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기자수첩] ‘예술에 U+5G를 더하다’전이 ‘빛 좋은 개살구’ 되지 않으려면…

  •  

cnbnews 제658호 김금영⁄ 2019.10.17 10:12:11

U+5G 스마트폰으로 임경식 작가의 ‘꿈을 꾸다’ 작품 이미지를 스캔하면 멈춰 있던 금붕어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지하철이 예술 작품의 장이 됐다. LG유플러스가 ‘예술에 U+5G를 더하다’전을 서울 지하철 6호선 공덕역사에서 내년 2월 29일까지 선보이는 것.

사실 지하철 전시가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간 국내에서 볼 수 있었던 지하철 전시의 형태는 경복궁역의 서울메트로미술관처럼 주로 특정 한 공간에 작품을 걸어두는 형태가 많았다. 그러나 LG유플러스는 지하철을 타러 이동하는 길, 환승계단, 지하철을 기다리는 플랫폼 등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동선에 따라 작품을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형태가 가능했던 건 작품의 원본이 아닌, 프린팅된 이미지를 설치했기 때문. 이 또한 그냥 프린팅 이미지가 아니다. LG유플러스가 지닌 기술을 활용했다. 스마트폰으로 작품 이미지를 스캔하면 멈춰 있던 이미지가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 기술을 활용한 전시 또한 기존에 있어 왔기에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지만, LG유플러스는 차별화로 5G 기술을 강조했다. 기존 LTE 환경에서 구현될 수 없었던 고용량의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그것도 360도로 돌려가며 볼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신제현 작가의 ‘리슨 투 더 댄스’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자, 본래 흑백 이미지로 멈춰 있던 이미지가 스마트폰 화면에서 색을 입고 역동적인 춤을 추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기획과 콘텐츠임은 분명했다. 관련해 전시 기획에 참여한 HS애드의 서경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작품 설명회에서 “이번 전시는 회화, 사진 등 정적인 전시 예술에 5G 기술을 접목해, 수동적으로 전시를 감상했던 관람객들이 능동적으로 작품에 개입하고 감상하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HS애드의 서경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 = 김금영 기자

또한 광고 이미지로 가득한 지하철 공간을 문화예술의 장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는 의도도 밝혔다. 서 디렉터는 “지하철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게 성형, 아이돌 생일 광고 이미지인데, 여기에 작품 이미지를 설치해 지하철을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품 설명회에는 경제부가 아닌 문화부 기자들을 초청했는데, 여기에서도 이번 전시의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LG유플러스의 의도가 엿보였다.

하지만 광고로 가득한 지하철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는 점에서는 다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지점이 있었다. 지하철의 의자와 쓰레기통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나점수 작가의 작업이나, 지하철 기둥에 렌티큘러 작업을 설치한 손선경 작가의 작업은 ‘작품을 설치했나 보다’라는 감이 바로 왔다.

그러나 지하철을 타러 가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 그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마주한, 이번 전시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전광판에 설치된 작품 이미지들은 자세히 보지 않고 지나치면 기존에 설치돼 있던 광고 이미지들과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5G 기술을 이용한 전시에 관심이 있는 이라 할지라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또한 실질적으로 이 전시가 국내 지하철 환경에서 효용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지하철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특히 바쁜 현대인은 출퇴근하기에 바쁘다. 작품 감상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는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북적대는 지하철 환경에서는 오히려 작품을 보려고 이미지 앞에 서 있는 게 방해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우려됐다.

5G 기술이 전시의 강점이자 약점?

 

지하철을 기다리는 플랫폼에 설치돼 있는 박정 작가의 작업 ‘또 다른 시선’ 이미지를 스마트폰으로 이미지를 스캔하면, 멈춰 있던 여인이 그림 속에서 뛰어나와 역동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5G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전시가 무용지물로 그칠 수도 있다. LG유플러스가 이번 전시의 강점으로 내세운 5G 기술이 강점이자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는 것. 5G 상용화 초기 시점에서 아직 기지국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기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꼬집는 것.

