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구⁄ 2025.06.11 16:25:18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국내 와인 수입액은 2022년 5억8128만달러(약 7914억원)에서 2023년 5억602만달러(약 6889억원), 2024년 4억6211만달러(약 6292억원)로 해마다 줄고 있다. 재작년 대비 작년엔 약 8.7% 감소했다.
와인 수입 물량도 감소 추세다. 팬데믹 시절인 2021년엔 역대 최대인 7만6575t(톤)을 기록했지만, 2023년 5만6542t에서 2024년 4만6990t으로 뚝 떨어졌다. 재작년과 비교했을 때 작년에 16.3% 줄어들었다.
그러나 화이트와인만은 예외다. 2023년 대비 2024년 수입량은 12.6%, 수입액은 9.8% 증가했다. 올 1분기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늘었다. 같은 기간 레드와인은 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국무역협회(KITA)의 자료도 비슷하다. 전체 와인 가운데 화이트와인의 시장 점유율은 2023년 18%였지만, 2024년 1~11월 21%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레드와인은 55%에서 52%, 스파클링와인은 21%에서 20%로 줄었다. 와인 중에선 화이트와인만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였다.
과거 국내 와인 시장은 레드와인이 주름 잡았다. 하지만 가벼운 맛에 낮은 알코올도수, 무엇보다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화이트와인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하이트진로가 지난달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탭샵바’에서 자사의 화이트와인을 알리기 위한 B2B(기업 간 거래) 행사를 열었다. 재작년 이후 2년여 만에 준비한 와인 전시·시음회다. 이날에는 화이트와인 58종, 레드와인은 1종이 소개됐다.
이 자리에선 ‘슈냉 블랑 마스터 클래스’도 열렸다. 슈냉 블랑(Chenin Blanc)은 하이트진로가 취급하는 화이트와인 중 소비자 관심도가 꽤 높은 와인이다. 진행은 하이트진로 조민희 와인 앰배서더가 맡았다.
슈냉 블랑, 프랑스 루아르 지역서 시작
미국 주류 전문매체 ‘와인과 스피릿(Wine & Spirits)’에서 선임 편집장을 지낸 타라 토마스(Tara Q. Thomas)는 자신의 저서 ‘와인 101’에서 슈냉 블랑을 “산도(酸度)가 높고, 꽃향기와 함께 멜론·오렌지 등 가벼운 과일 향이 난다. 더불어 라놀린(Lanolin·양털에서 추출하는 오일)이나 건초·밀랍 냄새도 나는 묘한 매력의 와인”이라고 소개했다.
슈냉 블랑의 원산지는 프랑스 루아르(Loire) 지역이다. 루아르 밸리(valley)의 서쪽 끝은 슈냉 블랑의 본고장이다. 17세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전파됐는데, 지금은 주요 산지가 됐다. 남아공에선 슈냉 블랑을 ‘스틴(Steen)’이라고도 부른다. 그 외 미국·호주·뉴질랜드에서도 소량 재배한다.
프랑스의 슈냉 블랑을 알려면 앙주(Anjou), 소뮈르(Saumur), 사브니에르(Savennieres), 부브레(Vouvray) 지역을 기억해야 한다. 앙주와 소뮈르의 슈냉 블랑은 가볍고 깔끔하며, 사브니에르와 부브레의 그것은 산미가 있고 퀸스(quince) 향이 난다.
남아공은 어디에서나 슈냉 블랑을 재배하고 스타일도 여러 가지다.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비된다. 타라 토마스에 의하면 10달러 이상의 슈냉 블랑은 루아르 스타일과 견줄 만하다. 조민희 앰배서더는 “크게 보면 남아공이 루아르보다 좀 더 열대과일의 완성미가 있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포도 재배학자 피에르 갈레(Pierre Galet)는 9세기경 루아르 앙주(Anjou)에서 시작된 슈냉 블랑이 15세기경 투렌(Touraine) 지역에 전파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워낙 오래전 일인 데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그저 유추할 뿐이다.
조민희 앰배서더는 투렌의 몽 슈냉(Mont Chenin) 지역에 슈냉 블랑이 심어지면서 당시 이 지역의 이름을 따 (포도품종 이름을) 지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보탰다.
양조의 유연성, 뛰어난 떼루아의 표현력
클래스는 ‘왜 슈냉 블랑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 대답은 세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양조의 유연성. 다양한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스파클링와인, 드라이와인, 오프드라이(off-dry)와인, 스위트와인, 디저트와인까지 폭넓은 양조 스타일이 가능하다.
둘째, 떼루아(terroir)의 표현력이 뛰어나다. 여러 품종 중에서도 떼루아 자체의 반영력이 높아, 같은 원산지통제명칭(AOC) 내에서도 스타일이 세분화되는 특징이 있다.
셋째, 재조명받고 있는 글로벌 품종이다. 전통 산지인 프랑스와 신흥 혁신 산지인 남아공 모두에서 품질의 잠재력과 표현력을 재발견해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날 슈냉 블랑 와인으로 모두 네 가지가 소개됐다. 맨 처음 남아공 와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가지가 프랑스산이다.
첫 번째 와인은 ‘스와틀랜드 프라이빗 컬렉션 슈냉 블랑 2024’다. 슈냉 블랑 100%로 만들었고, 알코올도수는 13.5도다. 스와틀랜드는 지역 이름이면서 와이너리 이름이기도 하다. 와인은 투명하고 연한 노란빛을 띤다. 청사과와 감귤류의 향이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론 무척 산뜻한 느낌이었다. 입안에선 복숭아 맛도 느껴지고, 피니시(뒷맛)가 오래가는 편이다.
