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6.03.06 10:41:52
이분할 된 화면. 각 화면엔 소년과 아버지가 등장한다. 소년은 손에 들고 있던 따끈따끈한 치킨을 길에서 만난 소녀, 고양이에게 나눠준다. 그래서 봉지는 텅 비어버렸다. 살짝 시무룩해진 소년의 표정. 이 가운데 집에 가던 아버지의 손엔 봉지 하나가 들렸다. 그 안에 담긴 건 바로 치킨. 소년과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고 치킨을 함께 나눠 먹는다. 결국 영상에 등장한 존재들은 나눔의 기쁨으로 인해 모두 행복해졌다.
약 2분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굽네치킨을 운영하는 지앤푸드가 홍대에 위치한 ‘굽네 플레이타운’(이하 플레이타운)에서 연 ‘제1회 AI 영상제’ 상영작으로 첫 공개된 단편 영화 ‘윙스 오브 러브(Wings of Love)’다.
지앤푸드는 예술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ESG 활동의 일환으로 2023년부터 홍익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와 MOU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시, 공연을 위한 장소로 플레이타운을 제공해 왔다.
‘재미있는 콘텐츠와 이벤트가 있는 공간, 함께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문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플레이타운은 ‘누구에게나 열린 곳, 모두를 위한 새로운 놀이터’ 콘셉트를 표방한다. 건물 1층엔 굽네의 다양한 제품과 브랜드 스토리를 전달하는 ‘굽네 오븐 연구소’, 2층엔 커뮤니티 공간 ‘사운드홀’, 3층엔 미디어 아트와 포토존으로 구성된 ‘플레이룸’, 4층엔 매년 상시 전시를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가 위치하며,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 가능하다.
이 플레이타운이 이번엔 AI(인공지능) 영상제의 장이 됐다. 홍익대학교 학생들이 산학 협력 수업 과제의 일환으로 굽네치킨을 주제로 한 AI 영상을 자유롭게 기획·제작했고, 이를 플레이타운 영상제에서 공개하며 관객과 소통한 것. 단순 상영에 그치지 않고 관객 피드백, 교수진 조언, 전문가 멘토링을 더해 완성도를 높인 작품을 해외 공모전에도 출품해 ▲LA필름 어워즈 대상 수상 ▲뉴욕 국제 필름 어워즈 파이널리스트 선정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스토리와 따뜻한 색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이 작품을 만든 주인공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이연재(3학년) 학생을 만났다. 그는 “AI를 활용해 작업을 한 것도, 이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것 모두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시각디자인을 복수 전공하고 있는 이연재라고 합니다. 물성을 직접 다루고 찍는 판화 작업에 매력을 느껴 이를 공부하고 있고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 이뤄지는 매체와 매체 사이의 중간지점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굽네치킨 AI 영상제에 참여한 계기는?
“지난해 학교에서 시각디자인과 박현주 교수님의 ‘AI 디자인 프로젝트’ 수업을 들었는데요. 생성형 AI 기술을 배우고, 이를 활용해 영상을 만들어보는 수업이었어요. 그 수업에서 교수님이 굽네치킨 AI 영상제에 대해 알려주며, 해보고 싶으면 자유롭게 참여하라고 권해주셨어요.
굽네치킨 마케팅본부장님도 학교에 특강을 오셨는데요. 굽네치킨이 국내에서 젊은 세대와 어떻게 친근하게 소통하려 하는지 마케팅 및 브랜드 지향점 등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굽네치킨은 오랜 시간 항상 우리 곁에 있어온 브랜드라는 걸 느꼈고, 이를 기반으로 ‘친숙함’과 ‘따뜻함’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만들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 그 전에도 AI를 활용해 작업한 적이 있었나요?
“아니요. 하지만 거부감은 없었어요. 흔히 사용하는 포토샵, 일러스트 프로그램처럼 AI 프로그램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수업에서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거든요.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서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 되고, 어떤 툴이 있는지 등 하나하나 상세하게요. 그리고 영상은 제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고, 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 활용하는 AI 기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수단에 따로 제약을 두고 싶지 않았어요.
또 AI를 다루다보면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는데 이게 오히려 흥미로웠어요. 예컨대 ‘문을 여는 장면을 만들어줘’라고 명령어를 입력하면 전 당연하게 손으로 문을 여는 장면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요. 문이 스스로 그냥 열리거나, 팔로 문을 여는 등의 장면이 불쑥 튀어나오더라고요.
이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이 판화와도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판화 또한 판이 아니라 찍힌 그림이 작품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변수가 섞일 때가 있거든요. 제 의도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듯 예상치 못했던 지점과의 접점에서도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 영상제에서 선보인 ‘윙스 오브 러브’를 구상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출발했나요?
“앞서 언급했듯 굽네치킨 브랜드의 상징성은 친근함과 따뜻함이라 생각했어요. 또 굽네치킨 소비자의 연령대는 특정돼 있지 않고 다양하기에 이들 모두의 보편적인 추억을 건드리면 공감대를 보다 넓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퇴근할 때 아버지가 치킨을 사와서 가족과 따뜻하게 나눠먹는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누구나 가졌을 법한 추억이요.”
- 본인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길 치킨을 사온 그런 경험이 있나요?
“솔직히 아버지가 치킨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셨어요(웃음). 그래도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이 치킨을 좋아해서 아버지가 퇴근길에 치킨을 사오시기도 했죠.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생각해 치킨을 사 오셨던 그 마음이 따뜻하게 기억돼요. 이번 영상제에 참여하면서 가족과 굽네치킨을 같이 먹을 기회도 많았는데요. 저는 ‘굽네 장각구이’, 어머니는 ‘고추 바사삭’을 맛있게 먹었어요. 덕분에 예전 추억도 다시 떠올랐네요(웃음).”
