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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철책이 무너진다

56년만에 ‘분단의 벽’ 넘어 ‘통일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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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8호 ⁄ 2007.07.03 09:16:11

‘6·15’ 남북화해와 ‘6·25’비극이 상존하는 6월. 한반도에 대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남북에 가로놓인 철의 장막이 갑작스럽게 제거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대서사시가 전개될 수도 있다는 극한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런 38선 철거는 남북한에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노무현정권이 위기탈출로 활용할 대북관계가 오히려 한반도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는 붕괴론까지 일고 있다. 전운은 지난 5월17일 남북철도가 개통되는 것을 시발점으로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남북정상급회담무드가 형성되고 나아가 종전선언이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쪽에서는 청와대와 범여권이 북한 비핵화 실현을 위한 치밀한 전략을 짜기보다 한국의 대선 판도를 흔들기 위해 8·15광복절에 맞춰 노무현과 김정일회담이란 ‘빅쇼’를 선보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 6자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해결이란 목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 8·15 정상회담 때 통일 합의설 즉, 정상회담이 열리면 그걸 간절히 희망한 한국이 결국 많은 양보를 할 것이고, 그건 자칫 북한 핵문제 해결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가에도 이같은 설에 대해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대선정국에서 기선을 잡은 한나라당은 신북풍이 대선판을 깰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으며, 또 다른 정계 개편을 겨냥한 계산된 정략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올해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경 임시로 연결된 경의선 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 김정일 위원장과 연방제 통일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란 설이 나오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의 일정을 합의할 것으로 정가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정가에도 이같은 설에 대해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대선정국에서 기선을 잡은 한나라당은 신북풍이 대선판을 깰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으며, 또 다른 정계 개편을 겨냥한 계산된 정략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올해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경 임시로 연결된 경의선 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 김정일 위원장과 연방제 통일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란 설이 나오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의 일정을 합의할 것으로 정가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보계통에서 제기하는 8월15일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남북정상회담의 장소로는 제주와 개성, 중국 대련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경의선이 다시 연결됨에 따라 두 정상들이 열차를 타고 개성에 도착,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 및 여당 의원들의 개성 방문이 잦아지고 있으며, 이는 곧 사전 답사라는 말로 연결된다. 만일 정상회담이 8·15에 이루어질 경우 연방제 합의를 발표, 한 지붕에서 두 체제로 통치하는 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갑작스런 움직임은 친노그룹의 방북에 이어 이해찬 전 총리의 미국방문 등에서 찾아볼수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잦은 정상회담 촉구에서도 엿볼 수 있다. ■ 金 5년통치 후 南서 5년 통치 후 통일설 일부에서는 지난 2005년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통일에 대한 합의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설이 정가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같은 비화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에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도 접어두고 수면에 잠겨 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연령상 먼저 연방제의 수장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상황에서 참여정부가 무조건 통일의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의되었다는 설은 보류인 상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야당내 일각에서는 김정일 위원장과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면담과정에서 일종의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었다. 정가에서는 정동영 전 장관이 지난 2005년 6월17일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면담에서 연방제를 수용하되 처음 5년간은 김정일 위원장이 통치하다가 5년 후 남한에서 통치한 후 완전 통일을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설이 제기됐다. 정 전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2005년 6월17일 오전 11시부터 평양 대동강 영빈관에서 단독으로 2시간30분 동안 만난 데 이어 오후 1시30분 쯤부터는 남측 대표단과 함께 오후 3시50분까지 2시간20분 가량 오찬을 했다. 이 2시간30분동안의 단독면담은 지금까지 수수께기로 남아있다. 한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참석 멤버인 한 고위인사는 지난 2005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전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통일로의 첫 발은 남북철도 완전 복구다. 남북은 지난 17일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철도의 첫 운행에 들어갔다. 이로써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6월 12일 전면 중단됐던 경의선 철도 운행이 56년만에 재개됐다. ■ 남북정상, 기차로 개성에서 만남 또 6·15선언을 기념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차를 타고 최초로 평양을 방문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철도에 의한 방북의 의미는 단절됐던 남북의 허리를 다시 잇는다는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지난 6·15선언 때 제기해 거의 합의했던 통일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촉구, 김 위원장으로부터 답을 얻어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조속히 남북정상회담을 하도록 재촉하고 정상회담을 연례화 하는 방안도 제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답을 얻어낼 경우 광복절에 남북정상회담개최를 김 위원장에게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8·15정상회담은 다시 광복을 맞는 뜻을 두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대선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야당에서는 여권이 남북통일문제를 통한 대선정국의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이 상징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통일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1대통령 2정부체제’로 끌고 가려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독일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반기(8·15)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야 다음 정권에서도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한 정상이 만나는 방식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정권에서 남북한 정상이 만난 데 이어 노무현 정부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그래야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5월에 독일외교협회 토론회서 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의 전망’ 연설문 전문 산트 슈나이더 독일외교협회 소장,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귀빈 여러분! 저를 이 영예스러운 자리에 초청해주신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독일은 우리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군사정권에 의한 저의 사형집행을 저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1998년의 외환위기 때는 많은 투자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다 같은 분단국가로서 분단의 설움과 통일의 열망을 공유해 왔습니다. 이 모든 점에서 여러분과 독일 국민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북한 핵문제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제가 한국 대통령으로 재임중이던 2000년에 저는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긴밀히 협조하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거의 성공적인 마무리 단계까지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이 들어서자 북미관계는 급속히 경색되었습니다. 대화는 끊기고 북한에 대한 제재의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 2월 초까지 부시 정권 6년 동안 사태는 오히려 악화됐습니다.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요원을 추방했습니다. 제네바 합의를 폐기시켰습니다. 약속한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파기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북한은 작년 10월 9일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한국과 세계 여론의 대부분은 북핵 문제는 이제 파국에 직면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단호하게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직접 대화하고, 북한의 핵 포기 대가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발표해야 한다.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 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국교 정상화를 허용해야 한다. 