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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⑭ - 세종대 김혜숙] 어둠 속 적산가옥의 쓸쓸함 찾아

역사의 아픔 안은 채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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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9호 윤하나⁄ 2016.11.11 17:49:40

▲김혜숙, '장미동 23-1'. 장지에 혼합재료, 113.5 x 145cm. 2015-2016. (사진 = 김혜숙 작가)

 

영화 아가씨’, ‘모던보이등의 배경이 된 건축물을 보면, 이국적으로 다가오는 동시에 마음이 어딘가 무겁다. 이 시기 건축물은 우리에겐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상흔처럼 남아 미적 판단을 늘 보류하게 만들었다. 아니, 어쩌면 들여다보는 것조차 저어했던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김혜숙 작가는 아픔의 역사를 드러내는 건축물을 대담하게 바라보며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군산시 장미동연작

해방 이전 일본인이 소유하던 건물을 적산가옥이라 부른다. 이 시대 건축물은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부르며 관리하고 있다. 적산가옥이 가장 많은 동네로 전국에서도 군산시 장미동이 손꼽힌다. 작가가 본격적으로 지역 리서치를 시작해보니 이미 건축, 역사학계에는 적산가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진 상태였다.

 

▲김혜숙, '장미동 23-1(part.2)'. 장지에 샤프펜슬, 29.0 x 39.0cm. 2015.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사진 = 김혜숙 작가)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구조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 기록 사진, 설계도, 연구 서적 등이 굉장히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군산을 직접 찾아가는 이유는 공간을 마주한 시간을 가져와야 그때 느낀 감정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료만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 자료 그대로를 사진 찍는 것과 같다며 회화는 사진과 다른 지점을 제시해야 한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적산가옥은 그 자체가 이중성을 띄기 때문에 쉽게 건드리지 않는 소재였다. 일본 전통 양식과 서양의 근대 양식이 조화를 이룬 미적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아픔의 역사 또한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산에 가면 적산가옥에 대한 적개심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집이 그 시절을 직접 겪은 이들에게 아픔을 계속해 되새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역사를 일부분 증명하는 사료라는 점이다. 군산의 대표적인 적산가옥인 히로쓰 가옥이 영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인근 지역이 모두 관광지역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문듯 색 없이 흑백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묻자, "영화 촬영장처럼 소비되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의 쓸쓸한 이면을 담기 위해서"란 대답이 돌아왔다. "직접 군산에 가서 본 건물들의 이미지는 쓸쓸함이었어요. 급하게 관광지로 조성된 곳도 많지만, 관광객과 주민들이 떠난 밤에는 특히 이들 공간만 현재에서 동떨어져 외로워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죠." 

 

▲김혜숙, '장미동 39-48'. 장지에 혼합매체, 80.0 x 110cm. 2015-2016. (사진 = 김혜숙 작가)


기억에 의한 재조합과 다초점 세계

종이 위에 샤프펜슬로 그린 김혜숙의 그림은 특히 사진으로 옮겼을 때 미묘한 농담으로 인해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그린 구조를 오래 바라보다보면 어느새 그 건축물의 완전체를 머릿속에서 상상하게 된다. 작가는 실제 모티프가 된 해당 건물 주소를 제목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에는 공간을 돌아볼 때의 공기, 질감, 바닥을 걷는 소리, 냄새 등과 같은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들의 기억이 합쳐진다.”

     

회화과 내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있는 작가의 그림은 조선시대 책거리 그림(책가도)을 연상시킨다. 실제 책가도와 궁중화원의 그림을 리서치한 김혜숙은, 보이는 대로의 화면보다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더 중요했던 동양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책거리 그림에서 찾은 다초점의 세계가 작품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작품을 한국화라는 전공에 한정짓기보다, 한국인으로서 가진 자신의 환경적·사회적 배경을 늘 고려하며 작업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우리 역사에서 외면받고 있는 적산가옥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이와 연관지어 유추할 수 있다. 적산가옥을 건드릴 수 없는 문화재로 박제하거나, 관광지로만 소비하기보다 역사를 담은 실존 건물 그 자체로 바라보길 바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건물이 가진 아름다움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려는 용감한 시도도 드러낸다.

      

적산가옥은 분명 예술로 다루기 힘든 지점이 있어요. 어쩌면 제가 적산가옥을 그림으로써 의미를 유보시키는 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지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김혜숙, '장미동 23-1(part.4)'. 장지에 샤프펜슬, 182 x 162cm. 2016. (사진 = 김혜숙 작가)


[정재호 회화과 교수 추천사]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정재호 교수

김혜숙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근대문화유산이라고 부르는 일제 강점기의 적산건축들이다.

 

작가는 유물로 박제된 해방 이전의 적산건축물들을 그리고 있으나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과거를 멜랑콜리하게 추억하거나 민족주의적 의식을 투영하여 그리는 방식과는 다르다.

 

작가는 장미동이라는 군산의 옛 시가지를 직접 탐방하여 사진으로 기록하고 자신이 기록한 건축물에 대한 2차적 사료, 즉 도큐먼트 사진들을 수집한 후 건축물의 온전한 모습을 복원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역사적 판단이나 개인적 감정이 배제된 건축물의 구조와 물성에 집중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의 해석들을 벗어난다


김혜숙이 그려내는 이미지는 한지 바탕에 연필선이나 세필로 세밀하게 직조된, 건물의 내-외면이 하나의 구조물로 통합된 구조물로 나타나며, 이는 우리가 아는 건축물이라는 외연을 벗어나 풍부한 함의를 가지는 모종의 설계도처럼 그려진다. 모르긴 해도 그 설계도는 기존의 방식을 우회하는 것이겠고 그것은 적산건축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직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작업들이 드러낼 미지의 지점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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