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가 체결된지 한달여 만에 또 다시 한-EU(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지난 7일 시작된 한-EU FTA에 대한 정부나 언론들은 포괄적인 측면에서 한미 FTA와 별 차이는 없겠지만 농산물 입장에서 예외가 인정될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 네거티브보다 안전한 포지티브 협상 이중 가장 크게 안도하는 부분은 미국과의 FTA의 체결방식인 ‘네거티브’방식이 아닌 ‘포지티브’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미국식(네거티브)방식은 협정문에 개방하지 않을 부분만 명시하고 협정문에 반영되지 못한 부분은 무조건 개방된다. 반면 포지티브 방식은 반대로 개방할 품목만 명시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개방에 따른 피해도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한국이 유럽 및 미국,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FTA 허브’ 국가로 재탄생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한미 FTA에서 난항을 겪었던 농업분야에서 EU는 버터·치즈 등 유제가공품과 와인·위스키 등 주류의 수출확대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치열한 공방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한수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FTA 추진단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EU와의 FTA 협상 대상에서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ISD)나 방송 등은 제외될 뿐 아니라 최고기 수입 역시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말해 농산물 개방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협상해야… 그러나 전문가들과 농민들은 축산 및 농산가공물 수입증대로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한·EU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한·미 FTA협상 추진 때와 같이 국내산업영향의 분석·평가나 차후 경제발전전략 등에 대한 진지한 연구 없이, 국민적 공론화과정 없이 졸속 추진하고 있다”며 “더구나 한미 FTA 파장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방향이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있는 EU와의 FTA는 한국 경제·산업기반 붕괴, 공공영역의 혹심한 파괴, 그리고 사회양극화 심화를 몇배 증폭시키는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신대 국제 관계학부의 K교수는 “이번 유럽연합과의 FTA 협상은 상대적으로 한-미 FTA보다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지만 서비스 시장 개방을 비롯해 지적재산권 분야, 돼지고기와 치즈 등 농축산물 쪽의 공세를 묵과할 수 는 없을 것”이라며 “한미 FTA 사례를 교훈삼아 살얼음을 걷는 초인적인 자세로 더욱 신중하게 협정하지 않으면 결국 거대 초국적 기업과 자본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상 전문가 역시 “이미 한미 FTA가 체결됐기 때문에 한-EU FTA 효과는 한미 FTA가 체결되지 않았을때보다 상당히 상쇄됐다”며 “협상 타결보다는 협상 내용에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한민국 농민, 떠나고 싶다 한- EU FTA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각은 실로 탐탁치 않다. 10년 넘게 양돈을 사육하고 있는 한 농민은 어떤 것이 최선책인지 모르지만 한미 FTA 체결 이후로 시름에 빠져있는 농민들에게 특단의 조치도 없으면서 또다시 국민과 합의 없는 ‘막무가내식’ FTA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를 비난하고 “농민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이치를 깨닫고 농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려는 졸속협상을 더 이상 강행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다시 태어난다면 서민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않길 바란다”며 “더구나 대한민국 농민으로 태어나지 않길 더더욱 바란다”고 답답한 속내를 내비췄다. 이도 그럴것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자료에 따르면 4월 중순까지 EU 13개국으로부터 수입된 돼지고기 총 물량은 4만6627톤으로 전체수입량의 45%에 달하고 냉동삼겹살은 4월 중순까지 3만1450톤이 수입돼 전체 냉동삼결살 수입물량의 81%를 차지했다. 또 2006년의 경우 EU산 혼합분유수입량이 2만1032톤으로 전체물량의 62.8%를 차지했으며, 올해는 시장점유율이 72.6%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 관세 유리한 자동차, 섬유 시장은 ‘실크로드’ 대체로 EU의 평균 관세율이 우리나라에 비해 낮은 것은 분명하지만, 자동차와 섬유, 전자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어서 FTA가 체결되면 우리 기업들에게 상당한 가시적인 혜택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EU의 평균 실행관세율은 4.2%로 우리나라보다는 다소 낮지만 3%대인 미국보다는 높다. 대외경제 정책연구원 관계자는 “EU는 자동차(10%)나 섬유 등 우리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 수준이 높아 철폐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근 현대차 유럽 법인장도 “우리나라와 EU가 FTA가 체결돼 10%의 관세가 없어지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며 “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면 EU와의 FTA 협상은 우리에게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EU보다 2배 많은 경제 효과 얻는다 EU는 세계 최대규모의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EU 25개국의 수입시장 규모도 4조300억달러로 미국 수입 시장의 2.4에 이루고 교역규모 면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외경제 연구원(KIEP)에 따르면 EU와의 FTA가 성사될 경우 단기적으로 국내총생산이 15조 7000억원(2.02%), 장기적으로 24조원(3.08%)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출도 단기적으로 64억7000만 달러(2.62%), 장기적으로 110억4000만달러(4.47%)증가하고, 대 세계 무역수지도 단기적으로 1억3000만 달러(3.54%)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덴마크 경제연구소 코펜하겐 이코노믹스의 보고서에서도 이같은 분석과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FTA가 체결될때 한국이 얻은 소득 효과는 시장 개방 정도에 따라 25억~100억 유로로, EU보다도 2배나 더 많은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득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농업분야를 포함한 일부 취약 산업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이에 따른 방안 모색을 통해 범정부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염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