- 영상에서 특히 주안점을 두고자 한 부분은?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게 목표였어요. 이 따뜻함을 표현하는 방법이 많은데요. 저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AI 기술이 전 분야에서 활발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제가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마냥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이질적이고, 차갑고, 언캐니(uncanny, 기묘함)하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많았죠.
이 가운데 저는 AI의 사실적 묘사에 집중하기보다는 따뜻한 동화 같은 화면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통적인 클레이 스톱모션 스타일로 다가갔어요. 클레이 스톱모션은 점토로 만든 인형을 한 프레임씩 움직여 촬영한 것을 연속 재생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한 장르인데요. 대표 작품으로 ‘월레스와 그로밋’이 알려져 있어요. 한 땀 한 땀 수작업한 듯한, 사람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느낌이 나야 따뜻함이 더 부각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이분할로 구성했어요. 아버지가 치킨을 사오는 장면 하나만 보여주면 너무 진부할 것 같았거든요. 비슷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아들은 저렇게 가는 과정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더 흥미를 불러일으키게요.”
- 작업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AI 프로그램에 명령어를 입력할 때 영어를 써야 했는데, 여기서 제가 생각한 만큼 디테일을 잡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또 각 화면마다 인물의 얼굴이 같아야 하는데 이를 맞추는 과정도 어려웠고요. 조금 더 클레이 스톱모션처럼 나오게 하려고 시도하는데 화면이 너무 기괴하게 나올 때도 있었어요.
먹음직스러운 치킨을 만드는 것도 일이었어요(웃음). ‘치킨’ 하면 튀긴 치킨을 많이들 연상하는데요. 화면에서는 보다 먹음직스러운 치킨의 모습을 구현하고, 굽네치킨 또한 오븐치킨으로 유명하기에 큼지막한 로스티드 치킨으로 화면을 구현했어요.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스무 번 넘게 시도해야 할 때도 있었죠.
2분이라는 영상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장편 영화로 보기엔 짧지만, 영상을 처음 만드는 제겐 길게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2분여의 흐름에 정말 필요한 장면들만 넣어서 알차게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지난해 초에 작업을 시작해서 완성되기까지 약 2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 그 완성된 작품을 플레이타운에서 첫 공개했는데 당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당시 플레이타운에서 다른 학생들의 사진 전시도 열리고 있었는데요. 저 또한 평소 사진에도 관심이 있는 터라 서로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어요. 친구, 지인들뿐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까지 제 작업을 보고 좋아해주니 떨리기도, 신기하기도 했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치킨 먹는 모습에서 실제 자기 아들이 떠오른다며,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이야기해준 분도 있었고요.
저는 아직 학생이어서 학교를 벗어나 외부에서 전시할 기회가 적은데, 이번 자리를 통해 첫 전시를 경험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전시를 한 번 하려면 공간 대관료 등이 만만치 않은데 플레이타운이 상영 공간을 지원해주고, 전시 기간도 넉넉히 잡아줘서 많은 힘이 됐어요.”
- 윙스 오브 러브는 LA필름 어워즈 대상 수상, 뉴욕 국제 필름 어워즈 파이널리스트 선정 쾌거도 이뤘죠. 국내에서의 영상제 경험이 글로벌 데뷔로까지 이어진 셈인데요. 소감은?
“이번 영상제 출연을 계기로 박현주 교수님이 해외 공모전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셔서 작품을 출품했는데요. 예상치 못한 수상으로 이어져 처음엔 ‘이게 진짜인가?’ 하며 매우 놀랐어요. ‘내가 진짜 상을 받아도 되나? 이거 과대포장(?) 아닌가’ 싶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는데요. 한편으로는 정말 열심히 애정을 갖고 작업했기에 뿌듯했습니다. 부모님도 많이 좋아하셨고요.”
- 기업들이 전개하는 공모전, 전시에 대한 생각은?
“미대 학생들에게는 공모전이 많을수록 좋아요. 단순히 저 혼자 작업하는 게 아니라 작업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니까요. 그래서 기업들이 이런 공모전을 보다 많이 마련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모전을 통한 전시의 장도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영상제를 비롯해 지난해 10월 즈음 판화로 찍은 동화책 전시도 플레이타운에서 가졌었는데요. 산학 협력으로 진행된 전시로, ‘사랑의 장기기증’ 단체 교보재를 다른 친구들 2명과 함께 만들었어요. 동화책 스토리부터 그림까지 친구와 열심히 작업했는데, 이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 뜻 깊었어요. 올해도 플레이타운에서 여름방학 즈음 전시를 갖고, 두 번째로 열리는 AI 영상제에도 참가할 계획이에요.”
-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나요?
“작업하는 사람이 자신을 소개할 때 ‘저는 영상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회화 작가입니다’ 등으로 말할 수 있겠죠. 저는 이걸 지금 정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현재 가장 큰 바람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할애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 작업의 기반에 ‘따뜻함’과 ‘사랑’이 있기를 바라고요. 매체적으로는 판화, 사진, 영상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배워보고 싶습니다.
또 오빠가 해준 이야기가 있는데요. ‘예술을 하든, 하지 않든 모든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본질이 있다’고요. 예를 들어 누군가 주식 이야기를 하면 그 기저엔 돈을 벌어서 안정을 얻고 싶다는, 즉 인생에 있어서 ‘안정’을 바라는 진정한 속마음이 있을 수 있다고요. 그러면서 ‘너도 네가 해왔던 이야기들을 계속 파고들다 보면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한마디가 가슴에 크게 와 닿았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작업을 통해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갈 생각이에요. 그러다보면 제 진정한 본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기대됩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