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구태정치가 또 다시 정치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연일 뭇매를 맞고 있다. 올 연말의 대통령 선거에 대비한다며 한나라당이 최근 내놓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하나 둘 공개되면서, 한나라당은 말 그대로 ‘매를 벌고’ 있다. ■‘촛불집회 금지’‘후보 단일화 토론 방송 금지’ 담는다고 대선 이기나 한나라당은 4월 16일 ‘촛불집회’를 사실상 금지시키는 법안을 마련하고는 한 발 더 나가 인터넷언론사와 포털 사이트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에 나섰다. 특히 한나라당은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 작업을 의식한 듯, ‘후보 단일화 토론회 방송 금지’ 등을 자신들의 법안에 담았고, 이를 중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까지 담았다. 한나라당 정치관계법 제·개정특위 중 ‘방송 및 인터넷 미디어 중립소위(위원장 장윤석 의원)’가 준비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 법률안’ 내용을 살펴보면 제82조의 9항(정당·무소속의 후보자 단일화 토론 등의 방송금지)에 “제70조(방송광고)제1항의 규정에 의한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시설은 정당과 정당 후보자 간 또는 정당과 무소속 후보자 간의 후보자 단일화를 위한 토론 등을 방송할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후보 단일화와 같은 범여권의 작업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이 같은 법안을 개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2002년 선거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후보단일화 토론을 방송하는 매체에 대해서도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리는 조항도 신설했다. 한나라당은 포털 사이트에 대한 규제 조항도 마련했다. 한나라당이 준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제 10조 4항에 보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선거일 전 12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와 관계있는 단어가 검색어 인기순위 등에 포함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조항 중 “선거와 관계있는 단어”에 대한 규정이 극히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지난 해 인터넷 상에서 크게 유행했던 ‘한나라당을 빛낸 108명의 위인들’이라는 패러디 노래를 그 예로 들었다. 한나라당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자신들을 비난하거나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비난하는 내용이 검색어 순위에 아예 오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나라당의 방침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선거에 관련된 낱말이나 단어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데다가, 검색어 순위에 오르지 않도록 하는 시점에 대한 해석이 불분명하다. 즉, 다시 말해 한나라당의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도 충분해 ‘위헌 논란’이 예고되고 있기도 하다. ■‘위헌 소지’ 충분한 한나라당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논란이 되고 있는 조항은 또 있다. 한나라당 개정안 가운데 신설된 10조의4 제2항은 “선거관련 게시물의 게시·유통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정당이나 후보자는 해당 게시물을 취급한 인터넷언론사 또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피해 사실을 소명하여 당해 게시물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정당 또는 후보자는 민·형사상의 소제기를 위하여 피해사실을 소명하여 인터넷언론사 또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보유하고 있는 해당 이용자 정보의 제공을 요구할 수 있고 인터넷 언론사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지체 없이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기존의 소제기 방식인 ‘수사기관에서 절차에 따라 진행했던 것’과는 달리 인터넷언론사나 포털 등에 직접 네티즌의 신상정보를 요청한다는 방식도 개인 정보 보호라는 면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한나라당은 특히 “지체 없이 이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해 이를 위반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처벌규정도 신설했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은 19일, “당내에서 여러 가지 토론이 일어날 것”이라며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토론이 일어나고 이걸 이슈화 시켜가지고 국민들의 심판을 한번 받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개정안에 대해 “지나친 행정만능주의”라거나, “당이 너무 심하게 나갔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건 이 법 내용을 잘 몰라서 그런 말씀하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안 의원도 법안 내용에 대해 잘못 이해한 대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시민사회단체나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에서 비판하고 있는 촛불집회 관련 조항에 대해 안 의원은 “언론에 잘못 알려져서 그렇다”며 “언론에서 우리 법안을 잘 보지 않고 보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우리 법안 초안을 보면 ‘촛불집회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하는 조문이 앞에 들어 있다”며 “‘미치는’이 아니고 ‘미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법안 초안을 보면, 기존의 “미치게 하기 위하여”라는 대목을 “미칠 수 있는”이라고 고치고 ‘촛불시위’라는 문구를 새로 삽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서도 안 의원은 “촛불집회가 미치는 폭발력이 이 법에 있는 단합대회나 야유회보다도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의 개정안 중, ‘허위사실 공표 금지여부를 법원이나 선관위가 72시간 내에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에 대해, “사안에 따라서 72시간 내에 도저히 결정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는 지적이 우월하다. 또 “72시간 내로 결정을 해놓으면 서두르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나중에 후유증이 크게 남을 것을 우려해 가지고 잠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며 “분명한 내용도 없는 걸 가지고 이렇게 소명자료도 내지 못하는데 이걸 계속 보도를 하면 국민들이 잘못 알게 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걸핏하면 언론 탓을 한다”고 비난해온 한나라당이 이제는 거꾸로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지자, ‘언론 탓’을 하고 나선 것이다. ■ “한나라당은 제 정신 아니다”“차떼기로 망한 주제에…” 이 같은 한나라당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과 통합신당 모임 등은 거세게 비난했다.
