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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김준·박경률·이의성·전명은, 감각을 건드리다

송은 아트스페이스, 제18회 송은미술대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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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3호 김금영⁄ 2018.12.26 16:24:17

전시장 2층은 제18회 송은미술대상 참여 작가 4인의 인터뷰 영상과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김준, 박경률, 이의성, 전명은 작가가 송은 아트스페이스에 모였다. 송은문화재단이 제18회 송은미술대상전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내년 2월 28일까지 연다.

송은문화재단은 젊고 유능한 미술작가를 발군,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2001년 송은미술대상을 제정해 운영해 왔다. 제18회 송은미술대상 예선엔 총 287명이 지원했고, 포트폴리오 심사를 통해 총 29명의 작가가 본선 심사를 받았다. 그리고 최종 4인에 오른 김준, 박경률, 이의성, 전명은 작가의 전시가 현재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대상작가 선정을 위한 최종 심사 자리이기도 하다.

 

김준 작가의 ‘에코 시스템: 도시의 신호, 자연의 신호’. 대형 큐브 형태의 설치 작업이다.(사진=김금영 기자)

네 작가의 작품은 각각 시각, 청각, 행위 등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건드린다. 먼저 김준의 작업은 청각에 집중했다. 그의 전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전시장을 가득 메운 소리들이 가장 먼저 귀를 자극한다. 김준은 지질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관찰, 탐구하고 녹음한 결과물을 아카이브 형태로 재구성한 사운드 스케이프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에코시스템: 도시의 신호, 자연의 신호’를 선보인다. 대형 큐브 형태의 설치 작업엔 여러 개의 서랍들이 설치됐다. 그리고 각 서랍에는 작가가 녹음한 제각기의 소리들이 스피커를 통해 울린다. 이 작업은 작가가 지난 6년 동안 국내외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관찰하고 채집한 결과물을 축적한 아카이브다. 평범했던 소리들이 전시장에 동시에 울려 퍼질 때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동시에 접하는 느낌이 독특하다.

 

‘에코 시스템: 도시의 신호, 자연의 신호’ 큐브 내부에 들어가면 김준 작가가 6년 동안 국내외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관찰하고 채집한 소리들이 섞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김준은 “특정 장소에 담긴 소리를 녹음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엔 서울, 런던, 시드니, 베를린 등 도시 공간과 뉴질랜드 남섬, 호주 블루마운틴, 한국 지리산, 제주도 등 자연 환경을 다니며 상반된 소리들을 녹음했다”며 “본래 각각의 소리로 존재했던 이 소리들이 대형 큐브 안에 들어가면 하나의 소리로 모아지며 새로운 소리로 섞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12채널 사운드과 더불어 큐브 안팎과 서랍 공간에는 작가가 해당 장소들에서 채집한 자연석, 식물, 이미지 등 오브제가 설치돼 청각뿐 아니라 시각, 촉각적인 경험도 제공한다.

‘상태적 진공’은 이번 전시가 시작되기 직전인 11월 29일~12월 10일 김준이 청계천 근방의 세운광장에서 진행한 야외 프로젝트를 전시장에 옮겨온 작업이다. 김준은 “평소에 도시는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하다. 이 작업은 도시의 일상적인 소음들을 녹음하고, 도시 공간이 가장 조용해지는 새벽 3시에서 4시에 관람객이 광장에 설치된 큐브에서 이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해당 프로젝트의 영상 기록물과 간접적으로 이를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의 큐브를 함께 전시했다.

 

박경률 작가는 2차원의 회화를 3차원으로 확장하는 ‘조각적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밖에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전라도 지역을 순회하며 채집한 사운드와 이미지로 구성된 ‘필드노트-뒷산의 기억’도 체험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는 소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소환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이끈다.

박경률과 전명은의 작업은 시각적인 측면이 돋보인다. 먼저 박경률의 공간엔 전형적이지 않은 작품 설치 방식이 눈길을 끈다. 캔버스가 쌓아올린 과일 위에 설치돼 있기도, 포장된 채로 전시돼 있기도 하다. 그리고 캔버스 근처엔 세라믹, 나무 조각, 천, 석고 등도 함께 배치됐다. 이 가운데 놓인 캔버스는 본래의 회화라는 기능에서 벗어나 하나의 오브제로서 기능한다.

 

박경률 작가의 ‘예쁜 얼굴’ 작업은 오브제들이 설치된 방식이 눈길을 끈다. 캔버스가 과일 위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사진=김금영 기자)

박경률은 이런 자신의 작업을 ‘조각적 회화’라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그림을 볼 때 의미를 물으며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닌, 읽으려 한다. 이때 회화의 내러티브를 완전히 읽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궁금증이 생겼고, 이 궁금증은 전형적인 회화에서 벗어나 2차원의 회화를 3차원으로 확장하는 실험적 형태의 조각적 회화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즉 박경률의 작업은 단지 회화를 설치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회화를 감상하는 총체적인 행위까지 고려했다.

