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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金漢五의 作品世界

現實과 理想의 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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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호 ⁄ 2009.09.07 10:39:56

[Kim Han-O] 프로필 http://www.hano.pe.kr Email : hano55@hanmail.net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운영위원 목우회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미술단체 영토회 회장 분당미술제 운영위원장 분당작가회 자문위원 그 소재들이 자리하는 방식은 물론이요, 간결한 형태미, 현실과는 다른 공간미 그리고 추상적인 이미지로서의 배경 등 실제와 구별되는 점이 많다. 실제와 구별되는 점이야말로 회화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미답의 조형공간을 의미한다. 조형, 즉 형태를 만든다는 것은 창작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창작은 실제를 재현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를 근거로 하되 궁극적으로 회화로서의 이상적인 조형세계를 만들어내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구할 수 없는 회화적인 이상세계를 만들어내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그는 현실에서 구할 수 없는 회화적인 이상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몇 가지 조형어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소재들이 자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어디서 보았음직한 옹색한 집들과 단순한 형태의 나무·전봇대 등이 수직구도로 자리한다. 더구나 이들 소재 이외에는 주변상황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다. 어찌 보면 하늘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바다 같기도 한 무심한 평면적인 공간에 이들 소재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떤 작품의 경우에는 하늘 또는 바다와 같은 공간에 집과 나무가 섬처럼 떠있는 듯 하다. 집이나 나무는 응당 땅위에 존재해야 한다는 엄연한 진리를 무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하늘이어야 할 공간에 사람을 가득 실은 나룻배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전체적인 정서로 보아 현실과 이상을 오가는 상념의 배라는 심증이 강하다. 단순히 현실적인 배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강 또는 바다로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되 그의 작품에서와 같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룻배가 등장하는 것은 엉뚱한 일이다. 그런데도 환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처럼 비현실적인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은 아마도 우리들 자신이 그러한 세계를 잠재적으로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는 소재를 현실적인 상황으로부터 절연시킴으로써 독립적인 회화공간으로 진입하고 있다. 현실의 연장으로서의 이상은 이에 연유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떠한 생략이나 단순화가 이루어지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현실적인 감각으로 그의 작품세계와 만나기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현실과는 얼마간 다른 세상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캔버스에 등장하는 소는 그 전모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이미지로 단순화시킨다. 나뭇가지나 나뭇잎 등 세부를 묘사하는 대신에 둥그런 이미지로 요약되는 잎 부분과 줄기 부분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집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붕과 벽이 있을 뿐, 창문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봇대에는 어김없이 전깃줄이 걸려있다. 전깃줄을 생략하지 않는 이유는 때로 새를 등장시키기 위한 복선이기 때문이다. 형태의 단순화라든가 대담한 생략은 평면적인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 그는 이미지의 명료성 및 간결성을 회화적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조형적인 틀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형태의 평면화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단순화하고 평면화한 형태를 감싸고 있는 윤곽선의 아름다움이다. 나무는 자연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집은 인위적인 구조물인지라, 기하학적인 형태로 되어 있어 시각적인 경직성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그는 적당한 왜곡 및 변형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하학적인 차가운 이미지를 부드러운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다. 회화에서의 조형의 묘미란 바로 윤곽선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형적인 요소 중에서 선과 면이야말로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건인 까닭이다. 선의 아름다움을 터득한다면 조형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면의 경우는 어떤가. 면은 선과 더불어 존재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색채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회화적인 깊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밀도 높은 채색기법이 필요하다. 특히 유채화에서는 채색의 깊이만으로 회화성 높은 작업이 가능하다. 그는 물감을 얇게 바르면서도 심도 깊은 공간감을 표현하는데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는 유채화라는 재료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점을 말해준다. 전체적으로 그의 색채감각은 어두운 편이나 중후하고 심오하다. 색혼합에 대한 독자적인 이해 및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각적이기보다는 이지적인 쪽에 가까운 색채이미지이다. 이러한 색채이미지는 시지각의 산물이 아니다. 사유의 침전물이다. 그의 작업에서 주시해야 할 곳이 있다. 마치 창유리 또는 블라인드 커튼으로 가린 듯한 반투명의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또한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는 조형적인 장치이다. 간접적으로 들여다 보이는 일종의 차단막인 셈인데 이는 동시에 그 자신의 의식의 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을 곧바로 응시하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조형적으로 시각적인 긴장감으로 작용한다. 사실주의 또는 인상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현실 해석임을 증명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그 자신의 회화적인 이상을 설정하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조형적인 모색을 지속하고 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그의 작품 세계는 개별적인 조형성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시할 만하다. 사실주의 경향의 풍경화에서 이처럼 혁신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신항섭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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