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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미국 건너간 한국 작가들에서 비롯된 진동과 공명

서울대미술관 ‘진동: 한국과 미국 사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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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5호 김금영⁄ 2018.06.27 14:00:57

'진동(Oscillation): 한국과 미국 사이'전은 한국 미술과 미국 미술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한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다른 것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찼던 나날들. 그 동경은 어느덧 현실로 다가왔고, 이를 맞이한 사람들의 노력과 시도로 단지 동경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진동을 만들어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진동: 한국과 미국 사이’전을 9월 16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미국 사이 이뤄진 미술 교육 및 현장 교류 속 탄생한 작품들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이수정 학예연구사는 “올해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미네소타 미술대학의 국제 교류전이 열린 지 60년이 되는 해다. ‘미네소타 국제교류전’은 국가 간 현대미술 교류전이자 한국 미술계에 추상미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계기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녔다. 이번 전시는 이 교류전의 역사를 살피며 한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까지 살핀다”고 말했다.

 

전성우, '8월 만다라'. 석판화, 25 x 32cm. 1959. 개인 소장.(사진=서울대학교 미술관)

전시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도미(渡美)의 순서에 기초해 작가 8명(전성우, 최욱경, 임충섭, 노상균, 마종일, 강영민, 김진아, 한경우)의 작업 세계를 조망한다. 이 학예연구사는 “작가들은 시기에 따라 처한 상황 속 낯선 매체를 접하고, 다양한 질료를 실험하면서 미국 미술을 받아들였다. 작가가 어떤 상황에, 어떤 연유로, 어떤 선택을 해 자신의 작품에 발현했는지에 주목해 작품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미국 문화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하지만, 단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윤동천 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은 “전시는 미국 미술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니다. 작가들이 기존 자신들을 둘러싸왔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이를 어떻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했는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어떤 새로운 문화의 진동을 만들어냈는지에 주목한다”고 설명했다.

 

최욱경, '실험 제2번'. 패널에 종이 콜라주, 134 x 80cm. 196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서울대학교 미술관)

1950년대 미국 유학 1세대 유학파로는 전성우 작가가 소개된다. 그는 1953년 20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당시 한국은 해방 직후, 그리고 미국은 냉전 시기에 돌입한 시기였다. 미국 공보부가 추진한 사업들을 통해 한국과 미국 간 문화 교류가 시작됐고, 전성우는 당시 미국 현대미술을 주도하던 추상미술을 접했다.

 

작가의 회고록에는 미국 유학 시절 한 수업에 들어갔다가 받은 충격이 담겼다. “그림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작품이 있었는데, 지금 돌이키면 추상 회화였던 것 같다”는 문구다. 서양의 추상표현주의 양식을 접한 전성우는 여기에 한국적 요소를 결합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이후 서양의 회화 기법으로 동양적 정신성을 표출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작인 ‘만다라’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수정 학예연구사는 “미국의 추상미술이 국제적인 양식임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동양적, 한국적 미감과 어떻게 연결지을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탐구의 결과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임충섭, '화석 풍경 #1, #2, #3, #4, #5'. 나무틀, 아크릴, 오브제, 26.5 x 47 x 20 x (5)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사진=서울대학교 미술관)

이어진 1960~70년대에는 사회적 배경이 바뀐 시기였다. 한국에 비약적인 경제 성장이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그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했고, 이런 진부함을 탈피하기 위해 작가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 작가로 최욱경, 임충섭이 소개된다.

 

1950년대 미국 추상화 접한 전성우 ‘만다라’부터
한국적 소재를 현대미술 틀에 녹여낸 마종일 조각까지

 

노상균 작가는 물고기 비늘을 연상시키는 시퀸(sequin)을 이용한 작업으로 시각경험이 허구일 수 있음을 꼬집는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성우가 추상미술에 한국적 요소를 녹아낸 작품을 선보였다면, 최욱경과 임충섭은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고민을 작품에 표현했다. 최욱경이 1963년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할 당시 추상표현주의는 끝물을 맞은 시점이었다. 한국의 단색 추상을 접하다 이방인으로 편입해 온 그에게 미국의 다채로운 색상의 추상회화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터. 하지만 이 충격은 작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줬다. 최욱경은 구상과 추상을 구분 짓기보다는 그 경계를 흐리는 시도를 했다. 캔버스와 실제 사물을 결합하는 컴바인 페인팅 방식의 ‘실험 제1번’ 시리즈 등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했다.

