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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신뢰를 줘야 할 쪽은 경영진이다

[인터뷰] 세계의 노동환경 2편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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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1호 ⁄ 2007.07.02 13:28:16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기자인 김욱 기자는 최근 각국의 노동환경에 대한 이슈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첫 번째로 김 기자는 오스트리아의 노동환경에 대한 인터뷰 파일을 기자에게 보내온 바 있다. 김 기자가 보내온 두 번째 인터뷰 파일은 일본에 관한 것이었다. 김 기자는 우선 “한국 기업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점을 중시했다. 그는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기업문화는 꽤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도 한국처럼 노동자들이 극심한 야근에 시달릴까”라는 의문에서 두 번째 인터뷰를 시도했다고 전했다. 김 기자의 두 번째 인터뷰 상대는 일본 M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재일맨’님이다. “그는 한국의 H대를 졸업한 후 H회사에서 잠시 근무하다 일본으로 건너간 현재 30 전후의 남성”이라고 김 기자는 밝혔다. 다음은 김 기자와 ‘재일맨’님의 일문일답. ■ 일본엔 어떻게 가게 되었나 “한국 H회사를 2년 다니다 그만뒀다. 퇴사 후 1년간 디자인 외주일을 하면서 외국의 자동차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일본과 유럽 등 각지의 회사에 보냈는데 M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내가 보낸 스케치 중에 하나가 채택되어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최근 대형 SUV가 양산되어 북미와 유럽에 판매되고 있다. 그 기간에 입사했기 때문에 그 후의 계속적인 프로세스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디자인 프로세스가 끝날 때까지 디자이너는 그 프로젝트의 일을 계속 진행한다. 하지만 그때 입사 전이었고 입사 후에는 이미 참여하기에는 프로세스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내 스케치를 계속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참 아쉬웠다. 비록 조그만 아이디어 스케치 하나이지만 지금의 양산차량에 내 아이디어 스케치가 녹아있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좋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H 회사도 좋은 회사인거 같은데, 좀 위험한 선택을 한건 아닌가 “굳이 모험을 해가면서 외국으로 회사를 옮긴 이유가 있다. 우리가 대학에서 교육받으면서 알게 된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근무조건이 좋았었다. 근무 스타일과 사고방식도 남달랐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국내회사의 디자이너 환경은 많이 달랐다. 근무조건도 낮았고, 사고방식의 괴리감이나 세대차이, 근무 스타일에 대한 벽들도 너무 높았다. ‘배부른 소리다’ 라고 말하는 분도 계실 거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내 자신에게 있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단순히 크고 안정적인 회사와 좋은 월급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요건들은 그런 것 뿐만이 아니다. 감성적인 가치들도 같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던지고 나왔다. 많은 회사들이 그렇지 않겠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디자이너라는 직종을 단순히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원’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있다. 그건 우리나라의 지적인 부분이나 창조적인 것들의 금전화라고 해야 하나, 그런 사고방식들이 아직 부족해서이다. 우리나라는 무형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시각화시켜 유형의 물건으로 실제화 시키는 직업들이 제대로 가치판단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디자인·음악·애니매이션·만화·게임 등등이 이미 엄청나게 많은 수요자를 가지고 있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문제의식이 나를 일본으로 건너오게 했을 것이다. 수입도 일본에서 훨씬 더 많이 받고 있다. 물론 지금은 계약직이라서 단순비교 하긴 어려운 점도 있다. 부서장들은 절대 명령하는 일이 없다. 주말에 나오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식으로 협의를 한다. 이게 참 놀라웠다.” 재일맨님은 한국과 일본의 직장을 모두 경험해서 두 나라의 노동환경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분이다. 먼저 일본직장의 근로조건은 어떤가. 근무시간과 휴가 등 “주5일에 1일 8시간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8시간이 넘어가면 그 때부터 자동으로 초과수당이 붙는다. 휴가는 여름휴가와 겨울휴가가 각각 10일이 있고, 봄쯤에 ‘골든 위크’라고 해서 1주일정도의 휴가가 있고 별도로 회사에서 15일의 휴가를 또 준다. 다 합쳐 45일의 유급휴가가 있다. 회사에서 주는 15일의 유급휴가는 다 못쓰면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있다. 수요일은 정시퇴근일로 정하고 다 같이 일찍 퇴근한다. 