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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전시] 페미니즘 외치는 시대에 ‘신여성 도착하다’

국립현대미술관, 근대 여성 이미지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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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8-569호 김금영⁄ 2017.12.28 14:25:45

▲여성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주체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그 어느 때보다도 페미니즘에 관한 이슈가 치열했던 한 해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유명인들, 영화계와 대기업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가해진 성폭력으로 화두가 된 여성의 인권, 그리고 여성 우월주의의 정도가 지나쳐 불거진 메갈, 워마드 논란까지. 이런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이 신여성(新女性)을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여 눈길을 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8년 4월 1일까지 열리는 ‘신여성 도착하다’전은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근대 시각문화에 등장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모은 전시다. 오늘날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신여성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해 20세기 초 일본 및 기타 아시아 국가에서 사용됐다”며 “여성에게 한정됐던 사회 정치적, 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근대 시기에 새롭게 변화한 여성상이라 할 수 있다”고 신여성의 개념을 설명했다.


▲김주경,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캔버스에 유채, 97.5 x 130cm. 1929.(사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하지만 신여성은 국가마다 내리는 개념 정의에 차이가 있어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것도 사실. 영국에서는 치마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신여성을 기존의 남성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데 비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구조선 사회를 벗어나 근대적 이념과 문물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이야기됐다.


다양한 담론이 존재하는 가운데 전시는 신여성에 대한 접근 방식을 고민했다. 전시를 기획한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은 “이제까지 남성 중심적 서사로 다뤄졌던 우리나라 역사, 문화, 미술의 근대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신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을 위해 전시는 방대한 자료를 이번 전시에 풀어 놓았다. 회화, 조각, 자수, 사진, 표지화, 삽화, 포스터, 애중가요, 서적, 잡지, 딱지본 등 500여 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을 통해 당 시대의 신여성을 바라본다.


▲개벽사에서 발행한 대중적 시사종합잡지 '별건곤'이 전시됐다. 짧은 단발머리에 육감적인 몸매, 서양식 치마에 빨간 하이힐을 신은 모던걸이 등장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신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양극화가 존재했음이 자료를 통해 드러난다. 경성의 백화점 옥상에 앉아 도시가 뒤에 바라다 보이는 구조에서 정면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그리고 길거리를 걷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 한 예다.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은 “신여성을 향한 긴장과 갈등 양상이 어떻게 존재했는지 매체를 통해 알 수 있다. 근대화 시기 여성이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일정 시간대가 지나면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남성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도시를 배경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여성의 사진은 파격적이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보다 직접적인 신여성의 이미지를 담은 일이 많았다”며 “반면 작가의 손길이 더 개입되는 그림에서는 길거리를 걷는 여성이 등장하기는 하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뒷모습을 담는 등 소극적인 형태로 신여성의 모습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사진 속 해맑게 웃던 여성이
그림에서는 뒤돌아서야 했던 이유


▲이유태의 '인물일대'에는 전문직 여성이 등장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자료를 포함한 신여성의 이미지들이 전시 1부 ‘신여성 언파레-드(on parade의 1930년대 표현)’에 모였다.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 매체, 대중가요, 영화 등이 재현한 신여성 이미지를 통해 신여성에 대한 개념을 고찰한다.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매체를 통해 신여성의 이미지에 접근하는 시도다.


여성 이미지가 공적인 영역에서 시각적 볼거리로 재현되기 시작한 개화기 딱지본 소설의 표지화, 양주남 감독의 영화 ‘미몽’ 속 신여성 등을 볼 수 있다. 신여성에 대한 개념이 대두되기는 했지만 초창기 이에 대한 거부적인 반응이 있었음도 짐작할 수 있다.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은 “‘미몽’ 속 주부 애순은 백화점 쇼핑, 호텔, 자유연애에 매혹돼 거리로 뛰쳐나간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다 딸 정희를 치고 충격으로 자살하는 등 끝이 좋지 않게 마무리 된다”고 말했다.


