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6.01.30 19:51:56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전을 1월 30일(금)부터 5월 3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자신의 분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소개하는 전시이다.
우리는 통상 뛰어난 작품을 ‘불후의 명작’이라고 불러왔다. ‘불후(不朽)’는 ‘썩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전시는 훌륭한 작품이란 곧 변하지 않을, 혹은 영원히 변해서는 안 될 작품이라는 통념이 과연 동시대에도 유효한가를 묻는다. 그리고 인간을 넘어 다양한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삭히기로 마음먹은 작품들을 보여준다. ‘삭다’라는 우리말에 ‘썩은 것처럼 되다’와 ‘발효되어 맛이 들다’라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듯, 이 작품들은 분해됨으로써 비인간 존재와 공존하고 자연의 순환에 참여하고자 한다. 전시는 만일 이러한 작품의 변화를 미술관이 수용한다면, 그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와 같은 흥미로운 질문으로 관객을 이끈다.
전시를 기획한 이주연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의 시작을 이렇게 소개했다.
“미술관은 오랫동안 작품을 영원하게 보존하는 수장고 역할을 해왔고 위대한 작품들이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그런 역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존팀에서는 곰팡이가 생기면 어떡하나, 그래서 미술관 안의 소장품들이 다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또 작품 보정팀에서 매일 상태 조사를 해야 하는데 습기에 따라서 축 늘어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가 갈라지기도 하는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일관적으로 관리를 할 수 있겠냐 라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이주연 학예연구사는 이런 상황을 목도하면서 흥미를 느꼈다. 왜냐하면 동시대 미술관들은 친환경적 플랫폼이 되고자 노력하고 그런 것들이 많이 의제화하고 있는데, 실제로 어떤 작품이 정말로 친환경적인 프로세스를 따라가고자 한다면 그것이 미술관에 들어오기 어려운 것이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미술관은 ‘불후( 不朽, 썩지 아니함)의 명작’들의 수장고가 아닌, 다른 장소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또한 “전시는 비인간 존재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도 충만한 미적 경험을 일으키는 ’포스터휴머니즘적 윤리’를 구현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전시는 ‘서막’과 1막 ‘되어가는 시간’, ‘막간’, 그리고 2막 ‘함께 만드는 풍경’이라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국내외 작가 15인(팀)의 회화, 조각, 설치 등 50여 점 작품을 선보인다.
‘서막’에서는 삭는 미술의 두 가지 핵심적 메시지를 소개한다. 천연 안료로 작업해 갈라지고 바래 가는 이은재의 회화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2023)은 그림이라는 매체가 필연적으로 가진 한계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붓질을 이어가는 작가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한계의 인정, 그럼에도 지속하는 태도, 그 사이에서 명멸하는 미적 경험의 가능성이라는 삭는 미술의 핵심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아사드 라자(Asad Raza)의 〈흡수〉(2026)는 서울에서 나온 폐기물을 뒤섞어 작가가 네오소일(Neosoil, 서울대학교 토양생지화학 연구실의 실험과 자문, 공개 모집된 시민 경작자들의 정성 어린 손길로 제작된 흙)이라고 부르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고 원하는 이들에게 분배하는 작품이다. 공동체의 경험이 새겨진 아카이브이자 토대인 흙을 재생시키고 나누며, 작품은 삭는 미술에 내재하는 공동성의 계기를 보여준다.
1막 ‘되어가는 시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삭아 가는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작품들은 하나의 물질적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 이행하는 시간을 관객들과 공유하며 변화를 쇠락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독해하기를 제안한다.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가 해변의 잔해로 만든 덧없는 조각 〈프레카리오스〉(1966~)는 취약함을 허망함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와 같은 발견은 피어오르는 연기의 춤을 감상하자고 제안하는 여다함의 〈향연〉(2025), 썩어가는 과일에서 비롯된 에너지로 빛을 밝히고 연주를 이어가는 유코 모리(Yuko Mohri)의 〈분해〉(2026)로 이어진다. 여다함 작가는 춤추는 연기, 즉 피어오르는 연기가 바람의 움직임과 함께 그것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를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작가의 무대는 뜨개질로 만들어져 있다. 뜨개질은 연기가 실이 풀려나가는 것처럼 그 뜨개질을 통해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다시 입체로 유동적인 현상을 붙여나간다.
