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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작가 - 마류밍] 나체 퍼포먼스에서 그림으로 돌아온 이유

학고재 갤러리서 개인전 ‘행위의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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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4호 김금영⁄ 2018.09.05 13:35:05

마류밍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014년 학고재 갤러리에서 처음 봤던 마류밍 작가의 작업은 매우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다. 본관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벌거벗은 작가가 수면제를 복용한 반수면 상태로 앉아 있고, 옆에 설치된 의자에 다양한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작가의 모습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고정되지 않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반응 또한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 여장을 하고 나체로 만리장성을 걷는 등 신체의 해방을 주장하며 개인에게 존재하는 다양한 자아를 이야기한 나체 퍼포먼스 연작 ‘펀·마류밍’(1993~2004)으로 작가는 미술계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펀(芬)’은 분리됨을 뜻하는 말로, 그는 이 단어를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또 다른 자아의 탄생을 표현했다.

 

캔버스에 마치 균열이 간 것 같은 느낌을 입은 마류밍 작가의 근작들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시점, 작가가 다시 학고재 갤러리를 찾았다. 개인전 ‘행위의 축적’을 9월 16일까지 연다. 그런데 이번 전시엔 퍼포먼스 영상 작업이 보이지 않는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건 그림들. 작가를 널리 알린 건 퍼포먼스였지만 그의 본래 전공은 회화다. 2004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업 ‘펀·마류밍’과 작별을 고한 뒤 작가는 지난 퍼포먼스의 이미지들을 화폭에 불러오는 일에 몰두해 왔다. “이미지에 대한 다각적인 시도를 하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작가는 “그림으로 돌아온 것은 예컨대 전통 비문의 탁본 개념과 맞닿는다. 탁본은 돌이나 기물 등에 새겨진 글씨나 무늬를 종이에 그대로 찍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나는 지나간 시간과 신체의 자취 등 수많은 경험과 생각들을 중첩시켜 찍어내듯 화면 위에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즉 그의 그림은 퍼포먼스 행위의 퇴적물이 축적된 결과물로, 작가의 삶을 반추하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전시에 선보인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스튜디오 303에서 발표한 퍼포먼스 ‘몬트리올에서 펀·마류밍’(2001) 중 한 장면을 화폭 위로 불러낸 ‘No. 1’(2015~2016)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펀·마류밍’ 퍼포먼스의 다양한 흔적을 담은 그림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스튜디오 303에서 발표한 퍼포먼스 ‘몬트리올에서 펀·마류밍’(2001) 중 한 장면을 화폭 위로 불러낸 ‘No. 1’(2015~2016)이 설치됐다. 요셉 보이스의 퍼포먼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1965)에서 영감을 얻어 구성했던 이 퍼포먼스는 반수면 상태에 빠진 펀·마류밍의 주위에 살아 있는 토끼 10마리를 풀어 놓아 관객과 상포 작용하도록 하는 구성을 취했다.

 

퍼포먼스가 직접적이고 강렬했다면 이 퍼포먼스가 담긴 그림은 추상적이고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그림에서 형태의 윤곽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한 점이 눈길을 끄는데, 마치 현실과 환상이 만난 듯한 묘한 경계가 작가의 화면 위에 구축된 것 같은 느낌이다.

 

마류밍, ‘No. 2’. 캔버스에 오일, 200 x 150cm. 2015~2016.(사진=학고재 갤러리)

‘No. 2’(2015~2016)와 ‘No. 1’(2015~2017) 또한 작가의 과거 퍼포먼스에서 건져낸 형상들을 담은 그림이다. 앞선 그림은 작가가 단상 위에서 비닐로 감싼 나체의 몸을 웅크린 채 괴로움을 토로하는 행위를 무채색 덩어리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작가가 길게 찢은 신문지를 온 몸에 두르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서 있었던 퍼포먼스는 ‘No. 1’(2015~2017)에 담겼다.

 

두 그림에서 퍼포먼스 행위는 단순한 색과 붓질로 표현됐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의 균열과 갈라짐이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눈길을 끈다. 이건 작가가 근작에서 새롭게 시도한 방식이다. ‘예술가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탐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그는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꾸준히 연구했다.