참고로 스와틀랜드 와이너리는 남아공 와인협동조합 소속 조합원(재배자)들이 모여 만들었다. 처음에는 영세 와인 메이커들을 도우며 함께 발전하자는 목적이었지만, 점점 그 뜻이 변질되면서 조합에서 탈퇴한 와인 메이커들이 따로 만든 와이너리다. 이곳에선 슈냉 블랑을 집중적으로 생산한다.
두 번째로 맛본 와인은 루아르 앙주 지역의 ‘도멘 데 아르디에 앙주 블랑 레 쁘띠 갸르(Blanc Les Petits Gars) 2021’이다. 스테인리스와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숙성 기간은 6개월이다. 알코올도수는 13.5도. 약간의 노란색을 띠는 금빛 컬러다. 신선한 감귤류 풍미가 주로 느껴지는데, 잘 익은 복숭아나 살구 느낌도 살아있다.
‘도멘 데 아르디에(Domaine des Hardieres)’는 교과서 같은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다. 23㏊(헥타르) 규모에 평균 수령 30년 이상의 포도나무를 보유하고 있다. 떼루아를 최대한 존중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유기농 와인을 생산한다.
금빛 컬러에 상큼한 감귤류 아로마 인상적
세 번째는 루아르의 ‘프레데릭 마빌로 슈냉 밀 혹(Mille Rocs) 2022’다. 천연 효모만으로 발효한 후 오크통에서 12개월간 숙성시킨다. 알코올도수는 12도. 연간 생산량은 6000병.
유기농 생산자 프레드릭 마빌로(Frederic Mabileau)는 카베르네 프랑의 세계적 명성을 이끈 인물이다. 유기농과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살아있는 토양’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2020년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현재 그의 가족이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인은 연둣빛이 살짝 도는 금빛 컬러다. 상큼한 감귤류의 아로마가 인상적이다. 맛을 보면 슈냉 블랑이 본래 지닌 청사과나 감귤류는 물론 오렌지껍질이라든지 유자 같은 풍미를 좀 더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은 루아르의 ‘샤토 드 파르네 소뮈르 블랑 슈망 데 뮈르(Chemin des Murs) 2022’다. 알코올도수는 13.5도. 샤토 드 파르네(Chateau de Parnay)는 역사가 깊은 와이너리다. 중세 시대인 10~11세기에 시작했다.
조민희 앰배서더는 “오래전 필록세라(Phylloxera·병충해)가 창궐했을 때 포도나무들이 질병 저항성을 갖도록 노력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샤토 드 파르네의 일원이었고, (그런 공을 인정받아) 소뮈르시(市)로부터 훈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와인은 완벽하게 잘 익은 슈냉 블랑임을 보여주듯 짙은 금빛을 띤다. 코에선 라임·살구·복숭아 풍미와 함께 오렌지나 레몬 같은 감귤류 계열이 느껴진다. 조민희 앰배서더는 “청사과나 캐모마일도 느껴지지만 약간의 꿀 뉘앙스가 있다”고 보탰다.
와인 생산량은 매우 적다. 그런 만큼 가격대가 센 편이다. 오크통에서 12개월간 숙성하며, 연간 생산량은 1만5000병 정도다.
참고로 이 와이너리의 ‘샤또 드 파르네 끌로 덩트르 레 뮈르(Clos d’Entre les Murs)’는 슈냉 블랑 품종의 최고급 와인인데, ‘벽을 뚫고 자라는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이 포도나무는 북쪽의 서늘하고 축축한 토양에 뿌리를 두고 벽 구멍을 통해 자라면서 남쪽의 열기를 받는다. 이런 재배 방식은 포도가 최적으로 성숙하는 데 도움을 준다. 2011년 1월 포도밭으론 드물게 ‘바띠멍 드 프랑스(Batiments de France·프랑스 국가건축물)’로 지정됐다.
남아공 스와틀랜드 슈냉 블랑 3종 ‘주목’
하이트진로는 지난 3월 남아공 스와틀랜드 와이너리의 슈냉 블랑 와인 3종을 출시했다.
스와틀랜드 와이너리는 1948년 스와틀랜드에 설립됐다. 1977년에는 지역 최초로 벌크 와인 대신 병입 라인을 구축해 고품질 와인을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 3600ha(헥타르)에 이르는 포도밭에서 가장 좋은 포도만으로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3종 모두 슈냉 블랑 100%로 만들었다. 뜨겁고 건조한 기후가 만들어낸 농축미 있는 와인들이다.
‘스와틀랜드 부쉬 바인(Bush Vine) 슈냉 블랑’은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와인이다. 스와틀랜드 특유의 농축된 열대과일 향이 특징이다. ‘스와틀랜드 프라이빗 컬렉션(Private Collection) 슈냉 블랑’은 과실 맛이 길게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스와틀랜드 파운더스(Founders) 슈냉 블랑’은 누구나 마시기 쉬운 맛에 가격도 괜찮은 가성비 와인이다. 식전에 먹는 에피타이저류와 잘 어울린다.
하이트진로 유태영 상무는 “남아공의 슈냉 블랑은 영국 와인 시장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라며 “스와틀랜드 와이너리의 슈냉 블랑 3종으로 트렌드에 발맞춰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