각각의 작품이 겪는 시간은 다르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끊임없이 변함으로써 나타난다는 점에서 수행적인 특징을 갖는다. 1막의 양 끝에 자리하는 델시 모렐로스(Delcy Morelos)의 〈엘 오스쿠로 데 아바호〉(2023)와 김방주의 〈벌목과 불〉(2026)은 일견 분해라는 하강 곡선의 종착지로서 죽음을 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죽음만큼이나 삶과 연결된 작품의 메시지는 관객이 그 끝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한다.
‘막간’에서는 전환을 준비한다. 서울관 건물 중정(中庭)인 전시마당에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당’이라는 장소에 호응하는 두 작품, 풀을 뭉쳐 만든 고사리의 〈초사람〉(2021(2026년 재제작))과 흙을 다져 만든 김주리의〈물 산〉(2025(2026년 재제작))이 펼쳐진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을 나며 작품은 서서히 형태를 잃어가고, 작품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새싹이 움트며 작품은 소멸에서 생성으로 관객을 이끌어간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작업은 김주리 작가의 ‘물산’은 흙을 다져서 단단한 벽을 만드는 오래된 건축 방식으로 조각을 만들었다. 조각은 전시 기간에 따라 점점 허물어지면서 그 위에 새싹이 나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어가면서 관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고사리 작가의 ‘초사람’은 미술관 옥상에서 제초한 풀을 말려서 만들었고, 그 풀이 다시 고사리 작가의 손을 통해 미술관에 돌아와 작품이 된 것이다.
2막 ‘함께 만드는 풍경’에서는 인간이 아닌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호흡하며 만든 풍경을 보여준다. 천, 항아리, 마른 꽃, 발효액, 곤충과 곰팡이가 함께 만드는 댄 리(Dan Lie)의 작품은 미술관을 살아있는 생태계로 바꾸어 간다. 작품은 인간이 창조성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통념을 깨고 비인간 공동체를 창작의 주체로 내세운다.
에드가 칼렐(Edgar Calel)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2021(2026년 재제작))는 자연과 공존해 온 고대 마야인들의 지혜를 전하는 동시에, 작품의 가치를 지속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는 사례를 제공한다.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의 〈채널링 하우스〉(2026)는 유기물·무기물 재료, 순환, 사회적 발효라는 개념으로 그동안의 실천을 망라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의 생산 그리고 분해를 넘어선 순환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한편, 네덜란드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 산하 연구소로, 대안적인 재료를 탐구해 온 미래 재료(Future Materials)와 한국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그린레시피랩은 국경을 넘은 협력의 결과로 분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16개의 재료를 선보인다. 전시 개막 후 그린레시피랩의 워크숍이 이어지며,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나눌 예정이다.
다양한 연계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전시 개막 직후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4월에는 가족 및 어린이를 대상으로 ‘초사람 만들기’ 워크숍이 개최된다. ‘자연사와 현대미술 겹쳐보기’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은 동시대 미술을 매개로 인간 문명과 지구환경을 함께 사유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다양한 접근성 장치와 함께 포용적 미술관을 향한 실천도 이어진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는 촉지도를 제작하여 참여 작가들이 사용하는 대안적인 재료를 시각뿐 아닌 촉각으로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동선 설계에도 이동약자의 관람 경험을 고려해 전시 공간의 접근성을 높였다. 한편, 배우 봉태규가 이번 전시의 오디오가이드에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동시대 환경 인식을 반영한 미술작품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 변화에 부응하는 급진적인 미술관의 모델을 상상하려는 시도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탐색하는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