 

삶, 역사, 행위의 퇴적물을 그림에 쌓다

 

마류밍, ‘No. 1’. 캔버스에 오일, 200 x 150cm. 2015~2017.(사진=학고재 갤러리)

먼저 캔버스에 흰색 유채 물감으로 형체를 그리는데, 붓이 아닌 나이프를 사용한다. 두껍게 또는 얇게 발리는 물감의 성질을 예민하게 잡아내기 위해서라고. 시간이 흐르고 그 위에 탁본처럼 검은색 물감을 덧바른다. 이때 앞서 발랐던 흰색 물감과 이후 발라진 검은색 물감이 마르는 시간이 달라 미세한 균열이 화면에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자국과 균열을 감추기 위해 새로운 물감으로 덮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 결과 마치 캔버스에 균열이 일어난 것 같은 그림이 완성된다.

 

또 다른 연구의 흔적은 안쪽 전시 공간에서 볼 수 있다. ‘펀·마류밍’ 퍼포먼스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담은 회화 8점이 걸렸는데 균열이 간 근작들과 비교해 보다 부드러워 몽환적인 느낌이다. 이 작품들에는 캔버스의 후면을 통해 밀어 넣은 물감이 표면으로 빠져나오면서 불규칙한 윤곽과 색면을 이루는 누화법을 사용했다. 작가 특유의 화법으로 일컬어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누화법으로 그려진 마류밍 작가의 작품들. 퍼포먼스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그림에 담았다.(사진=김금영 기자)

시간이 지날수록 물감의 기름 성분이 이미지 가장자리로 서서히 번져나가는 특징이 있다. 흐릿한 인물의 형상이 작가의 작품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펀·마류밍’ 퍼포먼스 자체에서 작가는 반수면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그가 퍼포먼스 당시 바라봤을 세상을 짐작하게 해주기도 한다.

 

작가가 퍼포먼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예술가로서 세상을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전 세계에 급진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작가가 살고 있던 중국에도 여러 사건이 일어났으나 예술의 틀에는 여전히 장벽이 존재했다. 이때 작가는 서양의 행위 예술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마류밍 작가가 과거 진행했던 ‘길버트 & 조지와의 대화(Dialogue with Gilbert and George)’ 퍼포먼스 작업.(사진=학고재 갤러리)

작가는 “그때만 해도 우리는 예술을 논할 때 그림을 그리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한계를 벗어난 행위 예술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한계를 뛰어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로서 작가가 살고 싶은 삶이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는 또 새로운 만남을 불러 왔다.

 

작가는 “1993년 영국의 개념 미술가인 ‘길버트와 조지’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내 작품을 보고 싶다고 해서 베이징 외곽 동촌에 있던 스튜디오에 데려갔다.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의자와 전구, 빨간색 물감 등을 사용한 첫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길버트와 조지가 매우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작가는 ‘길버트 & 조지와의 대화’(1993) 작업을 완성하기도 했다.

 

마류밍, ‘No. 1’. 캔버스에 오일, 140 x 100cm. 2016.(사진=학고재 갤러리)

형식의 한계를 깬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내는 데 주력했다. 신체 행위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주의 아래 묵살되고 억압받는 개인의 자아를 표출했고, 이것이 전 세계에 그를 알린 ‘펀·마류밍’ 퍼포먼스의 토대가 됐다.

 

삶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고통과 저항의 서사를 이어가는 작업은 현재의 회화 작업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No. 1’(2016)이다. 균열된 화면 전면에 불꽃이 그려져 있는데 꺼지지 않고 영원히 타오를 것만 같이 강렬하다. 그리고 이 뜨거운 불꽃 위에 작가의 맨발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화폭 속 불은 작가가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건져 올린 이미지라 한다.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갈라진 화면을 가로지르며 꾸준히 솟아오르는 불길은 작가의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열정을 미리 엿보게 한다.

 

마류밍, ‘No. 13’. 캔버스에 오일, 200 x 150cm. 2015.(사진=학고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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