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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송동 작가가 세상보는 법 “무용지물 아닌 무용지용으로 경계 넘기”

‘추상현실주의’를 페이스 서울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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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6호 김금영⁄ 2017.12.13 16:12:52

▲송동 작가. © Song Dong, Photograph by Wang Xiang.

(CNB저널 = 김금영 기자) 1992년 2월 18일, 결혼식이라 가족 모두가 바빴던 날. 결혼식의 주인공인 송동 작가 또한 무척 바빴다. 그런데 결혼식 준비가 아닌 다름 아닌 작업 때문에?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앞두고 작가는 부랴부랴 솥에 물과 기름을 붓고 끓이는 과정을 반복했고, 이를 VCR 카메라에 담았다. 작가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물, 기름, 가스 낭비까지 뭐 하는 거냐”고 윽박질렀다. 해당 영상은 작가의 작업실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가 2015년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고, 올해엔 한국을 찾았다.


중국 작가 송동의 다양한 작업을 소개하는 개인전 ‘송동: 무용지용(无用之用: 쓸모가 없는 것이 어느 경우엔 도리어 크게 쓰인다)’이 페이스 서울에서 2018년 2월 14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1995년, 200년, 2006년 총 3차례에 걸쳐 한국 광주 비엔날레에 초청을 받았고, 이번이 한국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앞서 언급된 작업이다. 작품명은 ‘초수(炒水: 물을 볶다)’. 1분 4초짜리 영상에서 작가의 아버지가 윽박질렀던 대로 ‘아무 소용없이’ 물과 기름을 볶는 장면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하지만 이는 작가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작가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추상현실주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


▲송동, '일호개수(一壶开水: 끓는 물 주전자)'. 12개의 연속 흑백 사진, 472.1 x 52.7 x 4.1cm 전체 설치, 33.3 x 50cm 각. 1995.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가 아닌 주관적인 순수 구성을 중요시하는 추상주의는 들어봤으나 여기에 ‘현실’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추상현실주의’는 낯설다. 작가는 “내가 스스로 만든 용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예술은 어떤 범위에도 국한되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따라서 경계를 넘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다름 아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술’이라고 아주 동떨어지거나 먼 곳에서 찾아야 하는 고상한 게 아니라 바로 생활의 일부분으로 우리에게 이미 녹아들어 있다는 것.


특히 이런 가치관을 가진 작가에게 ‘물’은 매우 매력적인 소재였다. 물은 액체이지만 얼리면 고체가 되고, 끓여서 증발시키면 기체가 된다. 액체라는 본래의 성질에서 고체, 기체까지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성질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물의 특성을 ‘초수(炒水)’ 작업에서 다루며 자신의 작업관인 추상현실주의를 이야기했다.


대표적인 작품 ‘일호개수(一壶开水: 끓는 물 주전자)’와 ‘냉개수(冷开水)’도 물을 이용한 작업이다. ‘일호개수’에서는 끓는 물을 골목에 부으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작가가 어렸을 때 실제 살았던 동네에 가서 찍은 12개의 연속 흑백 사진이다. 골목에 물을 뿌린 데에도 이유가 있다.


▲'냉개수(冷开水)' 작업은 작가가 직접 사용했던 주전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골목길에 뜨거운 물을 뿌리자 김이 일면서 물이 지나간 흔적이 생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은 증발됐고 나중엔 애초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사라졌다”며 “여기서 태어나서 존재했다가 나중엔 자연으로 또 사라지게 되는 인간의 인생사가 읽혔다. 하지만 비록 증발해버린 물처럼 사라진 인간이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과거에 존재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인간의 흔적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건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가지 않는, 한계를 넘는 일”이라고 작업을 설명했다.


‘냉개수’는 작가가 과거 집에서 실제 사용했었던 주전자를 사용해 만든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물을 덥히면 펄펄 끓으면서 뜨거워진다. 그런데 작가는 펄펄 끓는 물 대신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영상을 틀어 놓았다. 뜨거운 물의 이미지를 예상하며 작품을 바라봤던 사람들은 영상 속 차가운 이미지를 보며 전혀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예상된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작가의 위트가 느껴진다.