그렇게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가 일치해서 대북 경제제재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저는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때 북한은 핵포기를 수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주장을 한국은 물론 전세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강조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고 북한이 원하는 대가를 주기로 했습니다. 북한도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데 동의하게 된 것입니다. 북핵 문제는 앞으로도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북한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고, 한·중·일·러 주변 4국도 이를 지지하고 있는 만큼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믿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정책적 변화를 하게 된 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동에 군사적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군사행동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추진해 왔지만,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 작년 가을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함으로써 클린턴 대통령 시대의 대북정책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의회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임기말을 맞아 중동에서는 실패했더라도 한반도에서만이라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한편 북한도 이제 여기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2·13 합의를 통해서 그들이 그토록 얻고자 했던 안전보장, 경제제재 해제, 국교 정상화 문제를 모두 얻었고,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이것만 해결되면 한반도 비핵화에 응하겠다고 주장해 온 만큼, 이제 더 이상 문제를 지연시킬 이유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진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핵 보유가 일본이나 대만의 핵보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중국의 대북제재는 강화될 것입니다. 그때는 한국도 여기에 동조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처지는 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한층 위기국면으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최근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신성불가침입니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스스로 드러낸 것은 핵을 포기하게 될 경우 군부와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보아서 북한 핵문제는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부시 대통령 재임중에 해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 이후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전망은 어떠하겠습니까? 긍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6자회담이 해체되지 않고 상설화되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협력기구로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이나 미국, 일본에서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 동아시아는 동아시아공동체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매년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려 공동체를 위한 초기단계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공동체는 EU의 역사에서 보다시피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이러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희망적인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은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21세기에 세계 정상을 다투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고, 일본도 오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 승승장구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세계 10 위권의 경제국가로서 최근에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타결지었으며, EU와도 FTA 협상을 개시하였습니다. 한편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우려스러운 점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중국을 염두에 두고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있고, 이에 대응하여 중·러 간의 안보협력도 적극 추진되고 있습니다. 중국 내의 사회적 동요도 상당히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민주화에 대한 요구로 발전되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정부의 대처 여하에 따라서는 아주 불안한 국면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우경화의 영향이 국민속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전쟁 참가를 부인하고 군대를 갖지 않기로 되어 있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운동이 정부 주도로 강력히 추진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일과 다르게 과거 전쟁범죄 역사에 대한 교육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과거 침략시대를 모릅니다. 일본은 그 침략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지도 않았고,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태평양 전쟁은 미국이나 영국 등의 경제봉쇄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자신들이 희생자라며 억울하다는 주장을 하는 풍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일대의 국가는 일본에 대해서 상당한 우려와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동북아시아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반도 통일의 전망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한반도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며,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방법도 분명합니다. 첫째, 한반도는 1300년 동안 통일국가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의 분단은 우리의 의사를 무시하고 미국과 소련이 남북으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국의 분단을 영구적인 사실로 인정할 수 없고, 반드시 재통일해야 한다고 믿으며, 또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해 마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베트남식의 무력통일도 아니고, 독일식의 흡수통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의 3원칙 밑에, 1단계 남북연합제, 2단계 남북연방제, 3단계 완전통일의 과정을 밟을 것입니다. 이는 6·15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남북의 의견이 상통한 점이고, 제1단계 남북연합은 언제든지 할 수 있을 정도의 합의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통일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남북한 공동승리의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경제적 부담도 적고, 정신적 갈등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독일 통일에서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우리에게 귀중한 반면교사가 돼주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독일을 비롯한 EU 국가들은 2000년 서울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을 계기로 저의 권고를 받아들여 북한과 국교를 전면적으로 정상화했습니다. 경제·교육 등 많은 지원도 해왔습니다. 북한 경수로 건설에도 참가하였습니다. 이처럼 EU 국가들은 한반도에 실질적인 관련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바탕으로 EU가 한반도 평화와 경제발전, 동북아시아 안전을 위해서 6자회담이 상설화되면 정식 멤버, 또는 옵서버로서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EU의 참여는 EU가 갖고 있는 세계평화에 대한 권위와 경제적 실력 등으로 보아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과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으로서는 EU가 중국·일본·러시아 등과 달리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접근성이 없다는 점이 우리의 안전과 남북 간의 협력증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독일은 우리와 같은 분단을 겪었고 통일의 과정을 거친 만큼 우리에게는 다시 없는 교사이자, 지원자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6자회담이 성공하고 북한과 더불어 상설적인 협력 속에 북한을 그들이 원하는 대외개방으로 유도하고 지원한다면, 북한은 지금 시작하는 시장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제2의 중국’ ‘제2의 베트남’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평화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남북 간의 교류협력은 왕성해질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한국과 독일은 다 같이 분단의 멍에를 수십년 동안 짊어지고 왔습니다. 독일은 이제 그 멍에를 벗었습니다. 다음은 한국 차례입니다. 우리 국민은 누구보다도 독일의 이해와 협력을 바라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한국과 독일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평화적 통일의 이념과 소망을 같이해 왔습니다. 제가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되었을 때, 또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이 선고됐을 때 독일의 수많은 지도자들과 국민은 저의 구명을 위해서 힘써 주었습니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 그리고 샤프 감독 등 은인들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다시 한 번 독일 지도자들과 국민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이번 독일 방문이 한독 양국 간은 물론, 한국과 EU간의 유대 강화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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