이 가운데 스마트폰 없이 감상할 수 있는 나점수 작가의 설치작업, 그리고 권오철 작가의 ‘독도 2013’을 비롯해 작가 3명의 회화 작품 9점을 환승계단 등에 배치하고, 여기에 따로 팝업 갤러리를 마련해 전시 체험용 5G 스마트폰을 배치했지만, 전체적인 전시 규모에 비해 매우 협소한 편이다. “지하철을 문화예술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의도 자체는 좋지만, 실제로 효용성이 없다면 그저 구색만 갖춘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공공미술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주목받을 만한 측면이 있다. 서경종 디렉터는 “국내 지하철 환경에서 과연 이번 전시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에서 비판적인 시각도 이해한다. 하지만 뭐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나라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그에 맞게 문화예술을 즐기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 가운데 특별히 어디를 가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지하철이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관람객을 위해 설치된 손선경 작가의 렌티큘러 작업 ‘희미한 현재’를 설명하는 이미지. 사진 = 김금영 기자

서 디렉터에 따르면 전시 첫 오픈 주 하루 평균 전시 콘텐츠 사용 숫자가 1단위로 아주 적었지만, 한 달 여의 시간이 흐른 시점엔 1000단위를 넘어섰고, 꾸준히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고. 그는 “작품 이미지 포즈를 따라하는 학생도 봤고, 늦은 시간 지하철을 방문했을 땐 나이가 있는 분들이 작품 이미지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모습도 발견했다. 처음엔 관심이 미약했을지 몰라도, 점점 관심이 높아지는 걸 체감한다”며 “시작이라 물론 미흡한 점이 많겠지만, 이 시작을 바탕으로 앞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지하철 역사 자체가 예술로 평가받는 현장들이 있다. 스페인의 빌바오 지하철은 영국의 공공 디자이너인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했고, 스웨덴 스톡홀름의 지하철은 1957년부터 예술가들이 새로운 역의 건설에 관여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궁전에 들어온 것처럼 착각할 정도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팝업 갤러리에는 전시 체험용 5G 스마트폰을 배치해 놓았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아직은 이런 분위기가 국내엔 낯설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이번 전시 현장을 둘러볼 때도 전시를 체험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는 외국인은 종종 볼 수 있었으나, 국내 관람객의 관심은 그에 비해 미미해 보였다. 하지만 해외에서 문화예술의 장으로 꼽히는 여러 지하철 사례들에도 분명히 시작점이 있었을 것이고, 그 시작의 발걸음을 우리 또한 내딛었다.

 

앞선 예로, 지난해 1월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약 46억 원을 투자한 아트포트 프로젝트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자비에 베이앙, 지니서, 율리어스 포프, 김병주 작가의 작품이 공항 곳곳에 설치돼 여객들을 맞이했다. 당시 참여 작가 자비에 베이앙은 “내가 어렸을 때 공항을 통해 여행하는 건 굉장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일상 속 편안한 일이 됐다. 예술 또한 그렇기를 바란다”며 “여행의 설렘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시적인, 특별한 경험을 심어주는 예술 조각이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예술을 특정 계층만의 장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 녹아드는 ‘우리의 장’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이처럼 맥락을 이어 왔다. 서경종 디렉터 또한 “‘일상을 바꾸다’라는 키워드가 이번 전시의 시작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진입부에 313아트프로젝트 소속 작가인 자비에 베이앙의 작품 ‘그레이트 모빌(Great Mobile)’이 설치된 모습. 사진 = 김금영 기자

시작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일단 기본이 중요하다. 이번 전시는 ‘일상을 바꾸다’라는 키워드 그리고 5G 기술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13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5G 이동통신 가입자는 지난달 기준으로 상용화 5개월 만에 300만 명, 기지국은 9만 곳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상용화 환경부터 갖춰야 한다.

또한 관람객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피드백 수용이 매우 중요하다. 관련해 LG유플러스는 전문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 상시 운영 계획을 10일 밝혔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LG유플러스 5G 고객이 아니어도 현장에서 제공되는 5G스마트폰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LG 유플러스 측은 “공덕역은 하루 평균 오가는 유동 인구가 5만 명에 달하는 곳으로, U+5G 팝업 갤러리에 작가 및 작품에 대한 해설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에 가족 초청 이벤트에 선정된 고객에게만 제공했었던 전문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을 확대해 상시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2월까지 이어진다. 그 기간 동안 전시가 꾸준히 발전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 정말 가치 있는 공공미술 전시로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