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양천팔경첩에는 행주산성 주변을 그린 두 점의 그림이 있다. 두 그림은 행주나루 앞 언덕에 있던 정자를 그린 그림으로, 낙건정(樂健亭)과 귀래정(歸來亭)이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은 물론 이곳 행주 지역을 더 넓게 그린 그림이 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경교명승첩 속 행호관어(杏湖觀漁)도(圖)이다. 이 그림은 행주 지역 좌측 별장 지대와 그 앞에서 고기잡이 하는 배들을 바라본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시화상간(詩畵相看) 하기로 한 사천 이병연의 시(詩)도 고스란히 붙어 있다. 또 하나 이곳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하는 행주일도(涬州一棹: 행주 한 척의 배)라는 그림이다.
이제 이런 그림들을 염두에 두고 행주산성 순방길에 나서 보자.
이렇게 작고 가는 배로 웅어 잡았으니
겸재의 행호관어도(사진 1)를 보면 번호 1 지점에 행주나루 위쪽으로 낙건정(樂健亭)이 있었다.
2 지점에는 장밀헌(藏密軒)을 비롯하여 많은 별서(別墅)들이 있었다. 3 위치에는 귀래정(歸來亭)이 있었다. 4는 행주산성의 정상부인 덕양산인데 겸재의 행호관어에는 이 부분이 그려져 있지 않다. 번호 5 지점은 행주산성(幸州山城)이라는 이름을 있게 한 신라시대 토성(土城)이 자리 잡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장소이다. 겸재의 그림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번호 6은 일산, 탄현, 파주, 장단 지역에 산재한 여러 산들이다. 정확히 산 이름을 구분하기는 어려운데 고봉산(高峰山), 현달산(見達山. 또는 견달산)이 있고, 저 멀리 우뚝한 암봉(岩峰)은 겸재가 마음의 눈으로 본 개성 송악산(松岳山)으로 여겨진다.
사진 2는 겸재의 행호관어도 시각에서 찍어본 사진이다. 양천에서 바라다본 행주산성 사진에 보이듯 삼각산은 이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다른 산들도 고만고만해서 그림처럼 우뚝한 봉우리들은 없다. 지금껏 보아왔듯이 겸재의 그림 속 산은 모두 키가 많이 키워져 있다는 점을 안다면 행호관어도와 사진 속 산의 낯섦은 이해 가능하다.
번호 7은 강 건너 양천 지역이다. 이곳 양천과 이제껏 살펴본 행주 사이의 강이 행호(幸湖, 杏湖)다. 번호 4의 덕양산 동쪽 가파른 기슭 아래로는 창릉천(덕수천)이 흐른다. 이 창릉천이 한강으로 유입되면서 유속이 느려져 이곳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넓은 강이 되었기에 행호라 불렀다. 창릉천 물이 행호로 유입되는 수구(水口)에는 1916년 세운 수위 관측소가 10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귀한 유적이라서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그런데 이 행호에는 웅어(葦魚)라 부르는 물고기가 살았었다. 겸재의 행호관어도에서 14척의 배가 잡고 있는 물고기가 바로 웅어다. 이 배를 실물에 가깝게 재현해 놓은 것이 행주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의외로 너무도 작고 약해 보여 그 시절 어부들이 걱정된다. 웅어는 연어나 뱀장어처럼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철인 봄에서 초여름 사이 강화도 주변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되는 조강(祖江)을 거쳐 통진 수계(水系), 김포 수계를 지나 행호(幸湖), 서호(西湖)까지 올라와 산란을 했다. 요즈음은 행주대교 아래 장항동 지역에 수중보를 설치하여 행주로는 오르지 못한다. 김포 수계나 강화 인근에서는 잡히는데 거의 멸종되어 제 철에도 흔하지 않다. 그나마 금강(錦江) 수계(水系)에서는 좀 잡혀 조선의 임금을 비롯한 그 시절 사람들이 즐기던 웅어 맛을 만날 수 있다. 금강 수계 사람들은 이 웅어(葦魚)를 ‘우여’라고 부른다. 서울 근교에서는 능곡역 주변, 금강 수계에서는 부여나 강경 지역에 가면 웅어를 만날 수 있으니 기회 되면 들러보시기를.
웅어를 ‘헛’씹던 허균의 풍자
‘홍길동전’으로 널리 알려진 허균도 웅어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때 허균은 유배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유배객이 무슨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었겠는가. 먹고 싶은 것은 자꾸 떠오르지 먹을 것은 변변히 없지…. 그는 붓을 들어 기억 속에 있는 음식과 식재료들에 대해 기록했다. 이 기록이 도문대작(屠門大嚼)이다. 도문이란 푸줏간인데 그 앞을 지나면서 크게 씹는 흉내를 낸다는 말이다. 먹을 것이 없으니 허풍이라도 떨어야 하지 않겠나. 이 기록에는 웅어를 비롯한 바닷생선(海水族之類)의 기록도 있다.
숭어(水魚): 서해에는 어느 곳이나 있지만 한강의 것이 가장 좋다. 나주(羅州)에서 잡은 것이 매우 크고 평양에서 잡은 냉동된 것이 맛있다.