만약 수요일이나 주말 일하게 되면 부서장에게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한다. 플렉스타임제도 운영하고 있다.” ■ 혹시 초과근무로 위에서 압력은 없나 “우리나라와 다르다. 초과근무의 판단은 본인에게 달렸다. 8시간을 안채우고 퇴근해도 나중에 못 채운 만큼의 시간을 더 일하면 문제는 없다. 주말근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부서장들은 절대 명령하는 일이 없다. 주말에 나오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식으로 협의를 한다. 이게 참 놀라웠다. 근대 일본의 기업이념은 ‘잇쇼켄메이’라고 해서 한 직장에서 평생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개인보다는 회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원들의 복지와 생활환경, 근무환경에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가 많다. 조금은 우리나라의 회사와 비슷한 부분들이 몇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유럽이나 미국의 스타일에 좀 더 가까 운 느낌이다.” ■ H 회사의 근로조건은 어땠는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당시 출근시간은 9시였고 퇴근시간은 5시 45분에서 6시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건 세계 어느 곳의 디자이너든 비슷할 것이다. 디자이너에게 출근시간은 있으나 퇴근시간은 없는 편이다. 현재 회사에서도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그 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다른 것은 한국회사는 평일에 수당이 없다는 것이다. 원래 없었던 건지 다들 신청을 안 하니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주말은 수당이 있었다. 한국회사가 좋았던 것은 사원들에게 점심식사와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꽤 좋았다. 대신 일본은 교통비를 지급해준다 기본적으로 정규직과, 계약직,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통틀어 모두에게 교통비를 지급한다. 자기 집에서 회사까지의 버스나 기차 등의 요금을 정확하게 환산해서 주고 있다. 나의 경우 6개월에 한 번씩 받고 있다. 회사의 데이터베이스에 사원 개개인의 주소가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집까지의 기차나 버스 등, 가장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 산정했을 때의 금액을 받고 있다. 한국에선 디자인 업무 뿐만이 아니라 각종 부대적인 업무들이 꽤 많았는데, 그런 것들과 이래저래 눈에 띄지 않는 요소들이 디자이너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디자이너라는 직종이 원래 그렇게 야근이 많은가 “TV이나 광고에선 디자이너의 모습을 아침햇살을 받으며 원룸 침대에서 일어나고, 영자신문을 보며 모닝커피를 마시고, 스포츠카를 타고 출근하고, 모델 같은 외모들의 동료들과 멋진 일을 하는 식으로 그린다. 그러나 실상은 며칠 밤을 샜는지 기억도 안 나고, 밤새 자장면과 자판기커피로 연명하고, 늘어나는 건 뱃살과 다크서클, 이른바 어둠의 자식들이다. 예전 웹 사이트에서 이렇게 디자이너의 실상을 그려놓은 만화를 재밌게 보고 내 홈피에 담아놓기도 했다. 단순히 디자이너를 화려하고 멋진 직업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일반화이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로 힘들듯이 디자이너들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직장생활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 또한 엄청나다.” ■ 한국과 일본 두 회사를 비교했을 때 업무 효율은 어떤가. 일본회사에서 근로시간이 좀 줄어들었는데, 성과는 동일한가 “한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근로시간이 줄고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업무 효율에 있어서는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 디자인이라는 작업이 시간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능률적으로 업무를 해결하고 제한시간까지 해내느냐가 관건이다. 절대적인 시간양으로 업무효율을 따지기는 어렵다. 디자이너 업무 자체로는 효율이 많이 좋아졌다. 한국에선 디자인 업무뿐만이 아니라 각종 부대적인 업무들이 꽤 많았는데, 그런 것들과 이래저래 눈에 띄지 않는 요소들이 디자이너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지금은 순수하게 디자인을 위한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어 업무효율이 높아졌다.” ■ 플렉스타임제를 한다고 했는데, 업무협의나 근무기강에 문제는 없나 “플렉스타임제를 실시하려면 일단 사원 개인이 자기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스스로가 해결하는 업무에 대한 정확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 바탕위에 플렉스타임제가 실시되어야 업무성과도 거두고, 근무기강의 문제들도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일 중요한 회의나 미팅이 있고 그 사전조사와 준비를 해야 하는 업무가 있다면, 플렉스타임이라면서 그런 일을 외면해선 안 된다. 플렉스타임제는 사원과 회사가 같은 위치에서 같은 생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2인3각 같은 것처럼. 지금의 회사에서는 플렉스타임제가 어색한 제도가 아니다. 