즈니 실사 영화 ‘정글북’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면서 어른과 어린이 관객이 뮤지컬 버전에 대한 관심도 갖는 상황을 맞이했다. 정 연출은 이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요즘 아이들은 문화 콘텐츠를 보는 눈이 정말 높아졌어요. 무작정 유치한 것만 좋아할 것이라고 여기는 건 어른들의 편견이에요.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던 ‘겨울왕국’의 대표곡 ‘렛 잇 고’ 멜로디도 아이들에게 가장 사랑받았었죠. 노래와 이야기의 흐름을 즐기려는 자세가 돼 있는, 앞으로 커나갈 공연계의 잠재적 주요 관객층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연 문화를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자신이 봤던 공연에 대한 기억으로 나중에 커서는 자신의 아이들을 공연에 데리고 가겠죠.”


실사 영화가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버전과 비교가 됐듯이, 뮤지컬 ‘정글북’도 다른 버전들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 하는 관객들이 있다. 애니메이션이 귀여운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영화에서는 CG로 탄생한 동물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펼쳐지며 모글리와 호랑이 시어칸의 대결을 그렸다. 그렇다면 뮤지컬은? 1894년 처음 출간돼 19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꾸려졌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뮤지컬 ‘정글북’엔 늑대, 꽃사슴, 원숭이, 호랑이, 코끼리, 흑표범, 곰 등 12종의 다양한 동물들의 탈을 쓴 배우들이 등장해 역동적인 무대를 펼친다.(사진=PMC네트웍스)

“영화 ‘정글북’, 그리고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도 다 봤어요. 이중 어디에 중점을 두고 접근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이야기의 흐름은 소설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썼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모글리가 인간 소녀를 따라가는 형태로 마무리고, 영화에서도 어머니의 정체는 언급되지 않아요. 그런데 원작 소설에는 모글리의 실제 어머니 ‘메수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과 어머니가 잃어버린 아들을 그리워하는 모성 이야기가 어린이와 성인 관객 모두에게 애틋함과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우리 정서에도 더 맞고요. 그래서 뮤지컬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모글리의 진짜 이름인 나투에 대해서도 언급해요. 이것은 현 시대에 정체성의 혼돈으로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관련이 있죠.”


‘정글북’은 겉으로만 봐서는 늑대 무리에서 보살핌을 받고 자란 모글리가 동물 친구들과 즐겁게 살아가는, 마냥 밝은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극 중 모글리가 인간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친하게 지냈던 동물 친구들은 “너는 우리와 다르잖아” 하면서 배척하기 시작한다. 모글리 스스로도 혼란을 겪는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무리에 속하지 못한 자들을 배척하는 현대사회의 풍토와 맞닿아 있다.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문화다. 친구들 사이에서의 따돌림, 무리에 섞이기 위한 노력은 ‘정글’로 표현되는 어른들의 생존 경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암전 없이 꾸려지는 화려한 무대와
배우들의 역동적인 몸짓은 뮤지컬만의 묘미


▲울창한 밀림을 재현한 세트. 단 한 번의 암전 없이 원숭이들의 황금사원, 인간들의 마을, 모글리와 친구들이 사는 정글, 시어칸의 터전 등으로 바뀌며 다양한 무대를 보여준다.(사진=PMC네트웍스)

하지만 ‘정글북’은 여기에서 밝은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극에는 ‘정글의 법칙’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가뭄의 시기에 샘물을 하루에 한 번씩만 마시는 것이다. 누군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함께 물을 조금씩 마시며 배려하려는 규칙이다. 그리고 모두가 평등한 이 법칙 아래 동물 친구들은 모글리에게 “너는 우리와 다르잖아”가 아니라 “모글리도 우리의 친구야”로의 변화를 겪는다. 우정, 사랑, 평화 등 어렸을 때 본 동화 속의 이 보편적 메시지들을 어른이 되면서 점점 잊을 때가 많다. ‘정글북’은 다시금 이 이야기를 꺼내며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어린이에게는 새로운 교훈을, 어른에게는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를 만든다.


