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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고객없는 마케팅 생존불능

LG경제연구원 ‘고객 지향 마케팅 조직으로 변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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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8호 ⁄ 2007.07.03 09:19:29

국내 기업들의 해외사업이 빠르게 대형화·복잡화되어 가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 시장환경에서 글로벌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 기회를 포착하고 보다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마케팅 조직이 변신해야 한다. 아마도 디지털과 인터넷이 바꾸어 놓은 가장 큰 변화는 시장이 공급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왕이 되는 양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물론 과거 수백 년 동안에도 고객은 왕이었다. 그러나 항상 소비자들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았던 이 시절에는 사실상 시장의 권력은 공급자들에게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전통적으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 제공은 기업들의 몫이었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는 소비자 스스로가 정보를 만들고 전달자가 된다. 소비자들이 손쉽고 빠르게 정보를 획득하고, 다른 소비자들과 끊임없이 공유하거나 공급자들과 교섭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오늘날 시장 환경은 기업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와 경쟁 격화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불확실성과 위기 상황에 수시로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이러한 권력이동(power shift)의 혼란 속에서 어떻게 생존과 진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힘을 가진 소비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 가치 창출자로 글로벌마케팅 역할 변화 이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마케팅 조직의 근본적인 역할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과거엔 개발해서 만들어놓은 제품을 시장에 잘 팔 수 있도록 실행하는 수동적인 마케팅(Value Supporter) 역할이었다면, 이젠 시장 전략 수립과 실행을 주도하는 전략 플레이어로서 고객 수요 창출을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가치 창출자(Value Creat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시장환경에서는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마케팅 조직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다양한 지역, 다양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신제품 니즈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이 쌓이기만 할 뿐, 본국(本國)에 있는 사업부에 의미 있는 전략적인 정보로 활용되기 어렵다. 조직 내 여러 계층과 부문을 거치면서 정보의 손실이 발생하거나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조직에서 내린 바른 의사결정이 필드에서 실행되지도 못할 수 있다. 특히 진출하고 있는 국가가 많으면 많을수록, 취급하고 있는 제품 종류가 다양하면 할수록 이러한 정보의 복잡성(Complexity)은 커져 간다. 고객과 자사의 역량 관점에서 전략적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해서 개발/제조 부문에 전달하고, 효과적으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도록 글로벌 마케팅 조직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성공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비자들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의미있는 변화를 남보다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구를 좋아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경쟁업체와 비교해 우리의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얼마나 마케팅 조직이 신속히 파악해 내고 제품화하여 남보다 먼저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 소비자중심 마케팅 걸림돌, 조건화 현상 해마다 국내 대기업들의 신년 화두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시장지향적인 마케팅이다. 이렇듯 사업성공의 중요한 요인이 시장지향적인 마케팅이라고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행하기 어려운 것일까? 모든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이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강력하게 드라이브하는 데도 불구하고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기업 체질의 ‘조건화(Conditioning) 현상’에 있다. 조건화는 파블로프의 실험에서처럼 자극과 반응의 과정이 오랜 기간 동안 되풀이 되다 보면 설령 새로운 자극이 전달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반응을 그대로 보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우리 몸이 외부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오랜 기간 학습되어온 대로 반응하게 된다.

