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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기자의 와린이 칼럼 ②] 캠핑과 키안티 와인, 그리고 수탉 : ‘니포짜노 키안티 루피나’

키안티 클라시코의 상징 '검은 수탉'의 무용담…캠핑장에서 새벽에 우는 닭은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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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21호 윤지원⁄ 2022.04.08 15:42:27

오랜만의 봄 캠핑에서 '불멍' 하며 마신 프레스코발디 니포짜노 키안티 루피나 리제르바 2018 와인. (사진 = 윤지원 기자)

■ 오늘의 와인
프레스코발디 니포짜노 키안티 루피나 리제르바 2018
Frescobaldi Nipozzano Chianti Rufina Riserva 2018


타입: 레드 / 포도품종: 산지오베제(90%) + 기타 품종(10%) / 지역: 이탈리아>토스카나>키안티 / 와이너리(생산자): 프레스코발디 / 수입사: 신세계엘앤비 / 페어링: 수제 치즈버거와 트러플 파마산 감자튀김

 


기자는 와린이다. ‘와인’에 관한 한 ‘어린이’ 수준의 초심자라는 뜻이다. 블리자드 게임 ‘와우’(WOW, World of Warcraft)를 생각하고 들어왔다면 미안하지만 이건 술 이야기다.

"봄이 왔다"는 기상청의 선언에 와린이 부부는 겨우내 미뤘던 캠핑을 다녀왔다. 캠핑은 우리 부부가 와인에 재미를 붙이기 전부터 쭉 즐겨오던 취미다.

와린이가 된 후로 “이번 캠핑엔 어떤 와인을 어떤 요리와 함께 마셔볼까?”를 고민하는 것이 캠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새로운 재미가 됐다. ‘숯불에 삼겹살에 소주’라는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던 캠핑 식사 메뉴가 와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아기자기한 다양성을 갖추게 됐다. 또 요즘은 워낙 간편식과 밀키트도 잘 나오고 있으니까.

이번 캠핑의 메뉴는 유명 맛집의 치즈버거와 트러플 감자튀김이었고, 와인은 이탈리아산 레드와인 ‘니포짜노 키안티 루피나 리제르바’와 뉴질랜드산 화이트와인 ‘도그 포인트 소비뇽 블랑’으로 골랐다. 둘 중에선 키안티가 메인이다.

키안티, 키안티 클라시코는 들어봤지만 ‘키안티 루피나’는 좀 낯설다. 우선 키안티란 이탈리아 투스카니(토스카나) 지방, 피렌체 남쪽에 있는 산맥 일대를 일컫는 이름이고, 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키안티 또는 키안티 와인이라 한다. 부르고뉴나 보르도처럼 원산지 이름이 와인 이름인 셈이다.

 

키안티 지역의 포도밭 풍경. (사진 = unsplash, Rich Martello)
키안티 와인 산지를 표시한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도. 가운데 붉은 부분이 200년 이상 전통을 지닌 '키안티 클라시코', 주변은 서브-존(Sub-zone)으로 1936년에 편입됐다. (사진 = wikipedia, user 'Kattivik')

 

키안티의 역사는 300년이 넘는데, 예부터 우수한 맛과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가 높았다. 19세기에 유럽 인구가 크게 늘자 키안티 수요도 늘었고, 키안티 생산 지역도 넓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많은 ‘짝퉁’ 키안티가 기승을 부린 탓에 키안티 와인의 이미지가 실추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960년대에 주요 생산자들은 키안티 와인의 품질 관리 체계를 정립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1930년대에 키안티 원산지 제도를 새롭게 규정하여 주변 7개 생산지를 정식 키안티 생산지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1996년에는 200년 이상 키안티를 만들어 온 ‘원조’ 키안티 구역의 역사적 지위를 인정하는 취지로 중심부 키안티 일대에 한하여 ‘키안티 클라시코’라고 부르는 인증 제도도 만들었다.

즉, 키안티 클라시코는 키안티 중심에서 수세기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생산자들이 만든 원조 키안티 와인을 말한다. 그리고 동일한 품질 관리 체계를 엄격하게 지켜서 만든 주변 지역의 키안티 와인은 구역에 따라 키안티 루피나 외에도 키안티 몬테스페르톨리, 키안티 꼴리 피오렌티니, 키안티 꼴리 아레티니 등등이 있다.

‘키안티 클라시코’ 검은 수탉의 무용담

키안티 와인을 마실 때마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인증 마크에 관한 궁금증과 마주친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병에는 와인 라벨과 별개인 인증 마크가 붙어 있다. 이 마크는 붉은 원 안에 검은 수탉의 실루엣이 그려진 디자인이다. 대체 이 닭은 와인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 마크를 장식하게 됐을까? 닭을 와인으로 조리한 ‘꼬꼬뱅’이라는 요리가 있긴 한데 이건 프랑스 요리고, 수탉과 이 이탈리아 와인의 관계는 뭘까? 사연을 찾아보니 그 유래는 무려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안티 클라시코 로고. (사진 = chianticlassico.com)

 

키안티 지역은 고지대여서 군사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당시 투스카니에서 가장 세력이 큰 도시 국가로 산맥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두 라이벌, 피렌체공화국과 시에나공화국은 키안티 고지대를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런데 긴 전쟁에 무의미한 희생만 이어지자, 두 나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스포츠의 개념이 적용된 해법으로, 규칙은 이랬다. 양국 정예 기사들이 각자의 기지에서 ‘동시에’ 출발해 상대 진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간다. 그러면 양국 기사들은 중간 어딘가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다. 기사들은 거기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주친 그 지점에 말뚝을 박는다. 그걸 새로운 국경선으로 정하고 물러나자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빠른 말, 더 강한 군사력을 지닌 쪽이 조금이라도 더 넓은 땅을 차지하게 하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양국은 출발 시간을 ‘모월 모일 새벽닭이 첫울음을 울 때’로 정하고, 서로 반칙하지 않도록 각각 감시 인원을 상대 진영에 파견하기로 했다.

