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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증오와 폭력의 언어, 조금만 수위를 낮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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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93호 정의식⁄ 2025.04.08 11:23:40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혼란과 대립, 갈등과 요설이 난무했던 4개월이 마침내 일단락됐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검찰 출신 대통령의 반헌법적 계엄령 선포가 시민과 군인, 국회의 반격에 의해 1차적으로 무산되고,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 결정이 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험난한 여정은 일단 최악의 엔딩을 피한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헌재의 판결로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됐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윤석열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친윤 지도부’가 건재한 국민의힘은 그의 탈당이나 징계를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60일 후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명예회복’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지자들 역시 승복보다는 ‘헌재 파괴’를 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듣게 된 지인의 경험담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정치의 폐해를 실감나게 했다. 경북 지역 산촌에 귀농해 10년이 넘게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온 그는 최근 헌재의 탄핵 판결 이후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 드러낸 생경한 증오의 언어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4월 4일 오전, 서울의 광장과 거리에서 탄핵 찬반 시위대가 각기 환호와 탄식을 보이던 그 시간, 이 지역에서는 마을 경로당에 모인 노년층 주민들이 입을 모아 “재판관들이 다 빨갱이들이다” “다 죽여버려야 한다” 등 극단적인 언어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는 것.

그는 “정치 갈등이 심각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이웃인데 지지정당이 다르다고 ‘다 죽여야 한다’고까지 말할 줄은 상상치 못했다”며 “왜 이렇게 극단적 언어로 같은 국민을 증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체 어떤 요인이 이들의 감정을 이토록 극단적인 증오와 분노로 가득차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한국 사회의 오랜 정치 대립 구도와 지역적 특성, 교육 수준, 연령적 특성, 종교 등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은 이들의 주요 정보획득 통로인 종편(종합편성채널)과 극우성향 유튜브 채널의 악영향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가장 즐겨보는 이 채널들이 연일 과격한 언사와 가짜뉴스로 상대 진영과 지지자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 성향의 언론사나 유튜브 채널이라해서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표현 수준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다. 이를테면 탄핵 찬성측 집회에서 주로 “처벌하라” “파면하라”의 구호가 나온다면, 탄핵 반대측 집회에서는 “처단하자” “죽이자” 등의 구호가 나오는 식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차이를 “단순히 표현의 강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의미 아니냐”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는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양 날개지만, 극단성과 폭력성을 띠면 극우와 극좌가 된다. 말로 하는 싸움과 주먹질로 하는 싸움, 무기를 든 싸움이 같은 범주가 아니듯, ‘처벌’과 ‘처단’은 비슷해 보이지만, 하나는 법치에 근거한 용어이며, 다른 하나는 범죄와 테러를 의미한다.

개인간의 사소한 말다툼에서도 욕설과 폭력이 나오면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각 정당의 지지자들 역시 상대 진영에 대한 표현의 수위를 조금만 낮춰보는 건 어떨까? 증오와 폭력의 언어가 아닌 비판과 경쟁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극심한 대립이 조금은 완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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