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이번 호 ‘CNB저널’은 스타벅스 커피샵의 장애인 채용의 한 예를 들었습니다. 스타벅스 더종로R점의 고급 커피 공간인 ‘리저브 바’를 담당하는 엘레나 최 부점장(청각장애)의 이야기입니다.
기사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스타벅스는 국내에서 장애인을 가장 많이 고용하는 업체 중 하나다. 2007년부터 적극적으로 장애인을 채용, 직원 중 약 390명이 장애인이며, 약 50여명의 장애인이 부점장이나 점장 등 중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1호 스타벅스 청각장애인 점장인 송파 아이파크점의 권순미 점장(청각장애 2급)이 유명한데, 그는 지난해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장애인 근로자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은 바 있다.
이 기사를 읽으니 4~5년 전에 스타벅스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나네요. “청년, 일자리, 장애인에 관한 기사 기획이라면 사업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엘레나 최 부점장의 경우 젊고, 청각장애를 가진 데다 스타벅스에 일자리를 가졌으니, 스타벅스가 추진하는 3가지 사회공헌의 목표와 잘 맞는 케이스라 하겠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서 ‘스타벅스는 사회공헌의 노선을 일찌감치 정해놓고 그 노선을 줄기차게 밀고 왔구나’ 하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년, 일자리, 장애인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아픈 세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문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잘 되지 않는 현실, 부(富)의 편중과 4차산업 혁명에 따라 더욱더 줄어가는 일자리, 그리고 정치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비하 언어를 거침없이 쓰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3개 목적을 잘 버무린 ‘장애인 채용’
이 가장 아픈 세 곳 통점(痛點)을 짚어내고, 그에 대한 기업 나름의 기여책으로 ‘청년 장애인 고용’을 밀고 나가는 게 스타벅스의 노선으로 읽힙니다.
이렇듯 노선을 잡고, 기사가 나든 안 나든,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게 바로 기업 사회공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기업은 원래 사회공헌과는 무관한 존재입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익 창출이고, 그 이익 창출을 하는 과정에서 고용이 발생하고,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고 하는 것이지, 고용을 늘리기 위해 기업을 하고, 국가 재정에 기여하기 위해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앞뒤가 전도된 말입니다.
따라서 기업은 원래의 목적인 이윤 추구에 몰두하면 될 뿐, 부차적인 기능인 사회공헌을 마치 기업의 존재목적인 것처럼 너무 내세우면 보기 흉할 뿐입니다. 목적과 행동은 ‘돈’을 향해 있으면서, 화장만 그렇지 않은 듯이 ‘사회공헌을 하는 기업’으로 과대포장하는 것은 기만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공헌, 이른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눈길이 간다면, 스타벅스처럼 분명한 노선을 정해놓고 추진해 나가면 좋지 않나 하고 제안해 봅니다.
스타벅스의 이런 노력이 계속된다면 “장애인 채용은 스타벅스”란 등식이 생길 것이고, 장기적으로 스타벅스 측에 꽤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OO하면 어느 기업” 이런 식 사회공헌 안 되나요?
요즘 국내 대기업들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일부 대기업은 ‘OO봉사단’ 등의 명칭까지 지어놓고 상시적으로 활동을 펼치는 듯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 분야의 공헌을 정해놓고 줄기차게 그걸 추진함으로써 소비자들 마음에 공식을 심어 넣은 국내 대기업은 아직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기업의 OO봉사단이 초겨울이 되면 산동네-쪽방촌에 가서 연탄을 날라주고, 수백 수천 포기의 김장을 담그면서 김장 봉사를 하는 모습이 연일 보도되지만, ‘저소득층을 진정으로 보살피는 A기업’, ‘좋은 식품으로 봉사하는 B기업’ 같은 이미지는 선뜻 떠오르지 않으니, 과연 봉사단이라는 이름까지 갖춘 이들 대기업 조직들의 사회공헌이 일관성 있게, 즉 하나의 정해진 노선을 따라서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끈질기게 이어지면서 ‘OO 하면 어디’ 이런 식의 공식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며, “단발적인 보도가 주는 홍보 효과만 노리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만약 이들 기업 소속 봉사단들이 “기사가 나오면 무조건 좋은 것 아니냐?”며 오늘은 국립공원의 묘비를 닦고, 내일은 김장 봉사를 하고, 모래는 연탄을 나르는 등 여기저기 팔방미인 식으로 일회성 봉사를 펼치는 것이라면, ‘노선을 먼저 갖추는 게 더 좋지 않나요?’라고 제안을 드리고 싶네요. 한 가지 노선을 정해 줄기차게 밀고 나가야 홍보 효과가 깊고 넓을 뿐 아니라 봉사를 받는 쪽에서도 흡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벅스처럼 청년-일자리-장애라는 한국 사회의 세 맹점을 보살피기 위해 ‘청년 장애인을 적극 고용한다’라는 방침을 세운다면, 서울의 스타벅스건, 아니면 지방 관광지의 스타벅스건 같은 노선을 견지해야 합니다. 서울의 장애인만 채용하고, 지방 스타벅스에서는 안 채용하고 하긴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반대로, 일회성으로 봉사 활동을 한다면 접근이 용이한 곳을 택하기 쉽지요. 연탄 날라주기라면 서울 중심부의 한 산동네(경사지여서 ‘사진발’도 좋은)로 봉사활동이 몰리기 쉽습니다. 대개 기업의 본사가 서울에 있으니 말이지요. 이리 되면 어찌 되나요? 겨울에 연탄이 부족한 동네가 전국적으로 많을 텐데, 대기업 본사와 인접한 서울의 특정 달동네는 거의 매년 빼놓지 않고 무료 연탄 배달을 받을 것이며(봉사 받음100%), 그렇지 않고 대기업 본사와 먼 지방 산동네는 평생 단 한 번도 받지 못하는(봉사 받음 0%) 불균형이 생기겠지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처럼 100 대 0의 차이는 안 되는 것이지요.
잘된 일의 시작은 줄 잘 긋기
그래서 스타벅스의 일관된 사회공헌 노선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역시 라인은 곧아야 가기가 쉽고, 목적지에도 정확히-빨리 도달한다는. 라인을 잡는 것은 대개 리더(CEO)의 역할이지만, 민주화의 확산에 따라 집단의지로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제대로 라인 긋기 없이, 오늘은 배추 따주기, 내일은 연탄 날라주기, 모래는 김장해주기 식으로 이런저런 기업의 사회공헌을 한다면,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저 뭔가를 하긴 하는 기업, 더 심하게는 “사회봉사를 광고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기업”이라는 반응 밖에 얻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스타벅스의 주요 고객층은 젊은층인지라, 젊은층의 가장 큰 관심-고민거리인 일자리 문제 해결에다가 ‘장애인-약자 우대’라는 토핑까지 곁들여 해냅니다. 이처럼 각 기업이 자신의 주요 사업 필드에 딱 맞는, 그래서 보기도 좋고 효과도 좋은 사회공헌 활동을 ‘각기 다르게’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지금처럼 이 기업도 저 기업도 연탄 나르기 또는 김장 봉사를 하는 형태로는 너무 단조롭고, 또 기업이 들이는 공력만큼의 효과가 나지 않는 것 같아서 감히 참견해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