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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최정윤] “작품 수집은 예술가의 삶을 읽는 것”

10여 년 넘는 시간, 류 샤오동 등 작품 수집하며 예술과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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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5호 김금영⁄ 2018.11.22 09:40:32

2007년부터 현재까지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술계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작품 수집을 해 온 최정윤 컬렉터. 사진 = 최정윤 제공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작품은 예술가의 일기장이다.” 2007년부터 컬렉팅을 시작해 10년 넘게 애정을 갖고 미술계를 지켜봐 온 최정윤 컬렉터의 수집 철학이다. 일각에서 작품 수집을 단순히 투자로 치부하는 부정적인 시각에 최 컬렉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각 작품엔 작가의 철학과 역사는 물론 다양한 시간과 사건이 담겼다. 이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며 “미술은 내가 살아가는 데 더 현명한 방향을 가르쳐주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을 수집해 온 최 컬렉터는 컬렉팅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을 바로잡고 미술 컬렉팅에 대한 기쁨과 중요함을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싶은 마음에 말문을 열었다.

 

최정윤 컬렉터는 2010~2012년 MC갤러리 관장으로도 활동했다. 2012년 MC갤러리에서 열렸던 마크 퀸의 개인전 ‘유 씽크 유 노우(You think you know)’ 현장. 사진 = 최정윤 제공

- 컬렉터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미국 아리조나 스테이트 유니버시티(Arizona State University, BFA)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때 학교에서 현대 미술의 주요 인물들을 초청하는 강연이 열렸다. 그때 피카소의 부인인 프랑수아즈 질로도 왔다. 그녀가 살아 온 인생 이야기와 회화 작품들로 꽉 찬 강연이 끝날 때쯤 재빨리 출입문을 지키고 서 있다가 강연장을 나서는 그녀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나는 사인을 안 해준다. 그런데 너는 어디서 왔니?”고 물어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프랑수아즈는 씽긋 미소를 짓고 “이건 아주 예외야”라며 멋진 사인을 해줬다.

 

이후 그녀의 사인을 가끔씩 꺼내볼 때마다 가슴 두근거리는 즐거움을 맛봤다. 그 사인이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값비싼 회화는 아니었지만, 마치 내가 프랑수아즈의 조그만 그림을 가진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진짜 미술 작품을 소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 것은. 그때부터 찬찬히 미술 작품을 소장하는 것에 직접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하며 준비했다.

 

MC갤러리 전시 작품. 마크 퀸, ‘위 셰어 아워 케미스트리 위드 더 스타즈(We share our Chemistry with the Stars)’. 캔버스에 핸드 페인트, 지름 200cm. 2011. 사진 = 최정윤 제공

- 가장 먼저 수집한 작품은 무엇이었나?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San Francisco Art Institute, MFA) 재학 시절 내 스승은 ‘빛의 회화’, ‘자연의 그림’이란 수식어가 붙는 작가 제레미 모간이었다. 동기들과 스승의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핑크 톤의 중간 크기 회화가 인상적이었다. 화면에서 공기, 하늘, 해질녘 등 자연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 이런 작품 하나 가져봤으면’이란 생각이 절로 들더라. 허나 그때 이미 스승은 유명한 작가였고, 작품 값도 상당히 높았다.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작품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이 그림에서 신선한 공기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스승이 “그래? 그럼 너 가지렴”이라고 답해 깜짝 놀랐다. 그날 나는 스승에게 불고기를 사드렸고, 그날은 작품을 소장한 첫 날이 됐다.

 

- 2007년 첫 컬렉팅 때부터 현재까지 대략 몇 점의 작품들을 수집했는가?
무명 작가 작품이나 이제는 붓을 꺾은(작업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을 제외하고, 일반적 잣대로 컬렉션이라 구분할 수 있는 작품은 대략 200여 점 정도다.

 

최정윤 컬렉터는 MC갤러리를 운영하며 2011년 2월 리차드 롱의 전시를 선보였다. 리차드 롱의 ‘드래곤 써클(Dragon Circle)’과 관람객들. 사진 = 최정윤 제공

