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9.26 09:19:31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은평구가 주최한 제9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본상에는 현기영 작가, 특별상에는 김기창 작가가 각각 선정됐다. 이날 두 수상자는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자신의 문학세계에 관해 설명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은평구 불광동에서 50여 년 동안 작품활동을 해온 통일문학의 대표 문인 고 이호철 작가의 문학 활동과 통임 염원의 정신을 기리고 향후 통일 미래의 구심적 활동을 지향하고자 2017년 은평구에서 제정한 문학상이다.
제9회 수상 작가는 문학, 학술, 언론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운영위원회와 본상 선정위원회에서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총 9회에 걸쳐 공정하고 면밀한 심사를 진행한 끝에 선정했다.
본상 수상자 현기영 작가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작가로 1941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직접 겪은 제주 4·3 사건과 제주 지역의 역사적 비극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현기영 작가는 “제주 4·3 사건은 수난과 항쟁이라는 양면이 있다. 나는 주로 수난에 집중했다. 제주도민 1/10에 해당하는 3만 명의 양민이 희생됐다. 그래서 항쟁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통해 수난을 극대화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현기영의 작품은 분단, 억압, 저항, 기억과 같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들을 깊이 탐구하며, 제주 4·3 사건의 참혹한 비극을 생생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 그의 문학은 억압과 폭력 속에서도 민중의 삶과 저항 정신을 진솔하게 복원하며, 역사적 진실을 문학적으로 회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제9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 선정위원회는 이러한 문학적 가치와 의의를 현기영 작가의 작품에서 확인하고 그를 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의 의미와 관련해 현기영 작가는 “통일 문제가 지금은 거의 이상이 되었다. 젊은이들 중에는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오랜 역사를 공유한 한민족의 분단 상황이 어디까지 가야 하나 고민이다. 문학이 통일의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화해로 간 다음 공존하면서 마지막 단계에서 통일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라고 전했다.
고 이호철 작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할 때 이호철 작가가 심사위원이었다. 그때부터 교류했고, 등산도 같이 가며 추억을 쌓았다”라고 전했다.
현기영 작가는 1975년 단편소설 「아버지」로 등단한 후, 1978년 발표한 소설 「순이 삼촌」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50년 동안 제주와 민중의 삶, 그리고 역사적 상처를 치열하게 그려왔다.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제주도우다』는 그의 문학적 역정의 집대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별상 수상자 김기창은 1978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나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논술 강사와 객원 기자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삶의 층위를 관찰해 왔다. 2014년 소설 『모나코』로 제3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방콕』,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그리고 2024년 발표한 『마산』까지 사회적 약자와 주변부의 삶, 기후·이주·불평등 등 동시대 문제를 문학적 상상력과 섬세한 묘사로 깊이 탐구해 온 한국 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김기창은 심각한 주제를 유쾌하고 해학적인 문체로 풀어내면서도, 『마산』을 통해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제9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운영위원회는 그의 참신한 서사 구성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도 한국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해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김기창 작가는 “마산을 떠난 20대에 서울로 올라와 처음 정착한 곳이 은평구이다. 그래서 더 기쁘다. ‘마산’이라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지방 소멸이다. 20대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어릴 적 자랄 때 받았던 호황의 느낌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닌데 고향을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두 작가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견해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먼저 현기영 작가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국인이 양분되고 음모론이 진실처럼 유통되는 상황이다. 언론이 잘해야 하고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교 교육이 가르쳐야 한다. 제주 4.3사건과 같은 역사는 이제 젊은 작가들의 몫이다. 나는 이제 문학을 떠나 강연에 집중하고 에세이를 통해 내가 태어난 자연에 밀착한 글을 죽을 때까지 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기창 작가는 “K문학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번역가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앞으로 장르 문학에 집중하며 작품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를 고민할 것이다. 자연과의 갈등, 기후 문제도 다루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은평구는 이호철 작가의 뜻을 기리며 통일의 가치를 계승하는 지역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를 통해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이 문학상이 평화와 화합의 가치를 우리 주변에 확산시키고, 문학인들의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국문인회 은평지부 회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은평구 진관동에는 2026년 하반기에 국립한국문학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한편, 은평구는 26일 시상식 및 본상·특별상 수상 작가와의 만남’을 개최한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