자기 스스로 시간계획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제도에 대한 불이익은 전혀 주지 않고 있다.” ■ 일본의 간부들은 자신의 분장된 업무를 따로 가지고 있는가 “디자이너 출신의 경우는 부서장으로 진급할 경우 어떤 방면으로 자신의 진로를 계속 이어나갈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현업, 즉 디자인 업무에 종사하는 부서 쪽으로 나아가면서 진급을 할지, 관리직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진로결정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원관리직들과 실무 부서장이 따로 나뉘어져있지만 실무직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위치에 가면 둘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관리직에 있다고 해도 사원관리만을 하지는 않는다. 계속 퇴직 시까지 실무와 관리를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초과근무를 스스로 판단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비슷한 정도의 양의 업무를 맡겼을 때 수당청구가 많은 직원은 평가를 낮게 받는 건 아닌가. 오히려 야근이 무능력의 잣대가 되지는 않나 “야근이 무능력의 잣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야근을 하던 제시간에 퇴근을 해서 자기 시간을 충분히 가지든 결과물에 대한 자신과 책임만 있으면 과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제재를 받지 않는다. 미시적인 시각으로 보면 같은 일을 3시간에 하는 사람과 6시간에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 3시간에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면 결코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일을 하는 스타일이 다를 수 있고, 6시간을 일해서 3시간에 한 사람보다 더 훌륭한 디자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회사차원에서 훨씬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야근의 양이 무능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정해진 시간까지 내놓는 마지막 결과물의 내용이 중요한 거다.” ■ 한국인도 있나. 같이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의 근무조건에 만족하는가 “4명이 같이 일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있다. 나와 동갑이고, 8개월 일찍 입사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도 공교롭게도 저와 같은 한국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동질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도 금전적인 면이나, 업무적인 면에서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 퇴근 후나 휴일 일본인들은 주로 무엇을 하는가 “주로 평일은 늦게 끝나는 편이기 때문에 집으로 귀가해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 회사 근처나 집 근처에서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회사 앞에 맘 좋은 대구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한국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일본 동료나 한국인들과 소주에 삼겹살 또는 얼큰한 국밥을 먹기도 한다. 좀 비싼 편이지만 꽤 맛있어서 자주 간다. 일본인들은 주말이나 연휴에 바다낚시를 가거나 여러 가족들이 모여 캠핑을 간다. 당일치기로 캠핑을 가서 바비큐를 즐기기도 한다. 일본은 바비큐를 위한 공원이 잘 조성돼있다. 싼 대여료로 바비큐 장소를 빌려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일본의 회식은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회식 때 음주문화였다. 개인적으로 술을 잘 못하는 타입이다. 일본은 폭음문화는 없다. 오히려 술을 마신다는 것 보다 안주를 먹기 위한 회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회사의 공식적인 회식을 제외하고는 회식비는 각자 일정금액을 걷는다는 게 좀 다르다고 할까. 폭음은 없는데 회식비의 압박이 좀 있다. 최근에 같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동료의 결혼식 파티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보면 피로연이다. 한국처럼 화끈하진 않았지만 꽤 아기자기했고. 두 나라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피로연에서 최근에 출시된 게임기로 권투시합을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같이 참석한 부장이 신입사원들과 함께 열심히 땀흘려가며 게임을 했다. 단순히 음주만 있는 회식과는 또 다른 스타일에 적잖이 놀랐다. 일본에선 물론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회식에서 직급이 의미가 없어지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앞서 말한 부장은 상당히 높은 분이다. 하지만 불만인 것은 회식 다음날 그렇게 친하게 술 먹었던 사람들이 말 한마디 안 건네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속 괜찮냐고 한마디씩 건넬 텐데 말이다.” ■ 일본생활에 만족하는가 “와서 일본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같이 낚시도 자주 다니고, 좋은 친구들이 많다. 직급 간의 일의 차이는 있고 상하는 있지만 굉장히 쉽게 터놓고 얘기한다. 굳이 필요 없는 허식을 차리지 않는다. 필요한 얘기, 하고 싶은 얘기도 마음껏 터놓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굉장히 좋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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