 

임충섭의 작업은 미국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큰 토대는 개인의 기억이 이루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화석풍경’ 시리즈는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45년 동안 도시와 교외를 오가며 주운 사물들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질적인 문화 배경 사이에서 일상의 사물들에 새로운 추상성을 부여하며 동양 미술의 현대적 해석을 추구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한경우 작가의 '스타 패턴셔츠' 작업은 고정된 영상 속 성조기 이미지를 보여준다. 성조기를 이루는 실체는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와 의상들이다.(사진=김금영 기자)

미국에서 공부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탐구하는 시기 이후엔 본격적으로 발전의 시기가 온다. 1980~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노상균, 김진아, 강영민, 한경우 작가의 작업이 소개된다. 1980년대엔 세계화가 시작되면서 자율 유학 시대를 맞았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일컬어진 미국에 수많은 작가들이 넘어갔다.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러 작가들은 선호에 따라 유학과 이주의 장소로 미국을 택하며, 동시대 미술을 흡수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국 미술에 같이 발 맞춰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노상균은 미국에서 접한 팝아트, 미니멀리즘을 독자적으로 수용하면서 감각과 인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 특히 그의 작업은 우리의 시각 경험이 환상적 허구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한 예로 물고기 비늘을 연상시키는 시퀸(sequin)을 이용한 작업은 그냥 봤을 땐 화면 한 가운데가 움푹 파인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시퀸의 방향을 교묘하게 바꿔놓은 것으로, 작업 가까이 다가가면 파이지 않은 평면임을 눈치챌 수 있다.

 

김진아, '서울의 얼굴'. 싱글 채널 비디오, 장편 에세이 다큐멘터리, 93분. 2009.(사진=서울대학교 미술관)

한경우 또한 감상자의 고정된 시선이 만들어내는 착시 효과에 주목한 작업을 선보인다. ‘스타패턴셔츠’는 고정된 영상 속 성조기 이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선을 이동해서 살피면 그 실체가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와 의상들의 배치로 이뤄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작업 ‘화이트노이즈-I’은 작품명을 듣기 전 벽에 걸린 큰 유화를 봤을 땐 추상회화라고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작은 브라운관에 송출된 회화 이미지를 보면 그것이 순식간에 화이트 노이즈로 인식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처럼 노상균과 한경우는 우리의 시각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절대적인 근거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김진아와 강영민, 마종일은 한국인 본연의 입장과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김진아의 ‘서울의 얼굴’은 작가가 출국 직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부터 미국에서 체류 중인 2009년 당시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기록한 서울의 모습들을 14개 챕터로 구성한 장편 영화다. 김진아는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서울 토박이로서의 시선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장기 미국에서 체득한 이방인의 시선을 오가며 서울의 다양한 얼굴들을 바라본다.

 

강영민 작가의 '죠지' 작업. 미국 전 대통령 죠지 부시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했다.(사진=김금영 기자)

강영민은 수많은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이미지가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형상을 발견하고, 이 이미지들에 대한 탐구를 펼친다. 작가는 “내 나이 또래엔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나 또한 동경을 갖고 미국으로 늦은 나이에 공부하러 떠났고, 직접 미국을 접하며 많은 걸 느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미지로 알고 있던 미국과 직접 접한 미국의 실상은 많이 달랐다. 이 경험으로 이미지들을 가늘게 자르고 재조합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엔 미국 전 대통령 죠지 부시의 이미지, 대도시 건축물 이미지 등을 재조합한 ‘죠지’ ‘토네이도’ 등을 선보인다.

 

마종일은 대형 조각 작품 ‘월요일 아침에 들를 수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를 미술관 앞에 설치했다. 작가는 한국적인 소재를 현대미술 틀 안에서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직조 조각’은 동아시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재료 중 하나인 대나무와 얇은 나무 조각들을 사용했다. 나무 조각들은 마치 씨실과 날실이 엮이듯 얽혔고, 위에는 화려한 색을 입혔다. 완성된 조각은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마치 미국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줘 눈길을 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앞 광장에 마종일 작가의 대형 조각 작품 '월요일 아침에 들를 수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가 설치됐다.(사진=권오열)

윤동천 관장은 “한국과 미국 간 문화 위상의 차이는 각 시간대와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진동으로 작용했다. 작가들은 이에 반응해 다른 문화를 수용하고 그 가운데 새로움을 추구하며 정체성까지 구현하는 공명을 보여줬다”며 “이번 전시는 그 진동과 공명의 과정과 성과를 확인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단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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