“공연을 보고 나서 함께 온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요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정글 세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또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분장과 무대 효과도 눈길을 끈다. 먼저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바깥에서부터 새와 동물 소리가 들려 정글에 입장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로비에는 원숭이, 사자 등 동물들의 인형이 설치돼 이 소리에 생동감을 더한다. 그리고 무대는 그야말로 정글이다.


▲뮤지컬 ‘정글북’은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무리에 속하지 못한 자들을 배척하려는 현대사회의 풍토를 꼬집으며, 조화를 이야기한다.(사진=PMC네트웍스)

울창한 밀림을 재현한 세트는 끊임없이 전환되며 원숭이들의 황금사원, 인간들의 마을, 모글리와 친구들이 사는 정글, 시어칸의 터전 등으로 바뀌는데 단 한 번의 암전 없이 전환이 이뤄진다. 무대 세트가 바뀔 때 암전 대신 무대에 화려한 영상과 조명을 쏘거나 배우들이 춤을 추는 방식이다. 정 연출은 “아이들은 암전이 되면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암전되면 박수를 치라고 교육을 받는다더라. 그런데 주입식 태도로 공연을 즐기지 않고, 무서움을 줄이면서 다양한 시각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암전 없이 영상을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실제 동물들은 없지만, 마치 진짜 동물 같은 분장을 한 배우들이 역동적인 몸짓을 보여준다. 늑대, 꽃사슴, 원숭이, 호랑이, 코끼리, 흑표범, 곰 등 12종의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뱀 카아가 등장하는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다리가 없는 이 동물이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는데, 온몸에 뱀 모양의 소품을 감고, 한 쪽 팔에 실제 같은 뱀 탈을 씌운 채로 배우가 등장해 유연한 춤사위를 펼친다.


배우들의 몸짓은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보다 크고 더 역동적이다. 나무 세트 위에 성큼성큼 올라가고, 이 나무에서 뛰어내리기도 하는 등 동물에 빙의된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이 배우들의 움직임에 정글의 울림을 전하는 강렬한 스타일의 음악이 함께 한다. 뮤지컬 ‘레베카’ ‘파리넬리’의 정도영 안무, ‘프리실라’ ‘캣츠’의 한정림 음악감독의 합작이다.


▲뮤지컬 ‘정글북’ 공식 포스터.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줄거리에 화려한 무대가 특징이다.(사진=PMC네트웍스)

여기에 ‘그리스’ ‘페임’ 등 다양한 무대 연출을 보여준 정 연출도 함께했다. 특히 정 연출은 최근 올린 연극 ‘아들’에서의 심플하고 정적의 미를 살린 연출과는 정반대로, ‘정글북’에서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연출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정 연출은 “그간 해보지 못한 스타일의 연출에 도전하는 건 제게도 의미 있는 일이에요”라며 감회를 밝혔다.


“특히 이번 가족 뮤지컬 도전은 더 뜻 깊었어요. 아이들이 공연을 보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같은 장면에서도 제각각 반응이 다르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관람 태도를 보여주더군요. 오히려 성인 관객이 획일화된 모습이었어요. 세상은 창의적인 태도를 바라는데, 어른이 될수록 점점 그 창의력이 사라져요. 그래서 공연 또한 획일화 되는 게 아닐까 고민도 했고요. 이번에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솔직히 그간 제 연출 스타일과는 다른 점도 있어서 걱정도 많았는데, 예상보다 관객들이 좋은 피드백을 주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또 다른 새 도전을 하고 싶어요.”


정 연출은 앞으로 가족 뮤지컬 장르가 더 발전했으면 한다며, 여기에 자신도 뜻을 함께 할 것임을 밝혔다. 그가 펼쳐놓은 정글에 오늘도 어린이 관객과 성인 관객이 함께 손을 잡고 간다. 공연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8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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