최재성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내용을 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평가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최 대변인은 한나라당의 개정안 8항, 즉 ‘선거와 관계있는 단어를 인기 검색어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해도 자의적인 것인데 선거와 관계있는 단어 자체를 검색어에 포함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언론과 국민의 정보 접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최 대변인은 “이랬을 때(한나라당의 개정안대로 시행됐을 때) 대선 풍경은 옛날 폭압의 군사정권과 동토의 구 사회주의를 연상케 한다”며 “이것이 어떻게 21세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개탄했다. 최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제정신이 아니다”며 “대권편집증환자 한나라당의 광기가 국민의 정치의식과 민주주의와 언론을 향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라고 한나라당을 맹비난했다. 서영교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역시 논평에서, “벌써 집권한 것처럼 행세를 부리고 있는 한나라당이 희한한 선거법 내놓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며, “그들은 전자개표가 아닌 수개표를 의무화하자고 했다”면서 “전자개표가 가장 정확하고, 생활화 되어 있는데 수개표라니 참으로 희한한 뇌구조를 지닌 사람들이다. 첨단 시대에 ‘삽질’을 고집하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서 부대변인은 “이 발상을 보니 건축업자 이명박 전 시장의 계보가 주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한나라당은 또 허위사실 공표 시 72시간 내에 사실관계를 규명하자는 내용을 내놓았는데, 이는 박정희 정권 등의 ‘국보위 수사’, ‘인혁당 사건’을 연상케 한다”며, “이 발상은 또 박근혜 전 대표 계보에서 제안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 부대변인은 또한 “한나라당이 선거 기간 동안 촛불시위를 금지하겠다며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어제 국회에 제출했고 국고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는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조차 금지하겠다고 한다”며, “한마디로 국민과 시민단체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속셈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한나라당의 오만과 독선에 분노를 넘어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양형일 통합신당추진모임 대변인도 한나라당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이성을 잃고 있다”며 “한나라당은 국민의 입과 눈을 틀어막기에 정신이 없는데, 주권자는 한나라당 당원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훈 민주당 부대변인도 “인터넷 검색어 제한, 후보 단일화 토론 방송 금지 등을 통해 한나라당 군부독재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형질을 드러냈다”며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 역시 논평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런 황당한 개정안까지 마련하는 것을 보면, 한나라당이 겉으로 내비치는 자신감 뒤에는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다”며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라는 것은 결국 촛불로도 무너질 허약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집회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헌법적 권리”라고 지적하고, “헌법적 권리는 무엇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데도 한나라당이 헌법적 권리까지 막고 나서겠다는 것을 보면 과연 금권정치로 물든 차떼기 정당다운 발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나라당을 비난했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공보부대표도 한나라당의 개정안에 대해 “한나라당판 분서갱유 정치관계법”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이 공보부대표는 “한나라당 집권을 위해 헌법 초월적 정치악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사실상 한나라당판 긴급조치 10호를 입법화하자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공보부대표는 이어 “집권을 위해서라면 계엄보다 더한 법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라며 “집권하지도 않은 정당이 이런 정도인데 집권하면 얼마나 가혹할지 벌써부터 몸서리쳐진다”고 성토했다. 이 공보부대표는 “차떼기로 망한 정당이 이번에는 법떼기로 악법을 만들려 하고 있다”며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의 모든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면밀히 검토해서 그 반민주성, 위헌성, 시대착오성을 낱낱이 폭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CBS에서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는 신율 명지대 교수도 “선거에 영향을 주는 집회의 금지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촛불시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지난 대선 때 효순·미선양 집회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며 “횃불을 들든, 촛불을 들든, 꽃을 들든 그것은 시민의 자유이고 이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적 성격이 짙다”며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한나라당의 정치관계법 개정안에 대해 법을 죽이는 “법살 기도”라고 비난했다. 한명숙 전 총리도 이에 가세했다. 한 전 총리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촛불시위 금지 등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선거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며 “민주주의가 만개한 21세기 한국정치에 한나라당은 유신독재시대의 긴급조치라도 발동할 생각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한 전 총리는 한나라당을 향해 “표현의 자유, 집회, 시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대한 ‘법살’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발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어졌다. 여의도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은 “공정성을 요구할 수 있지만 민심을 얻는 선거에서 모든 것을 규정을 통해 규제하려는 것은 또 다른 행정만능주의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특히, “법률로 원하는 세상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대해 국민들은 오만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지금도 이런데 정권을 잡으면 오죽하겠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도 “촛불시위 금지는 헌법이나 시위관계법 정신을 봤을 때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고 대통령 선거를 무효로 한다는 것은 현실적 가능성의 측면에서 당이 너무 심하게 나간 것 같다”고 주장했다. ■ 비난 여론 비등하자 한 발 물러선 한나라당 자신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정치권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한나라당은 일단 한 발 빼는 분위기다. 18일 유기준 대변인은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올바른 선거제도를 위하여 특위가 성안한 안을 최고회의와 의총 등에서 논의하여 당론을 조만간 확정할 예정”이라며 다소 유연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어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강재섭 대표가 직접 “늦어도 6월 국회까지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정치관계법을 완결해야 선거가 이뤄질 수 있다”며, “당내에 대선 관련 정치관계법 특위를 만들어서 검토 중”이라고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강 대표는 그러나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직접 국회에서 브리핑한 개정안에 대해서 “검토 단계에서 외부로 알려져 여러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며 “정치관계법은 어디까지나 특위 차원의 검토안에 불과하지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한 바도 없고 의원총회의 인준을 받은 바도 없다”며 두 번째 발을 뺐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한나라당에 제시한 정치관계법 개정안에 일부 위헌적 요소가 있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강재섭 대표의 말을 전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