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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새로 개관하는 대만 타이중미술관에서 대형 ‘우주나무’ 커미션 신작 공개

고목 숭배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지역과 문화를 초월한 자연을 향한 영적 신념에 경의 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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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안용호⁄ 2025.12.15 18:51:10

〈유동 봉헌 – 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 – Tree Shade Triad〉, 2025.
Aluminum venetian blinds, powder-coated aluminum hanging structure,
steel wire rope, LED tubes, laser lighting, SMPS, wireless module, cable
2,362 x 1,086 x 1,086 cm
사진: ANPIS FOTO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현대미술가 양혜규는 새로 개관하는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 내 타이중미술관에서 대만에서의 첫 대형 커미션이자 블라인드 신작 〈유동 봉헌 – 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 – Tree Shade Triad〉(2025)을 공개한다.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는 2025년 대만에서 진행되는 가장 중요한 문화 인프라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지난 12월 13일 개관했다. 대만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타이중에 위치한 이 ‘뮤지엄브러리Museumbrary’는 그 명칭이 시사하듯 타이중미술관Taichung Art Museum과 타이중공공도서관Taichung Public Library을 결합해 독서, 전시, 문화 활동이 공존하는 포용적인 공간을 조성, 예술 기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는 2010년 프리츠커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과 2025년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 (RIBA) 로열 금메달을 수상한 일본의 세계적 건축 사무소 SANAA가 설계 및 디자인을 맡았으며, 슈이난 무역경제 생태공원Shuinan Trade and Economic Park, 臺中水湳經貿生態園區 내 중앙공원 북쪽, 옛 군용 비행장 부지 위에 건립되었다.

 

여덟 개의 건물이 경사로형 연결동선으로 이어지는 SANAA 건축 특유의 유동적 구조는 관람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공간을 탐색하도록 유도한다. 높은 층고와 넓은 면적의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은 투명하게 내외부를 연결하며 문화, 예술, 자연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드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순백색의 알루미늄 익스펜디드 메탈 메시aluminum expanded metal mesh 소재의 외벽으로 특유의 가벼움과 투명성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건축적 요소들은 “공원 속 도서관, 숲 속 미술관”이라는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건축물과 자연, 그리고 이용자들이 조우하는 열린 환경은 유기적이고 상호 연결된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낸다.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 내에 위치한 타이중미술관은 매 2년마다 ‘타이중미술관 아트 커미션TcAM Art Commission’을 선보인다. 본 커미션은 건축물의 시각적 투명성과 유기적 동선을 적극 반영하는 등 주변 환경과 조응할 뿐만 아니라 공공미술관의 정체성과 공명하며 지역의 생태·문화적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양혜규는 대만 출신 작가인 마이클 린Michael Lin과 함께 미술관의 개관을 기념하는 첫 번째 커미션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이번 커미션 신작 〈유동 봉헌 – 삼합 나무 그늘〉(2025, 이하 〈유동 봉헌〉)은 양혜규 작가의 역대 블라인드 설치작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7미터 높이에 달하는 미술관 로비 공간과 이를 둘러싼 나선형 경사로에 맞춰 제작된 〈유동 봉헌〉은 신생 미술관의 비전과 건축적 특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지난 30여 년 간 작가는 감각적 설치, 신체적 조각, 한지 콜라주, 디지털 그래픽을 활용한 벽지 작업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특히 20년 이상 집중적으로 탐구해온 베네치안 블라인드는 움직임을 동반한 수행적 조각과 다감각적 설치작품에 자주 등장하며 작가의 대표적인 조형언어로 자리매김했다. 창문을 가리는 용도의 일상적 사물인 블라인드는 가볍게 부유하고, 공간 층위의 깊이를 더하며, 불투명과 투명성 사이의 유동적인 상태를 다루는 변형의 장으로 전환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재료가 지각, 감정, 집단적 경험을 매개하는 방식을 탐색한다.

 

〈유동 봉헌 – 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 – Tree Shade Triad〉, 2025, 타이중미술관 아트 커미션 전시전경, 대만 타이중미술관, 2025. 사진: ANPIS FOTO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ichung Art Museu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특히 〈유동 봉헌〉은 타이중에서의 충실한 현장 답사를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오래된 나무의 문화적 상징성에 대해 고찰한다. 작가는 한국과 대만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전해지는 고목 숭배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지역과 문화를 초월한 자연을 향한 영적 신념에 경의를 표한다. 동양의 민속 전통에서는 신성하고 거룩한 고목이 마을이나 공동체의 수호신으로 숭배되며, 나무 자체를 신격화하기도 한다. 이런 존재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한국의 당산나무, 일본의 신목神木, 인도의 보리수, 대만의 다수공大樹公 등이 있다. 그중 한국의 당산나무는 대부분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당산堂山 신당의 중앙에 위치하는데, 수직으로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수평으로는 사방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우주나무’로 여겨진다. 특히 밑동에 금줄과 백지, 청, 적, 백, 황, 녹색의 오색 비단 조각이 걸린 형태로 악령으로부터 보호되는 구역을 표시하는 당산나무는 외관상으로도 다른 나무와 쉽게 구별된다.

 

유동 봉헌 – 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 – Tree Shade Triad〉, 2025, 타이중미술관 아트 커미션 전시전경, 대만 타이중미술관, 2025. 사진: ANPIS FOTO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ichung Art Museu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양혜규는 이러한 고목의 상징적 의미와 의례적 장식 요소에 착안해, 이번 신작에서 빛을 유연한 형태로 다루는 실험을 처음 시도한다. 일반적으로 나무가 땅에 뿌리내린 형상인 것과는 달리 〈유동 봉헌〉은 천장에 매달린 나무로 구현된다. 높다란 건물 중앙에 거대한 신목이 공중에 떠 있는 듯 자리한 이 작품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구조로 설치된다. 짙은 녹색, 붉은색, 황갈색, 갈색 등 자연의 깊은 색채를 반영한 저채도의 블라인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밤에는 수직 및 유연하게 휘어지는 형태의 LED 조명과 반딧불이를 연상시키는 레이저 빛이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하며 나무에 생명감을 부여한다. 정교하게 조절되는 조명은 더욱이 낮과 밤에 서로 다른 효과를 자아내며 떠 있는 신목으로서 작품이 지닌 신비로움을 강조한다. 여러 문화권에서 공동체의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신적 유대의 장소로 여겨진 신성한 고목을 상징하는 〈유동 봉헌〉은 새로운 미술관의 중심에서 이러한 공동체적 유대감과 영적인 영향력을 실천하고 기원하며 공간을 활성화한다.

양혜규 작가 프로필 이미지. 사진: Chen Wan Ni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ichung Art Museu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타이중미술관의 관장 이-신 라이Yi-Hsin Lai는 “양혜규는 예술 작품과 건축적 공간의 관계를 탁월하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작가다. 〈유동 봉헌〉은 우아한 경사로로 이루어진 내부 공간뿐만 아니라 미술관이 지닌 자연적, 문화적 가치와 상호작용하며 관람객에게 고유한 예술적,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고 전했다.

타이중미술관 아트 커미션은 공공 프로젝트로서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동시에 국제적인 연계를 강화하는 예술 교류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풍부한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도시의 미술사적 특이성을 탐구하고 조명하며, 시간·위계·지역을 뛰어넘는 전시와 큐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적 담론 및 다층적인 대화의 장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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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양혜규  대만 타이중미술관  우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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