물·거울·음식·쓰레기, 작품으로 재탄생되다


▲송동, '잡쇄경자(砸碎镜子: 깨어진 거울)'. 영상 3분 54초, 1999.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물을 비롯해 작가에게 또 영감을 준 소재가 거울이다. ‘잡쇄경자(砸碎镜子: 깨어진 거울)’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3분 54초짜리 영상에서 작가는 거울을 들고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울을 깨뜨리고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의 표정도 포착한다. 신기하듯 바라보는 사람부터 얼굴을 찌푸리며 ‘뭐 하는 건가’ 쳐다보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작가는 “거울은 철학적으로 자신의 자아가 존재하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매개체로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세상이 과연 진짜 세상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어 “이 영상작업에는 여러 세계가 존재한다. 가장 처음 거울에 비치는 화면, 그리고 거울이 깨지고 나서 그 뒤에 존재하는,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화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영상 화면까지. 그리고 이 세 개의 세상 중 어느 하나만이 진짜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여러 이면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우리 스스로가 시각의 제한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질문을 작업으로 던졌다”고 말했다.


▲생선머리 모양을 한 도자기 작업 '어두분경(魚头盆景: 생선머리)'.(사진=김금영 기자)

거울처럼 깨지기 쉬운 소재를 활용한 작업이 또 눈에 띈다. ‘어두분경(魚头盆景: 생선머리)’는 도자기로 만든 화분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도자기의 형태가 아니라 작품명처럼 생선머리 모양의 도자기가 떡하니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작가는 “중국의 화분 역사는 1000년이 넘는다. 그 와중에 문화인이 생각하는 화분의 고착화된 이미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멋진 자연 경관을 담은 화분 말이다”라며 “이 작품은 그 고착화된 이미지를 깨고자 시도됐다. 생선 머리의 도자 안에 향기 나는 향초 등을 넣을 수 있도록 도자로서의 기능성은 갖췄다”고 말했다.


‘어두분경’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작업이 ‘흘분경(吃盆景: 먹을 수 있는 분재)’이다. 2000년 런던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멀리서 보면 중국의 일반 산수화 같지만 가까이에 다가서면 생선, 고기 등 먹을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당시 전시 때 이 작품은 사람들이 먹으면서 사라졌고,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찍었던 사진을 전시한다. 작가는 “국경을 없앨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음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이 작업을 본 사람들은 처음엔 보이는 이미지에 놀라지만, 이내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서로 교감을 나눴다. 재미있는 경험이 이뤄진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버려진 창문틀과 거울을 이용해 만든 신작 '무용지용(无用之用)'.(사진=김금영 기자)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만나볼 수 있는 작가의 신작이 있다. 전시명이기도 한 ‘무용지용(无用之用)’이다. 이 작업의 주된 소재는 오래된 창문과 거울이다. 본래 ‘쓰레기’로 칭해졌던 존재들이다. 작가는 “중국은 1999년부터 옛 건물을 부수고 새로 개발하는 과정을 거쳐 왔다. 이때 수없이 부서진 건물들에서 다양한 창틀을 발견했다. 이 창틀과 타일, 책꽂이로 쓰였던 나무 등을 붙여 작품을 만들었다”며 “일반 사람들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 즉 무용지용(无用之用)을 실현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작가는 한계가 없는 작업에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106m 담벼락에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주변 이웃의 동의를 얻어 담벼락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중국 광저우 박물관에 이 작업이 소장돼 있다”며 “이 작업을 하면서 담벼락을 넘어서, 아예 경계가 없는 박물관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된 생각에 나를 가두지 않을 것”이라고 정진의 뜻을 밝혔다.


사람들은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에 ‘무용지물(无用之物)’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무용지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끝의 단어 하나를 바꿔 정반대의 뜻을 뜻하는 ‘무용지용(无用之用)’의 가능성을 찾는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들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가치를 얻을지 궁금해진다.


▲송동, '무용지용(无用之用) # 14'. 오래된 창문, 거울, 코팅된 유리, 134 x 111.5cm. 2017.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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