양국의 준비 과정은 대부분 비슷했으나, 약간의 작전 차이가 승패를 크게 갈랐다. 당연히 두 나라는 자기 진영에서 가장 건강하고 발이 빠른 말들을 골라 잘 먹이고 훈련시켰다. 또 가장 꼼꼼하고 까다로운 자를 감시원으로 파견했다. 그런데 출발 신호를 알릴 수탉은 달랐다. 시에나는 흰 수탉, 피렌체는 검은 수탉을 고른 점도 달랐지만, 이 선수를 대하는 방법이 판이했다.

 

검은 수탉. (사진 = unsplash, Kevin Jin)

 

시에나는 젊고 건강한 닭을 골라서, 제 시간에 깨어 우렁차게 울 수 있도록 잘 먹이고 깨끗한 닭장에서 관리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줬다. 특히 경기 전날엔 가장 좋은 사료를 배불리 먹이고 잘 자게 했다.

반면 피렌체의 검은 수탉은 건강하지만 약간 늙고 사나운 성격이었다. 심지어 피렌체에서는 이놈을 좁고 어두운 우리에 가두고, 제대로 먹이지 않은 데다 경기 전날엔 아예 아침부터 굶겼다.

배불리 먹고 잘 잔 시에나의 젊은 흰 수탉의 목청은 확실히 아름답고 우렁찼다. 다만 이 녀석은 너무 포만감을 느끼고 기분 좋게 숙면하는 바람에 경기 당일 평소보다 느긋하게 깨어나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울기 시작했다.

 

반면 피렌체의 검은 노계는 누적된 불편과 피로로 한껏 예민해진 데다가 전날 쫄쫄 굶은 탓에 악이 받쳐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이 틀 기미도 보이기 전부터 목에 울대와 핏대까지 세우고 신경질적으로 울어 젖혔다.

당연히 피렌체의 기사들이 훨씬 먼저 출발했고, 훨씬 멀리까지 달려가 말이 지칠 무렵에야 상대를 만났다. 시에나의 말들은 여전히 쌩쌩한 채로 걸음을 멈춰야 했고, 기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피렌체는 규칙을 어기지 않고도 시에나보다 세 배나 넓은 땅을 차지했다. 전략적 요충지이자 훌륭한 와인 산지인 키안티 지역은 대부분 피렌체의 휘하에 들어갔고, 이날의 영웅인 검은 수탉은 피렌체가 키안티에 주둔시킨 군부대의 휘장에 새겨졌고, 훗날 지역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시에나는 결국 1555년에 멸망하며 피렌체에 흡수됐다.
 

캠핑의 밤. (사진 = 윤지원 기자)

 

캠핑에서 새벽닭은 ‘재난’

피렌체에서 닭의 울음은 이처럼 영광스러운 의미로 남았다. 반대로 시에나에선 지금도 닭 우는 소리가 떠올리기 싫은 패배감을 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키안티 클라시코 생산자들에게는 이 검은 수탉이 매출을 올려주는 고마운 상징일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캠퍼에게 새벽닭은 재난 그 자체다. 캠퍼들에게 ‘캠핑에서 가장 만나기 싫은 짜증 요인’을 묻는다면, 시끄럽고 배려심 부족한 이웃이 부동의 1위고, 2위가 아마 캠핑장 인근에서 새벽에 울어대는 수탉 또는 대형견이 꼽힐 것 같다. 캠핑에서 이런 ‘소음’ 유발자는 예보 없이 내리는 비보다, 기울어진 바닥보다, 청소 상태가 나쁜 화장실보다 더 싫다.

동틀 무렵 우는 수탉이라면 그나마 “나는 괴롭지만, 원래 이맘때 우는 건 너의 본성이니 어쩌겠니” 하며 이해한다 치자. 하지만 피렌체의 검은 수탉처럼, 잠든 지 얼마 안 된 새벽 한두 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닭이 있다? 그날 잠은 다 잔 거나 다름없고, 다음날 수면 부족 상태에서 철수라도 해야 한다면 그 후유증이 며칠씩 가기도 한다.

이른 닭 소리에 잠 설치는 날엔 “널 굶긴 자가 대체 누구니?”라는 원망과 “차라리 아까 와인을 한 병 더 비우고 인사불성으로 뻗는 편이 나았겠다”는 후회만 든다. 그러고 보니 이날 두 번째 마신 와인이 ‘도그 포인트’였는데, ‘밤새 짖는 개’도 캠퍼에게 효과가 좋은 고문 방법이다. 요는 닭 소리, 개 소리에 대비하기 위해 세 병째 와인도 챙겨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그날 새벽 피렌체에서도 출발대기하던 기사가 아닌 일반 병사나 시민 중에는 “제발 잠 좀 자자”고 괴로워하며 나처럼 술을 생각하는 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숙면하는 와인’을 고안하고, 싸게 만들어 팔다가 훗날 키안티 와인으로 발전시킨 최초의 생산자가 된 것은 아닐까?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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