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18일이 되면 광주는 ‘정치사교장’으로 변한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뜻을 기리며, 민주화 열사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정치권 인사들의 광주 방문이 줄을 잇는다. 특히,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광주는 올초부터도 대선주자들의 행보가 잇따랐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에서 호남표를 두 자릿수를 얻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 호남의 정치적 ‘노른자’인 광주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한나라당의 호남에 대한 ‘관심’은 이미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무엇보다 강재섭 대표가 지난해 처음으로 호남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 강 대표는 지난해 8월10일 호남을 방문해 ‘호남 홀대’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면서,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강 대표는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듯 한나라당의 꾸준한 노력이 호남인들의 마음에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한나라당의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과거 공화당에서 민정당·민자당으로 이어지는 30년간의 영남 중심의 군사정권이 호남을 경제적으로 소외시키고 인재 등용에도 차별을 가했다”며 “(한나라당은) 호남사람에게 물질적·정신적 상처를 준 엄연한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시정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있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대표로서 전신 정당 시절부터 호남에 계신 분들을 섭섭하게 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한나라당의 뿌리격인 민정당과 민자당, 신한국당 집권 시절을 거치면서 호남에 대해 잘못한 점을 구체적으로 들기도 했다. 그가 ‘호남홀대’로 언급한 것은 △지역발전에 동서균형이 이뤄지지 못한 점과 △호남 출신이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했던 점 △ 5·18 민주화운동을 통해 호남이 고통을 받은 점 등이다. 또 당시 호남을 찾은 강 대표는 각종 지역 현안에 관심을 보였고, 처음으로 여당 소속 지사와 정책협의를 갖기도 하는 등 호남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러한 한나라당 지도부의 태도변화는 기존 당내 소장파 일부 의원들이 당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주장했음에도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겪은 고초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지만 강 대표의 공식사과와는 차원이 틀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강 대표의 ‘호남사과’에는 5·18에 대한 것은 빠져 있었다. 당 지도부로서 유감이라는 표명은 한 적이 있고, 무등산에도 올랐지만, 어디까지나 ‘우회적인’ 사과에 머물렀다.
지난해에는 강 대표의 이례적인 호남 사과 이외에도 한나라당 의원들의 호남행이 줄을 이었다. 박근혜 대표가 2년 연속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 참석했고, 김무성 사무총장과 권경석 제1사무부총장을 비롯한 당사무처 당직자 100여명이 광주를 방문했다. ‘국민생각’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도 광주를 찾아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고, 당내 중도개혁성향의 푸른모임도 잇달아 호남을 방문했다. 한편, 강 대표의 호남에 대한 사과는 민주당을 비롯해 정치권에서는 환영의 반응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표를 위한 깜짝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은 과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호남껴안기를 시도했다가 선거 뒤에는 호남의 핵심 사업예산에 삭감 지침을 내린 바 있고, 2004년도 정기국회 때 호남예산 삭감하고 영남예산 증액하라는 당의 지침이 발견돼 물의를 빚는 등 이중성을 보여 왔다”며 “이번 한나라당 대표의 포괄적인 사과가 대선을 의식한 정략적 립서비스에 그치지 말고, 낙후된 호남의 발전대책으로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진정성이 우선돼야”는 지적도 한나라당의 호남에 대한 ‘진정성’ 문제는 당내에서도 지적되어 왔다. 그동안 호남에 대한 ‘참회’를 주장해왔던 원희룡 의원은 “당 지도부가 호남 문제에 있어 정치공학적 접근까지도 극복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박근혜 전 대표 캠프에서 공보특보를 맡고 있는 이정현 씨도 한나라당의 부대변인으로 있을 당시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호남 접근, 진정성이 더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광주 출신으로 민정당 시절부터 20년이 넘게 한나라당과 그 전신당에 몸담았던 이정현 부대변인은 강 대표가 호남에 대해 사과를 하기 전, “한나라당의 호남방문에도 불구하고 호남사람들의 마음은 미동도 없다”며 접근 방법이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대변인은 “5·18이 아니더라도 호남인들이 한나라당 전신 정당과 정권에 대해 갖는 상처는 많았다”며 호남선 복선화와 인사에 있어서 호남출신 배제를 꼽았다. 그는 “당의 호남 접근 방식은 너무 안이하고 편하고 건성이고 호남인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호남인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줘야 한다”며 “호남인들의 깊은 상처에 대해 진지하게 시간과 열정, 작은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해 5·18을 맞아 ‘광주·전남도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여러분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의 문을 두드리고 열었듯이, 이제 호남이 지역화합과 국민통합의 용광로가 되어 여러분의 손으로 5·18 정신을 완성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언제 보아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저 무등산처럼, 저희 한나라당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며 한나라당의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당 대표를 맡던 그는 5·18 민주화 운동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대표로서 당 차원의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5·31지방선거 당시 5·18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첫 지원유세지를 광주로 선택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5·31 지방선거 첫 유세지라는 것 외에도 한나라당 지도부가 호남에서 첫 거리 연설을 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8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해 유신 피해에 대한 사과를 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5·18은 이 땅의 민주화와 국민통합의 완성을 향한 실질적인 출발점”이라며 “5·18은 매년 맞이하는 단순한 기념일로만 흘려보낼 수 없다. 우리는 5·18의 깊은 뜻을 명상하고 또 교훈을 얻고자 한다”고 밝혔다. 당시 이계진 대변인은 “당시에 광주 시민들의 희생과 용기가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으며 더 이상의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 없도록 막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5·18광주 민주화운동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며 5·18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 그는 “국가 선진화가 국민적 시대적 과제이자 요청인 이 시점에 광주 민주화운동은 그 실현을 위한 기본정신이 되어야 한다”며 “우리 한나라당은 광주 민주화정신을 되살려 국가 선진화를 이룩하는데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이 5·18에 대해 ‘유감’ 또는 ‘안타까움’ 차원이 아닌, 당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한나라당이 비록 계보를 이어받았지만,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데, 굳이 당 차원의 직접적인 사과가 필요하si”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다. 한편, “박 전 대표가 강 대표가 그동안 충분히 사과했다”며, “더 이상 5·18로 한나라당을 매도하거나 발목을 잡으려는 것은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다. 5·18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의원도 “한나라당이 ‘가슴 아프다’라는 정도의 사과는 가능하지만 직접 행위자가 아닌 상황에서 ‘미안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좀 그렇다고 생각한다”며 “충분히 당 입장에서 사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보다 근본적으로 5·18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며 “5·18 당시 발포자는 누구였으며, 죽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이런 것이 제대로 드러나게끔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면 호남이 저절로 마음을 열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마음과 진정성을 갖는다면 호남에 방문하지 않고, 5·18묘역에 오지 않더라도 시민들은 ‘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5·18에 대해 뉘우치고 있고 이것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는 의미가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화합은 저절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