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2호 김금영⁄ 2025.03.18 09:20:18
“무섭다”, “기괴하다”, “어렵다”. 실제로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흔하게 보이는 반응이라 한다. 하지만 그만큼 더 이끌리고,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의 작품이 리움미술관을 찾았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공간을 던져놓다
1962년 파리 출생인 피에르 위그는 전 세계의 다양한 전시를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소개해 왔다. 이번엔 한국이 무대다. 작가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국은 처음인데, 전시 준비하느라 미술관 밖에 거의 나가질 못했다. 미술관과 호텔만 왕복했다. 서울에서 다른 도시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긍정적인 기운을 느꼈다”고 한국에 대한 인상을 전했다.
이번 전시는 피노 콜렉션의 베니스 소재 푼타 델라 도가나와 협력했다. 작가는 지난해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에서 ‘리미널(liminal)’ 전시를 가진 바 있다. 동명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 연장선상에서 신작까지 아우르며 더 깊이 그의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작가는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는 미로 같은 긴 공간이고 계단이 많아 작품 간의 단절이 있었다”며 “반면 리움미술관은 두 공간이 모두 탁 트인 공간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타고 올라오는 공간 자체가 순환적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의 건축적 한계로 불가능했던 순환성이나 유기적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전시를 구성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차이점을 밝혔다.
전시를 기획한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은 “미술관의 올해를 여는 첫 전시 작가로 피에르 위그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서 ‘리미널’, ‘카마타’, ‘이디엄’ 등 작가의 신작도 소개하는데, 리움미술관이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전시명인 리미널은 작가에게 ‘생각지도 못한 무엇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뜻한다. 그렇기에 그는 늘 한계를 깨부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제시한다. 불가능한 것, 있을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상상하고 시각화할 수 있을지,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의존적 관계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 이 질문들이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다.
김성원 부관장은 “작가는 인간 중심으로 구축돼 있는 세계에서 이를 비틀고, 현 시대에서 비인간이라 부류되는 존재까지 시야를 넓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며 “이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한정돼 있던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의 모습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의 작업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실제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현실을 상상하게 하는 사변적 사고를 기반으로 이뤄지기에 이에 익숙하지 않는 관람객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진입 장벽을 느끼기도 한다”며 “하지만 그의 작업에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이건 무엇을 말하는 거지?’, ‘이건 도대체 뭐지?’ 등 여러 질문이 전시장에서 만들어지고, 이에 대해 스스로의 답을 상상하는 자리가 이번 전시의 취지”라고 말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누비는 존재들
그의 말처럼 전시는 예측 불가한 상황 속 전개된다. 일단 전시 시작 지점엔 출산 직전 임산부의 배를 캐스팅한 작업이 설치됐다. 아직 세상에 온전하게 존재하기 이전의, 인간과 비인간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존재를 통해 무언가가 돼가는 과도기적 상태를 보여주며, 전시 또한 이 지점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전시장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칠흑 같은 어둠이 이어진다. 보통 어두운 전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져 당황스러워 두 손을 허공에 휘젓기도 했다.
김성원 부관장은 “전시장에 들어서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어둠의 공간이 서서히 익숙해진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낯설고 두렵기도 하지만, 시야와 마음을 넓히면 더 넓은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대표적 특징이다.
또한 작품은 단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과 상호 작용하며 끊임없이 예측 불가하게 변화한다. 대표적으로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인 ‘리미널’ 영상엔 얼굴 없는 인간 형상이 등장하는데, 이 형상의 움직임과 시선은 센서가 포착한 환경 조건과 인공 신경 조직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형상은 전시 공간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외부 데이터를 학습하고 기억을 쌓아간다.
또 다른 대형 영상 작품 ‘카마타’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우연히 발견한 인간 해골을 중심으로 신비로운 의식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전시 공간의 센서가 지속적으로 출력되는 이미지를 수정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수수께끼 같은 의식이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김성원 부관장은 “영상은 시각과 끝이 없는 형태로 계속해서 편집된다”며 “전시 기간 내내 단 한 장면도 반복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전시장 곳곳엔 황금색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디엄’은 AI(인공지능)에 의해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언어로, 이들이 착용한 마스크에 달려 있는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특정한 구문과 음소로 변환해 들려준다. 이로 인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말로 표현할 수 새로운 무언가로 바뀌고, 이들의 존재는 낯선 다른 현실에서 온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휴먼 마스크’는 후쿠시마 주변 핵 배제 구역을 배경으로 버려진 도시 속 한 식당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이곳에 어린 소녀의 얼굴 가면을 쓴 원숭이가 식당에서 일할 당시 배운 동작들을 인형처럼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 모습은 지시와 본능, 우연과 필연 사이를 오가며 현시대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쓰고 있는 ‘인간’이라는 가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에 놓인 세 수족관 ‘주드람 4’, ‘주기적 딜레마’, ‘캄브리아기 대폭발 16’은 광활한 시대의 한계를 넘어 현재도 진화하고 있는 세계 그 자체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캄브리아기 대폭발 16엔 5억 4000만 년 전 출현한 고대 두 종이 살고 있다. 원시 상태 이후 살아있는 화석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본능은 현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전시장 안에서도 진화를 거듭한다.
작가는 본인의 작업에 대해 “나는 이야기의 형태가 선형성을 벗어날 때 흥미를 느낀다. 역사를 넘어선 서사 밖의 허구에 관한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혼돈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능성의 투영”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시아에서 첫 전시를 리움에서 할 수 있게 돼서 기쁘게 생각한다. 내 작업이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것이라 그 반응이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내비치며 “내 작업은 인간존재론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이고 그 원형에 대한 탐구다. 나는 전시가 이것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원 부관장은 “피에르 위그는 지금 시대보다 10년을 앞서가는 작가라 생각한다. 작가의 최근 작업은 기존 인간 개념과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현실, 인간 이후와 인간 바깥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작가의 이런 상상이 감각적으로 시적으로 전환되며 관람객에게 강렬한 인상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보테가 베네타는 리움미술관과의 두 번째 파트너십을 이어가며 올해 첫 전시인 피에르 위그의 개인전을 후원한다. 또한 이번 전시 속 이디엄 작품을 위해 작가와 협업해 의상을 제작했다. 전시는 리움미술관에서 7월 6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