그에 반해 근대 여성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주체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성잡지 ‘신여성’은 교육을 받아 계몽된 새로운 여성을 신여성으로 이야기했고, 표지에 신식 머리모양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등장시키며 독자들에게 신여성이 되라고 독려했다. 이유태의 그림 ‘인물일대’는 전문직 여성을 등장시켜 현모양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여성상을 담았다.


▲무용가로서 탁월한 재능을 펼친 최승희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조각이 전시됐다.(사진=김금영 기자)

본래 전시의 취지로 설명했던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겠다”는 이야기를 오롯이 살펴보긴 힘들다. 방대한 자료 속 이야기가 섞인 느낌이다.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담긴 자료, 한껏 몸의 곡선을 강조한 도발적인 여성의 모습이 담긴 자료 등 상반된 이미지들이 한 공간에 뒤섞여 신여성에 대한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담론을 풀어내고자 한 시도는 돋보인다. 친절하게 ‘신여성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신여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면서 스스로 신여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느낌이다. 많은 자료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부와 3부는 보다 주체적으로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1부가 신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살핀다면 2부와 3부에선 실제 신여성의 활동이 전시된다.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은 창조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근대기 여성들에게 화가가 되는 건 여성에게 허용 가능한 사회적 활동이자 자기의 능력을 자각하는 행위였다. 1910년대를 전후로 미술계에서 활동한 첫 여성은 기생 출신의 서화가들로, 이들은 사군자나 서예에 특기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특수한 신분으로 인해 점차 미술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근대적 의미의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작품들을 현대에 되살려 예술적 의미를 고찰한다.


▲전시는 회화, 조각, 자수, 사진, 표지화, 삽화, 포스터, 애중가요, 서적, 잡지, 딱지본 등 500여 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을 통해 당시의 신여성을 바라본다.(사진=김금영 기자)

▲국내에서 남성 작가들을 사사한 정찬영, 이현옥 ▲기생 작가 김능해, 원금홍 ▲도쿄의 여자미술학교 출신인 나혜석, 이갑향, 나상윤, 박래현, 천경자 ▲전명자, 박을복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은 “근대기 여성 미술 교육과 직업의 영역에서 창작자로서의 자각과 정체성을 추구한 초창기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3부의 타이틀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5인의 신여성’이다. 남성 중심의 미술, 문학, 사회주의 운동, 대중문화 등 분야에서 선각자 역할을 한 다섯 명의 신여성 나혜석(1896~1948, 미술), 김명순(1896~1951, 문학), 주세죽(1901~1953, 여성운동가), 최승희(1911~1969, 무용), 이난영(1916~1965, 대중음악)을 조명한다. 또한 현대 여성 작가 김소영, 김세진, 권혜원, 김도희/조영주가 이 5인 신여성을 오마주한 신작을 전시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킨다.


5인의 신여성은 20세기 이전 남성의 안사람이자, 어머니로서 현모양처라는 이상적인 모델을 따르는 삶을 살았던 여성에서 벗어나 능력과 개성으로 시대적 한계를 극복했던 인물들이다. 나혜석은 여성 최초로 개인전을 연 화가이자 가부장제를 부정하는 글쓰기로 주목받았다. 1세대 여성문학가로 활동한 김명순은 여성이 남성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의해 타자화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했다. 주세죽은 조선 여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가로서 활동했다. 최승희는 여성 최초로 창작 현대무용을 발표했고, 이난영은 가수로서 조선 민중의 심금을 울린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나혜석,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88 x 75cm. 1928 추정.(사진=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소장)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은 “신여성은 찬사보다는 지탄의 대상이었다. 20세기 이전 전통적 사고가 아직 강했던 근대에 이들의 행로는 순탄할 수 없었다”며 “지금 이 5인의 신여성을 다시 불러와 이들의 삶과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시작한다. 사회 통념을 전복하는 파격과 도전을 선보인 신여성 5인의 삶을 통해 신여성의 이야기를 젠더의 관점에서 다시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한편 전시 기간 중 ‘MMCA 토크’를 통해 사회학, 미술사, 영화사, 대중가요사의 관점에서 신여성을 조명한다. 이와 함께 영화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감독, 1934)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변사 상영(김태용 감독 기획)을 2018년 1월 6일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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