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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조는 왜 어머니 회갑 잔치를 화성에서 열었나?

축제의 장이 된 한양과 화성 오가는 8일간의 어가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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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7호 안용호⁄ 2023.10.10 17:42:24

지난 10월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인근에서는 하늘에서 ‘불꽃 비’가 쏟아져 내리는 아름다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10만여 발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을 때마다 환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023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린 이날 저녁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온 관람객은 무려 100만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무료 초대권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고가에 거래될 정도였다니 축제의 인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게 합니다.

본격적인 엔데믹과 가을을 맞아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그동안 코로나19 탓에 수년간 축제 없는 메마른 일상을 보내다 다시 열린 축제의 시대가 반갑기만 합니다.

축제의 기원은 종교적 의식이나 제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숙해야 할 제사는 뜻밖에 ‘놀이’의 성격을 띤 축제와 공존합니다. 문화학자인 하위징아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제의와 놀이 그리고 축제는 근본적으로 매우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즉, 일상적 생활의 공간에서 벗어나 ‘생활의 정지’라는 공통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얘기죠. 예나 지금이나 바쁜 일상을 멈춘다는 것 자체가 축제요, 휴식인 셈이죠.

이번 호 문화경제는 축제의 시대를 다시 맞아 이를 마케팅으로 연결하는 기업들의 축제 마케팅을 다룹니다.

먼저 백화점들은 매장을 미술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올가을, 예술작품을 활용한 시즌 VM(Visual Merchandising, 시각 판촉)을 내세웠는데요. 앤디 리멘커, 아방, 카아민 등 일상 속 아름다움을 표현한 아티스트 3명의 예술작품을 활용해 11월 2일까지 백화점 내·외부를 연출합니다. 현대백화점은 무역센터점 10층 문화홀에서 ‘슈퍼콜렉터전’을 열고 조지 콘도, 요시토모 나라, 사이 톰블리, 엘즈워스 켈리 등 세계 슈퍼콜렉터들이 주목하는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더현대 서울 ‘알트윈’에서는 이우환, 박서보 등 한국현대미술 거장 6인의 아름다운 선물전‘이 열렸습니다. 최근 프리즈 서울의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기도 했던 신세계백화점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안드레이 사라이바‘와 아트 마케팅을 전개하며 예술 축제를 매장에서도 이어갔습니다.

게임 세계에서만 고객을 만났던 게임사들은 축제를 통해 직접 유저들을 만납니다. 특히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팬 페스트, 던전앤파이터 심포니, 용인 한국민속촌에서의 ‘바람의나라: 연’ 등을 개최해 게임 유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게임 속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이벤트 존과 게임 음악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콘서트, 게임의 전통적 상징성을 민속촌을 통해 구현한 민속촌 컬래버가 눈길을 끌었죠.

축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자체입니다. 서울 노원구는 올해 과거 탈축제를 ‘노원거리 페스티벌 댄싱노원’으로 확대·발전시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롯데백화점 노원점에서 순복음교회 앞까지 555m구간에서 열린 ‘댄싱노원’은 15만 명 이상이 참가해 밤늦도록 춤과 음악을 즐겼다고 합니다.

금융사도 빠질 수 없습니다. 지난 2019년 슈퍼콘서트를 개최했던 현대카드는 ‘다빈치모텔’이라는 문화 프로젝트로 축제에 가세했습니다. 이효리를 비롯한 정상급 뮤지션과 배우, 스포츠·NFT·경제·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태원 일대에 총출동해 시민들과 소통했습니다.

이런 축제를 통해 기업들은 참가자(고객)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유도합니다. 축제의 공간이 제공하는 일탈적 경험과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기업과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알리는 거죠. 그런 점에서 기업의 축제 마케팅은 목적이 분명합니다.

화성 행차 행렬에 구름처럼 모여든 백성들. 그림=유튜브 채널 'KBS역사저널 그날' 영상 캡처

재밌는 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도 축제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높였던 왕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궤, 8일간의 축제’(KBS 의궤, 8일간의 축제 제작팀 저, 민음사)에 따르면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한양이 아닌 화성에서 치르기로 합니다. 이 책은 출발에서 돌아오기까지 총 8일간의 여정을 꼼꼼히 다루고 있습니다.

6천 명에 달하는 수행원은 1킬로미터가 넘는 행렬을 이루었고 어가 행렬을 보기 위해 수많은 백성이 몰려들었습니다. 책은 백성들은 천막을 치고 술을 팔고 담소를 나누며 구경했다고 전합니다. 어가 행렬과 이를 구경하는 백성들이 어우러져 한판 거나한 축제가 벌어진 것이죠.

어가 행렬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정조는 숭례문의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길을 골라 행차했으며 구경꾼이 몰려들어도 쫓아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들을 직접 만나 127건의 고충을 해결해 주었답니다. 정조야말로 소통의 중요성을 이해한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치도 여야 간 대립과 싸움 대신 이런 축제의 정치가 되었으면 합니다. 서로를 비방하는 확성기 소리 대신 웃음과 노래가 광장에 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 정조가 백성들을 위해 준비했던 소통과 흥이 있는 8일간의 축제처럼, 스웨덴의 정치 축제 ‘알메달렌 주간’처럼 정치인·기업인·시민단체·국민이 만나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하고 춤추는 진짜 축제를 기다려 봅니다.

관련태그
축제마케팅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의궤8일간의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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