붕어(鯽魚): 어느 곳에나 있지만 강릉의 경포(鏡浦)가 바닷물과 통하기 때문에 흙냄새가 안 나고 가장 맛있다.
웅어(葦魚): 이는 준치과 물고기를 말한다. 한강의 것이 가장 좋다. 호남에선 2월이면 잡히고, 관서(關西) 지방에서는 5월에야 잡히는데 모두 맛이 좋다.
뱅어(白魚): 얼음이 언 때 한강에서 잡은 것이 가장 좋다. 임한(林韓)-임피(臨陂) 지방에서는 1~2월에 잡는데 국수처럼 희고 가늘어 맛이 매우 좋다.
(水魚. 西海皆有. 而京江最好. 羅州所捉則極大. 平壤則凍者爲佳. 鯽魚. 八方皆有. 而江陵府鏡浦通海波. 故味最佳. 無土氣. 葦魚. 卽鰣魚也. 京江最好. 而湖南二月已有之. 關西五月方有之. 皆佳. 白魚. 凍時京江甚佳. 而林韓, 臨陂之間. 正二月所捉. 白細如麪. 食之甚佳.)
이런 기록을 접할 때면 느끼는 것이 옛 남정네들은 의외로 섬세하고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상당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웅어는 그림 그리고 시 쓰는 이들, 진상을 받거나 사 먹을 수 있는 이들에게는 행복을 주는 물고기였지만 잡는 어부들이나 이들을 도와야 하는 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대상이기도 했다. 승정원일기에는 이들의 고통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도 있다. 인조 연간의 기록을 보면, 관리가 웅어잡이 백성 수는 줄여 놓고도 웅어는 진상하라고 계속 재촉을 하지 않나, 웅어가 잘 나지 않는 통진에 감착관(監捉官)이 제 철도 되기 전부터 자리 잡고 백성을 수고롭게 하기도 했다.
한강 수계를 오르내리며 배에서 밥 해 먹을 땔감 나무를 팔아 살아가는 시선(柴船) 뱃사공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노래가 전해진다.
달은 밝고 명랑한데 고향 생각 절로 난다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부귀영화 잘살건만
요 내 팔자 어이 하여 배를 타서 먹고 사나
강비탈이 잠든 과부 뱃소리에 놀아난다
어서 빨리 노를 저어 마포에다 배를 대고
고사 술을 올려주면 한 잔 두 잔 먹어보세
염창목 올른다, 어서 빨리 싹싹 저어
선유봉을 지나쳐서 밤섬 건너 마포에다 갖다 대자
조강 앞에 물소리 난다. 달 떠올라 가는구나
이제 겸재의 행호관어도와 웅어에 대해 연전(年前) 써 놓은 글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 차회(次回)에는 옛 정자와 행주산성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위어→웅어, 리어→잉어 된 이유
[웅어를 먹으며]
어제는 모처럼 웅어 회를 먹으러 갔습니다.
웅어(葦魚), 이제는 잊혀진 물고기입니다.
바다에서 살다가 봄이 오면 한강이나 금강 수계를 타고 올라와 산란하는 물고기입니다. 그러니 웅어를 만나려면, 봄날에서 초여름까지가 아니면 안 됩니다. 맛은 기름기가 넉넉하고 밴댕이 비슷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멸치회의 맛도 느껴집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조선시대 웅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밴댕이(蘇魚/소어)는 경기도 안산 지역의 안쪽 바다에서 나고, 제어(鮆魚)는 속명으로는 웅어(葦魚/위어)라고 하는데 한강 하류인 고양군 행주에서 잡힌다. 늦은 봄이 되면 대궐 음식을 준비하는 사옹원(司饔院)의 관리들은 (어부들이) 그물을 던져 잡은 웅어를 임금에게 진상하며, 생선 장수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횟감 사라고 소리치며 이것을 판다.
蘇魚産安山內洋,
鮆魚俗名葦魚産漢江下流高陽幸洲春末司饔院官網捕進供漁商遍街呼賣以爲膾材.
사옹원은 궁중 음식 자재, 도구 등을 조달하는 부서인데, 행주산성 아래에는 葦魚所(웅어 담당 파견소)를 설치했고, 안산에는 蘇魚所(멸치 담당 파견소)를 설치하여 진상품을 조달했습니다. 사실 웅어에 대해 이 시대의 우리는 잘 모르지만 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에는 여러 차례 웅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웅어는 갈대 우거진 곳에 살아서 갈대 위(葦) 자를 쓴 ‘위어’입니다.
그런데 고기 魚 자의 발음은 그냥 ‘어’가 아니고, ‘배꼽 이응(ㆁ)’ ng 발음을 가지고 있는 ‘ㆁㅓ’입니다.
붕어, 잉어도 부ㆁㅓ(鮒魚), 리ㆁㅓ(鯉魚)인데 마찬가지 이유로 붕어, 잉어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길에의 초대>: 2016년 CNB미디어에서 ‘이야기가 있는 길’ 시리즈 제1권(사진)을 펴낸 바 있는 이한성 교수의 이야기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3~4시간 이 교수가 그 동안 연재했던 이야기 길을 함께 걷습니다. 회비는 없으며 걷는 속도는 다소 느리게 진행합니다. 참여하실 분은 문자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간사 연락처 010-2730-7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