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 1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낙태에 대해서)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는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발언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원 40여명은 16일 오전 이 전 시장의 여의도 사무실 앞에서 ‘이명박 전 시장의 장애인 관련 발언에 대한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어 이들 20여명은 이날 오후부터 다음날인 밤을 지새며 17일까지 사무실을 점거하며 “이명박 후보의 장애인 비하 발언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 전 시장측은 이날 오후 “이명박 전 시장은 지난 12일 한 일간지에서도 밝혔다시피 그동안 ‘낙태는 반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며 “이번 인터뷰 과정에서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표현이 있었던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분명한 입장을 정리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전 시장측은 “이 전 시장의 발언은 결코 장애인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의 발언이 아니다. 다만 용어의 선택에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본다”며 “이 전 시장님은 그동안 장애인 등 약자를 보호에 앞장서 왔고, 장애인의 복지는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철학과 정책적 소신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집행위원장은 “이번 사안은 낙태 찬반이 중심이 아니라, 이 전 시장이 언론이라는 공개석상을 통해 ‘불구’라는 단어를 분명히 사용한 것”이라며 “조선일보 기자에게도 확인한 결과 이 전 시장이 ‘불구’라고 분명히 사용했고, 이는 언론과 장애인, 국민들에게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각인을 강화시킨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또 “이 전 시장 공보팀이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 오해가 있었다는 식으로 ‘선포’한 것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며 “오늘의 문건(보도자료), 발언, ‘불구’라는 단어 사용 등에 대해 합리적으로 해명하고, 잘못을 인정해야 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전 시장측은 “이 전 시장은 시장 당시에도 장애인을 위해 많이 노력했고, 또 관심도 많이 가지고 있다”며 “이 전 시장의 발언이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전 시장 측은 “모자보건법 14조에 표현된 그 자체를 너무 압축해서 표현하는 과정에서 표현이 잘못된 것 같다”며 “장애인들에게 혹시 오해와 마음 아픈 일이 생겼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장애인들의 삶 먼저 생각해보길”… 사과 안하면 낙선운동까지도 그러나 장애인단체들은 이러한 ‘해명’이 아니라 정식 ‘사과’를 요구하며 17일 오전까지도 사무실을 점검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무실을 점거했던 박홍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이번 이 후보의 발언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며 “첫째는 ‘불구’라는 장애인 비하 발언을 사용한 것이고, 둘째는 장애인에 대해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두 번째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으로, 이 나라 장애인들은 이 후보 말대로 죽어야 하느냐”며 “지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까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박 회장은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사과를 한다면 지금이라도 우리가 물러서겠지만, 문제는 아직까지도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모르는 것”이라며 “이는 이 후보가 장애인 문제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전 시장측이 발언이 왜곡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마시키기 위한 것이며, 이 또한 이 전 시장이 직접 해명을 한 것도 아니”라고 이 전 시장의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또 그는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안되든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장애인의 권리나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며 “장애인을 이해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장애인을 국민으로 보지 않는데 있다”며 “모든 국가 정책들도 소수의 장애인이 아닌 다수의 비장애인을 위해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용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어떻게해서든 이 전 시장의 사과를 받아낼 것”이라며 “만일 사과하지 않는다면 대선 기간 동안 우리도 계속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며, 낙선운동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김영희 공동대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생명이 무엇이 다른가, 살아야 할 생명이 따로 있다는 말이냐”며 “적어도 한 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 후보자라면 모든 생명의 가치는 평등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단체는 이 전 시장의 발언에 대해 “여러 장애인 단체들은 이 전 시장이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자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망언을 했다”며 “이 전 시장 발언의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 선거에 나오고자 하는 자가 과연 장애인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계속되는 장애인들의 농성에도 이 전 시장이 공개사과는 커녕 애매한 입장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해명하기에 급급하다”며 “장애인의 생명을 짓밟고도 아직도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는 이 후보는 480만 장애인 앞에 당장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 전 시장이 해명에서 인용한 모자보건법과 관련해서도 “장애인의 생명을 단지 의학적으로만 판단해 조치를 취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적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선 후보라면 오히려 이 같은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향을 밝히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며 “이번 일이 이 전 시장의 장애인 또는 생명관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제14조 1항에서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