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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인간 한 명 없는, 인간의 자취가 가득한 공간

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가 포착한 ‘깨달음의 공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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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0호 김금영⁄ 2018.08.03 09:48:40

칸디다 회퍼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화면. 그 화면엔 텅 빈 공간이 자리한다. 그런데 텅 비어 있지만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공간을 구성해 온 인간들의 자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국제갤러리가 현대 사진의 지평을 넓혀 온 칸디다 회퍼 작가의 개인전 ‘깨달음의 공간(Spaces of Enlightenment)’을 8월 26일까지 연다. 전시명 속 ‘Enlightenment’는 깨우친, 계몽된, 개화된 등의 의미를 가졌다. 이 중 국제갤러리는 ‘깨달음’의 의미로 접근했다는 설명이다. 김정연 국제갤러리 큐레이터는 “계몽은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들을 가르쳐서 깨우치게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하지만 작가가 주목한 건 지식의 수준을 가르거나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배워 깨우칠 수 있도록 한 깨달음의 공간들”이라고 말했다.

 

칸디다 회퍼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그렇다면 작가가 발견한 ‘깨달음의 공간’은 어떤 곳들일까? 본래 작가는 영국 리버풀의 도시 풍경, 유럽 도처에 핀볼 기계가 놓인 공간의 모습, 독일 내 터키 이주민들과 자국 내 터키인 등의 모습을 포착하며 공간과 인간의 물리적, 사회적 상호 작용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 왔다. 1980년대부터는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 등 공적 공간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근래까지 촬영한 공연장, 도서관, 미술관 등 특정 기관의 공간을 보여준다.

 

1층 전시장은 공연장을 찍은 사진들로 구성됐다. 뒤셀도르프 시립극장을 시작으로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의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 공간을 볼 수 있다. 언뜻 화려해 보이는 공간이지만 다양한 건축 양식을 통해 시대적, 사회적 변화의 흐름까지 읽어볼 수 있다.

 

칸디다 회퍼, ‘BNF 파리 VI 1998’. C-프린트, 88 x 88cm.(사진=국제갤러리)

김정연 큐레이터는 “18세기 이전에는 주로 귀족층이 음악을 소비하며 사유지에 개인 극장을 만들었다. 상류층의 후원을 받기 위해 박스석 등 귀족층의 독점 좌석이 극장에 마련되기도 했다”며 “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시민계급이 대두되면서 음악을 소비하는 계층의 범위가 넓어졌고 극장 또한 계급의 상하 관계가 강조된 형태로부터 간결하고 담백한 구성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명문가의 사유지에 마련됐던 개인 극장, 닫힌 공간을 더 넓고 깊게 보이도록 원근법을 이용한 설계 방식으로 구축한 극장, 공공 기금을 통해 건립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적 극장 등 작가는 다양한 극장의 모습을 포착했다. 귀족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박스석에서 일반 청중들이 대부분 서서 관람하던 파르테르(오늘날의 스톨석), 이후 의자가 설치되는 등 공간의 변화에서 계급적 분할이 점차 사라지고 문화를 폭넓게 향유하기 시작한 인간사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칸디다 회퍼가 주목한

극장·도서관·미술관라는 공간의 변천

 

칸디다 회퍼, ‘엘프 필하모니 함부르크 헤르조그(Elbphilharmonie Hamburg Herzog) &  드 뫼론 함부르크(de Meuron Hamburg) II 2016’. C-프린트, 184 x 174cm.(사진=국제갤러리)

전시장 2층엔 인간의 지적, 심미적 추구의 장으로 여겨지는 도서관과 미술관의 공간들이 소개된다. 중세 수도원 내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 프랑스 국립 도서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내 복도에 놓인 작은 서가, 빌라 보르헤스, 에르미타주미술관과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등 다양하다.

 

김정연 큐레이터는 “작품 속 공간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을 머물고 스쳐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인문학적 장소로서의 역할을 획득했다”며 “특권 계층을 위한 곳에서 민주화된 문화의 장소로 바뀐 이런 공간들에서 무수히 많은 예술가, 역사학자, 철학자들이 교류했고, 현재까지 깨달음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작가는 이 모든 자취가 쌓인 공간들을 그만의 긴 기다림과 호흡으로 포착해 보여준다”고 말했다.

 

칸디다 회퍼, ‘반 애비 박물관 아인트호벤(Van Abbemuseum Eindhoven) VI 2003’. C-프린트, 103.8 x 88cm.(사진=국제갤러리)

공간에서 인간의 흔적을 끊임없이 읽어 온 작가. 하지만 본래는 이런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사람을 배제한 채 공간을 찍었다고 한다. 작가는 “공공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이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매우 촉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엔 이런 이유에서 공간만을 찍었는데, 사람들이 없을 때 바라본 공간은 색달랐다. 공간은 단순 건축물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의 시간을 품고 있었고, 이 공간을 바라보며 공간 자체를 풍부하게 지각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이후 인간이 어떻게 공간을 구성하고, 그 공간에 어떤 자취를 남기는가, 즉 인간과 공간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한 관심까지 넓혀 작업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즉 공간이란 본래 인간에 의해 기능하는 곳이므로 굳이 그들을 포함시켜 그런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꼈다는 것.

 

칸디다 회퍼, ‘뒤셀도르프 샤우슈필하우스(Dusseldorfer Schauspielhaus) I 1997’. C-프린트, 48.2 x 47cm.(사진=국제갤러리)

작가는 수십 년 동안 공공장소와 공공건물의 내부를 촬영해 왔는데 현대적인 건물과 먼 과거에 지어진 건물 모두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작가는 “역사적인 건물은 특정 시대와 스토리를 갖고 있어 흥미롭다. 현대적 건물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사가 생성되지 않은 채 비어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흔적을 담게 될지 기대되기에 그것대로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작업을 이어오며 작가들이 찍은 공간들은 변화해 왔다. 이 가운데 작가가 고수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진을 찍는 방식. 주어진 시간 내에 장소 자체에 깃든 자연광과 인공 조명으로만 작업하며 일체의 추가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의도적인 것이 첨가되지 않은 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공간의 흔적을 담기 위해서다.

 

칸디다 회퍼, ‘테아트로 세르반테스 부에노스 아이레스(Teatro Cervantes Buenos Aires) I 2006’. C-프린트, 184 x 244cm.(사진=국제갤러리)

공간을 탐색하고 구도를 잡은 뒤 셔터를 누르고, 여러 차례의 인화와 선별 작업을 거쳐 최종 프린트를 선정한다. 최종 프린트를 선정한 이후에도 이 프린트의 촬영이 이뤄진 지명, 기관, 연도, 동일 장소일 경우 로마자로 그 순서만을 기입하는 등 작가가 화면에 개입하는 걸 최소화한다. 그렇게 포착된 화면에서 순전히 공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작업 초기 35mm카메라로 촬영했던 작가는 1990년대 말 삼각대와 6x6cm 카메라, 이후 9x12cm 네거티브를 사용했고, 최근 몇 년 동안은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가 우연히 발견한 도시 풍경을 찍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또 어떤 인간의 흔적을 읽을 수 있을지, 어떤 공간을 마주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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