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이 더 흥겹게 들리는 크리스마스이브. 이곳 명동 거리에는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성탄 전야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이 시간에도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산타 모자를 쓴 젊은이도 눈에 띄고요.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연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며, 대부분의 극장이 매진 사태를 빚었습니다. 경제 사정이 나아져 주머니가 전보다 넉넉한 때문인지 성탄 선물 꾸러미도 한결 커지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 시민들의 함박웃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상상 속 얘기가 아니다. 90년대 후반 TV 뉴스의 실제 멘트들이다. 요즘과는 사뭇 다른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왜 요즘 크리스마스는 옛날처럼 흥겹지 않을까? 길거리 가판대들이 사라져 캐롤이 들리지 않기 때문일까? 기자가 나이를 너무 먹어서일까? 아이들이 과거 성탄선물세트로 받았던 과자나 케이크를 평소에도 충분히 먹고 있어서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설명해줬다. “그땐 뭐 신나는 게 많지 않았던 시대잖아. 그러니 12월만 되면 크리스마스 핑계로 분위기 띄우며 잠시 시름을 잊었던 거지. 그에 비하면 요즘은 매일이 크리스마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이 즐길거리가 많고, 애키우는 부모 아니라면 산타 노릇할 일도 없다보니, 그저 커플들과 숙박업계에게만 의미있는 날이 된 거지.”
어쩌면 그의 말처럼 과거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북미, 남미처럼 크리스트교 문화 전통이 깊이 뿌리내린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방 선진국들에서도 크리스마스 열기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경제 성장과 개인주의 성향의 증대가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기자처럼 과거의 크리스마스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정부와 지자체는 연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다양한 조형물을 배치하고, 이벤트를 준비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노력하는 곳은 유통채널, 특히 대형 백화점들이다.
문화경제는 그간 다소 지루해진 감이 있던 크리스마스 시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네온사인, 전광판, 크리스마스 트리는 물론 수많은 전시와 이벤트를 잔뜩 준비하고 있는 백화점들의 노력을 현장 스케치로 담았다.
현대백화점은 ‘환상적인 서커스’를 테마로 영화 속 서커스장을 방불케하는 연출을 선보이고 있으며, 롯데백화점은 ‘원더풀 쇼타임’을 테마로 예년보다 직관적이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준비했다. 신세계백화점은 ‘크리스마스의 순간들을 찾아서’라는 테마로 마법같은 크리스마스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배웅하는 송년의 시기를 맞아 ‘기업들의 문화향유 공간’ 특집을 마련했다.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을 후원하기 위해 여러 기업이 만들어 운영해온 다양한 문화공간을 소개하는 장이다.
먼저, 1편에서는 테헤란로를 대표하는 예술 공간으로 자리잡은 ‘포스코미술관’의 여러 전시를 소개한다. 포스코미술관은 1995년 포스코갤러리로 개관, 1998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1종 미술관으로 정식 등록한 이래 포스코그룹의 기업 미술관으로서 꾸준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2편 ‘금융사의 다채로운 문화공간 기획 실험에서는 신한은행의 신한갤러리, 하나은행의 하나아트뱅크, 현대카드의 ‘스토리지’, IBK기업은행의 산업단지 공공미술 프로젝트 ‘IBK예술路 2호’, KB국민은행의 ‘갤러리뱅크’ 등 여러 금융기업이 마련한 문화예술 공간을 소개한다.
마지막 3편에서는 대림문화재단의 ‘디뮤지엄’ 개관 10주년 전시를 통해 집과 건축에 녹아든 예술을 소개한다.
뜬금없는 대통령의 폭주로 한국 사회가 충격을 받았고, 당분간 힘든 나날들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런 때일수록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가족들과 함께 백화점을 둘러보며 한껏 달아오른 성탄 분위기를 느껴보거나, 기업들의 문화공간을 찾아 혼란한 마음을 추스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