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최영태 이사) 간송미술문화재단의 국보급 문화재(금동불상과 불감) 두 점이 경매 물품으로 나오자 블록체인기업 아톰릭스랩이 “DAO 형태로 돈을 모아 입찰하고, 소유권을 확보하면 금동불상 등의 디지털 이미지를 NFT로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추진 중이라 화제다. 첨단-디지털 개념인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 탈중앙화 자율조직)와 NFT(non-fungible token의 약자. 대체불가토큰)가 골동품 경매라는 낡고 아날로그적인 세상에 침투하는 모양새다.
골동품 또는 미술품 경매가 ‘나이 들고 돈 많은’ 사람들의 호사스런 취미 정도로 여겨졌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이제 디지털과 ‘토큰 자본주의’로 무장한 젊은층이 해머를 들고 찾아와 파괴와 창조에 나선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번 호 ‘문화경제’는 ‘가상화폐 키워드 DAO, 일하는 근간 바꿀까’라는 기사를 실었다(28~29쪽).
서구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가 대중화한 것이 20세기적인 현상이었지만, 그런 20세기에도 돈의 세계는 민주화하기 힘든 대상으로 여겨졌었다. ‘1인 = 1표’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가능하지만, ‘1달러 = 1표’의 경제계에선 돈많은 소수가 절대권한을 행사하기에 다중(demos)이 다스린다(cracy)는 민주주의(democracy)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경제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앞말(경제)과 뒷말(민주)이 충돌하기에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비판까지 대두했다.
그런데, 이제 DAO라는 형태로 조직이 만들어지고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세상이 오는 모양이다. 지난해 만들어졌고 최근 윤수목 씨(기업은행 트레이더 출신)가 투표를 통해 핵심 9인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한 오픈다오(OpenDAO)를 예로 들어보자. 토큰(가상화폐) 발행을 통해 수많은 회원을 자발적 참여자로 모은 오픈다오는, 입후보를 통해 기업의 이사회 격이라 할 수 있는 ‘멀티시그 서명자(Multi-Sig Signer) 9인’을 투표로 선출했다. 오픈다오의 업무는 게시판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한국의 아톰릭스랩이 “간송 문화재를 사서 NFT 사업을 하자”는 아이디어 같은 것이 오픈다오의 게시판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윤수목 씨는 인터뷰에서 “게시판에 시시각각으로 온갖 아이디어들이 올라오고, 불과 몇 시간만에 결과물들이 올라오는 속도에 놀랐다”고 말했다.
“大를 위해 小를 희생”이 상식인 한국인
자본주의의 3대 생산 요소는 자본, 토지, 노동력이라고 배워왔다. 20세기적 생산방식은 귀한 자본이 귀한 토지를 확보하고, 흔한 노동력을 고용해 규율적으로 대량생산하는 방식이었다.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포스코를 예로 들자면 걸출한 자본(한국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조달한)이, 걸출한 경영자(박태준)를 골라 대규모 생산설비를 만들고, 수많은 노동자를 고용해 훈련시켜가며 일을 시켜 세계적 기업이 됐다. 반면 DAO는 자본도 노동력도 모두 다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조달되고, 일의 내용도 ‘위에서부터 규율있게’가 아니라 게시판을 통해 ‘밑으로부터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이사회 격인 ‘멀티시그 서명자’도 투표를 통해 선출되니 기업 이사회를 주주 전체가 민주적 투표로 선출하는 격이다. 20세기 기업이 하던 일을 이제 국적불문의 DAO 조직들이 이처럼 해내게 된다면 경영자-근로자라는 20세기적 2원조직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20세기적 세상에선 정치가 아무리 민주화돼도 경제만큼은 철저히 ‘가진 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겨졌다. 한때 세계 금융의 유일한 중심이었고 지금도 미국 뉴욕과 함께 양대 산맥 역할을 하는 런던 금융 중심가(City of London, 면적 약 2.6제곱km)가 영국 정부 또는 런던 시와는 상관없는 치외법권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20세기적 ‘정치와 돈은 별개’ 현상의 한 증거다.
그러나 이제 달러 패권에 도전장을 내민 비트코인 등이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의 약자. 중심 없는 금융) 개념을 앞세우면서 ‘정부-은행-세관 없는 돈 유통’의 세상을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환전 몇 번만 하면 수수료 탓에 본전이 뭉텅뭉텅 잘라져나가는 ‘착취의 중앙 시스템’을 ‘어떤 정부 아래건 상관없이 세계 어디서나 1비트코인 값은 동일한’ 탈중앙 금융으로 바꾸려 두뇌들이 애쓰는 모양새다.
걸출한 자본과 경영에 대부분의 권한을 양보하더라도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대량생산 현장에서 돈을 번 것이 20세기人이 몸에 익힌 생활방식이다. 그런데 이제 내 몸-뇌가 자본-노동의 역할을 모두 하는 DAO적 세상이 주도권을 쥔다면, ‘권한을 넘겨주고 시키는대로 몸으로 일하기’ 방식에 익숙한 20세기 人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상대적으로 몸과 뇌가 말랑말랑하게 덜 굳은 사람들은 그래도 DAO적 세상의 끄트머리 윗목이라도 앉으려 버석거리겠지만, 그렇지 않고 20세기적으로 몸과 뇌가 딱딱하게 굳은 사람들, 이렇게 굳은 뇌와 몸을 “딴딴해서 참 좋아”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따뜻한 메타버스 세상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찬 바람만 부는 현실 세계의 거리를 헤매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나이가 많을수록, 특히 ‘회사-조직이 먼저’ 또는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의 인이 박인 사람들은 자신의 ‘말랑 정도’를 점검해야 할 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