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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최종태 작가 “팔십 돼서야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가나아트센터서 개인전 ‘영원의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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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0호 김금영⁄ 2018.10.17 17:16:30

최종태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뾰족하게 각지지 않고 둥글둥글한 곡선을 지닌 조각상이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포즈 또한 가만히 웅크린 채 앉아 있거나 두 손을 모으고, 때로는 턱을 괴고 있는 등 한가롭게 명상을 즐기는 모습. 대립보다는 조화를 바라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전시장에 감돈다.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등 대조되는 개념들의 조화를 추구하는 조각을 탐구해 온 최종태 작가의 개인전 ‘영원의 갈망’이 가나아트센터에서 11월 4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근래에 제작한 조각과 함께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대형 크기의 파스텔화를 선보인다.

 

최종태 작가의 전시가 열리는 가나아트센터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전통을 중시하며 한국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작업을 전개해 왔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나무 조각에 채색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전통적인 오방색을 사용해 새색시의 한복이나 전통 혼례복 등을 표현했다. 고려청자를 연상시키는 맑은 옥색을 칠하는 등 전통에 입각한 조각들로 알려졌다. 매체와 장르에 국한을 두지 않고 나무와 브론즈, 돌 가루,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조각의 영역을 확장했고 파스텔화, 소묘, 수채화 등 회화 작업도 병행했다.

 

천주교 신자인 작가는 성상 조각의 대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는데, 이조차 한국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성모자 상은 서구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다른 성상 조각과는 다르게 한국의 미로 재해석돼 눈길을 끈다. 모든 다른 요소들을 끌어안아 포용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한국의 전통 오방색을 바탕으로 한 조각과 그림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성모자 상이 있다면, 반가사유상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도 있다. 턱을 포개고 앉아 있는 조각상으로, 이 또한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작가는 대학 시절 공부한 불교 교리를 바탕으로 한국의 토착 문화에 기반한 다양한 형태의 조각을 만들어 왔다. 작가는 “높은 정신이 형상화된 반가사유상을 보고 감동 받았다. 작업은 항상 세계의 역사와 연관된다. 수많은 역사들을 찰나의 순간에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작업을 설명했다.

 

작가가 2017년부터 볼펜, 사인펜, 연필 등으로 그린 소묘화도 눈길을 끈다. 작가가 한 달 동안 입원했을 때 병상에서 볼펜과 종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소묘화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묘화에는 한 여인이 담겨 있는데 이를 보는 사람들마다 “누구냐”고 물으면서도 “한국인스럽다”는 반응을 내놓는다고 한다.

 

앉아서 명상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조각상의 모습이 평화롭다. 이 조각은 나무 위에 흙과 아교를 섞어서 칠한 결과물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특정 인물을 보고 그린 건 하나도 없다. 대신 평소에 많은 것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린다. 그림 속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한국 사람’이라고 답한다”며 그림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이뤄졌음을 밝혔다. 즉 작가는 다양한 것들의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이를 작업에 반영시키는 태도를 지닌 것. 작업에 동서양의 느낌을 모두 담았음에도 결국은 한국적인 느낌을 가장 강하게 받게 되는 연유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쓴 글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보고 다 소화한 연후에야 내 눈이 자유로워진다. 그래야 사물이 진짜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예술가는 참 모습을 그려야 한다”고 작업에 임하는 태도를 밝혔다.

 

작가가 2017년부터 볼펜, 사인펜, 연필 등으로 그린 소묘화가 이번 전시에서 첫 공개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슬펐던 전시장에 찾아온 평온

 

최종태, ‘드로잉(Drawing)’. 종이에 펜, 색연필, 19.7 x 14.4cm. 2017.(사진=가나아트)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쉬웠던 건 아니다. 전시장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작가는 두 발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다. 많은 것을 품기 위해선 많은 것을 담아야 하는 법. 일본, 미국, 영국, 스페인,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까지 많은 박물관과 유적지를 돌아봤다.

 

작가는 “온 세상을 돌고 돌았다. 팔십이 될 무렵에서야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파도가 잔잔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기나긴 밤을 지새울 때 별들로부터 한량없는 은혜를 입었다”고 밝혔다.

 

최종태 작가가 반가사유상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조각상.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작가가 아름답다고 느낀 건 로마의 고전조각이 아니라 이집트의 유물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그리스 로마 조각이 형태미를 지녔다면 이집트 유물에서는 영원성과 내면의 본질의 힘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최태만 미술 평론가는 전시 소개 글을 통해 “최종태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정면성과 부동성은 고대 이집트 조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귀국길에 그는 타이페이에 들러 그곳 고궁박물원에서 열린 ‘도자기 특별전’을 보고 서양과는 다른 동아시아 예술이 지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고 밝혔다.

 

최종태, ‘무제(Untitled)’. 나무에 채색, 20.7 x 27 x 90.3cm. 2018.(사진=가나아트)

그는 이어 “귀국 후 최종태는 곧장 석굴암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갔고 그곳에서 자신이 찾고자 했던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정면성이 비단 이집트로부터의 영향에 머물지 않고 불상과도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작가의 삶이 예술로 향한 사색과 성찰로 일관해 왔다고 강조했다.

 

작가의 조각은 한때 “슬퍼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작가는 “어려운 시대를 살았다. 해방기와 6.25전쟁의 혼돈을 겪었다. 여러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그것과 예술이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1986년에 외국에서 전시를 했는데 한 외국인이 와서 내 작품을 보고 ‘슬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 전시장 자체가 슬퍼 보이더라. 그래서 카페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울다 왔다. 내면에 잠겨 있는 슬픔을 벗어나려고 작업을 해온 것 같다. 지금은 그 슬픔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명상을 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방도 설치됐다. 하얀 색으로 둘러싸인 화이트 큐브 공간에 들어가면 최종태 작가의 기도하는 조각상을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평온해진 작가의 마음은 이번 전시에서 첫 공개하는 대형 크기의 파스텔화에서 엿보인다. 화면 속 파란 바다와 곧게 뻗은 수평선, 그리고 그 위로 흩뿌려진 하늘은 어딘가에서 본 듯 익숙한데, 작가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풍경이다. 그 풍경은 한없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기도해 오고 있는 조각상들의 모습 또한 슬픔을 벗고 평온을 꿈꾸는 작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결과물이 아닐까.

 

작가는 “만상의 근원에는 기쁨이란 것이 있다. 아름다움의 원천은 기쁨이다. 사람들이 얻기를 갈구하는 것, 행복이란 것도 바로 이 기쁨일 것이다. 모든 가치는 기쁨으로 통한다. 그것이 신의 한 쪽 모습이 아닐까”라는 글을 적었다. 이 문장들이 작가의 이번 전시를 대변해준다.

 

최종태, ‘바다(The Sea)’. 종이에 파스텔, 55.5 x 74.3cm. 2018.(사진=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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