이 행위엔 작품명도 개입한다. ‘어 미팅 플레이스(A Meeting Place)’는 회화를 보는 구조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작업이다. 그림이 걸리고, 오브제가 놓이고, 관람객들이 작품명을 읽으며 작품의 내러티브를 유추하는 곳, 즉 그림을 보는 것과 관련된 모든 행위가 이뤄지는 장소라는 뜻을 작품명에 담았다. ‘예쁜 얼굴’과 ‘제목미정’의 경우 완전히 끝나지 않은 미완의 내러티브 상태를 나타내는 ‘제목미정’과 표면적인 정보를 담은 작품명 ‘예쁜 얼굴’이 대조를 이룬다. 박경률은 두 작업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작품명이 담은 정보에 따라 관람객이 비슷한 설치 작업을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게 되는지 또한 관찰한다.

소리 채집·조각적 회화
생동감 포착 사진·노동 행위 탐구 작업까지

 

전명은 작가는 사진을 통해 대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의미를 탐구하며 ‘본다’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 작업을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전명은은 사진을 통해 대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의미를 탐구하며 ‘본다’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 작업을 꾸준히 시도해 왔다. 특히 사진이 담아낼 수 있는 운동감이 무엇인지 자문하며, 순간이 또 다른 순간으로 변화돼가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명은은 “특수한 감각 속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여기엔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 생동감 또한 자리한다고 생각했다”며 “이 역동적인 생동감이 한 순간을 포착하는 정적인 사진에 과연 담길 수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작업했다”고 밝혔다.

 

전명은 작가의 작업이 설치된 전시장. 전명은은 사진이 담아낼 수 있는 운동감이 무엇인지 자문하며, 순간이 또 다른 순간으로 변화돼가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보름달 직전의 달’은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안무가 엠마누엘 사누를 주축으로 활동하는 쿨레칸의 공연 ‘이리코로시기’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으로, 극한의 절망으로부터 빠져나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몸짓의 생동감이 포착됐다. 그리고 전명은이 지난 겨울 러시아를 여행하며 촬영한 ‘서간체’, 그리고 ‘누워 있는 조각가의 시간’은 정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이미지로 전시장의 한쪽 편을 장식한다.

전시장의 또 다른 편에는 늦겨울에서 초봄 하천가 풍경을 담은 ‘네가 봄이런가’ 연작을 통해 봄의 계절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겨울의 혹한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기다림 자체를 담아내며 정적인 가운데 흐르는 시간의 역동성을 담았다. 또한 ‘플루어’ 연작에는 도움닫기 직전에 있는 소녀의 얼굴 표정이 보인다. 또 다른 순간을 꿈꾸는 듯 보이는 소녀의 얼굴은 이번 전시의 화자로서도 기능하며, 멈춰 있는 시간과 상상으로 피어나는 시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이의성 작가는 예술에서의 ‘작업(artwork)’이 사회가 정의하는 ‘일(work)’의 개념에서 노동생산성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에 기초한 작업을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 이의성은 인간의 행위, 그 중에서도 노동에 집중한다. 그는 예술에서의 ‘작업(artwork)’이 사회가 정의하는 ‘일(work)’의 개념에서 노동생산성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에 기초한 작업을 선보인다. 이의성은 “작업이 생산적이냐 아니냐, 인정받느냐 인정받지 못하느냐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있다. 내 작업은 ‘이 기준점을 무게, 길이 등 다른 단위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예컨대 ‘노동의 무게’는 작가가 매일 하나씩 일상에서 사용하는 여러 도구의 형태로 깎아 만든 나무 조각들을 설치하고, 깎기 전과 후의 변화된 무게 및 작업 시간을 기록한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이의성은 노동의 양을 금전적으로 환산하는 일반적인 사회적 시스템을 뒤집고, 이를 무게로 환산하는 측정법을 통해 생산성이라는 기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이의성 작가의 ‘미세한 예술입자’ 작업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물리적인 드로잉’은 캔버스 천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유실된 실의 무게를 측정한 작업이다. 작업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온 실의 무게로 인해 작업 전(647g)과 후(642g)에 5g이라는 천의 무게 변화가 발견됐다. 하지만 이는 실제 회수된 실의 무게(3g)와 2g의 차이를 보였다. 이의성은 이처럼 유실된 실의 양에 소리나 진동, 충돌의 흔적으로 변환되는 에너지를 대입해, 이를 초과 근무라는 사회 속 노동 현상의 원인으로 해석한다.

이밖에 드로잉 재료인 흑연의 채굴과 연필심 생산 공정을 곡괭이라는 도구의 제작 과정 및 쓰임새에 대입해 나타낸 ‘생산적인 드로잉’, 그리고 예술노동에서는 존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업의 가치를 포집하려는 시도를 담은 ‘미세한 예술입자’ 작업을 볼 수 있다.

한편 제18회 송은미술대상전 대상작가는 내년 1월 중에 발표된다. 우수상 3인에게는 각 1000만원, 대상 1인에게는 2000만원의 상금과 향후 개인전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델피나 재단과의 협약을 통해 수상자 모두에게 ‘송은문화재단-델피나 재단 레지던시’ 2019년 프로그램 지원 자격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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