- 수집한 작품들 중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는가?
사실 특별하지 않은 작품은 없지만, 그래도 하나를 대라면 류 샤오동의 작품을 꼽겠다. 그는 시간과 공간, 국가를 초월해 어디든 직접 찾아가 캔버스를 놓고 성별, 사회적 이슈, 노동 계층의 삶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대표작 ‘호탄 프로젝트(Hotan Project)’ 또한 치열한 현장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여러 장면과 이야기를 담기 위해 사진을 찍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작업이다. 운 좋게 스위스 바젤, 홍콩에서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속옷도 못 갈아입고, 모래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면 천막 안으로 도망가며 그림을 그렸다”고 작업 일화를 들려주는데 대단히 감명 깊었다. 그때 ‘호탄(Hotan)’ 시리즈를 여럿 수집했다. 삶의 현장에서 직접 처절하게 공감한 순간들을 작품에 기록하는 작가는 특별하다. 이 시리즈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내겐 대단한 자부심이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왕게치 무투, 키힌데 와일리 등 아프리카 철학과 감성을 작품에 그대로 담는 작가 그룹을 눈여겨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닌 정서와 먼 이야기지만 자신들만의 사고와 문화를 작품에 담아 보여주는 게 흥미롭고 계속 관심이 간다. 예술이 그런 것 같다. 작품은 그 작가의 일기장이다. 작가가 경험한 것, 생각한 것을 읽을 수 있지 않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의미 깊다.

 

2011년 MC갤러리에서 열린 리차드 듀퐁의 전시 ‘아웃 오브 바디(Out of Body)’ 현장. 사진 = 최정윤 제공

- 작품을 수집할 때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가? 어떤 작품에 주로 끌리는지 궁금하다.
1970년대 이후 생존하는 작가들의 현대 미술, 즉 컨템포러리 아트에 집중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컬렉션에는 테마나 맥락이 매우 중요하며, 여기엔 미술 사조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디어가 변화무쌍한 현대 미술에 호감을 갖고, 작가들을 직접 방문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품을 다시 한 번 가늠하는 과정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게 컬렉팅은 단순히 물건 사듯 뚝딱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니다. ‘좋은 작품을 찾은 첫 만남의 설렘과 계속 그림을 마주했을 때의 즐거움이 두고두고 공존하는가?’ 그것이 내 작품 수집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컬렉터로서 활동해왔다. 한국과 해외 컬렉팅 문화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유럽이나 미국은 미술 작품을 투자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내가 이 작품을 살 때 즐거운가?’에 더 비중을 둔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 또는 무명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아무 대가없이 후원하는 의미에서 컬렉팅하는 경우도 많다.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여러 일련의 사건들을 조명한 미디어의 영향으로 미술 컬렉팅은 일정한 계층의 호화 사치, 즉 일반인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짙은 것 같아 안타깝다.

 

미술 컬렉팅은 결코 많은 예산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알만한 A 작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의 작품 열 가지 중 그 중 유니크 버전은 정말 비쌀 것이다. 하지만 에디션 작업들은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책정되기도 한다. 유명세에 비해 작품가가 의외로 높지 않은 작가도 많고, 유명 작가의 모든 장르 작품이 다 비싼 것도 아니다. 또한 작가는 물론 그 작가를 관리하는 갤러리도 더 다양한 컬렉터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그렇기 때문에 꼭 사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예산 범위를 산정해 누구든 작품을 수집할 수 있다.

 

MC갤러리 전시 작품. 리차드 듀퐁, ‘뎀(Them)’. 착색, 주조된 폴리우레탄 레진 피규어 8개, 각 60 x 96cm. 2005. 사진 = 최정윤 제공

- 컬렉터로서 작품을 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아트페어나 갤러리를 돌다보면 더러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도 작품 한 점 사려는데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럴 때면 한결같이 “어떤 작품이 눈에 들어오면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해 찬찬히 공부하고 고민해. 여러 차례 다시 보고 공부한 내용들이 머리에 입력되면 그때 그 작품을 사면 돼”라고 답한다. 나보다 좀 더 잘 아는 이가 추천하는 작품을 소장하는 건 권장하지 않는다. 해당 작품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상과 읽은 스토리 그리고 ‘오래오래 그 작품과 교감할 수 있는가?’가 소장의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직접 발굴하고 고민해야 한다.

 

미술 작품은 브랜드로 담보되지 않는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 하더라도 그의 미래와 작품은 장담할 수 없다. 투자에 방점을 두고 싶다면 미술이 아닌 주식이나 부동산에 관심을 두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내가 컬렉팅을 위해 안목을 키운 방법은 ‘많이 보는 것’이다. 아주 당연할 말 같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없다. 지금도 메이저 갤러리와 유수 미술관뿐 아니라 작은 갤러리도 찾아가고, 이제 막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도 쉼 없이 본다.

