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창훈은 ‘제대로 된’ 문학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글짓기 대회에서 상 한번 받아본 일도 없다고 한다. 그런 그가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겠다고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나이 스물여섯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비오는 날 다시 꺼내보는 책, <홍합>은 고향인 여수 근처의 한 홍합 공장에서 그 자신이 겪은 체험을 그대로 불러낸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여기저기 떠돌다 우연히 홍합 공장 트럭을 몰게 되는 먹물 ‘문 기사’는 그 나이 적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이다. 한창훈은 5·18광주민중항쟁을 고교 시절 광주에서 겪었다. 그때 함께 어깨를 겯고 있던 같은 또래의 학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에 진학했으나 세 학기 만에 그만뒀다. ■ 멈춰버린 세월 하긴, 그 시절에는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인지 한창훈의 작품에는 ‘5월 광주’가 유난스럽지도, 그렇다고 무덤덤하지도 않게 등장한다. 그와 똑같이 광주를 겪은 임철우나 정도상의 체험이 그들 자신의 작품 전반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데 반해, 한창훈에게 있어 5월 광주는 빛나는 상처도, 가리고 싶은 흉터도 아닌, ‘사실’의 범주에 놓여 있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생활 속에서 몸을 굴리며 치열하게 살아 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오징어잡이배나 양식채취선을 타는 뱃사람이 되어 보기도 하고, 친구들의 외상 술값 때문에 얼마 못 가기는 했지만 포장마차 사장도 해 봤다. 공사판 잡부와 시골다방 DJ, 홍합공장 노동자, 여대 앞에서 브로치 팔기 등도 이 시절 그가 지나온 직업들이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이다. 이렇게 한동안 떠돌던 그는, 문득 자기가 경험한 것들을 소설로 풀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허나 막상 소설을 쓰려니 막막했다. 떠나온 학교로 돌아가 복학을 했지만, 전공은 하나도 안 듣고 대신 다른 과의 ‘문학’자가 들어간 과목은 모두 다 골라 들었다. 한창훈과 비슷한 시기를 겪어낸 소설가 정도상의 장편소설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에는 이 시기의 한창훈과 매우 흡사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그 인물은 정도상의 ‘그때 그 세월’을 드러내는 인물이지만, 정도상이 전주에서 그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동안 한창훈은 그보다 약간 북쪽에서 그러한 세월을 온 몸으로 견디고 있었다. ■ 바람에 실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는 욕심에 문학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매일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그 이론에 맞게 습작에 열중하다, 흥미를 잃고 ‘쓰고 싶은 대로 쓰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문학은 가장 비문학적인 데서 나올 수 있다’는 게 한창훈의 문학론이다. ……발랑 벌어진 홍합을 솥에서 들고 까먹는데 어느 누구라도 입 다물고 그냥 먹는 이가 없었다. “참말로 아무리 봐도 똑같이 생겼네.” 간밤에 보던 것과 단순 비교하는 측이다. “어째 이 불쌍한 것을 이렇게 모지랍스럽게 쌀어분다냐…….” - <홍합> 中에서 이러한 음담패설 류의 문장 속에서 한창훈이 말하고 또 발굴하려고 했던 것은, ‘사투리’만이 지닐 수 있는 ‘밑바닥 정서’의 한 단면이다. ‘하류인생’이라는 말로 쉽사리 우리들의 입에 담기는 기층민중의 의식의 저 바닥에는 성(聖)과 속(俗)이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 둘은 하나의 합일점을 가질 수도 있다는 근원적인 사유가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창훈은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는 ‘평등’하기 때문이다. 산은 높낮이가 너무 뚜렷하고 끝까지 올라가 모든 것을 발아래 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만 내려오지만, 그러나 바다는 파도가 치면 똑같이 치고, 잔잔해지면 똑같이 잔잔해진다. 한창훈은 바다의 이 ‘어마어마한 평등함’을 좋아한다. ■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눈앞에 있었다 모두 11장으로 꾸려진 이 <홍합>의 미덕은, 한 장마다 한 인물씩 삽화처럼 떠오르는 그 억척 또순이들의 인생역정이다. 부모가 지어준 김 아무개, 혹은 이 아무개 따위의 이름 대신 ‘아무개 댁’이나 ‘아무개 엄마’ 등등의 ‘이름 없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남편이거나 아들인 자들은 그이들의 고단한 삶과 썩 잘 어울리게도 ‘저렴한’ 인생들이다. 대개 그이들의 남편들은 주먹으로 안부 인사를 대신하며, 아들들은 주기적으로 파출소에서 소식을 전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이들의 노동의 대가는 그 잘난 남정네들의 호주머니나 뒤치닥거리로 소진된다. 허나 그 뿐, 그이들은 특별한 불만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나같이 무능하거나 집안을 돌보지 않는 가장과 아들들을 둔 그이들이 ‘그 고생해서 벌어 새끼들 입히고 멕이고 학교 보내는’ 팔자는 ‘짠’하게만 보이지 않고, 때로 그 가부장제를 뛰어넘으려는 당당함마저 엿보이기도 한다. 한창훈의 시선이 기층 여성들의 인생에 따스하고도 날카롭게 닿아 있는 것은, 그의 개인사적인 삶을 넘어선 ‘그 무언가’에 그의 영혼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울림’이다. 이 두 가지 화두를 품고 사는 사람만이 ‘변방에서 변방으로 떠도는’ 자들의 고단하기 그지없는 삶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 희망은 언제나 이웃들 사이에 있다 <홍합>은 처음부터 시종일관 흥미롭고 유쾌한 에피소드의 나열로 오인 받을 수 있는 함정을 파 놓고 있는 작품이다. 각각의 장(章)을 따로 떼어 놓고 본다면 한 편씩의 단편소설로 독립될 수 있을 정도로 개개의 장(章)들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작품은 빠르고 더구나 쉽게(!) 읽힌다. 남도 특유의 리듬감 있는 어투와 1990년대 우리 문단이 건져 올린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 한창훈의 입담이 잘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얼핏 읽기에 <홍합>에는 ‘눈물’의 자리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끝까지 읽지 않는다면,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사건들의 나열들만으로 꽉 차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분들은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을 반드시 읽으시길 바란다. 뭔가 망치로 세게 맞은 느낌이 들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인생 뭐 있어?”라고.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 풍진 세상 그냥저냥 살다 가면 되는 거지’ 혹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만약 내 자신에게 그런 생각이 친근하게 찾아온다면, 이 책 <홍합>의 마지막 장(章)만을 따로 떼어놓고 읽으시라. 그러면, 삶 속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무언가가 우리 영혼의 ‘귀싸데기’를 ‘불이 번쩍 나도록’ 후려칠 것이다. 그럴 때, 뜨끈한 홍합 국물에 소주 한 잔 하시라. 너무 늦은 후회가 우리의 벗이 되기 전에.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서 있는 자리에서 가능할 것이었다. 돌아볼 것도 없고 쫓아갈 것도 없었다. 언제나 눈앞에 있었다. - 작품 마지막 문장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