사업부진으로 허덕이는 기업일수록 ‘우리 회사는 원래 그래!’또는 ‘사장이 엔지니어라서 안돼!’‘ 누구는 마케팅 역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고 누구는 기업 문화가 그래서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그러나 기업이 시장변화 또는 고객 니즈에 민감한지 여부는 유전이나 체질에 의한 것이 전혀 아니다. 사실은 후천적인 것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된 것이다. 즉, 조직이나 업무프로세스, 역량, 기업문화 등과 같은 체질 요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건화된 것이다. 과거의 성공체험에 의해 자원을 우선순위화해서 배분하고 과거의 주력 사업을 최적화하는 업무 프로세스와 기업문화는 새로운 자극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 과거 제조/개발 중심 환경 조건화되어 있어 대부분의 국내 제조기업들은 불과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OEM이나 ODM으로 해외 시장에서 진출하는 데 성공해왔기 때문에 아직도 잘 만들기만 하면 잘팔린다는 제조/개발 중심의 사고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고객이나 시장의 트랜드 변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종 메이커들의 요구대로 싼 가격에 신속히 만들어 주는 것이 사업의 성공요소였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마케팅 하면 광고나 포스터 만드는 일로 오인해서 쓰는 경우도 종종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들의 마케팅 이슈들을 일일이 한국의 본부에서 직접 챙기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성공체험으로 우리 기업의 체질이 조건화되어 있기 때문에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환경, 다양한 니즈를 가진 고객들의 요구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 시장지향적 마케팅 조직으로 재조건화 필요 조건화된 몸은 변화한 환경에 맞추어 재조건화(Reconditioning)라는 과정을 거치면 개선될 수 있다. 재학습에 의해 몸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제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해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시장지향, 고객중심을 목청껏 외쳐도 명령을 전달하고 에너지를 쓸 신경과 근육 조직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이는 마치 비만을 해결하려면 적게 먹으라는 얘기와 같다. 알고 있지만, 밥상앞에만 앉으면 손이 가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수족 노릇을 하는 마케팅 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정보와 의사결정의 병목이 발생하는지를 파악하고, 해결 단계에서는 하드웨어적/소프트웨어적인 변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사업의 복잡성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센터(Headquarter), 지역(Regional Headquarter), 국가(Country) 마케팅 조직을 재구성하고 조직 간 역할과 책임을 뚜렷이 정의할 필요가 있다. ■ 글로벌 조정 vs. 지역 밀착형 조직 선진 글로벌 기업들의 마케팅 조직의 유형을 보면 크게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첫 번째가 글로벌 조정형(Global Coordination)이다. 대체로 본국에 있는 글로벌 사업조직(GBU)이 제품 전략과 개발은 물론 매출과 손익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마케팅 전략을 포함하여 모든 제품과 브랜드가 사업부 중심으로 운영/관리되기 때문에 브랜드 간 및 제품 간 시너지를 내기 용이하고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중요한 마케팅 의사결정이 고객과 멀리 떨어진 센터에서 이뤄지므로 실제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는 데 시차와 갭(Gap)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로컬 조직들은 주로 실행만 담당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기 부여가 안 되는 측면도 있다. 제품의 복잡성이 큰 대부분의 IT·전기전자 기업들이 이러한 유형에 해당하고, 소비재 기업들 중에서는 피엔지(P&G)·펩시콜라(Pepsi cola) 등이 여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반대되는 유형이 지역 밀착형 (Local Responsiveness) 조직이다. 이는 고객과 가장 가까운 접점인 해당 국가나 해당 지역단위 조직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주요한 마케팅 의사결정들이 이루어지고, 손익에 대한 책임도 지역조직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 센터의 마케팅 조직은 베스트 프랙티스(BestPractice) 등을 전파하는 일 정도의 제한적인 역할에 그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쉘(Shell)이나 네슬레(Nestle)와 다농(Danone) 등과 같은 소비재기업들이 이 유형에 가깝다. 센터와 국가를 잇는 허리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조직(RHQ)도 각각 기업 고유의 문화나 역량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소니의 경우엔 정보의 교차로 역할만 수행하게 하여 소수의 인원으로 유지되는 반면, HP의 경우엔 지역차원의 예산 배분 및 전략을 수립하는 등 지역 마케팅의 중심으로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소비재 기업인 마스터푸드(Masterfoods)의 경우처럼 지역중심으로 모든 마케팅 의사결정이 집중화되어 있는 기업도 있다. ■ 조직을 키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소비자 중심 조직으로의 변화가 반드시 시장 조직을 키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 때 필립스(Philips)는 가전·메디칼·조명 등의 각 사업부별로 별도의 지역마케팅 조직을 두고 그 산하에 독립적인 세일즈 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 각 사업부별 특성에 맞게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마케팅 조직을 키우다 보니 한 때 미국에만 약 80개의 오피스가 산재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사업부별로 지역 본부가 따로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래선(Account) 입장에서는 혼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내에서도 사업부 간 시너지를 발휘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고객의 입장과 자사의 마케팅 역량을 감안하여 최대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을 구축하지 못하면 기업자원의 심각한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 모방보다 체질 맞는 마케팅 조직 구축해야 글로벌 마케팅의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기사업의 특성과 역량을 고려하여 이 두 가지 유형 사이에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두 유형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사업환경에 맞는 하이브리드형 조직 구조를 선택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글로벌 기업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조금씩 다른 조직구조와 역할 및 책임을 부여하고 있으며, 단점을 줄이고 운영의 효율성을 증대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 무조건적인 모방은 실패를 자초한다. GE의 포트폴리오 관리, 식스시그마(Six Sigma)나 도요타(Toyota)의 린 생산방식(Lean Manufacturing) 등을 많은 기업들이 모방하고 있으나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잘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김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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