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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작가 – 백승우] 사진으로 사진을 의심하는 시대

가나아트 한남서 개인전 ‘가이드라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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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5호 김금영⁄ 2018.09.05 16:52:36

백승우 작가.(사진=가나아트)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턱을 좀 더 갸름하게 깎아주세요.” “눈을 좀 더 크게 키워주세요.” 사진관에서도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고 얼마든지 수정 가능한 시대다. 증명사진을 보다 예쁘게 보정해주겠다는 광고 문구도 사진관 앞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합성한 사진이 큰 사회적 논란을 가져올 때도 있다. 사진은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들 하지만 현 시대의 사진이 과연 얼마나 객관성을 지니고 있을까?

 

백승우 작가가 사진에 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개인전 ‘가이드라인(스)’를 가나아트 한남에서 9월 27일까지 연다. 본 전시와 같은 시기에 열리는 ‘2018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작품과는 또 다른 스펙트럼의 신작들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백승우는 정치적 이슈를 소재로 한 신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하지만 주제적으로 정치적 이야기에 집중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화면에서 정치적 정보들을 싹 빼버렸다.

 

백승우 작가의 개인전 ‘가이드라인(스)’가 열리는 가나아트 한남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예컨대 ‘GL-M-#001’은 언뜻 그냥 봐서는 평범한 세계 지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도에 담긴 속내는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작가가 북한의 호텔에 걸려 있는 세계지도를 모형으로 재현하고 이를 촬영한 작품이다. 그가 북한에서 본 세계지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고 한다.

 

작가는 “처음엔 평범한 지도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이상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세계지도와는 달리 이 지도에는 영국이 없었고, 일반적인 주요 도시 또한 증발돼 있었다. 대신 어떤 특정 장소들에 불이 들어와 있었는데 북한과 연계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들이었다”고 말했다.

 

백승우, ‘GL-M-#001’. 디지털 프린트, 124 x 227cm. 2018.(사진=가나아트)

북한에서 본 지도는 작가에게 사진을 통해 ‘진실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의심’을 품게 했다. 북한 사람들은 그 지도를 보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여길 테지만 실상은 왜곡된 정보를 품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전시장에 들어선 사람들 또한 지도를 촬영한 이 사진을 보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한 채 지나칠지도 모른다.

 

북한을 방문한 경험은 작가의 사진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한 ‘블로우 업(Blow up)’에도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17년 전 햇볕 정책으로 북한에 갈 기회를 얻었다. 솔직히 당시의 나는 작가병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못 가본 곳이니까 되도록 많은 사진을 찍자는 생각만 가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진 찍는 행위가 자유롭지 못했다. 매일 가이드가 따라다니면서 사진 찍을 때마다 통제했다. 좋은 모습만 찍게 하려는 의도 같았다. 작가는 “당시 필름카메라 시대였는데 카메라를 가져가서 현상한 뒤 자신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자르고 나머지만 돌려주곤 했다”고 말했다. 결국 작가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북한 측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정보뿐이었고, 이건 작가가 직접 현장에서 체험한 진실과는 달랐다.

 

사진 속 악수하는 사람들
정체가 금방 드러나는 이유는?

 

가나아트 한남에 백승우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북한의 신문 가판대를 본떠 만든 모형에 강력한 지시성을 지닌 손의 제스처를 포착한 사진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가 사진의 객관성과 정보성에 의문을 가진 이유가 또 있다. 사진을 찍은 사람에 의한 정보 왜곡도 가능하지만 촬영된 사진을 보는 사람의 시선은 어떨까?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지도를 촬영한 사진 옆에 또 다른 사진들이 설치됐는데 누군가가 서로 악수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런데 악수를 하는 손 이외에는 물감으로 칠해 그 인물이 누구인지 가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은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챈다.

 

작가는 “본래의 사진은 역사적인 사건을 포착했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중국의 마오쩌둥이 악수하는 장면도 있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 현장을 담기도 했다”며 “어떻게 사람들은 물감으로 가려진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이건 해당 사진에 대한 배경 지식, 즉 사회적 습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백승우, ‘GL-I-#362’. 디지털 프린트, 55.5 x 42.3cm. 2018.(사진=가나아트)

모든 걸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손은 남았다. 작가는 박수를 치거나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의 제스처를 포착해 북한의 신문 가판대를 본떠 만든 모형에 설치하기도 했다. 정보 전달의 기능이 아닌 지침의 기능을 하고 있는 신문과 사진 매체에 대한 비판의식을 전하려는 의도다.

 

사회적 배경지식뿐 아니라 개개인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에 따라서 사진은 달리 보이기도 한다. 앞서 작가가 북한에서 사진을 찍을 때 심한 통제에 그냥 사진 찍는 걸 관두고 카메라를 박스에 넣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4년 뒤 런던에서 한 프랑스 작가의 사진전을 갔는데 한 사진에서 익숙한 소녀를 발견했다. 작가는 “정확하지는 않은데 왠지 내가 북한에 갔을 때 찍었던 소녀와 동일 인물 같더라”고 말했다.

 

백승우, ‘GL-A-#002’. 디지털 프린트에 아크릴릭, 42 x 86cm. 2018.(사진=가나아트)

나중에 돌아와서 필름을 다 꺼내서 살펴보던 작가는 깜짝 놀랐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같은 소녀가 맞았던 것. 다만 당시 사진 찍는 것에 흥미를 잃은 작가는 주의 깊게 사진을 살피지 않았고, 그렇다보니 본래 사진에 담겨 있었던 정보를 채 보지 못하고 흘려버렸던 것이다.

 

때로는 자신에게는 별 게 아닌 정보가 남에게는 큰 정보일 수도 있다. 작가의 작업에 큰 영감을 준 영화 ‘욕망’은 사진작가 토마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늘 새로운 사진을 찍던 토마스에게 한 여자가 쫓아와서 필름을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알고 보니 토마스가 무심코 그냥 찍었던 사진에 살인하는 현장이 찍혔던 것. 사진 찍는 사람도 채 알아차리지 못했던 정보로 인해 이야기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백승우, ‘GL-A-#099’. 디지털 프린트에 아크릴릭, 50 x 64cm. 2018.(사진=가나아트)

작가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는 사진의 이미지는 끝난 시대다. 과거엔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마치 특허권 같은 게 있었다면, 디지털 시대엔 사진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 사진을 보는 이의 경험과 환경 아래 다양하게 해석된다”며 “사진작가가 특히 힘든 시대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사진작가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사진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예전엔 조명 기술 등 가르칠 게 많았는데 점점 갈수록 가르칠 것이 줄어들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는 이어 “그렇다면 이것이 사진의 끝일까? 이젠 사진 찍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수없는 사진을 어떻게 나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게 더 중요한 걸까? 예전엔 직접 사진을 다 찍는 걸 고집했다면 지금은 절반 정도는 내가 사진을 찍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사진들을 찾아보는 데 시간을 쏟는다. 사진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럴싸한 이미지 100장은 지금도 바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재차 질문을 던지며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상업 사진은 대중의 눈높이에 끝없이 맞춰주는 데 주안점을 두는 반면 작가는 대중의 눈높이를 높이려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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