 

MC갤러리 전시 작품. 사토시 고마츠스바라, ‘무제 드로잉(Untitled Drawing)’. 캔버스에 잉크, 워킹 프로세스, 각 130 x 160cm(3점 1세트). 2010. 사진 = 최정윤 제공

- 컬렉터로 활동하다가 2010~2012년엔 서울 청담동에서 MC갤러리를 운영했다.
“많이 보고 최대한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유년 시절부터 유럽 배낭 여행은 물론 태국이나 캄보디아 같은 소득이 낮은 나라도 수차례 방문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그림 그리는 길거리 예술가들을 봤는데, 혼잡한 거리에서 뭔가 몰두해 그리는 이들을 보면, 예술의 위대함이 절로 실감됐다. 헌데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현대 미술가들은 매우 한정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색다른 작업을 완성하는 작가들을 선보이고 싶었다. 운 좋게 갤러리를 운영하기 훨씬 이전부터 친분을 쌓았던 작가, 혹은 갤러리의 도움으로 리차드 롱(2011년 2월), 호르엣 마이에(2011년 5월), 리차드 듀퐁(2011년 10월), 마크 퀸(2012년 2월) 등 21세기 미술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을 MC갤러리에 단독 초청해 전시를 열었다.

 

- 컬렉터로서도, 갤러리 관장으로서도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겠다.
갤러리를 직접 운영하려면 작가, 관람객, 미술 관계자와 애호가, 일반 대중 등 모두와 소통해야 하고 홍보를 위해 미디어와의 접촉도 필요하다. 폭 넓은 분야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다양한 관계를 배우는 기회였다. 컬렉터 역시 단순히 좋아하는 작품을 구입하고 친근한 갤러리스트만 대하지 않는다. 좋은 컬렉션을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최신 정보와 컬렉션을 논의할 수 있는 사람들도 곁에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절대 좋은 컬렉션을 꾸릴 수 없다.

 

MC갤러리 전시 작품. 호르엣 마이에, ‘무제(Untitled)’. 종이, 와이어, 직물, 나무, 아크릴, 80 x 103 x 80cm. 사진 = 최정윤 제공

- 수집한 작품들은 현재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복수의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어느 정도 작품을 모으다보니 전시관을 만들어 내가 소장한 중요한 작품을 대중과 함께 감상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명확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또한 올해 우리나라 주요 기관(미술관)에 작품 몇 점을 기증할 생각이다. 과연 그 기관들이 내가 소장한 작품들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 어떤 작품이 어느 기관에 가는 것이 합당한지는 찬찬히 서로 협의할 것이다.

 

- 컬렉터로서 바라보는 현 미술 시장과 향후 시장에 대한 전망이 궁금하다.
더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특히 미디어아트가 두드러질 것이다. 예전에 캔버스와 붓이 도구로 쓰였다면 컴퓨터와 새로운 프로그램이 미술의 도구가 됐음은 자명하다. 최근 10년은 더욱 특별하다. 과거 갤러리가 작품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우편으로 보냈다면, 현재는 고퀄리티의 작품 이미지를 공유하고, 이메일로 주고받는 등 작품 구입을 위한 과정이 엄청 편리해졌다. 같은 맥락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기술이 발전한 만큼 미술 시장도 엄청 다각화되고 빠르게 가속이 붙고 있다. 예전에 10점을 팔고 사던 시간에 이제는 1000점, 1만 점의 작품이 거래될 수 있다. 아트바젤 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는데 그 성장세를 보면 이런 이론이 대변된다.

 

최정윤 컬렉터는 앞으로 뉴욕에 집중해 컬렉팅을 이어갈 계획이며, 올해 우리나라 주요 기관(미술관)에 작품 몇 점을 기증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사진 = 최정윤 제공

- 앞으로 계획은?
뉴욕 쪽에 더 집중해서 작품을 수집해 보고 싶다. 1960년대까지 프랑스 파리가 미술의 중심이었는데, 미국 비평가들의 노력으로 이제 뉴욕이 중심지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 힘은 향후엔 더 견고해지리라 생각된다. 유럽의 대형 갤러리도 뉴욕에 브랜치 갤러리를 내고 있는 추세다. 관심을 놓은 적은 없지만 더 찬찬히 뉴욕의 아주 작은 갤러리와 작가까지 눈여겨볼 작정이다.

 

- 컬렉터로서 꼭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이제 한국에도 좋은 전시가 정말 많이 열린다. 얼마 전 끝난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적 수준의 미술을 유감없이 보여준 행사였다. 국내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전시를 눈에 익히고, 호감이 가는 작가를 탐구하고, 주변에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 등 미술 관련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한다면 누구나 훌륭한 컬렉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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